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었으니 리뷰를 써도 되겠다 싶어서 쓰려고 하니 워낙 널리 알려진 분이라 고민고민하다가....차라리 페이퍼로 작성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제목은 또 뭘로하나...갈수록 태산이다... 막상 페이퍼를 써놓고 보니 더 고민스럽다...그러다가 결국은 '호와 당호'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그러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런 페이퍼가 되고 말았다. ㅠ.ㅠ
'다산'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정약용선생님은 국민의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다산'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다산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붙이는 것을 보면... 더불어 독자로서 '다산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그만큼 '다산선생님'의 일생은 국민과 떨어질 수 없는 생애를 사셨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 '다산'이라는 호칭 보다는 '여유당'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개인 경우가 많았다. 아호가 있고, 자가 있고, 호가 있고, 당호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예로 '추사'선생님의 당호는 '완당'이다. 그래서 추사 혹은 완당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호가 여러개인 분들도 있었다. 완당선생님의 경우는 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호가 10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호가 워낙 많은 분이다보니 백호당 (百號堂) 이라고 불리기가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완당 선생님의 호는 더합 101개인가?? 어떤 이는 완당의 호가 500개도 더 넘었다고 하니, 정말 호가 많았던 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은 세한도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 노트에 기록해둔 추사선생님의 호칭에 대한 설명이다..
자와 호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모가 어른들이 지어주는 이름을 아명이라 한다. 성인이 되면 관례를 올릴 때 지어준다는 의미로 관명(冠名)이라고 하는데 보통 그사람의 이름이 된다. 김정희의 정희가 관명인지는 확인 할 길이 없다.
또한 자字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이름과 유사한 형태인데, 친구들은 보통 이 字로 서로를 부른다. 字나 號는 보통 스승님이나 덕망있는 어른들이 지어준다. 그 사람이 성인이 되어 지침이 될 수 있는 의미를 이름에 담는 것이다. 추사의 경우 자가 원춘(元春)인데, 元 도 봄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결국 원춘은 봄의 의미가 담겨있다.
號는 또다른 의미를 담고있는 별명과 비슷한 것이지만 별명보다는 고급스러운 의미이다. 김정희의 號는 秋史인데 秋자는 字가되는 春자와 짝을 이룬다. 그의 자호에는 春秋 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春秋는 歷史를 의미한다. 추사의 자호로 이런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秋史와 阮堂
추사는 별호이고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에 약간 사용이 다를 수 있다. 阮堂書 라고 하면 완당이 썼다는 의미도 되고, 완당에서 썼다는 의미도 된다.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秋史書라는 말은 추사가 썼다는 의미만 담고 있다.
또 완당의 경우 阮堂老人처럼 다른 글자를 붙여 쓰기도 하고 阮老라고 줄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사는 다른 늘 단독으로 사용된다. 추사의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주로 추사라 했고, 추사의 제자들이나 후학들은 완당이라는 당호를 사용했다. 직접 부르기 보다는 ‘완당에 거처하는 분’ 이란 의미와 함께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다. 추사는 제자들이나 후학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로 여길 수가 있어 ‘완당에 거처 하는 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개인적으로는 호를 부르기보다는 당호인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약용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유당은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리 역사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유당께서 워낙 국민들에게 유익한 책들을 저술한 것도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여유당에 대한 저술들도 상대적으로 적인 편은 아니며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온 인물이기때문이다.
'다산의 마음'은 여유당의 마음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여유당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마치 알라디너들이 자신의 생각을 페이퍼 작성하여 업로드하듯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 혹은 주변의 사건들을 매개로 쓴 글인 것이다.
그리고 세한도와 완당평전, 이 두 권의 책은 우리가 완당을 우리의 선조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긍심을 심어줄 수있는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더러 사실은 우리들도 잘 알고있지 못하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의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를 강력하게 지적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의 훌륭한 선조들이 수없이 많건만 제대로 알고 졸업시키는 교과내용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만하다.
물론 외국의 학문과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의 것 뿐 아니라 타자의 것들도 배워 알고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남의 것을 배운들, 제대로 소화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결코 몰라서는 안될 우리 선조들, 그들의 훌륭한 정신과 문화가 참으로 유익한데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고, 그 아쉬움을 달릴 길이없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