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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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들을 보니 이덕일 선생의 책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신 모양입니다.
김현구 선생께서 제소하면서 위 책에 가처분 신청을 했더랬습니다. 최근 2심에서 승소했다고 하니 좀더 기다려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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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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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나라를 안에서는 국가(國家)라고 부르고 밖에 나가서는 흔히 조국(祖國)이라고도 부른다. 국가(國家)는 나라(國)의 근본이 각 가정(家)에 있고, 조국(祖國)은 나라가 각 가정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용어이다. 한마디로 ‘국가’는 나의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말로 나와의 간극을 사실상 찾아볼 수 없는 말인 것이다. ‘국가’라는 한마디 용어는 나의 가족사를 내가 알아야 하는 것, 즉 내 조국의 역사를 내가 알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사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과거사인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나의 과거사인 국사가 한때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는 참담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혹자는 말하기를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도 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카는 한 술 더 떠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무신경 하거나 접하기 어려운 상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잖은 듯 하다. 이야기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나라의 이야기에 소원하게 되는 것은 이야기를 이야기로 접하기 보다는 치열한 입시 경쟁 과정에서 오는 부정적 경험이 상당부분 작용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국민이 국사와 소원해지면서 한동안 역사는 전공자들의 영역으로 퇴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저널 그날’은 나라의 이야기를 서로의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국사의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역사저널은 어려운 국사가 아닌 나라의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야기보따리를 싫어하는 사람 있으랴. 그곳이 어디이든 예부터 이야기꾼이 보따리를 푸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았던가. 더욱 흥미로운 일은 역사 전공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진행자와 매번 등장하는 말뚝 회원인 시인 류근이다. 역사 비전문가를 역사저널에 등장시킨 의도는 분명하다. 이야기에는 전문가 비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해하고 싶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된다 뭐 그런...
  
 
책은 목차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연산군(1494)에서 임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기축옥사(1589)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보이는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장
연산군의 폭정이 그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연산군일기는 반정 주체세력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가필을 했을 것으로 의심이 되지만 김처선의 비극적 죽음은 연산군의 폭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처선 같은 내관이나 공길 같은 광대가 나서야 할 만큼 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 (15-6쪽) 라고  출연자 중 하나인 신병주님은 상황을 또렷하게 설명해준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아니라, 그 신하가 아니라, 그 임금과 신하 밑에서 시름하던 그 어린 백성들이 말이다. 
  
 
 
2 장 
쿠데타였던 중종반정(1506)이다. 제왕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진성대군은 신하들에게 한마디로 업힌 채 어좌에 앉는다.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었던 중종은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을 밟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강제 이혼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는가 하면, 자신을 등에 업어준 3 대신이 들고 날 때마다 몸소 어좌에서 몸을 일으키는 군약신강의 뼈아픈 체험을 한다. 남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중종 재위 당시 조선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김종직의 직계이고 정동대감이라 불리는 정암 조광조의 출현이었다. 도학정치로 조선을 새롭게 만들려했던 풍운아 조정암은 33세에 관직에 나가 1519 기묘년에 화를 당해 죽으니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 장에서는 조정암의 정치적 이상인 도학정치를 엿볼 수 있음과 동시에 중종의 인물됨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조정암을 사사한 일을 두고 당시 사관은 다음과 같이 썼다 한다.
  
 
정이 부자처럼 가까울 터인데 조금도 가엽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했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듯하다. 69쪽
  
 
이런 경우를 두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식여도(食餘挑), 먹다 남은 복숭이라 했다. 더불어 사마천은 대의와 명분을 위해 죽음을 택한 ‘예양’을 자객열전의 반열에 올려놓고,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士爲知己者死), 라고 덧붙였는데 주군은 조광조를 외면했으니 정동대감을 탓하랴, 배신의 주군을 탓하랴....
  
