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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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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을 쓰려하니 그나마도 잊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자신과의 약속이자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의 약속이다. ( 책이 나올 때 쯤은 근황에 변화가 있을 때였다. 하여 제 때 쓰지 못하고 이제서야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의 병증은 특이하게도 깊이 침투하여 그 현상이 겉으로드러날 때까지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이 그러하다보니 자각을 하고 난 후에는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어진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건상 상태를 주기적으로 검진한다.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겠다.

 

최근 크고 작은 사고들이 뜻밖에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안전 불감증이라고도하고, 또 누군가는 도덕 불감증이라고도 한다.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우리는 사회 제도와 구조에 대한 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염려하게  하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이 책은 현직 판사로서 현재의 청소년들과 그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와 애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학업 중도탈락자 6만 여명, 가출 청소년 20여만, 소년원 출신 성인범죄율 67%, 소년범 재비행율 76%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아니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교과서는 청소년기를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발전시켜가는, 한 인간으로서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독립성, 자신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사고의 방향, 인격, 개성, 도덕성, 인간관계, 인지력, 정서등, 한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여 발휘해야 할 모든 개인적 자질을 청소년기에 이루어 낸다는 뜻이겠다. 청소년기는 한 마디로 한 개인의 일생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은 개인의 성품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자녀를 낳아 성장시키며 사회를 구성해가는 일원으로서 가장 기본적 단위인 가정이라는 틀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를 국가(國家)라는 말로 표현 한다.  나라의 근본을 가(家), 즉 가족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 가족의 일원이자 미래  사회의 주인이 되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장차 국가의 문제와 동일하다.  그런 우리의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있다.

 

소년의 죄는 과연 누구의 죄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과 토마스 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토머스모어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청소년의 문제를 그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성이있다. 사실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 바닦을 깔아 놓은 기성세대의 문제이다.

 

기성세대가 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으며 성정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에게 어른들이 내밀어 주는 것이 독성이 강한 음식물인지 아닌지 그들은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회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청소년 범죄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과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인가...그들은 기존 사회라는 환경을 벗어 날 수 없으며 그 환경은 바로 기성세대들이 제공한 그대로라는 점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이니 기성세대야 말로 유죄인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 할 때,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음은 저자의 견해를 요악한 것이다.

 

사회는 그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인격과 자기 함양의 건전한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왕에 죄를 범한 청소년들에게는 관용과 용서가 필요하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법은 공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죄를 묻기 이전에 왜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사회 스스로가 되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도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어야 한다.

 

 

저자는 용서를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 용서는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주장한다. 이 책무를 잘 이행하는 사회가 인간을 존중해주는 사회이고 건전한 사회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기존 환경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분노, 적개심은 청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얼마나 위태로운 사회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그대가 아프고

 

또 그 사회가 아프고

 

우리 모두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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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4-05-2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책은 잘 모르겠고...
오랫만에 돌아오셔서 글을 쓰려고 하시는데, 그나마 잊어버린 느낌이라고 하셔서,
그렇지 않다고...
잘 읽고 응원하는 저같은 사람이 이렇게 있다고 말씀드릴려고 몇 자 남깁니다.
계속 명징하고 좋은 글들 남겨주실거죠?
헤에~^________^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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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 스스로 정의를 내리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파장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원하고 갈망한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일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읽어보게 된 것이다. 이미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를 정의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그러나 많은 독자들은 정의를 논하는 일는 정의로운 일에 속한다고 생각 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샌덜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이고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 이토록 대한민국의 서가에 높은 파동을 일으키며 독자들의 반향을 몰고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1. 정의란 공리와 행복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
2.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인가 (자유시장 지상주의 Vs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3. 정의란 미덕과 공동의 선을 고뇌하는 것인가   


370여 쪽에 달하는 저자의 책이 주는 정의에 대한 핵심적 접근은  위의 3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실증적 사건이나 가설적인 사건을 모델로 설정하고 ‘정의’에 대한 각각의 접근 방식, 즉 서양 철학자들의 의견을 투영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상이한 주장에 대해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내용을 전개시키는 방식이다. 

