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독해져라 - 현실에 흔들리는 남녀관계를 위한 김진애 박사의 사랑 훈련법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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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의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갖고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순간까지는 남녀 간의 관계와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사랑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큰 화두임에 틀림없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다. 가슴이 설레는 이야기, 눈물 이야기도 있고, 때론 복수에 찬 섬뜩한 이야기도 존재한다.

 

사랑을 소재로 전하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때론 사랑을 충분히 경험해봤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꾸준히 진행형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참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가 보다.

 

<사랑에 독해져라>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주체가 되는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진애님의 이력은 참 화려하다.

남자들이 판치는 분야에서 우뚝 선 도시건축가라는 타이틀을 시작으로 서울 공대의 살아있는 전설, MIT 의 도시계획 박사. 美 '타임'지 선정 '21세기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 열정적인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저자의 첫 이미지는 아무래도 사랑 없이도 자신의 커리어를 분명하게 추구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의 편견이 도지는 것 같다.

일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사랑이 없이도 살 수 있다..라는 편견 말이다.

마침 저자 역시 그런 의외의 반응을 받았다고 한다. 사랑에 대한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그랬단다.(나만 편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고만...^^)

 

사랑이 뭘까?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아주 단순하게 답을 하자면 남녀관계를 말한다.

사랑이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향한 호감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로, 뇌의 어떤 물질이 생성되어서 어쩌고저쩌고...

쉽게 쉽게 하자..

사랑이란 남자 여자가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이란 남녀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사랑이란 설렘과 동시에 상처처럼 아픈 것도 있다. 또한 서로 간의 오해도 생기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배신도 하고 이별도 한다.

 

그런데 김진애 박사가 '사랑에 독해져야 한다'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보드랍게 만져주고,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내 손에 고이고이 잡히는 것 아닌가?

 

이젠 독자들은 조금씩 성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랑을 아름답게만, 순순하게만, 때론 열정적으로만, 이상적으로만 생각을 한다면 분명 성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랑에 독해져라>는 사랑에 대한 어른의 성장을 촉진하는 책이라고 하면 너무 앞서갈까?

사실 그동안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감성적으로만 표현한 것이 많다.

사는 것과 사랑의 이야기가 별개라면 충분히 감성만 챙기는 사랑이 가능하겠지만, 어디 이게 현실처럼 되는 일인가?

사랑 때문에 잠을 뒤척이는 고민에 빠진 이들도 현실에서는 일에 매진해야 하고, 나름의 승승장구를 위해서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라고 온전히 믿고 있는 사람도 결정적인 순간을 할 때가 되면 전에 없던 냉정함이 앞서는 것도 현실이다.

절대적으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단식투쟁을 했었다가도 전혀 엉뚱한 이유로 헤어지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랑에 대해 온화한 표현도 있지만 실연, 이혼, 불륜, 집착, 질투, 의심, 의문, 불안, 갈등 등 사랑과 남녀관계에서 불거지는 불쾌한 감정과 결론도 동시에 존재한다.

 

사랑이란 남녀 간의 일이다.

남녀 간의 관계를 제대로 알아야만 나의 사랑을 확실하게, 확고하게 잡을 수 있다.

<사랑이 독해져라>를 어른의 성장을 위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사랑에 독해져라>는 현실적인 시각으로 남녀관계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을 하기 위한 조건은 남녀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고, 내 사랑을 온전히 완성시키려면 상대방이 온전한 나의 짝이어야 함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김진애 박사는 사랑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풋풋한 첫사랑을 지나 어른임을 자부하면서 시작하는 사랑의 순서는 결혼과 가정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일과 상대방의 일도 무시할 수 없다. 서로 달리 살아온 오랜 시간을 어떻게 어울려 가는가에 따라 행복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원수보다 못한 처절한 사랑이었다고 말하게 된다.

 

<사랑에 독해져라>는 상당히 실질적인 이야기이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막연한 상상보다는 사랑=남녀관계라는 조건으로 시작하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는 섹스, 스킨십. 돈, 살림. 말. 지혜. 시간. 공간에 대해 현실 그대로를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한쪽 눈을 감을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면 두 눈 크게 뜨고 나와 가장 맞는 짝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어본다.