 
 
3장 
임꺽정이 등장한다. 효성이 지극했고 조정암을 신원시킨 인종은 세자로 있다가 1544년 등극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을 얻어 그해 돌아가신다. 인종의 짧은 재위기간이었던 만큼 ‘그날’에서는 바로 명종으로 건너간다. 명종하면 아무래도 임꺽정이 대세가 아닌가 한다. 이는 백성의 고단함이 고단함을 넘어 도적이 되던 시절이었다 한다. ‘백성의 영웅, 임꺽정’은 백성의 고통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말일 것이다. 사관은 명종실록을 적으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들을 도적으로 만든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79쪽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고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100쪽
  
 
‘그날’은 당시 우리 선조들의 실상을, 스스로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할아버지세대들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관도 임꺽정의 출현을 개인이 아닌 국가 시스템, 즉 국가와 사회의 문제로 인식했다.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던 조선, 단지 명종 때만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가정맹어호라 했던가. 국가의 포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4장 
정철과 기축옥사(1589)이다. 당시 위관이 누구였느냐를 두고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은 송강 정철을 당시의 위관으로 보고 있다. 당시 조선의 인구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700만에서 1,00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기축옥사 당시 죽음을 강제당한 사람의 수는 1,000명 정도라고 한다. 당시의 인구수로 보아 사망자 수의 규모는 놀랍기만 하다. 현재의 비울로 본다면 5,000∼7,000명 정도의 규모인 것이다. 당시 조선에 참담한 비극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건의 담당자를 ‘그날’은 바로 송강 정철로 보는 것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배후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정여립의 역모사건의 고변을 시작으로 조선에 불어 닥친 피바람을 ‘그날’은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또한 정철에 대한 극과 극의 평이 공존함을 전하는 대목은 인생무상을 연상시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축옥사를 일으킨 장본인을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송익필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날’은 사건의 발단이 된 배경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기축옥사가 있던 해는 1589년(己丑年)으로 선조 22년째 되는 해이다. 당시는 이미 동서로 붕당 분열한지 10여년이 되는 해였던 것이다. 기축옥사의 피해자는 모두 동인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건의 배경을 좀 더 살펴도 좋았다고 본다.
  
 
 
5. 6. 7장은 조선 사회를 다방면으로 조명한 내용들이다. 우리 역사에 새로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닌가 한다. ‘그날’ 시리즈 3은 임란이 일어나기 직전에서 끝이 난다. 4번 에서는 임란과 두 호란을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의 전쟁으로 조선의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참극을 경험한다. 한 국가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다니....이 얼마나 큰 고통의 연속 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조상은 나라를 지켜냈던 것이다. 사건으로 점철되는 것이 역사던가. 사건들은 모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이지 싶다.
  
 
역사는 현재의 나와 무관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현대의 독일인들은 과거 잔혹사가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후손으로서 책임을 느낀다하여 사죄하고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예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와는 공동 역사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에 진솔하며 투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조상들의 잘못을 왜 후손들에게 묻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가 앞장서서 교과서를 왜곡하고 불리한 과거사를 숨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리발이다. 오죽하면 이를 보다 못한 세계의 지성인들이 규탄을 다하겠는가. 한,미,일, 유럽의 지식인들 524명이 모여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바로 어제, 2015년 7월 29일이다. 일본의 지성인들마저 자신들의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며 일본의 역사왜곡과 그 뻔뻔함에 규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 노엄 촘스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두 눈을 뜨고 있는데도 일본은 과거 임란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코를 또 베어가고 싶어 한다.
  
 
이렇듯 우리는 일본과 또 다른 전쟁, 즉 역.사.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태도로 보건대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역사 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동참해주고 있고 그 규모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이 아닌 지식인들의 참여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역사전쟁은 과거의 전쟁이 그랬듯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신하들의 등에 업혀 왕좌에 오른 중종처럼 타에 의존하면 스스로가 작아지는 법이다. 타에 의해 조국을 되찾은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 또한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해당 국민이 해야 할 일이며 역사전쟁에서 우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과거사는 현재와 미래에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부끄럽다고 지울 수 없는 것이 또한 과거사이다. 남의 과거사에도 관심이 가거늘, 자신의 과거사임에랴... 역사 저널 '그날'은 대한민국의 더 많은 분들께서 우리 역사를 더 쉽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다음의 시리즈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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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KBS 역사 토크쇼, 

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1위에 올랐던


『역사저널 그날』 드디어 3권 출간!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다.


