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



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 



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宅)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



[[[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




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 


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 

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

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  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


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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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너무 두껍고 또 너무 어렵고, 도스도옙스키 선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유인 것 같네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만 외워 읽은 척 했던 철 없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래도 삼국지 빼고 아직까지 이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주인공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3 07:05   좋아요 0 | URL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시다니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하십니다 잉크냄새님,
저는 입 안에서 발음음이 안되서 혀가 꼬이네요 아놔~

삼국지보다 어려운 소설은 쫄려서 못 읽었습니다 ㅠ.
저는 영웅문이 최고의 소설인줄 알고 있었으니 원~

이제 천천히... 조금씩... 유(幽)의 연속인 산맥에
저의 지저분한 족적을 살짝, 티안나게 남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결심입지요, 암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그레이스 2026-05-25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책이 있었네요, 번역일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
차트랑님의 도전 응원합니다.

차트랑 2026-05-25 17:07   좋아요 1 | URL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겁나게 두꺼운 책들
전쟁과 평화,
그리고 백치는 그레이스님의 서재에서봤습니다.
제가 얼마나 쫄렸겠습니까 ㅠ

그런데 최근 도스도옙스키 번역일기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님은 읽지 않으셔도 될듯합니다만
제게는 내비게이션이다, 싶습니다.

내비게이션 따라 살금살금 걸어들어가 보려구요^^
아차 싶으면 도망칠지도 모르지만
그레이스님을 본 받아보겠습니다!!

응원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응원받으면 도망을 못치는데 큰일이네요 ^^)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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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어느 교수가 말했다. 셱스피어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100 명도 넘는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 낸걸 또 파내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셱스피어는 탄광이고, 도스도옙스키는 끝없이 빛나는 금광 산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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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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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런 번역가와 이런 번역이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번역史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번역가에는 깊은 경의를!!! 그리고 도스도옙스키 선생의 소설들에게는,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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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상 - 아이 엠 헤라 (소프라노 아리아집) [3단 디지팩]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작곡, 비이 (Bertrand / 유니버설(Universal)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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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고급지다. 원하지 않는 발성이 섞이지 않아 군더더기 없는 음을 낸다. 기름기를 뺀 담박함이 전하는 청아함은 마치 조선의 백자 혹은 고려의 청자를 마주하는 듯 귀하다. 그리하여 청자에게 깔끔하고 우아하며 형용할 수 없는 음색으로 다가간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아름답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한 그 어떤 느낌을 자신의 음색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 박혜상이다. 경계를 넘은 차원의 고귀한 발성이라고 말한다면 적절한 말인지 이 또한 잘 모르겠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요소가 없는 깔끔함은 익숙함 혹은 기나긴 친숙함에서 오는 반작용을 그야말로 아주 아주 오래도록 반감시킨다.

 
박혜상은 성악 스타의 등용문으로 이름난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성악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2015년의 일이니 벌써 10여 년 전이다. 국내 성악인으로서 이름이 드높은 베이스 연광철이 93년 우승한 바 있는 콩쿠르이기도 하다. 연광철이 그 어떤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냈는지 잘 알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 최근 뉴스를 보면, 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주문 한지 70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아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매장을 떠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런 약점아닌 약점을 가진 박혜상에게 2020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이 전속 계약을 맺읍시다, 하고 손을 내민 것이다. 이는 아시아 소프라노로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처음은 늘 있는 것이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그 처음이 찾아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적 같은 처음이 박혜상에게 일어난 것이다.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이 뭐 별거냐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그렇지가 않다. 현존하는 세계 정상 톱 3에 든다는 조수미도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을 맺은 적이 없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문을 열어 제치려면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이 우선이다. 차원이 다른 실력을 시전해야만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전속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실 조수미가 애초에 카라얀(Karajan)을 매료시키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조수미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수미는 동양인이니 말이다.


조수미는 사실 인종차별의 벽을 수없이 깨트린 인물이다.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니는 대가인데, 주요 경력을 찾아보면

동양인 최초 세계 7대 콩쿠르 석권
동양인 최초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프리마돈나
동양인 최초 그래미 어워드 최고 음반 상
동양인 최초 황금 기러기 상
비 이탈리아인 최초 국제 푸치니 상
이탈리아 기사 작위 (조수미는 귀족이다)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등 등 어마어마한 업적을 가지고 있는 현존하는 전설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쿠르는 알다시피 파바로티나 플라시도 도밍고 정도의 인지도를 가져야 가능한 이야기고, 특히 서양인 이어야 한다. 이런 전설을 써내려 갔지만 도이치 그라모폰은 조수미에게 전속 계약서를 내밀지 않았다.


(참고로

카라얀은 흑인 소프라노 레온틴 프라이스(Leontyne Price)에게 프리마돈나의 영예를 부여했던 지휘자 이기도 했다.)


인종 차별이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성악가 James Wagner 이다. 실력으로 라면 단연 최고의 반열에 오른 제임스 바그너를 연주에 초청해준 지휘자는 오직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 와 카를 뵘(Karl Bohm) 뿐이었다. 그 수 많은 지휘자들이 그토록 유능한 제임스 바그너를  모두 외면했던 것이다.


