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맹소년은 한마디로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는 산골 출신의, 촌딱의 상 촌딱이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제 이름하나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문맹이지.. 아 그런데 1학년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이 문맹에게 읽기를 시키는거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몇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는 그 차례가 올 것 같은 불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업시간에 불안에 떨며 문맹 소년은 좌불안석이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처지의 문맹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대체 다른 애들은 그 어려운 국어책 읽기를 언제 배웠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애들은 잘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문맹 소년의 차례가 된 것이다.

선생님: 너, 얼어나서 읽어봐~!

 

명을 받은 문맹 소년은 책을 들고는 슬로우 비디오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는 구슬 땀이 솟는 느낌이다.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그러니까....하고 문맹 소년은 주저주저, 떠듬떠듬,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아니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으로, 뭘 알아야 읽지요 성생님....ㅠ.ㅠ. 했다. 이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애들은 빤히 문맹을 쳐다보고 있다.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 못 읽나봐?

 

그러는 사이 성생님은 눈치를 채셨나보다. 그만 앉아! 하는 소리에 문맹 소년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이 일어나 그 문맹이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코.끼.리. 였다. 고.기.리.도 모르는 문맹이 그 어려운 코.끼.리.를 어찌 알겠나...ㅠ.ㅠ.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문맹 소문이 조만간 전교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이거는 진짜...ㅠ.ㅠ. 당장 내일부터 놀림감이 아닌가... 애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문맹은 애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완전 풀죽은 강아지 신세가 따로 없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문맹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책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했더니 아버지 말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던? 하셨다. 어머니께서 문맹소년을 거드셨다. 그래도 집에서 배우면 좋지요, 하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등잔불 아래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애들 앞에서 창피당한 일은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에다가 그 창피함을 또 느끼는 것은 그 문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에혀~ 그날처럼 복잡한 심경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문맹 소년은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글자를 익히고 익혔다. 날이 갈수록 읽고 쓰기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웬만한 한글은 죄다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글자를 익힌 애들이 그러하듯 신이 나서는 글자란 글자는 죄다 읽어대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한글 참 쉽데이~!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읽을 거리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졌다. 그런데 도회지와는 달리 부근에 읽을 글자가 없는 것이었다. 간판도 없고 마구 뿌려주는 광고지도 없다.

 

 

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맹 소년은 (아니 이제는 문맹이 아니지) 우연히 다락방에 오르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귀한 신문지와 형님들의 학년이 지난 교과서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한 것이 도덕, 사회, 국어교과서 였다. 산수 교과서도 있었지만 윗 학년 산수를 어찌 혼자 익히랴... 포기하고 형님들의 국어교과서를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야기, 즉 소설이었다. 그때 읽었던 감동적이며 지금껏 그 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다는 소설이 바로 「송아지」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 봄 방학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갔다. 그 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 때만 해도 아직은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 6월 25일에 전쟁이 터져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상황이 그러하자 돌이네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 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소설「송아지」는 잘 나가다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만 탈문맹을 궁금해 죽게 만든다. 한 겨울 피난을 가야하는 소년이 차마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지 못해 안절 부절인데, 마침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는 소년 쪽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가장 극적인 바로 그 장면, 아직도 탈문맹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렇게 소설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책의 한 쪽에는 소년이 송아지의 목을 끌어 앉고 송아지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을 그린 삽화가 있었다. 아... 그 뒤를 얼마나 궁금하게 하는지... 몇날 며칠을 온갖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밥맛도 없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자신의 교과서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될 때까지 탈문맹은 그 뒤를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소년과 송아지가 모두 강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했다.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아...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소년이 살고 송아지가 죽는다면... 소년의 비통한 마음을 어찌 글로다 말할 수 있을까.. 송아지는 살고 소년이 ... 이 또한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소설이 아니던가... 물론 둘 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물이 엷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그렇게 죽기야 하겠어....읽기를 마친 후 어린 마음에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뒤가 궁금해 영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송아지」였다.

 

사실은 아직도 그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소설이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락방에서 형들의 책을 뒤져 읽은 「송아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어야 소설가의 직성이 풀리려나. 이게 바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전쟁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순원의 소설에는 송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소나기」에도 송아지가 등장한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조선산 송아지의 다 자란 버전인 소는 유순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터라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의 소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순하여 평소 어린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과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산 호랑이가 종종 민가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호랑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용감히 맞서 새끼를 지켰다고 한다. 

