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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3 - 진실의 문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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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만난 하딘은 잔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테사에게 하딘이란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남자이다.

표현하자면 순진하고 고루한 테사에 비해서 하딘은 모든 것을 섭렵한, 모든 욕망의 정점에 다다른 남자이다.

사랑에 서툴고 표현에 서툰 테사와 하딘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키스만으로도 두근거림과 황홀함에 빠지는 테사에게 섹스가 우선인 하딘의 표현은 감당하기 힘든 그 자체이니까.


하지만 하딘은 정말 미숙하다 못해 영혼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어린 시절 친부의 잘못으로 겪었던 자신과 엄마의 고통은 하딘의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하딘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너무 가볍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분노와 상처를 그렇게 해소하였는가 보다.


첫 경험의 황홀함. 부끄러움, 그리고 기대감은 3권 진실의 문을 지나면서 독자들에게 밝혀진다.

충격이다.

정말 충격이다.


사랑? 욕망?

차라리 욕망이라 부르자 그게 낫겠다.


애프터 3. 진실의 문을 읽는 독자들은 호불호가 분명해질듯하다.

사랑과 욕망 딱 두 가지의 표현을 놓고 본다면 나는 욕망이라고 하고 싶다.

욕망에 먼저인 두 남녀가 그 욕구를 먼저 채우고 그다음을 수습하는 그런 미숙함의 존재들이라고 하고 싶다.


그 악랄한 하딘의 행동 앞에서 테사는 어떤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소설 속의 인물에 동화되어서 그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테사의 그 사랑을 감히 표현할 수가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하딘을 마구 욕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의 테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짓을 벌인 하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테사의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찌른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이 되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읽어오면서도 이렇게까지 극과 극을 표현하는 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사랑하고 상처 주고 때론 보듬고 때론 분노하는 그 모든 사랑의 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애프터 3의 하딘과 테사의 사랑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들이 서로에게 내지르는 사랑의 말과 의미와 몸짓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던져댄다.


숨이 막힌다.

독자는 뻔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왜 이렇게 더딘지 모르겠다.

반면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렇게 지독한 사랑이 어디까지 깊어질는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하딘과 테사, 두 주인공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결코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가정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하딘의 친부가 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랑을 찾은 친부와 그의 새 아내가 있다.

그들 사이에서 그나마 온전하고 표현되는 랜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지독한 집착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테사의 엄마가 있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딸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욕심뿐인 엄마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놓고 본다면 자신의 가슴속에 꽁꽁 숨겨놓은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람에 대한 간절함,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기 바쁜 어리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누구나 그런가 보다.

다 잘나 보이고 성공해 보이고 때론 멋있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겠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또 다른 형태로 미숙한 존재이다.


미숙함이 완성된 인물이 되기까지는 사랑이라고 한다.

좋게좋게 설명하고 싶다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

테사와 하딘 그리고 그들의 주위에 있는 이들은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분노로 표시를 하던, 욕망과 섹스로 표시를 하던 결국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너와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이것이다.


뜨겁다.

이 책은 한마디로 뜨거운 책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갈 때만 다 분노로 뜨거워지고, 그들의 뜨거운 숨결로 뜨거워진다.

이런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당장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이와 뜨거움을 나누고 싶다. 그런 책이다.

마음껏 표현하는 것. 이것이 참 부럽다.

이해를 하다가도 다시 절망에 빠지는 하딘과 테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래도 이들을 끝까지 보고 싶다.


독자의 바램이라면 그 구구절절한 싸움 끝에 서로를 보듬어 가겠지만.. 음... 3권까지의 하딘의 행태를 본다면 아직도 멀었다.

더 지독하게 버림받고, 더 지독하게 울어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태자면 지금의 사랑에 행복해하는 하딘의 친부를 벌주고 싶다.

자신이 버리고 간 아들과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다면 말이다.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떠올려야 했다.

그토록 이들의 사랑은 벅차다. 감히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벅참과 숨 막힘이 크다.

4권을 기다려야 하는데.. 아주 큰 심호흡을 하고 4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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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박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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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을 상상하면 쓸쓸함. 외로움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뒷모습만으로도 따뜻함과 흐뭇함을 느낄 수 있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의 표지만 보더라도 한 컷의 그림으로도 충분히 따뜻함을 느낄 수 있죠.


