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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ㅣ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도킨스의 저서들이 내게 주는 공통된 느낌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도킨스처럼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다는 깊은 인상을 주는 사람의 저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듯하다. 그의 접근은 원천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매우 깊은 경지에 이르르는 특징이 있다.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보여준 것 보다 훨씬 더 깊어보인다.
흔히 범신론자라고 자처하는 독자들에게는 도킨스의 저서들은 크게 공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녕 진정한 범신론자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정녕 진정한 범신론자들은 도킨스가 이토록 장황하게 열심히 설명하는 이론들을 이미 뛰어 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범신론자 비슷한? 그런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일독의 가치를 보여주는 저서이다. 물론 범신론자라 하더라도 도킨스의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보다 더 분명한 다위니즘을 개진시켜갈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창조론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세상을 지배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이론이 세상에 알려지긴 전에 사람들은 생명체의 과학적 진실에 무지했다. 과학적 접근과 이론이 성립하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반대로 신적 연구로 창조론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 경전들을 베껴쓰고 전해오는 과정에서 창조론을 등장시킴으로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창조론의 명백한 증거들을 만들어내거나 혹은 세뇌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도 창조론을 믿는 현대인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뇌의 위력을...더욱이 신을 앞장세운 세뇌의 영향력임에야...충분히 이성적일 수 있는 학자들마저도 신과 관련한 부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미개한 인간이 된다. 그들의 신은 시계공이지만 눈이 멀어버렸다...그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맹인인 것이다. 이러한 눈이 멀어버린 시계공에게 신적 학자들은 취해있다. 이것은 맹신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억지와 맹신은 같은 부류의 사고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토록 애를 써가며 책을 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맹신에 취한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행여 읽었다 하더라도 리처드 도킨스는 용서할 수 없는 신성 모독자, 혹은 기독교도의 적, 혹은 이단자가 되고 말것이다. 그리하여 반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맹신에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게되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아이러니 인 것이다.
눈먼 시계공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책이다. 비록 출시된지 오래된 책이지만 생물학적 진화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인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론에 대한 접근의 도구가 특히 매력적이다. 이론의 전개를 위해 도킨스가 사용한 3장의 '바이오모프'는 나에게 그렇게 신선한 도킨스의 생각이었다. 박식한 도킨스...해박한 도킨스...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도킨스 덕분에 매우 해박한 지식을 얻고야 말것이다. 이점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수확이 되어주리라...
도킨스의 연구 영역은 매우 방대하다. 생물학이라는 분야가 그런 것이려니 단순히 그렇게 치부할수 있는 수준을 뛰어 넘는다. 저자의 '만들어진 신'보다 저서의 완성도가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세계가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팩트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러한 연구에 몰입을 할 수 있었다니...신에 취하여 독실한 찬미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처럼 도킨스는 커다란 공을 들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 자신의 사명감을 담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도킨스는 이 저서를 끝낸 후 일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을 했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도킨스는 이 저서에 자신의 사명감을 담아야 했을까...설계된 인류, 나아가 설계신 우주가 사실은 절대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싶어서이다. 그럼 왜 그토록 강렬한 저항을 담은 저서를 써야 했던 것일까...도킨스는 우선 뜨거운 피의 인간일 것이다. 인류의 우매함에 치를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지의 한계는 없다. 반대로 지식과 이성의 한계는 언제나 존재한다. 늘 미지의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이 인간을 지배하는 한 말이다. 무지에서오는 어리섞음은 타인을 안타깝게 한다. 물론 때로는 분노하게도 한다.
아마도 도킨스는 그런 무지함에 분노한 것은 아닐까...그렇지 않고서야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눈먼 시계공'등의 저서를 줄줄이 내놓았을 리가 없다. 사실 알고보면 이 책은 모두 같은 범주의 책들이다. 다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는 도구들이 다를 뿐이다.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마치 롼전히 다른 책과 같아 보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다. 방법론적인 문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같은 내용의 주장을 이처럼 반복적으로 외치는 도킨스가 나는 안타깝다. 처절한 그의 외침이 너무나도 외롭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일생을 두고 같은 생각을 인류를 향하여 외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 처럼말이다. 언젠가 인류는 그의 외침이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나 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