  3권에서는 연산군 말년의 폭정을 시작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한 조선이 중종반정과 임꺽정의 난, 정여립의 난 등을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숱한 한계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세대와 신분을 초월한 뜨거운 교육열, 합리적인 인재 등용 절차였던 과거 제도, 『승정원일기』로 대표되는 철저한 기록 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되는 비정한 권력 다툼과 살아남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 지금보다 훨씬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전쟁 등을 따라가다 보면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연산군의 몰락, 내시 김처선 죽던 날

2장    중종, 강제 이혼당한 날

3장    조선, 임꺽정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4장    정철, 기축옥사 특검 되던 날

5장    조선을 뒤흔든 교육열

6장    83세 조선의 선비, 과거 급제하다

7장    승정원일기, 조선의 역사를 깨우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2015년 7월 9일 ~ 7월 14일 
- 당첨자 발표 : 7월 15일 (리뷰 작성 기간 : ~7월 26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자신의 개인블로그/알라딘 블로그에 스크랩 해주세요.(필수)
- 서평단 응모 링크(https://goo.gl/wiEUIv)를 클릭하여 설문지 작성
-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자 미션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올려주세요.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이 등록되지 않는 경우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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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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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 부제는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과 부제만으로 판단 할 때는 저자가 매우 격한 감정을 쏟아 부을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선비정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조선의 지배세력이었던 선비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역사적인 증거물들을 통하여 명쾌하게 시도하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평가의 기준설정이다. 

 

 




올바른 평가의 기준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국민들의 ‘선비’라는 용어 인식을 역사의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 그 용어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바탕으로 서술함으로서 ‘선비’라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실상을 독자들에게 알리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라는 대상을 평가해야하고 그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의 객관적 근거를 장치해야 했다. 저자는 이 평가의 기준장치를 매우 명료하게 설정하고 있으며 그 근거는 지극히 개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어느 내용보다 가장 값진 소득이 바로 ‘평가 기준’이라는 바로 이 대목이라 여겨진다. 




 바른 평가의 기준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편견은 평가의 오류를 낳는다. 오류는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숨어있다. 단순히 개인적 범주에서 판단과 정의가 감금된 상태라면 위험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개의 인식이 타자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결과론적으로 그의 사고와 행동까지도 지배할 수 있는 동기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책을 저술하는 주체이다. 시중에 출시되어 읽히는 도서들을 저술한 주체가 역사이든 인물이든 그 어느 팩트에 대한 평가의 적절한 기준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 그 결과물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독자들은 그 영향으로 바르지 못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수많은 과정들이 세대를 거듭한다면 어떤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일까... 단순한 오류의 문제를 넘어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나라 전체에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비’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들을 저자는 이 책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선비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어느 정도 충실했으며, 보다 나은 가치의 창출을 위해 얼마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 물론 이는 해당 인물의 시대적 기준에 의거한다. 

2. 인물의 삶이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선의의 보편적, 표본적 의미를 지니는가. 현재와 관계하는 역사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3. 인물의 직책, 지위에 부여된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했는가. 저자는 이를 인간 본연의 책임감과 해당 능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상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는 보편적인 평가의 기준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이 보편적인 세 가지 기준에 의거하여 역사의 인물을 바라보고 평가하여 저술한 관련도서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는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다. 이 책이 수많은 교양 역사서들과 차별되어야 하며 별점 다섯을 받아 마땅한 이유는 그 평가의 기준을 명료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그를 근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장치했다는 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높이 살만한 부분이라 하겠다. 