 

김진애 박사도 대학 1학년 때 눈이 맞아 이제껏 아웅다웅하면서 살아오고 있단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호기심이었다. 그 호기심과 뜨거운 혈기 때문에 결혼을 했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서로의 사랑이 식어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랑으로 두런두런 정을 이야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반을 살아간다고 사랑의 완성을 찾은 것은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겠지만, 이 사람과의 삶은 어제도 새로웠고, 오늘도 새롭고 내일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랑이 독해져라>는 사람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알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저런 이야기도 있다.

물론 각자의 인생이고 사랑이기에 공감하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지만, 이왕 시작한 사랑이라면 조금은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고, 객관적으로 고민도 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사랑도 있지만, 추악한 사랑도 있다. 사랑이 충족되지 않는 것을 다른것으로 표현하는 일도 허다하다. 남편과의 사랑이 충분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올인하는 엄마나. 아내와의 사랑을 제대로 다져가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는 남자, 때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이라는 병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것이 범죄로 이어져도 그저 자신만의 사랑이 우선이라고 울부짖는 사람...

 

결국 이 모든것은 사랑, 남녀의 일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미숙함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는 것을 따기 위해 자격증 시험 준비도 하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토익을 준비하고, 가보지 않는 대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하고, 좋은 성적을 위해 시험공부를 머리 쥐나도록 하면서 평생을 나와 함께 살아갈 사랑을 찾는 것에는 왜 공부를 하지 않을까?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이 맞춰지기 위해서는 이젠 사랑도 공부를 해야 한다.

<사랑에 독해져라>는 사랑에 대한 공부 이야기가 아니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하나하나 곰곰이, 깊게 짚어보고 가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부라는 표현을 쓴다.

 

남녀관계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사랑에 독해져라>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좀 더 나은 사랑을 위해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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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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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즐기는 독서인들은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 있을 거다.

장르를 위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를 우선으로 책을 고를 때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책이 좋아서, 책 읽기가 좋아서 두루두루 선택하는 일도 있다.

나 역시 아직은 독서와 글쓰기가 초보인지라 되도록이면 여러 분야의 책을, 그리고 여러 작가의 책을, 여러 장르의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 다독주의자이자. 이것이 책 선택에 있어서의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름의 단점도 있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책을 선택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상당히 편식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는 고전과 도무지 가까워질 틈이 없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는 사람으로서 고전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순서라는 것은 알지만, 어려운 문체나, 시대적 공감이 덜 가는 전개 등으로 그저 읽어야겠다..라는 마음만 앞선다.

그런데 생각의 시선을 조금만 다르게 본다면 책 읽기가 아주 재미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처음’, ‘첫’, ‘시작’이라는 단어는 늘 사람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 ‘첫 출근’, ‘입학 첫날’, …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것은 묘한 설렘과 함께 긴장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첫 시작이 좋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끝도 잘 맺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첫 시작’에 신경을 쓰는지 모른다.

'첫'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을 연상시킨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설렘을 더욱 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처음 만나는 책에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문장..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처음으로 남게 될 이야기의 시작..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에세이스트이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무엇보다 스스로 활자중독자라고 말할 만큼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독서량을 가지고 있는 저자이다. 늘 책과 함께 하더니, 지금도 책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책을 읽는 방법, 책을 선택하는 방법,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방법을 보게 되면 그동안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쉽게 책을 접하고, 읽고, 책 속에 빠져드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듯싶다.

 

작가를 따라서, 장르를 따라서 책을 선택하는 독서인들을 보면 나는 왜 기준이 없을까?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책은 읽되, 기억에 남는 책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직 책을 덜 읽어서 작가나 장르에 대해 온전히 올인할 기준이 없다고 해야 하나 나름의 고민(?)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읽으면서 이것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를테면 나에게 가장 맞는 책이라는 것은 각자 성향에 따라 달라짐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책의 첫 문장에 포인트를 둔다.