 

 

조선의 소는 누렁소 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소재 중 하나는 ‘얼룩배기 황소’이다. 그 얼룩배기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역시 누렁소인 것이다. 그런 누렁소는 농업 중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역시 게으른 금빛 논과 밭을 갈거나 화물용 달구지를 끌어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럭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선조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님이라 여겼다. 조선 후기 조선의 소는 약 100 가구당 하나 꼴이었다. 농사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공했던 소는 귀하디 귀해 그 이름을 생구(生口)라 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 한마디로 밥을 함께 먹는 입(口)이 바로 식구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종종 안식구라고도 한다. 구(口)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뜻 깊은 용어를 우리 선조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거의 가족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외출을 해서도 아무리 늦어도 꼭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구 때문이었다. 소에 대한 대우가 이렇듯 지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골의 많은 가정에서는 키우던 소를 팔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아마도 소를 판 FM 장학금(파더 마더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여 송아지는 소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요 친구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송아지가 등장하는 소설로 문맹 소년은 그야말로 문맹을 떨쳐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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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요즘은 더 이상 소가 파더 마더 장학금의 원천이 아니라죠.
송아지 한마리가 소로 자라는데 들어가는 밑천도 그렇지만,
소값보다 등록금이 몇배는 비싸서 말이지요~^^

차트랑 2015-07-13 14:34   좋아요 0 | URL
그거 아세요~?
활순원님이 송아지를 쓰던 시절에는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했다는거요?

소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이,
아니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현대에는 대출 받아 학자금했다가 갚지 못해서
금융제도권의 규제를 받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던가요...

 

화제의 KBS 역사 토크쇼, 

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1위에 올랐던


『역사저널 그날』 드디어 3권 출간!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다.


  3권에서는 연산군 말년의 폭정을 시작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한 조선이 중종반정과 임꺽정의 난, 정여립의 난 등을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숱한 한계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세대와 신분을 초월한 뜨거운 교육열, 합리적인 인재 등용 절차였던 과거 제도, 『승정원일기』로 대표되는 철저한 기록 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되는 비정한 권력 다툼과 살아남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 지금보다 훨씬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전쟁 등을 따라가다 보면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연산군의 몰락, 내시 김처선 죽던 날

2장    중종, 강제 이혼당한 날

3장    조선, 임꺽정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4장    정철, 기축옥사 특검 되던 날

5장    조선을 뒤흔든 교육열

6장    83세 조선의 선비, 과거 급제하다

7장    승정원일기, 조선의 역사를 깨우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2015년 7월 9일 ~ 7월 14일 
- 당첨자 발표 : 7월 15일 (리뷰 작성 기간 : ~7월 26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자신의 개인블로그/알라딘 블로그에 스크랩 해주세요.(필수)
- 서평단 응모 링크(https://goo.gl/wiEUIv)를 클릭하여 설문지 작성
-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자 미션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올려주세요.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이 등록되지 않는 경우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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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逆鱗)」의 개봉과 동시에 관람을 했지만 관련 글을 쓰는 데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늦어도 한참 늦은 북을 치는 중이랄까... 우리 역사의 가장 큰 획을 그은 왕들에 관련하는 도서나 영화 혹은 드리마가 적지 않다. 역린의 주인공 ‘정조’ 역시 그 중 하나여서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가진 장본인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몇 있어 나름대로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되었다.

 

현대의 대중들에게 워낙 잘 알려진 정조는 ‘정조(正祖)’ 라는 묘호(廟號)만이 아니라 ‘산(算 혹은祘)’이라는 휘(諱)까지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게다가 홍재(弘齋)라는 호(號)도 알려진 독특한 인물인데 이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서재에는 홍재(弘齋)라고 쓴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정조(正祖)라는 묘호만으로도 조선의 22대 임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조는 임금이었기 망정이지 학자로서도 당대 모든 신하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자였고 그의 활은 신궁(神弓)이라 했다. 우리 역사를 통 털어 신궁이 셋이 있는데, 역시 잘 알다시피 1대 신궁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즉 주몽이고 2대 신궁은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 그리고 마지막이 정조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왕에 대놓고 살수를 보내는 역모를 꾸민 사건의 하루를 다룬 영화이니 어찌 궁금증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임금을 살해하기위해 궁 안으로 살수를 보낸다... 중국에서도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살수를 보낸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의 역사상 유일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니던가..