‘선비’라는 용어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 

최근 미국을 위시하여 경제 열강들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만난 대한민국은 경제력의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수용하는 입장에 있다. 이는 마치 청나라에게 조선의 국왕이 한 겨울 얼어붙은 땅 바닦에 피를 흘리며 머리를 찧던 사건, 즉 병자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수치를 맞본 조선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정체성이 흔들렸던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국민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시대적 상황이 이러한 때에 대한민국의 출판계,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양서들의 저자들은 ‘선비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의 일환으로 삼고자 해왔다. 

 

 ‘선비정신’이라는 용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교의 부흥과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말이기도 하다. 유교는 조선을 지배해온 강력한 이념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전통 문화적 요소로서 배제할 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교의 부흥’이라는 공식은 과연 현대의 우리에게 적합한 성질의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조선의 유교를 현대에 부흥시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타당성을 부여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선비에 대한 저자의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유교는 우리 역사에서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유교라는 조선의 지배이념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필연성의 재조명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연유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받들며 조선을 지배해왔던 조선의 선비를 보편적이면서도 엄정한 평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현대의 대한민국이 유교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 인가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의미를 단순히 우리의 것이라는 미시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때 다시 한 번 국가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저자 계승범, 재귀준거의 딜레마를 마주하면서도 조선 선비의 진면목을 드러내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좀 더 넓은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선비라는 인물을 조선이라는 영토 안에 가두어둔 채 미시적인 안목으로 서술한 수많은 교양서들과는 달리, 저자 계승범은 조선의 성리학을 거슬러 중국이라는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이 책을 읽은 후의 독자들은 분명히 조선에 한정된 미시적 역사인물로서의 선비가 아니라 조중관계 속에서 거시적 선비의 모습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의 공자, 맹자, 노자의 가르침이 중국에서의 유교와 사회와의 관계하는 방식과 대조적으로 조선에서 공맹노자의 가르침을 선비들이 이용하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다르며 심지어 그 얼마나 통탄스러운 것이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연 공맹노자께서 자신들의 학문을 이용, 대중을 혹은 국왕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조선의 선비들에게 과연 무어라 말했을까...마치 이 상황은 변질된 막시즘에 저항하며 칼 막스 스스로가 막스주의자이기를 거부한 상황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아닐까... 

 

 후대의 우리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조선의 거룩한 선비들이 과연 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어떤 행동을 했고 그들의 언행이 조선 사회에 끼친 결과물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막연한 개념의 선비’가 아니라 ‘분명하고도 또렷한 조선 선비’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이 지배했던 조선의 진면목을 조목조목 따져 간다. 저자의 일목요연한 글을 읽으면서 실망을 금치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슬픔을 느끼는, 혹은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수많은 역사관련 저자들이 밝혀내기를 꺼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 가지, 혹은 단편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선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왜곡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라더라도 말이다. 하여 이제 '선비'라는 명제를 그 누군가는 다루어주어야 하며, 어쩌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의 치부를 공개하는 일에는 그만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니 말이다. 때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고통은 우리의 과거, 즉 현재와 분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역사를 바로보기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일종의 재귀준거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학자로서 재귀준거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자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조선 선비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평가함으로서 미래를 향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문제점과 개선점을 극명하게 제시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뜻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한 마디가 있다, "그대가 걸어온 발자국을 되돌아보라, 그리하면 그대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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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2-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자격지심은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죠.
 
조선의 정쟁 5 - 시파와 벽파 - 사도세자의 눈물
신봉승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노론을 등에 업고 임금이 된 영조에게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모친이 궁녀의 세숫물을 떠다 바치는 신분인 무수리 출신으로 당시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종의 독살 사건이었다. 