그렇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첫문장, 첫 단어를 쓰기가 아직도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저자는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첫 문장을 가볍게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 윤성근은 소설가가 문장을 쓸 때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단어 하나하나에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문장 증후군'인 저자는 작품의 문장 사이마다 심어둔 소설가의 의도를 찾기 위해 퍼즐을 맞추듯 원문도 찾아보고, 작가의 인생도 찾아본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첫 문장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 배에 주름이 있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 첫 문장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고, 몇 시간만에 <변신>을 다 읽었다. 결코 재미있다고 할 수 없는(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징그러운,,, 활자로 읽더라도 상상만으로도 상당히 몸서리쳐지는 느낌을 갖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책을 읽는 방법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책이라는 것이(여기서는 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재미가 있으면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읽더라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제목만으로, 책 소개만으로 선택했지만 결과는 너무도 지루한, 선택의 후회를 갖게 하는 책도 물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가 말하는 <첫 문장>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좋은 첫 문장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추천보다는 내 눈을 통해서 내 감성을 건들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을 통해서 소설의 감도 잡아보게 되고, 글을 쓴 작가와의 공감도 생각해보게 된다. 더구나 그 책의 재미가 쏠쏠하다면 작가가 글을 썼던 배경도 아울러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처음은 바로 '첫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어왔으면서도 저자처럼 '첫 문장'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과 그 속의 뜻만 찾아내려고 분주했지, 차분하게 첫 문장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왜 그런 말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통해서 책을 솔직하게 읽는 방법을 공유하게 된다. 책 소개가 아닌 그 속에 담긴 작가가 남기고자 했던 의미를 찾아보는 시선을 터득하게 된다.

​어떻게 읽는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다. 쓰는 자의 주관, 읽는 자의 주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될 수도 있고, 각인되는 인물들도 다를 수 있다.

​단지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읽으면서 그 각각의 의미와 표현을 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이 책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독서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오롯이 내 감정으로 읽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책을 읽은 것이다. 이후의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나 역시 <첫 문장>을 좀 더 주의 깊게 읽어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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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첫문장을 눈여겨 봅니다.
 
인생 독해 -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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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2030 멘토.

스타 강사 유수연을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입니다.

다른 강사들보다는 훨씬 젊은 나이 같아 보이지만, 그녀의 행보는 나름 도전적입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책으로 열심히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그렇고, 그녀의 강의를 타 강사보다는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스펙을 가져서 그런 성공의 길을 쟁취했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만, 사실 유수연 저자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직업상 많은 청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고민을 좀 더 가까이 보게 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전히 “희망을 가지라”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그 대책 없는 한마디’라도 절실한 사람들에게 더는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15년간 취업 전쟁이라는 혹독한 현실 앞에 놓인 학생들을 매일 보면서 요즘 2030 세대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외로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빠른 사회적 성장 그래프 덕분에 청춘들은 어릴 적 시절부터 스펙 쌓기에 바쁩니다. 무엇이 먼저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한 줄 남겨놔야 덜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세대들에게 무조건 "희망을 가져라' 언젠가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라는 말을 이젠 잘 못하겠습니다.

사회가 그렇기 촉박하게 돌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나에게 꼭 맞는 미래를 찾을 여유조차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수연.... 하면 우선 '독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독설'이라는 어감이 밉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독설이라는 것은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말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이번에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인생 독해>는 어쩌면 있는 것 그대로, 없는 것은 없다고 인정하는 솔직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젠 스펙 쌓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판도가 바뀌어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인문'입니다.

 

 

21세기의 기술은 인간이 보유한 지식 전체, 즉 물리학에서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또 필요로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를 허용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과학교육ㅇ르 받은 사람에게 그가 다시 휴머니스트가 되기를 요구할 것이다 -피터 드러커-

 

하다 하다 '인문학'까지 섭렵해야 하냐..라고 탄식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만, 모든 것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사람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지식도, 수학적인 논리도 모두 사람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결론까지 도달한다면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은 바로 독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독서를 얼마나 잘해왔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힙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책을 읽었다 하더라고 스펙에 관련된 것만 억지로 읽었기 때문에 어떤것을 내 인생에 맞춰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남들보다 좀 더 나은 핵심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책은 나에게 맞게 읽어야 합니다.