 

 

이 사건은 조선이 정치적으로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전형적인 형태를 가진 나라였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한마디로 임금 알기를 우습게 알던 시절의 전설이 아니고서야 발생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 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와 같은 이 영화를 보며 정말로 인상적이며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장면은 바로 정조의 친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영화는 사도 세자가 사망하던 당시의 장면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영조 38년, 즉 1762년 음력 5월 13일자로 뒤주 안에 갇힌다. 그 해의 5월은 윤달이었다. 양력으로 치면 1762년 7월 4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28세를 일기로 그가 숨을 거둔 날은 양력 7월 12일로 뒤주 안에 갇힌 상태로 사망하기까지 여드레가 걸렸다. 그가 갇힌 뒤주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160cm 의 크기였다. (뒤주 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장인은 홍봉한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사도세자의 키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기골이 장대한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역사는 전한다.

 

 

서울대의 해부학 교수들이 조선인(15-19세기)의 키를 연구한 결과 당시 성인 남자의 평균키는 161cm 이고 여성은 150cm 였다. 이는 유골의 넓적다리 뼈를 기준한 것으로 사람의 신장을 추정해내는 해부학적 근거를 가지며 인간의 신장 측정법으로 학계에서 그 정확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일본인들의 키는 우리 선조들의 키 보다 5∼6cm가 작았고 그리하여 왜놈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의 평균 키을 기준으로 보아 기골이 장대했다는 증거는 그가 즐겨 사용했다는 월도(月刀)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월도는 그 옛날 촉한의 운장(雲長)이 휘둘렀다는 월도(18kg)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3근 14냥으로 약 2kg 정도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명으로 백동수, 이덕무등이 완성한 조선의 군사 훈련용 병서로 이에 근거하여 월도의 무게를 알수 있다. 그러나 주인에 따라 월도의 무게나 길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는 영조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이삼장군의 월도가 그 증거이다. 이삼장군이 난을 평정하는 전투 과정에서 생긴 격검흔이 뚜렷한 월도로 길이는 191.5m, 무게는 2.9kg이다. 이를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조선의 월도의 길이는 2∼3m 이고 무게는 2∼3kg 의 무게였을 것이다. 길이가 길고 적잖이 무거운 월도에 능했던 사도세자의 '기골이 장대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사도세자의 키는 평균치보다는 훨씬 웃돌았을 것이다. 비합리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사도세자의 키를 170으로 설정해보자. 고려의 무인 척준경의 키가 당시 남달랐던 180cm 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170cm 라는 설정은 과장된 수치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뒤주의 크기는 160cm 이다. 키가 170cm인 사람이 가로세로 160cm인 뒤주 안에 갇힌다. 물론 대각선이 나오기는 한다. 수학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ㅠㅠ.

 

 

이렇게 비좁은 뒤주 안에 사람이 갇혀 있고, 날씨는 요즘의 날씨를 염두에 두면 된다. 요즘처럼 태양은 뜨겁고 날은 무지무지 덥다. 밖에만 나가면 숨이 턱 막힌다. 뒤주에 몇 개의 구멍을 뚫어 숨구멍은 터주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도 아니 이리도 무덥고 찌는 듯한 날에 비좁은 뒤주 안에 있는 그를 상상해 보시라. 물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물 한 모금 가져다 준이는 없었다.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직접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그 기운을 잃어갔다 (누군가는 그가 살려 달라 애원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정말로 죽어가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두려움...그 공포....

 

 

바로 이 한 장면이다. 기골이 컸던 그가 비좁은 뒤주 안에 쪼그린채 누워있다. 세자와 뒤주의 크기를 너무나도  잘 드러내어 그 고통을 리얼하고도 참으로 참담하게 표현했다. 튼튼한 밧줄들이 동서북으로  둘러싸고 있고 한 쪽이 비어있다. 그 비어있는 방향은 남쪽이다. 감독은 세자가 죽어서라도 남면(南面) 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사후 그 아들이 아비를 장조(莊祖)로 추존 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어째거나 이 한 장면은 세자가 처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세자가 뒤주를 발로 차며 반발하자 누군가가 행여 뒤주가 부서질까 대못질을 했다한다. 또 누군가는 목이 타 들어가 애원하는 그 옆에 와서 술을 마시며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세자가 타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셨다고도 한다. 세자의 모든 손톱은 뒤주를 긁고 긁어 죄다 망가져있다. 엉덩이 부분의 바지가 더렵혀진 모습도 보인다. 용변을 그대로 본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메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의 희생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세자가 미쳐서 살인을 함부로 저질렀던 광인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둘 다가 그 이유라 했다. 항간에는 사도세자의 모친인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의 죽음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결정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은 없었으니 이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째거나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아비가 뒤주 안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그 자식이 목격하는 비극적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조는 그렇게 자식을 죽이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식의 비문을 받아쓰도록 했고 그 이름을 서럽고 슬프다는 뜻을 가진 사도(思悼)라 했다. 영빈 이씨 또한 자식의 죽은 2년 뒤 사망하고 만다. 죽을 죄를 지었든 아니었든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 어찌 편했으랴...