우선, 공리주의적 접근에 대해 언급하자면 핵심 인물인 벤담이 주장하는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라 설정하여 이론을 전개시키기 보다는 인간행위의 가치를 수치화하여 설득하려' 하고 있다. 이는 각각의 가치들이 가지는, 그리고 각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결함이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가치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시켜 환산해내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자유주의자적 입장은 공리주의적인 결함을 어느정도 극복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의 절대적인 덕목이냐하는 질문과 만날 때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모든 사람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이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지지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즉 도덕적, 법적, 윤리적, 종교적인 덕목들을 포괄하는 좋은 삶의 추구를 위해서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거창한 제목에 비해서 결론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겠다.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하고 부담스러운 추를 달고 있지만 제목처럼 사실상 정의에 대한 정답을 던져주려고 시도한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구인들이 정의를 어떻게 고민하는가 하는 정도의 소개서라고 보는 것이 어쩌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서구인들이 고민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인들의 사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알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쉽게쓰려고 노력한 흔적 덕분에 철학자들의 배경 사상을 충분히 알지 않아도 읽어나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한국 독자들은 왜 이토록 열광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 책이 올해 이토록 한국인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사실은 이것이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면으로 마이클 샌덜은 동양철학에 근거한 정의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동양의 철학을 논외로 하고 정의를 다룬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 성설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샌덜의 한계라면 애써 그의 노고를 깍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첫 째로, 한국의 토론 문화의 부재이다 -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실제로 토론 문화에 온전히 적응한 한국인들은 드물다. 약한 기반을 가진 한국의 토론문화는 마이클 샌덜과 같은 강의에 단연 매료될 수 밖에 없다. 그의 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높은 이 책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매력을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그 단점을 상쇄시키고 있다. 한국의 토론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요즘의 100분 토론은 무척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창기 100분 토론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정말 토론의 ‘토’자도 모르는 분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란...내내 쌈박질만 하다가 100분 다 보냈다. 그런데 지금의 100분 토론의 태도는 전혀 그 양상이 다르다...

둘 째로,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고뇌 권유서이다 - 우리에게 정의론 논하기 위해서 이런 고민을 해보시라는 권고의 책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자주 고민하지 않던 방식으로 말이다. 문제의 핵심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주장과 공리주의의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마뉴엘 칸트의 철학과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로버트 노직’도 알면 훨씬 더 유익한 독서가 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경제 구제 금융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도 알고 있으면 더 좋다. 

  여기에도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점은 있다. 등장 인물들의 철학적인 사고를 잘 알지 못할 때 오는 문제점이 바로 그것으로, 책을 무작정 읽는 것은 어느 화가의 작품을 보고 그 화가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이다. 몇 장의 그림으로 화가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오히려 반대로 화가의 철학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 비로소 그의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 하는 것이 순서로서 올바른 경우이다. 이 역시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셋 째로, 우리가 가진 교육 문화적 배경이 한 이유일 수 있다 - 우리 나라는 불교가 먼저 토착화했고 이어서 유교가 한 시대를 이끌어 온다. 고려의 광종 때 부터 실시한 과거제는 유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와 경전의 암기테스트를 시행하면서 관료들을 뽑았다. 불교의 전파는 불교의 경전에 대한 암기 중심의 교육이나 마찬가지였고 유교 중심의 과거제 역시 암기 위주의 교육을 양산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주입식 암기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물론 사고가 발전하려면 기초적인 지식에 대한 암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윤리적인 모든 측면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미 잘 깍아진 틀 안에서 행동하고 사고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규범이란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정의에 대해 스스로 고뇌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에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 수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우리 문화적 이유들은 마이클 샌덜이 정의에 대해 고뇌해보라고 암암리에 부추기는 이 책을 통하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넷 째로, 한국 학생들의 사유에 대한 '공적 힘'의 개입이 있었다 - 사실상 이 책에서 고뇌하도록 제시하고 있는 각각의 예와 가설들을 우리 스스로 해본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두가 뛰어들 수 있는 장을 만나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치적인 이유로 학생들의 사유와 그 행위를 공적인 힘을 빌려 규제한 탓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집회와 시위의 제재가 좋은 예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과 사고는 위험한 것이 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사회의 현상을 감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샌덜의 이 책은 ‘정의’에 대해서 다함께 고뇌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함께 고뇌해보자는 뜻의 이 책이 이토록 한국의 서점가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현상을 독자들이 감지한 탓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현대 사회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 보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인, 경제적,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정의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사상가들의 철학은 시대가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 등장했다. 하룻밤 사이에 땅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며 혼란의 혼란을 거듭되고 도덕적인 타락이 극을 이루던 시절 공맹사상과 노장사상, 그리고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이 등장했다. 예수의 등장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이클 샌덜의 저서가 새로운 정의론을 주창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상은 샌덜의 정의론이 왜 우리사회에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이유들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 이토록 대한민국의 서가에 높은 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보면 정의란 한 사회의 도덕적, 관습적, 종교적, 철학적,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보다 정의로움에 대한 고뇌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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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4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4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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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니 우리나라를 더 궁금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몫을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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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4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4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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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도 지식e를 읽고 세계가 돌아가는 정세가 더 궁금해진다거나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독자들의 수가 증가할 것 같다. 이제 지식e는 자신이 해야할 그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의 고등학생들은 아마도 학교 선생님을 통하여 지식e의 좋은 점들에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생들이 이 지식e를 읽고 있는 장면을 많이 보아왔다. 이 책을 읽는 학생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신의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인식할 것으로 믿는다. 