사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나의 문제입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스펙을 쌓으려고 동분서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바쁜 생활에서 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남들의 인생 성공을 좇아 하려고만 하지, 정작 나 자신과의 제대로 된 소통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를 통해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화두를 던집니다. 나의 과거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아울러 타인의 생각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은 참 많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자고 하니까 정말 쉽게 쉽게 읽히는 책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 때도있습니다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처럼 침착하고 냉정함을 느낄 수 있는 책도 권합니다.

너무나 쉽게 해설이 된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책과 교감하는 방법, 작가와 교감하는 방법을 찾을 생각조차 못하게 됩니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숨 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우리의 메마른 일상들이 기록의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순간,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참 아름답고, 순수한 책이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평을 내리곤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어린 왕자가 꽃을 돌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글 속에 등장하는 별을 세는 사업가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물론 어린 왕자라는 동화를 통해서 어른들이 잊고 있던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주제도있습니다만 저자는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서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던 일에 대해 부정을 해야만했을까..라는 생각에 반발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을 결국 나의 문제입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내가 버텨온 오늘의 하루이고, 그 하루를 이어온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불확실한 그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초반에 있는 청춘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성세대의 축에 들어서는 저 역시 앞으로의 인생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더 큽니다.

물론 청춘들보다는 조금 더 두드려보고, 계산을 해보고 피할 것은 피하고, 따질 것은 따지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내가 쥐고 있는 것은 나만의 필살기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란 '맷집'을 키우고, 나만의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이야기이겠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부딪히며 훈련을 해가는 것, 그래야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두려움에 얼어붙지 않을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세상살이. 미리 겁먹지 말고 정면 돌파하여

한판 승부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볼 만한 이유이다.

 

 

대나무가 자랄 때 중간에 마디가 형성되는 시기는 유난히 더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마디가 있기 때문에 가늘지만 높이 올라가는 것이 대나무라고 합니다.

삶이란 그렇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순간의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높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겠지요..

자존감이란.. 그렇게 나를 믿어주는 것입니다.

 

<인생 독해>는 무엇보다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상하게도 이 사회는 상대적인 것이 많습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준비를 해야 하고, 남들보다 자격증 하나를 더 쟁취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참 서로서로 모질게 구는 일을 만들고 그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존감..

<인생 독해>를 읽으면서 나의 자존감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나는 나를 정말 잘나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남들 앞에서는 어떤 것도 다 이겨낼 수 있는듯하면서도 속마음은 두려움에 움츠리고 있는 때가 분명 있었거든요.

 

<인생 독해>에서 나온 많은 주인공들의 삶을 이쪽으로도 보고, 저쪽으로도 보았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평균이 아닌, 나의 눈으로 내가 보는, 내가 공감하는 주인공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찾아가고, 그들의 삶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독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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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
이진우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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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날 우리의 현시점은 마치 전쟁터와 똑같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무기를 들고 전쟁을 치렀던 중세 시대를 벗어나 지금은 정보의 전쟁, 경제의 전쟁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경쟁과 전쟁 속에서 '나'란 존재를 지켜내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자기계발, 처세, 전략에 관한 책을 섭렵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우리가 흔히 전략에 관한 책을 꼽자면 손자병법을 우선적으로 예를 들곤 합니다.

 

그러나 전략에 관한 병법서를 찾아보게 되면 동양에서는 '손자병법'을 꼽게 되지만, 서양에서는 '전쟁론'을 꼽게 되는, 이를테면 아주 대표적인 저서들이죠.

사실 이 두 책은 전문성에 관해서 (저술된 시대를 생각하더라도) 상당히 깊이가 있는 책이긴 하지만, 많이 읽히지 않는, 아무래도 읽기를 어려워해서 피하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전쟁'이라는 공통점에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비교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두 주장은 2천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도 있지만, 서술 방법 등에서도 상당히 다른 점이 보입니다.