 

 

영화의 한 장면이 끝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자식도 적(敵)일 수 있다는 왕권의 특수한 상황도 아니요, 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아니며, 현실감 넘치도록 당시 상황을 재현해 내는데 성공한 미술감독의 배치도 아니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정했던 한 아비와 뒤주 안에서 죽음을 강제 당한 한 인간의 겪었던 8일 간의 슬픔, 두려움 그리고 좌절, 그렇게 죽어가는 아비를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무기력했던 그 아들의 심경이다. 때는 253년 전 7월의 무덥고 찌던 여름의 일이라 더더욱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悼).. 과연 인간은 왜 사는가...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인가, 누구 말대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사는 것인가....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한 인간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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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미노 공부법
권종철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공부, 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상 늘 화두일 수밖에 없다.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가문의 명예는 물론 일신을 드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순식간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시험이었다.

 

몽룡이는 한양에서 치루는 과거시험에 장원했다는 증서인 홍패와 어사의 증표인 마패를 가지고 돌아가서는 변 사또를 순식간에 박살냄과 동시에 춘향이를 차지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넘이 급제하는 순간 온갖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과거라는 시험이었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가능케 하는 과거제도가 고려의 광종에서 시작하여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불법으로 대신 시험을 쳐주는 사수(寫手), 거벽(巨擘)이라는 과거시험 대행업을 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을까. 조선의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시험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스토리이다.  

 

현대의 시험은 더더욱 치열하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말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사실은 행복은 성적순이에요’라고 말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재의 기존 등용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공부에 대한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화두가 될 것이다.

 

「도미노 공부법」은 기존의 다양한 책들이 소개하는 공부법과는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큰 책이다. 다음은 인상적인 몇 부분들이다.

 

 

1. 선행학습에 대한 저자의 견해

 

장거리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출발점에서 먼저 치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거리 경주를 견딜 수 있는 기초 체력 69쪽

 

먼저 안다고 깊이 아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보장해 주는 것은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아는 것이다. 71쪽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은 위의 견해는 선행학습에 강박적인 학부모들께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2. 영어의 포인트

 

저자는 영어 공부의 첫 번째 도미노를 문.장.구.조.라고 말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241쪽

 

영어 문장을 번역하듯이 한국말로 옮겨보는 훈련 245쪽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일선 학원에서 가르치는 방법은 그러하지 못하다. 영문법과 읽기능력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거나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수를 상대로 가르쳐야하는 교육의 현장에서 일일이 각 개인의 읽기 능력을 점검해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방법을 저자가 제시해주고 있지만 한권의 책에서 못 다한 말이 많아 보인다.

 

「도미노 공부법」은 분명 기존의 유사 저술들과 차이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언급하듯이 관점이다. 공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이다. 학부모들께서 먼저 읽으시고 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를 추천 드린다. 분명 얻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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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07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인가요?얻는 것이 있나요?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시는지 늘 궁금하였는데 건재하시군요~~다행한 일입니다^^

차트랑 2015-07-0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오랫만이고 또 반갑습니다

중고등학생의 자녀를 가진 학부모님들께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 다른 학부모님들께서는 또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ㅠ. ㅠ.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평안하시고 즐거운 하루되세요~~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에는 도서의 개요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겠으나 이미 많은 독자 분들께서 앞서 잘 밝혀주셨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충격적인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께서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 말이다. 그런 반전을 비록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하여 「모리어티의 죽음」을 읽으면서 가지게 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을 중심으로 서평을 갈음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1. 움베르토 에코의 코난 도일에 대한 오마주,「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기호학자 에코가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시킨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캐릭터는 코난 도일의 홈즈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물이다.