기타의 나라들이 진행시키고 있는 일들은 차치하고라도 당장에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원인과 그 결과들이 끼치는 우리 사회의 영향력에대해서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일들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이다. 선거의 공약들은 국민들과의 약속이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의무이자 과제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정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정치인들의 망각 증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반대로가서야 될일인가. 그것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정책들이다. 지식e-시즌 4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해준다. 우리의 독자들이 앞으로 정치선거에서 그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하다. 

해마다 국가 예산은 늘어간다. 그런데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해 놓고 우리 정부는 엉첨난 일자리지원 예산을 삭감했다. 장애아 무상 교육지원비를 삭감했다. 간강보험 지원비도 삭감했다. 독거노인 주말 도시락비를 또 삭감했다. 학자금대출 지원비도 삭감했다. 안그래도 불안한 사회속에서 살다가는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이러한 정부를 둔 국민들이 나아아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빈곤속에서 더욱 빈곤한 쪽으로 가라는 이야기이다.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사회, 국민을 더욱 불안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정부, 바로 우리의 정부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야 헐 것이다. 지식e-시즌4는 우리가 최소한 알아야 할 것들을 일깨워주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으로 지식e는 자신이 할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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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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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빈곤을 과연 퇴치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단연코 지금대로라면 불가능하다 이다.. 매체는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한국도 물부족국가라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가 지속되는 한 물은 부족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즉 매체가 떠들어대는 내용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보면 물은 그렇게 부족한 자원이 아니다. 다만 있는 물도 찾아 먹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현실이 물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민영화의 바람이 한국에도 불기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물은 아니지만 시중 은행들이 이미 외국자본에 넘어간 상태이고 모 정부는 수도와 전기등을 민영화하고 의료 보험도 민영화하겠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물이든, 전기이든, 의료보험이든 민영화를 하는 순간 국민들의 대다수는 수도를 먹지 못하거나,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또는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르게된다. 

민영화를 하는 순간 물값과 전기값 그리고 의료보험료와 가스값은 수십배 치솟을 것이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국민들이 수없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수질을 가장 더럽히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국민의 대다수가 아니라 바로 기업체이다. 엄청난 량의 폐수를 흘려보내고 있으며 물을 생산품으로 시중에 팔고있는 기업체 역시 엄청난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면서 매체는 말하고 있다. 물을 아끼고 사랑하자고...누구에게 할 소리를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물을 민영화했다가 전국민을 다시 가난의 구렁으로 밀어넣었던 나라가 아르헨티나이다. 아르헨티나는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선진 열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를 민영화했다. 볼리비아도 마찬가지로 민영화 했다. 영국은 민영화한 이후로 물값이 4년동안 200% 올라버렸다. 필리핀의 마닐라는 수도요금이 10배 증가했다.  남아공은 수도요금이 600%증가했다. 남아공의 10,000,000호(천만호)에 수도 공급이 중단되었다.  영국의 경영진 월급은 200%인상, 기업의 이윤은 600%이상 증가했다. 수질은 더 나빠졌고 비용은 이처럼 하늘을 찌르며 상승한다. 단, 경영진의 월급과 기업의 이익만이 증가할 뿐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잘 알고있던 네덜란드는 물 서비스를 100% 국가 소유의 공기업에만 제한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필피핀은 수도요금 폭등과 수질악화로 물 사유화금지를 헌법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물의 민영화가 가져다주는 최악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인천의 상수도  관리본부가 프랑스의 사기업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민간 위탁양허각서를 체결한 것이 그것이다. 인천의 주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10배 어쩌면 수십배의 수도세를 내면서 물을 마셔야 할 것이다. 이전처럼 빨래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고, 샤워도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서서히 민간기업에 물의 민영화를 시작했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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