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어느 겨울,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문맹이 탈 문맹을 하고서는 다락방에서 공부를 한 탓인지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말로만 듣던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이 된 어느 날, 요즘 학생들의 표현을 빌자면 베프, 우리말로는 절친, 그 절친의 시집간 누나가 내게 자기 동생의 비보를 알려온 것이다. 절친의 누나는 자기 동생, 즉 나의 절친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화들짝 놀라 병원으로 달음질 했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 병원이었다. 도착해보니, 아불싸... 진짜로, 진짜로 나의 절친이 병상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처음엔 죽은 줄만 알았다.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게다가 양쪽 콧구멍에는 무슨 관을 끼고 있었고, 옆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계가 그 콧구멍으로 공기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저거 없으면 친구는 죽는 것인가.... 온갖 상상이 죄다 일었다. 그러나 망령되이 행동을 할 수 없어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는 산꼭대기로 한참을 올라가야 서쪽 바다가 멀리 내다보이는 충청도의 산골에 살다가는 서울로, 절친은 경상도의 깊고 깊은 두메산골의 산골에서 서울로. 이 완전 대척점 출신의 시골뜨기들이 서울의 어느 강의실에서 만난 것이다. 딱 보기에도 촌티가 쥘쥘 흐르는, 암만 이쁘게 봐줄래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촌딱들, 딱 그 모냥이었다. 촌딱이 촌딱을 알아본다고, 서로 눈인사를 꿈뻑하고는 서로에게 그저 만만한 상대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그에게 준 책에 있는 한하운의 시이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 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낮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며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당시 친구에게 준 '한하운 전집'은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을 할 수가 없다. 하여 검색이 되는 책으로 이미지를 대신한다.

  

「전라도 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의 뼛속 깊은 애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보듬어 넣었다. 시인이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그 고통을 감싸 않은 이 시는 그것을 드러낸 것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옆구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수처럼 다가와서는 결국 그 비수는 나의 심장에 박혀버린다. 나는 당시 그 비수를 다시는 빼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더불어 시인의 발가락과 함께 나의 발가락도 하나가 덩달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한하운의 '전라도 길'을 읽던 시인 '고은'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자신도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에 들은적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절친은 당시 ‘정○용’보다 ‘한.하.운.’을 더 좋아했다. 시절은 '정지용'을 '정지용'이라 부르지 못했다. 하여 우리는 시인 '정지용'을 ‘정 똥글라미 용’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정지용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불법이었다. 요즘에야 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지만 말이다...  

 

 

이 친구는 가끔 강의실에 수류탄을 투척하곤 했는데, 그 수류탄은 다름 아닌 그 넘의 발.음.이었다. 이 친구가 입을 뻥끗만 하면 바로 강의실에서 와하하- 폭소가 터져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 넘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기는 한 것인지, 그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 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은 맞나? 싶을 정도로 발음이 완전 꽝! 꽝! 꽝! 아니 상상을 뛰어 넘은 창조력을 발휘했다. 영어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넣는 것도 모자라, 문장의 인토네이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창조력이란 정녕 이런 것이란 말인가.... 입을 뻥끗 할 때 마다 강의실은 어김없이 와-하-하-! 의 바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재밌은 것은 교수님이 이친구의 그 창조적 발음을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환기의 수단으로 딱 이었다.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이 수류탄을 꺼내 드시고는 안전핀을 바로 제게, 강의실 안에 주저 없이 투척해버리시는 거다. 불발나는 경우는 없었다. 수류탄이 미처 터지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이미 삐질 삐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이 친구가 입을 뻥끗하면 겨우 참았던 폭소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당시는 학기 초 인지라 교정은 동아리 홍보물로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했다. 여유가 나는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과 동아리에 들렀다. 주로 도서관에서 이 친구를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수류탄이 뜬금없이 동아리 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은 정기 회의가 있어 모든 회원이 모이는 날 이었던 것이다. 이미 서로를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눈만 껌벅거리게 되었다. 어라라, 이 수류탄! 하고 있는데 어색한 순간도 잠시, 그 친구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말을 바로 까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니도 여깃나? 경상북도 특유의 억양이다.

오냐, 그러는 너도 여깃나?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친 후, 우리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갔다. 역시 그 친구가 먼저 입을 열였다.

 

‘말’까서 기분 나쁘나? 나 재수해따 아이가~, 니는 재수 아이제?