두 주장이 같은 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전략'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책을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

이 책에 주는 가장 집약적인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작게는 감정의 불일치도 전쟁의 하나라고 볼 수 있고, 크게 본다면 국가간의 역사적 갈등이나 경제적 경쟁 역시 전쟁이지요. 그나마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렇듯 세상을 전쟁을 피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이왕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전쟁이 무엇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겠지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논리적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쟁론'은 상당히 어렵고 방대한 책입니다. 저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원문을 직접 새로 번역함과 동시에 현대에 필요한 전략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과 유사한 주제를 '손자병법'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비교를 하기 때문에 손자와 클라우제비츠가 펼치는 전쟁론에 관한 독자들이 접근이 기존의 논리보다 조금 더 쉽게 읽힐 듯합니다.

 

섣부른 독서로 전쟁론에 대한 주제를 정리하기는 솔직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각 장에서 전쟁론에 대한 논제를 언급하고 나서 손자병법과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론에 대해 읽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각 장의 끝 부분에 키포인트를 간략하게 언급하기 때문에 전쟁론에 대한 추론이 어렵게 읽힌다면 이 요점부터 읽고 해설을 읽고 원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는 전쟁의 시대입니다. 특히 경영면에서 본다면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죠. 크던 작던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관과 똑같습니다. 어떤 전략으로 어떤 전술을 펼쳐야 하는가에 따라 조직의 흥망이 결정되고, 무엇보다 이익 추구에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휘관은 한정된 시간과 자원, 그리고 인력을 가지고 가장 최상의 승리를(즉 결과를)이 끌어 내야 하는 것이죠.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은 가장 위에서 이끄는 사람이고요.

 

이런 점에서 생각을 한다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상당히 조목조목 전쟁의 원리를 짚어보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전쟁터에서 고전적인(불변에 가까운?) 전략을 배울 수 있는 병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왕 시작한 전쟁이라면 이겨야 합니다.

어차피 시작이 되었다면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마련이지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독해 면에서 어려운 점도 분명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언급되는 점은 분명히 책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좀 더 천천히 정독을 해보고 또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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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이지형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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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

여기까지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간혹 미련이 남는 과거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인생의 무게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또 다른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이 앞서다가도. 그동안의 내 노력이 결실을 보는 듯하다가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음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면 흔들립니다.

아직도 열심히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뒷전으로 물러서는 스스로를 보게 될 때도 흔들립니다.

나이가 있는 만큼 나름의 처세도, 나름의 위치도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빠른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고 있는 듯한 소심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청년 시절의 패기와 열정보다는 안정됨과, 정적임을 먼저 선택할 때는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감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사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삶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할 때도 있고, 나름의 정형화에 발 들여놓지 않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될 때는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모르는 것 같고, 나의 하루는 무의미하게 보내는 듯한 느낌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하면서도 꾸준히 노력을 합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읽고 듣곤 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저자도 똑같은 인생의 흔들림을 있었답니다. 그의 흔들림을 잡아 준 것이 선()과 화두()인데요. 그 몇 개의 화두를 잡고 풍파를 헤쳐 나왔고, 가까스로 살았다고 합니다.

인생의 풍파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나에게 폭풍우가 밀려오면 중심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눈앞이 안 보이고, 세상이 어지럽고, 온몸에 기운이 빠지게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화두'의 사전적 의미는 <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 조사(祖師)들의 말에서 이루어진 공안(公案)의 1절이나 고칙(古則)의 1칙이다>라고 합니다만, 우리가 떠올리는 '화두'의 뜻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머리, 어떤 중요한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실마리>라는 뜻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이지요.

선불교에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에 품고 깊이 고민하는 키워드이지만, 이것은 꼭 불교에만, 종교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화두'를 꺼내보게 합니다.