 

 

비록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윌리엄 수도사는 외모, 체격 조건 그리고 지적 능력에서 홈즈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사실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윌리엄 수도사는 조사관으로서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홈즈 수준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윌리엄 수도사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굴리엘모(Guglielmo) 라는 것이다. 풀 네임은 「굴리엘모 다 바.스.커.빌.」이다 (이탈리아식 이름 굴리엘모 Guglielmo는 프랑스의 기욤 Guillaume, 독일의 빌헬름 Wilhelm, 영어로는 윌리엄 William). 코난 도일의 애독자라면 이미 짐작하듯이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코난 도일의「바스커빌의 개 (The Hounds of Baskerville) 」를 대놓고 차용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지인 멜크 수도원의 견습 수도사인 ‘아드소’는 홈즈의 파트너인 왓슨을 너무나도 빼 닮았다. 아드소는 「장미의 이름」의 화자인 것이다.

 

기호 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코난 도일의 작품을 십분 활용해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표절이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게 하는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여 전 세계의 문학 비평계에 충격을 안겨주며 대 성공을 거둔다. 어쩌면 코난 도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장미의 이름」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 홈즈의 죽음

 

어머니, 이제는 홈즈를 죽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코난 도일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안된다, 애야! 절대로 그래서는 안돼! 제발 홈즈를 죽이지 말아줘!

 

코난 도일은 홈즈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열렬한 아들 코난 도일의 팬이었던, 아니 홈즈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홈즈의 죽음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코난 도일은 홈즈를 죽음으로 내 몰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독자들께서 잘 아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홈즈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코난 도일이 그렇게 죽인 홈즈는 「모리어티의 죽음」이라는 과정으로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한껏 불어 넣는다. 홈즈 부활의 전주곡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내내 홈즈의 등장을 고대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3. 불가사의, 그 의문의 전설과 저자의 필법

 

작품은 폭포의 불가사의한 기운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난 도일이 죽인 홈즈가 부활하는 모습을 독자들은 과연 목격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도 아주 극적이며 모두를 감탄케하는 방법은? 그것이 아니라면 홈즈를 능가하는 누군가를 새로이 탄생 시켜 또 다른 불가사의를 맛보게 할 것인가?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들이다. 왜냐면 홈즈의 죽음은 불가사의이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문은 소설의 전개 내용만큼이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대 반전, 그 강렬한 폭발을 위한 전주곡의 에너지를 가열하며 증폭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게다가 저자의 문체는 섬세하고 정밀화를 그려내는 화가의 그것처럼 묘사적이다. 초장부터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었다고 여길만하다.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대목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우선 저자는 폭포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세상이 이곳에서 벼락처럼 쏟아지는 강물과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와 더불어 영원히 종말을 맞이하기라도 한 것처럼 새들은 무서워 달아나고 햇빛은 들지 않는다. 17 쪽 

 

폭포의 불가사의한 위상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은 체이스가 존스경감의 변장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목이다. 묘사는 마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 정밀하며 관조적이다.

 

내가 누구일까 궁금해 하며 냅킨을 내려놓고 식당 밖으로 나가보니 행색이 꼴사납기 이를 데 없는 남자 하나가 정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 복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어떤 배의 선원으로 발탁되건 그 배의 이름에 먹칠을 할 만한 복장이었다. 빨간색 프란넬 셔츠는 캔버스 바지 위로 늘어졌고 도선사의 외투는 소매가 팔뚝 중간에서 끊길 만큼 작았다.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에는 여기저기 남색 얼룩이 묻었고 발목에는 지저분한 붕대를 감고 있었다. 260쪽

 

 

 

4. 뜻밖에 등장하는 동양의 전설

 

흔들리는 것이 깃발이냐 바람이냐의 논쟁에 대한 육조 혜능의 답인,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니라." 라는 선불교의 사유가 티베트를 거쳐 서양의 실존주의 작가 장그르니에의 「섬」 이라는 작품에까지 옮겨간다.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있는 작품 인 그 「섬」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동양의 전설이 놀랍게도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등장한다.