(아, 이 때의 모습은 사실은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속으로, 재수가 무슨 벼슬이라고... 하면서,

 

아 그랬나? 니네 산촌은 ‘말’도 까서 먹나? 밤이냐 까먹게? 그리고, 학번이 같으면 똑같은 거다 이넘아, 하면서 씨익 웃었더니, 이 친구, 와-하하하--!!! 하고 허리까지 뒤로 제끼면서 겁나게 크게 웃는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트리는 거다. 으이그~, 이 화상!

 

그 후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이렇게 친구가 된 이 넘의 체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약골이었다. 멀대같이 키는 큰 것이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있고, 자주 헛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의사가 아니라도 약골도 상 약골이로구나 싶을 만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도, 순간 혼자서 중심을 읽고 벌러덩 자빠지기 일쑤였다. 이거는 뭐, 「황순원」의 송아지 도입부 인,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이거랑 다를 바가 하나 없었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는 시집「보리 피리」(1955년)에 실린 것으로 서울 신문에 발표한 시라고 한다. 조념선생께서 곡을 붙여 가곡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절친은 시인 한하운을 매우 좋아했다. 나는 병석의 친구에게 그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보리피리는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여느 시와 다를 바가 없이 시작한다. 시인의 상황은 차치하고라고 그 어느 시보다 더욱 평범한 시어로 시작을 한다. 동심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이다.  특징 중 하나는 운율이 잘 살아있어 시를 읽는 사람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리듬감이다. 그런데, 시인이 자신이 처한 아픈 상황을 모두 도려냈구나 싶을 즈음, '인간사 그.리.워.' 라는 시어를 던진다. 짧은 이 시어 안에 그가 도려냈던 모든 것을 압축시킨 느낌이다. '보리피리'라는 시어가 드디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맑은 영혼의 동심이 시어 '보리피리'를 통과하면서 시인이 그동안 자신의 가슴 깊이 여미어 두었던 새파란 아픔이 어느새 독자의 가슴에 배어든다. 동심이 어느새 시인의 아픔, 지신의 일생을 통한 파란 아픔으로 변해있다. 

  

 친구가 한하운을 좋아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시어에 다다르는 순간, 한하운의 임팩트가 가슴 깊숙히 파고든다. '이 시어에서 눈을 떨 수가 없으며, 자꾸만 되돌아 읽는 바람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시어' 라고 친구는 말하곤 했다.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 얼마나 그리운 일인지,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깨닫지 못한다. 시인이 깨달았듯 말이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그 귀하디 귀한 관계의 소중함을 말이다...

 

 

 

 

 

병실에서 만난 이 친구 누나의 말로는 동생이 본디 체력이 약한데, 특히 폐가 약했다. 중고생 때 툭하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했고 늘 골골골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급기야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겨울 정기 행사를 하는 중이라는 것인데 요번에는 평소와는 달리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이거는 백화점 정기 세일도 아니고, 진짜 ㅠ.ㅠ. 문제는 집이 경상도 깊은 산골 오지인 상 촌동네라 부모님 오시라 할 처지도 못되고 누나는 직장인이라 병자를 옆에서 일정시간 돌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절친인 나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겨울 방학 중이니, 나는, 아이고 있다 마다요~! 하면서 친구 퇴원 할 때까지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7-1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죠? 그 친구는?
뒤가 궁금하군요....

차트랑 2015-07-15 12: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막상 말씀드리려니...ㅠ.ㅠ.)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북플을 하지 않는 관계로 어느 분께서 방문해주셨는지 알수가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답방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친구에게 준 책이 또 있어서 다음 페이퍼를 보시면
상황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저도 상황이 되는대로 시리즈의 페이퍼를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붉은돼지님 ~!





그레이진영 2015-08-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처음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한하운시인의 시집이 눈에 띄어서요 시인의 시도 무척 좋아하지만 야자시간에 시를 외우면 집에 갈수 있다는 담임샘 말에 거의 한학기를 시를 외우고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서육사> 였습니다. 이육사가 아니고요. 그러다 한하운님의 개구리를 외웠더니 갑자기 교실에 3초간의 적막이...... 그리고 와~~ 하는 웃음소리가 선생님의 얼굴엔 역시!! 하는 미소가 그때 생각이 나서요 종종 들어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