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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ㅣ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에는 도서의 개요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겠으나 이미 많은 독자 분들께서 앞서 잘 밝혀주셨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충격적인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께서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 말이다. 그런 반전을 비록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하여 「모리어티의 죽음」을 읽으면서 가지게 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을 중심으로 서평을 갈음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1. 움베르토 에코의 코난 도일에 대한 오마주,「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기호학자 에코가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시킨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캐릭터는 코난 도일의 홈즈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물이다.
비록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윌리엄 수도사는 외모, 체격 조건 그리고 지적 능력에서 홈즈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사실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윌리엄 수도사는 조사관으로서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홈즈 수준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윌리엄 수도사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굴리엘모(Guglielmo) 라는 것이다. 풀 네임은 「굴리엘모 다 바.스.커.빌.」이다 (이탈리아식 이름 굴리엘모 Guglielmo는 프랑스의 기욤 Guillaume, 독일의 빌헬름 Wilhelm, 영어로는 윌리엄 William). 코난 도일의 애독자라면 이미 짐작하듯이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코난 도일의「바스커빌의 개 (The Hounds of Baskerville) 」를 대놓고 차용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지인 멜크 수도원의 견습 수도사인 ‘아드소’는 홈즈의 파트너인 왓슨을 너무나도 빼 닮았다. 아드소는 「장미의 이름」의 화자인 것이다.
기호 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코난 도일의 작품을 십분 활용해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표절이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게 하는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여 전 세계의 문학 비평계에 충격을 안겨주며 대 성공을 거둔다. 어쩌면 코난 도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장미의 이름」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 홈즈의 죽음
어머니, 이제는 홈즈를 죽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코난 도일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안된다, 애야! 절대로 그래서는 안돼! 제발 홈즈를 죽이지 말아줘!
코난 도일은 홈즈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열렬한 아들 코난 도일의 팬이었던, 아니 홈즈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홈즈의 죽음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코난 도일은 홈즈를 죽음으로 내 몰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독자들께서 잘 아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홈즈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코난 도일이 그렇게 죽인 홈즈는 「모리어티의 죽음」이라는 과정으로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한껏 불어 넣는다. 홈즈 부활의 전주곡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내내 홈즈의 등장을 고대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3. 불가사의, 그 의문의 전설과 저자의 필법
작품은 폭포의 불가사의한 기운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난 도일이 죽인 홈즈가 부활하는 모습을 독자들은 과연 목격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도 아주 극적이며 모두를 감탄케하는 방법은? 그것이 아니라면 홈즈를 능가하는 누군가를 새로이 탄생 시켜 또 다른 불가사의를 맛보게 할 것인가?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들이다. 왜냐면 홈즈의 죽음은 불가사의이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문은 소설의 전개 내용만큼이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대 반전, 그 강렬한 폭발을 위한 전주곡의 에너지를 가열하며 증폭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게다가 저자의 문체는 섬세하고 정밀화를 그려내는 화가의 그것처럼 묘사적이다. 초장부터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었다고 여길만하다.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대목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우선 저자는 폭포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세상이 이곳에서 벼락처럼 쏟아지는 강물과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와 더불어 영원히 종말을 맞이하기라도 한 것처럼 새들은 무서워 달아나고 햇빛은 들지 않는다. 17 쪽
폭포의 불가사의한 위상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은 체이스가 존스경감의 변장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목이다. 묘사는 마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 정밀하며 관조적이다.
내가 누구일까 궁금해 하며 냅킨을 내려놓고 식당 밖으로 나가보니 행색이 꼴사납기 이를 데 없는 남자 하나가 정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 복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어떤 배의 선원으로 발탁되건 그 배의 이름에 먹칠을 할 만한 복장이었다. 빨간색 프란넬 셔츠는 캔버스 바지 위로 늘어졌고 도선사의 외투는 소매가 팔뚝 중간에서 끊길 만큼 작았다.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에는 여기저기 남색 얼룩이 묻었고 발목에는 지저분한 붕대를 감고 있었다. 260쪽
4. 뜻밖에 등장하는 동양의 전설
흔들리는 것이 깃발이냐 바람이냐의 논쟁에 대한 육조 혜능의 답인,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니라." 라는 선불교의 사유가 티베트를 거쳐 서양의 실존주의 작가 장그르니에의 「섬」 이라는 작품에까지 옮겨간다.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있는 작품 인 그 「섬」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동양의 전설이 놀랍게도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등장한다.