(카를 뵘에 대하 추가하자면 그는 제임스 바그너를 초청해 베르디 레퀴엠이라는 대작을 연주했다. 또한 카를 뵘은 흑인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 Barbara Hendricks의 능력을 인정하고 초청해준 지휘자이다.)


제임스 바그너는 월등한 능력자, 즉 100 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는 강력한 협음과 100 여 명에 달하는 Choir의 합창을 뚫고 빼어나듯 솟구쳐 나오는 또렷한 자신의 성량을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 해내는 능력자이다. 자신 이외의 거대한 소리에 뭍히는 것이 이상할게 없는 연주에서 말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청중이 자신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하는, 정녕 대가의 반열에 오른 테너가 바로 제임스 바그너인 것이다.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제임스 바그너가 바로 이러한 능력자라는 것을 잘 보여준 명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바그너는 젊은 나이에 잊혀져갔다. 오래 전 유투브에 존재했던 마주어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장면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흑인이었던 것이다. 사라져야할, 있어서는 안될 것 중 하나가 인종차별이지만 현실은 늘 그와 마주한다. '김연아의 유일한 약점은 그녀의 조국이 대한민국 이라는 것' 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박혜상도 이런 피할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소프라노이다. 그녀는 아쉽게도 아시아 인이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말이다. 학사까지 모두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대학원만 맨하튼에 있는 줄리어드에서 공부했다. 대한민국 토종인 셈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서양인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어느 방면에서든 한 수 접고들어가야 한다. 이런 서양인들의 우월감은 도이치 그라모폰이 조수미에게 조차 손을 내밀지 못하게했다. 그런 도이치 그라모폰이 박혜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박혜상이 어떤 능력자 인지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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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박혜상님이 앞으로 한국을 빛낼 위대한 소프라노가 되실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차트랑 2025-10-12 22: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박혜상께서 위대한 인물이 되길 바라며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안하십시요.
 



고향길에 나서면 꼭 들르게 되는 휴게소가 있다. 

그 이름은 '알랑가 몰라'이다.

세상에 그런 휴게소가 어딧냐고 반문한다면, 

대답은 '분명히 있다' 이다.

나만 알고 있는 휴게소이냐, 물론 아니다.
다른 누군가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알랑가 몰라'에 들러 각자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를 하나 씩 사서는 

차 안에서 떠들며 나눠 먹는 것은 고향길 루틴이다.

이 번 추석에도 예외는 아니다.


막 주차를 끝내고 하차하는 중, 

어디에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바로 앞 쪽에 주차한 차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는데 스피커의 볼륨이 작지 않다.

오호홋~!!
나도 가끔 듣는 곡인걸~

그 곡의 제목은 'I Will Always Love You' 였다.

사실 가끔 듣는 정도가 아니라 무척 애정하는 곡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것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주 강렬하고도 파워 넘치던 그녀가 한창 젊었던 1992년에 

보디가드 OST 곡으로 선정해 불렀다.

정말로 강렬하고 파워가 넘친다.

 

휘트니 휴스턴은 이 곡을 싱글로 발매했고

전 세계에 2000만 장 이상 판매했으며

그레미 레코드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곡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알랑가 몰라' 휴게소에서 들려온 곡은 휘트니 휴스턴의 곡이 아니었다.
이 곡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곡자는 돌리 파튼 (Dolly Parton) 이다.
그 원 곡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속으로, 오 이런~!!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USB에 내장된 곡 중 하나 이기에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돌리 파튼, 역시 좋구나......


돌리 파튼은 46생이고 데뷔는 1967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라면 그렇지가 않다.
쉽게 말해 미국에서는 방탄소년단급 명성을 가진 컨트리 계의 대모이다.


각설하고,
돌리 파튼은 1973년 자신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멘토와 이별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독립의 열망을 이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돌리 파튼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있기에는 너무 나도 큰 사람이었다.

돌리 파튼은 작별에서 올 수 있는 감정의 대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곡을 써내려 갔다.




차분하고 세련되며 감동적인 가사와 곡조로 

이별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애틋한 감정을 표현했다.
돌리 파튼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 어린 애정과 감사 그리고 존중을 곡에 담았다.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만 하는 사람의 애절한 아쉬움도 빼놓지 않고 가득 담았다.

가녀리게 떨리는 돌리 파튼의 호흡은 청자의 폐부를 깊이 파고들며

듣는 이에게 그 애절함을 올올히 전달한다.


듣는 순간,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은 상대방에게는 물론 

상대방이 아닌 청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돌리 파튼은 이 곡을 상대방 앞에서 불렀다. 

고별사를 대신 하면서 말이다.
상대방은 조용히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노래가 탄생한 배경은 대략 이러하다.


그 배경을 알고 이 노래를 듣는다면
돌리 파튼이 그 얼마나 배려심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노래는 상대방을 어떻게 존중해주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곡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과의 이별, 그리고 고마움, 존중을 모두 담아낸 이 곡, 

정말 사랑스러운 이 노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는 지극히 사적인 입장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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