 

옮긴이의 첨언에 의하면 ‘어빙’이라는 작가의 작중 인물인 ‘립 밴 윙클’의 나이에 관한 서양의 전설이 바로「모리어티의 죽음」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폭포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불가사의와 초장부터 가뜩이나 의문투성이인 「모리어티의 죽음」에서 전개 과정을 더욱 응축시키고자하는 방편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어빙’은 산에 올랐다가 낮선 이가 주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하룻밤 만에 20년이 흘렀더라는 이야기다. 어쩐지 익숙한 스토리가 아니던가. 동양의 무릉도원의 전설을 보는 듯말이다. 알고 보면 동과 서는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으니 이상할 것이라고는 없지만 뜻밖의 조우인지라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5.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

 

작품에서 나는 영국의 우월주의와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이번에는 도리어 영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있다. 존스경감이 보스토니안을 급습했을 때 이점이 잘 드러난다. 모든 벽면의 그림들은 미국의 화가의 것들이고, 모든 장식은 물론 신문마저도 죄가 미국산이다. 영국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미국의 영향력이다. 때는 에디슨이 영사기를 발명한 바로 그 즈음이다. 미국은 새로운 기회를 창줄하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지만 경감의 부인과 체이스의 대화는 내게 영국의 본토 우월주의가 짖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경감의 부인이 체이스에게 영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미국 출신인 체이스는 대답한다.

 

 

“런던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수많은 화랑과 박물관하며 근사한 건축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역사도 풍부하고요. 그게 부럽네요. 194쪽

 

 

사실 이들이 막아내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는 적은 미국인 악당 데버루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악당 데버루는 외교관으로서 면책 득권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이름이 미국의 전설이 된 링컨의 후예가 비호하는 인물 말이다. 다름 아닌 미국의 영웅 링컨의 후예라니...이러한 설정은 양국의 서로에 대한 미묘한 애증을 드러내는 장면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는... ㅠ.ㅠ.

 

 

6. 반전, 대 반전

 

반전이다. 그것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대 반전 말이다. 반전의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 전 보았던 영화 「The Other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니콜 키드만의「The Others」는 그녀의 연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반전이란 정녕 무엇인가’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담고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이보다 더한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를 본적이 없으니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The Sixth Sense」든 「The Others」든, 반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통적으로 몇 가지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The Others」가 제공하는 실마리로 미루어 반전을 눈치 챌 확률은 「The Sixth Sense」가 선보이는 실마리의 그것 보다 훨씬 더 은밀하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두 영화가 주는 단서에 대한 ‘설마’의 차이를 사적으로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분명 그 실마리를 초장부터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코난 도일은 물론 홈즈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은 내용을 전개해가는 내내 잃지 않는다. 심지에 존스경감과 체이스의 관계는 홈즈와 왓슨의 관계와 동일하다.

 

나는 읽는 동안 그렇게 읽어갔다. 아니, 위에서 쓴 모든 이야기들을 그렇게 믿으며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나의 이야기들을 산산 조각내는,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추리물을 좋아하고 경험이 풍부한 독자들은 아마도 잘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전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냥 홈즈의 부활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늘 그러하듯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었건만, 아...나의 이 우둔함이여~! 나의 우둔함을 새로이 절감케 한 작품이 바로 「모리어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대 반전은 그렇게 나를 몰아쳤다.

 

 

7. 출판 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내 눈으로는 오탈자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가제본인만큼 내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더욱 꼼꼼히 읽었다.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다. 영어로 지칭할 수밖에 없는 대명사가 없었더라면 이 곳 저 곳에서 나는 국내 소설로 착각할 뻔 했다. 외국어를 이토록 잘 번역해주다니... 우리 소설을 읽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번역이다. 또한 편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역자와 편집자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출판물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 오자가 다수 등장하는 타 서적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문맥상 오류로 의심되는 부분은 딱 한 곳, 176쪽 5-6줄에 걸친, “이발 한분?”이다. 제본은 물론 오탈자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도서이므로 이 부분을 다만 의심할 뿐 자신은 없다. 문맥상 “이발 하실 분?” 이 아닐까 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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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joker 2015-06-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ghdgh

차트랑 2015-06-25 1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대글이 암호같아서 저로서는 풀수가 없군요
저는 암호를 기똥차게 풀어내는 셜록홈즈가 아니랍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북극곰 2015-06-2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오랜만이에요~^^ 장미의 이름에 그런 오마주가 들어있었군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읽엇었더랩니다. -,.-

차트랑 2015-06-25 10:04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북극곰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저도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사 도서를 받고 리뷰를 쓰려다가는 깨달은 바입니다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북극곰님의 서재로 답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북극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