어느 중국 무협영화의 주인공 서봉년은 정인인 '강니'가 자신의 고국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한다. 이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서봉년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어찌 떠나보내냐고 물었다.
서봉년은 이에, 
"놓아야 가질수 있고, 헤어져야 만날 수 있으며,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라는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답을 준다.

마침, 어느 분의 글을 읽어보니 "이별과 만남은 둘이 아니다" 라고 써있다.


이별 여행이라고 하니 마치 드라마의 제목처럼 연인들의 이별로 오해하는 수가 있겠다 싶다. 하지만 연인들의 이별에 관한 아픈 스토리가 아니다. 단지 가족 중 누군가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주 멀리 떠나 살아야 하는 이야기이다. 온전히 돌아오기까지는 계절이 몇 번 바뀐 후가 될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고 저마다의 길이 따로이 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긴 이별을 위한 여행을 함께 하는 것 뿐.


삼천포로 잠시 빠져보면,
 나는 깊은 산골이자 바다가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서쪽 태생이다. 자연 경관으로만 말하자면 찾아오는 이 없는 관광명소가 고향인 것이다. 한 번 다녀간 사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둔의 명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의문이었다. 가정맹어호라고 나의 조상은 가혹한 세금이 무서워 야밤에 이곳으로 도주를 하셨나, 아니면 역적질을 하다가 쫓기어 이곳까지 도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았다. 조선의 학정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라면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도피를 했던, 쫓기었든 하필이면 이런 외딴, 아무도 찾지 않는 은둔 장소에 정착한 조상들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그러나 명리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어느 분은 나의 주거 환경이 이와 달랐더라면 어린 시절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틀림없이 절명했을 것이라 했다. 남쪽 혹은 동쪽 에서라면 말이다. 서쪽 바닷가나 북쪽에서 태어나야 어린 시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 붙이기를  "그러나 서쪽에서 바다를 수영장 삼아 살았다 해도 그냥은 없습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갑니다. 절명의 위기를 만난 적이 있지요?" 라고 물었다. 그랬다. 나의 운명은 어린 내가 그 시절을 순순히 지내도록 방관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치명적 절명의 순간과 세 번 마주했다. 아차하면 저승 사자와 동행하는 삶이었다.



[[[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은 사적으로 박지혜의 버전이 가장 느낌이 좋다. ]]]


그런 순간들을 마주한 후로 낯에도 밤에도 무서운 꿈에 시달렸다. 식사 후 급체하는 일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앓아 눕곤 했다. 덕분에 초등학교를 수도 없이 빠졌다. 어린 놈이 무녀의 도움을 받을 정도면 소나기의 윤초시네 증손녀와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던듯 하다 ㅡ 지금 생각해보면 윤초시네 증손녀는 전라도 광주 혹은 경상도 마산 쯤으로 가서 요양을 했어야 했지 싶다. 소녀가 음의 기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삶을 등졌으니 하는 말이다. 아 그렇게되면 윤초시네 증손녀가 사는 대신 소설이 죽게되나?ㅡ. 


어째거나 나는 방안에 홀로 누워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또래 아이들의 외침 소리를 뒤로하고 꿈 같은 잠에 빠지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방안이 아니라 안뜰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이 모든 것들이 절명의 순간들과 마주한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잊었던 기억이 되돌아 온 후였다.


기억이 다시 되 돌아오기 전까지, 절명의 모든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까맣게 잊게되었으니 말이다. 그 망각의 순간이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2학년 후로는 온전한 정신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니 그때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 어째거나 내가 서쪽에서 태어난 때문에 가족들은 동쪽으로 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늘 남는 법이다. 다들 이 번 이별 여행은 동쪽 끝으로 가자고들 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첫 번째 계류지는 안동이다. 시내에서 찜닭을 먹고 명소를 둘러보며 그곳에서 하루를 머문 후, 다시 동쪽으로 떠날 것이다.


출발 전에 집근처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고 첫번째 계류지인 안동을 향해 도심을 빠져나갔다. 자연스럽게 휴게소를 거치게된다. 유감스럽게도 가족의 휴게소 루틴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 그외 간식을 구매하거나 식사는 하지 않는다' 이다. 이런 루틴은 휴게소의 음식에 대한 불만 또는 불신의 반작용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날수록 휴게소 식당 음식의 질이 점점 더 나빠지더니 몇년 전에는 거의 먹을 수 없는 사건과 마주했다. 그날은 음식을 사놓고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심지어 휴게소에서 파는 이름있는 점포의 아메리카노 조차 늘 너무 쓰고 텁텁했다. 가장 질 떨어지는 콩은 휴게소에서 소비하는구나 싶었다.

결국 그 날 새로운 루틴이 생겨났다.


1. 장거리 여행이 있는 날, 출발 전에 외식을 한다.
2. 간식거리는 집에서 준비해간다.
3. 휴게소에서는 편의점에 들른다.
이런 루틴이 정해진 후로 늘 그래왔다.



이번에 그렇게 들른 곳 중 하나는 첫 번째 계류지 안동으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 '단양팔경 휴게소 부산방향'이었다. 하차 후 모두 편의점으로 웅성 웅성 발길을 옮기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와~ 다이소다~!!'

다른 누군가가 놀라듯 말했다.
'어, 어디?'

또 다른 누군가가 반갑다는듯 말했다.
'나, 다이소 갈라그랬는데! 어딧어?'

정말로 저 멀리 '다이소' 간판이 보인다.
나는 '와~  고속도로 휴게소에 다이소가 다있네! 여기 최곤데!' 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근데, 다이소 글씨가 파란색인데?' 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색깔이 중한가? 다이소가 있다는게 중허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다이소에 이끌려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이소가 점점 가까워지자, 
시력 좋은 누군가가 실망하듯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아~  이런!!'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급 궁금하여 '왜 왜? 했다.

외마디 소리를 지른 사람이 말없이 천천히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다이소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은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보냈다.
'아~~~!!"

그 중 시력이 나쁜 누군가는, 아 왜? 이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기 다이소는 그 다이소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모두들 호쾌하게 웃었다.
아~  하하!!

내가 말했다.
와~~ 아이디어 최고다, 진짜!!
많이 파세요~~!!

누군가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줘야지~' 했다. SNS에 올린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나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날이 추워 그런지 휴게소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짧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시리고 차다. 오늘 참 춥다.
그래도 목련은 곧 피어 오르겠지....


그리고 부디, 건강하게 잘 다녀오기를..... 춥지만 단양팔경의 맑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시력 좋은 사람이 먼 길을 나서는 장본인인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에 쓴 글이 있어 되돌아본다.

 

           으악새

      대모산에 올랐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논밭을 지나는데,

      "으악!" 하고 여자애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친 여자애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으악새가 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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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 ^^ ^^ ^^ ^^
다이소가 여러 군데 있네요.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에 어울리는 일기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2-12 19:5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잉크냄새님,
멀리에서는 다있소 일줄 꿈에도 몰랐지 뭡니까요^^

내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