이 두 가지 아킬레스건은 영조가 죽는 그날까지 영조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실상 택군되어 경종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제로 책봉되도록 경종에게 압박을 가한 것이 노론이었던 것이다. 경종은 노론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역모로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종 곁에는 이렇다할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소수의 남인들이 이를 경계했으나 사실상 남인들은 권력의 밖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결국 경종은 의문을 남긴채 죽음을 맞이한다. 연잉군이 임금이 되다. 영조는 임금도 갈아치울 수 있는 노론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고심끝에 탕평책을 들고 나선 것이다. 비천한 무수리 출신의 자신을 임금의 자리에 앉힌 노론과 경종 독살설은 영조로하여금 군주로서의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 사도세자가 태어났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극진히 사랑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군주감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도세자는 명석했다. 그러나 세자가 자라면서 경종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는 영조와 노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아킬레스건은 경종 독살설에 시달리던 영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사도세자는 경종의 독살설을 믿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노론의 택군에 의하여 자신의 아버지가 임금이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사도세자는 그리하여 가증스럽고 위험한 노론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소론쪽으로 기울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한편 영조는 소론 편을 들며 자신의 약점을 꿰뚫고있는 사도세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노론에서도 사도세자를 죽이고 싶어했다. 결국 영조와 노론에 의하여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사망하게 이르른다. 이른바 임오화변이 그것이다. 

같은 노론 중에서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쪽이 벽파, 임오화변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쪽이 시파, 이렇게 또 양분된다. 사도세자의 빈은 골수까지 노론  출신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사위를 죽이는데 침묵으로 동조한다.  흔히 사도세자의 정신 병력이 도가 지나쳐 세자가 죽음에 이르를 수 밖에 없었다는 혜경궁의 주장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한중록은 자신의 가문인 풍산홍씨의 멸문을 막기위한 일종의 체스쳐였다.  

장헌세자가 자신의 정신병 때문에 죽었다면 정조는 왜 임오의리를 내세워 관련자들을 숙청했을까. 이는 아버지 장헌세자의 죽음을 억울하며 모략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는 하나의 강력한 증거이다. 사위를 죽은 홍인한은 정조에게는 외할아버지이다. 그런 외할아버지및 관련 홍씨 집안을 거의 씨가 마르도록 처단한 것이 정조의 조치였다. 임오의리는 바로 시파의 힘이 커졌다는 뜻이기도하다. 

노론 벽파는 정조를 죽이기위해 살수를 보내기도했다. 세상에나 임금을 죽이기 위해 신하들의 무리가 살수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아니던가. 그만큼 노론의 힘이 강성했고 임금의 힘이 약했던 군약신강의 대표적인 나라가 조선이었던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전흥문이라는 힘잘쓰는 인물은 노론의 홍계희가 그의 아들들을 포함시켜 계획한 정조 암살단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정조는 고독했다. 주변에는 온통 노론세력 뿐, 자신을 위해 일할 인물들이 부족했다. 그러나 채제공과 같은 명 재상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정조는 노론 벽파의 끊임없는 위협을 받으며 정치를 펴 나갔다. 조선에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 개혁의 단행을 앞두고 정조는 또다시 의문사한다. 

그리하여 정조가 일생을 통해 일궈놓은 조선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져버렸다. 노론의 골수 대표 정순왕후는 정조의 모든 개혁을 뒤집어 놓는다. 영조 최대의 실수가 바로 정순왕후를 비로 들인 것이거나 골수 노론인 정순왕후를 정조가 처단하지 않은 것이거나.... 

진정 백성을 위해 변화를 단행했던 조선의 임금 중에는 대왕 세종과 영정조가 고작이다. 그러한 영정조의 개혁은 조선의 마지막 불씨나 다름없는 성과였지만 그 모든 불씨들 노론들은 짖밟아 꺼버렸다.  

시파와 벽파는 고독했던 장헌세자에 대한 의견의 차지가 가져온 결과였다. 결국 정권을 잡아 권력을 장악하려는 노론들의 입장 차이었던 것이다. 백성을 위해 군신이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 조선이었고 백성들만 새우등 터지던 시대가 조선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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