옮긴이의 첨언에 의하면 ‘어빙’이라는 작가의 작중 인물인 ‘립 밴 윙클’의 나이에 관한 서양의 전설이 바로「모리어티의 죽음」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폭포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불가사의와 초장부터 가뜩이나 의문투성이인 「모리어티의 죽음」에서 전개 과정을 더욱 응축시키고자하는 방편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어빙’은 산에 올랐다가 낮선 이가 주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하룻밤 만에 20년이 흘렀더라는 이야기다. 어쩐지 익숙한 스토리가 아니던가. 동양의 무릉도원의 전설을 보는 듯말이다. 알고 보면 동과 서는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으니 이상할 것이라고는 없지만 뜻밖의 조우인지라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5.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
작품에서 나는 영국의 우월주의와 영국의 미국에 대한 애증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이번에는 도리어 영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있다. 존스경감이 보스토니안을 급습했을 때 이점이 잘 드러난다. 모든 벽면의 그림들은 미국의 화가의 것들이고, 모든 장식은 물론 신문마저도 죄가 미국산이다. 영국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미국의 영향력이다. 때는 에디슨이 영사기를 발명한 바로 그 즈음이다. 미국은 새로운 기회를 창줄하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지만 경감의 부인과 체이스의 대화는 내게 영국의 본토 우월주의가 짖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경감의 부인이 체이스에게 영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미국 출신인 체이스는 대답한다.
“런던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수많은 화랑과 박물관하며 근사한 건축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역사도 풍부하고요. 그게 부럽네요. 194쪽
사실 이들이 막아내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는 적은 미국인 악당 데버루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악당 데버루는 외교관으로서 면책 득권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이름이 미국의 전설이 된 링컨의 후예가 비호하는 인물 말이다. 다름 아닌 미국의 영웅 링컨의 후예라니...이러한 설정은 양국의 서로에 대한 미묘한 애증을 드러내는 장면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는... ㅠ.ㅠ.
6. 반전, 대 반전
반전이다. 그것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대 반전 말이다. 반전의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 전 보았던 영화 「The Other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니콜 키드만의「The Others」는 그녀의 연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반전이란 정녕 무엇인가’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담고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이보다 더한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를 본적이 없으니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The Sixth Sense」든 「The Others」든, 반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통적으로 몇 가지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The Others」가 제공하는 실마리로 미루어 반전을 눈치 챌 확률은 「The Sixth Sense」가 선보이는 실마리의 그것 보다 훨씬 더 은밀하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두 영화가 주는 단서에 대한 ‘설마’의 차이를 사적으로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모리어티의 죽음」에서도 분명 그 실마리를 초장부터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코난 도일은 물론 홈즈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은 내용을 전개해가는 내내 잃지 않는다. 심지에 존스경감과 체이스의 관계는 홈즈와 왓슨의 관계와 동일하다.
나는 읽는 동안 그렇게 읽어갔다. 아니, 위에서 쓴 모든 이야기들을 그렇게 믿으며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나의 이야기들을 산산 조각내는, 경악을 금치 못할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추리물을 좋아하고 경험이 풍부한 독자들은 아마도 잘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전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냥 홈즈의 부활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늘 그러하듯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었건만, 아...나의 이 우둔함이여~! 나의 우둔함을 새로이 절감케 한 작품이 바로 「모리어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대 반전은 그렇게 나를 몰아쳤다.
7. 출판 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내 눈으로는 오탈자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가제본인만큼 내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더욱 꼼꼼히 읽었다.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다. 영어로 지칭할 수밖에 없는 대명사가 없었더라면 이 곳 저 곳에서 나는 국내 소설로 착각할 뻔 했다. 외국어를 이토록 잘 번역해주다니... 우리 소설을 읽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번역이다. 또한 편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역자와 편집자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출판물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 오자가 다수 등장하는 타 서적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문맥상 오류로 의심되는 부분은 딱 한 곳, 176쪽 5-6줄에 걸친, “이발 한분?”이다. 제본은 물론 오탈자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도서이므로 이 부분을 다만 의심할 뿐 자신은 없다. 문맥상 “이발 하실 분?” 이 아닐까 하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