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새해의 첫 절기가 시작되었다. 먼 조상들은 따듯함이 시작되는 봄을 그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까. 그들의 부모형제 혹은 자신의 짝, 혹은 자녀가 추위 속에서 죽어가거나 굶어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혹독한 겨울, 그들에게 겨울은 늘 그렇게 죽음의 계절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겨울을 견뎌낸 생존자들의 기쁨을 생각하면 함께 기뻐야하겠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면 정작 가슴은 몹시 시리고 또 아프다.


안타깝게도 입춘은 중국의 화북지방을 기준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절기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듯 하다. 그래서인지 혹한기 훈련은 입춘을 전후 했다. 혹한기 훈련중 새벽녘에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낙엽을 덮고 잠든 동료의 코골이 소리가 아직도 선명한 것은 그 날 밤 추위가 몹시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춥다 한들 봄은 온다. 



[[ 지 난 일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밖은 설국을 이루었다. 밖으로 나가 아직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곳을 기념했다. 모레가 입춘인데 설국이로구나...싶었다 ]]   


나를 더욱 춥게하는 것은 "농경시대의 24절기는 이제 수명을 다한듯 하다"는 댓글이다. 댓글이 나를 춥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댓글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이 나를 춥게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읽고서 깜짝 놀랐다. 추위가 먼저왔고 놀람은 한 박자 늦은 것이다. 이건 내가 둔감한 탓이다. 깜짝 놀란 이유는, 이 말이 곧 사실이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농경이 사라지는 날, 인류의 생존도 무사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경고가 또 있을까. 이는 죄를 지으면 수천억겁이 지나도록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할것이라 경고하듯 겁박하는 지장경의 말씀보다 더 강력한 경고이다.




[[ 내방하시어 댓글을 주신 잉크냄새님께 이 곡을 드립니다. 음악은 취향인데 취향을 저격하지 못했을까 염려되기도 하면서 감사의 뜻을 대신합니다 ]] 


어린시절 간척 사업으로 수영장이자 놀이터였던 앞 바다를 잃었다. 바다가 육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는 앓고 앓았다. 놀이터도 잃고 친구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을까.  바다가 사라져가는 모습에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일은 내게 여전히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이제는 계절을 잃어야 하는 시점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바다를 잃었던 어린 시절의 그 사무치는 가슴 앓이를 또 해야하나보다. 누군가의 이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어린시절의 간척사업을 통해 알게되었다. 계절의 상실은 누군가의 부를 위해 희생된 공공 가치의 상실이다. 인류는 그것을 '발달' 이라고 이름 한다.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인류의 편의와 혜택이라고 한다. 

발달이 지속되고 편의와 혜택이 커질수록 입춘이 사라지는 시점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올것이다. 지구의 계절이 사라지는 날, 입춘도 사라지고, 어쩌면 인류도 함께 사라질 지도 모른다. 우리가 절기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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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댓글은 추위만을 품고 있었는데 차트랑님의 사유가 놀람을 끌어안았네요.
노래는 취향 저격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6-02-04 20:33   좋아요 0 | URL
댓글이 아니라 현실이 ...^^

취향에 맞다니 천만다행이지 뭡니까요 ~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