종교의 영역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을 닦아주고 함께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볼 때도 평범한 이들의, 불교에서 말하는 속세의 사람들이 번뇌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을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도 수행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입니다. 불교는 사실 '말'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수십 년에 걸쳐 설법을 하고, 제자들은 그 많은 말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붓다가 죽고 천 년이 지나 그 말들이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나타났지요. 메시지는 메시지라는 겁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로써는 전해지지 않는다. 직접 체험해야 한다. 말을 버려라"

 

 

그래서 나온 방법이 바로 선()이고, 경전 없이 스승과 제자들이 벌였던 대화의 기록이 선문답(答)입니다.

그런데 선문답을 종교만의 것으로 본다면 너무나 숭고해서 마구 다룰 수 없다고 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겁니다만,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는 속세로 끌고 내려옵니다. 누구도 범접 못하는 종교만의 것이 아닌, 늘 곁에 두고 마음껏 활용해서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가는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첫 장을 읽자마자 '이렇게 통쾌한~!!' 이란 감탄부터 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를 읽으면서 아직도 가끔은 흔들리고 있는 나의 불혹을 잡아줄 수 있는 간단한 수행, 깊은 수행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말이죠.

 

세상은 참 모질죠.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모질기도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휘말릴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말을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부모의 속을 다 태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어쭙잖은 작은 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있고요, 나의 속은 그렇지도 않은데 숱한 오해를 받는 억울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때려치우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절대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그냥 수학문제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풀고 싶으면 풀고, 싫으면 말고 할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p39)

 

이 말을 삶에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나의 인생이나 타인의 인생이나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물론 강약의 정도야 있겠지만, 사람 때문에 겪는 좌절과, 돈 때문에 겪게되는 좌절, 반대로 세상 때문에 웃게 되는 경우가 비슷비슷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는 인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주체는 '나'입니다. 불교에서는 '나를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 인해 생겼고, 바라게 되고 욕심이 되고, 그러다가 번뇌가 쌓인다는 말을 언뜻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불자가 아니라서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나를 내려놓다'라는 말이 참 깊이 각인이 되어있습니다만,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기에 이것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제자가 조주에게 물었다. "붓다는 누구십니까?"

조주가 되물었다. "너는 누구냐?

혜초가 법안에게 물었다. "무엇이 붓다입니까?"

법안이 혜초에게 말했다. "그대는 혜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는 나를 내려놓는 법, 나를 위로하는 법, 나에게 용기를 주는 법.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다지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겠지만, 내가 좋다고 하면 좋은 세상으로 보이고, 나쁘다 하면 나쁜 것만 먼저 눈에 띕니다.

 

보적이 번잡한 시장을 거닐다가, 푸줏간 옆을 지나게 됐다. 마침 돼지고기를 사려는 손님과 푸줏간 주인 사이에 흥정이 시작됐다. 손님이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말했다.

"최상등품으로 한 근만 주시오."

푸줏간 주인이 칼 하나 달랑 든 채,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 어디인들 최상품이 아니겠습니까?"

 

삶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늘 찾고자 사는 삶의 지혜와 진리는 어느 구석에 귀하게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삶,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도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푸줏간 주인의 말처럼 어디인들 최상이 아니겠습니까.

 

삶의 지혜와 진리가 어디 후미진 산속, 어두운 곳에 따로 감추어져 있던 적이 있던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발붙이고 서있는 바로 이곳이 진리의 장소일진대, 우리는 애써 먼 곳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 어디인들 최상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무엇인들 최상품이 아니겠는가?(p68)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화두에 대해,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렵습니다. 이 책 역시 톡톡 튀는 선문답과 느낄 수 있는 뜻에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쉽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왜 이런 선문답이 남겨졌는지. 그 선문답으로 중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싶은지에 대한 글을 읽으면 나름 또 어렵게 느껴집니다.

"세상에 취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마라"

책 속의 한 줄입니다.

나를 찾는 것, 흔들림 속에서 나를 찾아 기둥을 세워주는 것.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답을 얻으면 다행이고, 설사 답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해도 다행입니다.

아무런 느낌 없이 사는 것보다는 나를 찾기 위해 무엇이라도 움직였다는 것에 저는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이 책을 그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나를 찾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말입니다.

지금 당신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한적한 산사에서 들리는 풍경 같은 맑은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 나의 화두를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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