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맹소년은 한마디로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는 산골 출신의, 촌딱의 상 촌딱이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제 이름하나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문맹이지.. 아 그런데 1학년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이 문맹에게 읽기를 시키는거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몇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는 그 차례가 올 것 같은 불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업시간에 불안에 떨며 문맹 소년은 좌불안석이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처지의 문맹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대체 다른 애들은 그 어려운 국어책 읽기를 언제 배웠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애들은 잘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문맹 소년의 차례가 된 것이다.
선생님: 너, 얼어나서 읽어봐~!
명을 받은 문맹 소년은 책을 들고는 슬로우 비디오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는 구슬 땀이 솟는 느낌이다.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그러니까....하고 문맹 소년은 주저주저, 떠듬떠듬,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아니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으로, 뭘 알아야 읽지요 성생님....ㅠ.ㅠ. 했다. 이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애들은 빤히 문맹을 쳐다보고 있다.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 못 읽나봐?
그러는 사이 성생님은 눈치를 채셨나보다. 그만 앉아! 하는 소리에 문맹 소년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이 일어나 그 문맹이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코.끼.리. 였다. 고.기.리.도 모르는 문맹이 그 어려운 코.끼.리.를 어찌 알겠나...ㅠ.ㅠ.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문맹 소문이 조만간 전교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이거는 진짜...ㅠ.ㅠ. 당장 내일부터 놀림감이 아닌가... 애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문맹은 애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완전 풀죽은 강아지 신세가 따로 없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문맹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책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했더니 아버지 말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던? 하셨다. 어머니께서 문맹소년을 거드셨다. 그래도 집에서 배우면 좋지요, 하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등잔불 아래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애들 앞에서 창피당한 일은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에다가 그 창피함을 또 느끼는 것은 그 문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에혀~ 그날처럼 복잡한 심경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문맹 소년은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글자를 익히고 익혔다. 날이 갈수록 읽고 쓰기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웬만한 한글은 죄다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글자를 익힌 애들이 그러하듯 신이 나서는 글자란 글자는 죄다 읽어대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한글 참 쉽데이~!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읽을 거리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졌다. 그런데 도회지와는 달리 부근에 읽을 글자가 없는 것이었다. 간판도 없고 마구 뿌려주는 광고지도 없다.
읽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맹 소년은 (아니 이제는 문맹이 아니지) 우연히 다락방에 오르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귀한 신문지와 형님들의 학년이 지난 교과서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한 것이 도덕, 사회, 국어교과서 였다. 산수 교과서도 있었지만 윗 학년 산수를 어찌 혼자 익히랴... 포기하고 형님들의 국어교과서를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야기, 즉 소설이었다. 그때 읽었던 감동적이며 지금껏 그 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다는 소설이 바로 「송아지」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 봄 방학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갔다. 그 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 때만 해도 아직은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 6월 25일에 전쟁이 터져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상황이 그러하자 돌이네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 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소설「송아지」는 잘 나가다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만 탈문맹을 궁금해 죽게 만든다. 한 겨울 피난을 가야하는 소년이 차마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지 못해 안절 부절인데, 마침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는 소년 쪽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가장 극적인 바로 그 장면, 아직도 탈문맹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렇게 소설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책의 한 쪽에는 소년이 송아지의 목을 끌어 앉고 송아지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을 그린 삽화가 있었다. 아... 그 뒤를 얼마나 궁금하게 하는지... 몇날 며칠을 온갖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밥맛도 없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자신의 교과서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될 때까지 탈문맹은 그 뒤를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소년과 송아지가 모두 강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했다.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아...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소년이 살고 송아지가 죽는다면... 소년의 비통한 마음을 어찌 글로다 말할 수 있을까.. 송아지는 살고 소년이 ... 이 또한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소설이 아니던가... 물론 둘 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물이 엷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그렇게 죽기야 하겠어....읽기를 마친 후 어린 마음에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뒤가 궁금해 영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송아지」였다.
사실은 아직도 그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소설이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락방에서 형들의 책을 뒤져 읽은 「송아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어야 소설가의 직성이 풀리려나. 이게 바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전쟁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순원의 소설에는 송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소나기」에도 송아지가 등장한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조선산 송아지의 다 자란 버전인 소는 유순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터라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의 소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순하여 평소 어린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과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산 호랑이가 종종 민가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호랑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용감히 맞서 새끼를 지켰다고 한다.
조선의 소는 누렁소 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소재 중 하나는 ‘얼룩배기 황소’이다. 그 얼룩배기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역시 누렁소인 것이다. 그런 누렁소는 농업 중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역시 게으른 금빛 논과 밭을 갈거나 화물용 달구지를 끌어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럭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선조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님이라 여겼다. 조선 후기 조선의 소는 약 100 가구당 하나 꼴이었다. 농사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공했던 소는 귀하디 귀해 그 이름을 생구(生口)라 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 한마디로 밥을 함께 먹는 입(口)이 바로 식구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종종 안식구라고도 한다. 구(口)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뜻 깊은 용어를 우리 선조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거의 가족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외출을 해서도 아무리 늦어도 꼭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구 때문이었다. 소에 대한 대우가 이렇듯 지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골의 많은 가정에서는 키우던 소를 팔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아마도 소를 판 FM 장학금(파더 마더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여 송아지는 소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요 친구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송아지가 등장하는 소설로 문맹 소년은 그야말로 문맹을 떨쳐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