행복을 전하는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 중인 박지영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이 그런 따뜻함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정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기도 하지만 길도 보이지 않는, 풀이 무성한 길을 무거운 발길로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겨우 길을 찾았다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풀들, 나무들이 길을 덮다시피해서 온몸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죠.

이런 정글 같은 매일을 견디는, 응원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마음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행복을 전하는 그림은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행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동물의 뒷모습뿐인 그림에서 따뜻한 미소가 저절로 맺힙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누렁이의 뒷모습, 빗방울이 맺힌 창가에 올라앉아 잿빛 하늘을 쳐다보는 고양이의 뒷모습, 흩날리는 꽃잎과 나뭇잎과 눈송이와 비눗방울을 올려다보는 얼룩 고양이의 모습...

뒷모습으로 이런 따뜻함을 얻을 수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참 무섭고 매서운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매일매일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역시 매섭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감성, 본성은 늘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때론 혼자여서 두려운 마음도 있고, 때론 좌절에 빠진 기운 없는 날도 분명 있겠죠.

실수를 해서 부끄러운 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가식에 빠진 사람과 맞닿아야 하는 불편함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의 친구들은 독자들이게 이렇게 전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서두르지 않고, 쉬지 않고 마음이 따뜻할 수 있게, 늘 나의 편이 되어 준다고 합니다.


변함없이 내 편이 있다는 것..

참 큰 선물이겠죠? 변함없이라는 그 든든함이 뒤에서 내 모습을 바라봐 주고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용기를 낼 수 있고,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뒷모습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많은 느낌과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의 스토리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제목 그대로 행복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구구절절한 긴 말의 위로보다 이렇게 짧은 그림 한 컷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

어제도 많은 고민이 있던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따뜻함에 바짝 예민하던 날카로움을 잠시 무디게 만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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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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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독자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다.

책을 늘 끼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짧은 문장처럼 멋지고, 닮아가고 싶은 말이 또 있을까?


독서 애호가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독서 중독자라는 말은 조금은 B급스럽고, 조금은 병맛인..

그런 털털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고상하고 왠지 고전만 읽어댈 것 같고, 또는 작품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진 것보다는 읽자마자 느껴지는 감성을 표현하고, 이론적인 감성보다는 오롯이 나의 감성, 나의 느낌이 우선시되는 중독자라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몇 번은 궁금함일 도질 때가 있다.

대중들에게 언급되어 베스트셀러라고 소문이 났던 책이나. 아니면 무슨 무슨 상을 수상했던 유명한 책이라던가. 또는 여러 저명인사들의 추천을 받았다는 책을 기대감으로 읽었을 때 모두 만족한 것은 아니다.

때론 뭐 이런 책을 추천하나 싶기도 하고, 뭔 뜻으로 이런 책에 상을 줬을까라는 궁금함도 생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다 보면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며, 대중의 판단과는 또 다른 판단 역시 공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인물들은 서로의 별명밖에 모른다.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서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이를테면 책날개에 어떤 글이 쓰여있는 지로 책을 질을 판단하는 팁이라던가.. (난 이 부분이 정말 맘에 들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책 제목과 목차는 원서와 대비해서 보면 좋다는 팁이라던가.. 서문을 읽고 책의 첫인상을 발견하는 팁이라던가..

그동안 무심코 읽고 말았던 부분에 대한 언급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책을 읽는 계기를 준다.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어쩌다 읽은 책이 훗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조차 불명예로 여길 정도.) p119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p120


독서 중독자들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간다. ('동시병행 독서법') p205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으면서 가끔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책은 오로지 나 자신이 보는 것이다. 고로 내 호기심을 충족시킨 책을 선택함은 당연하다.(베스트셀러?? 독자들 사이에서 추천되는??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과감히 버리자)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다?? 또한 과감히 동시에 읽어나가자.. (이 방법은 내가 간혹 쓰는 방법인데...)

독서에는 정해진 룰은 없다. 나의 판단대로, 내 호기심을 총족 시켜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읽기 편한 책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B급의 감성을 그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지만 내용은 그 깊이가 대단하다. 인용된 문장의 한 줄 역시 깊이 있는 독서자만이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옮겨 적기는 그렇다..)

웹툰을 별로 반기지 않는 독자라면 스토리가 어수선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다 개개인의 감성 아닐까? 그 속에서 얻는 팁 몇 가지를 건진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본다.

독서에 대한 주관성이나 편협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전자책도 유행하고 음성책도 좋아들하지만 그래도 난 종이책이 좋다. 하나하나 줄을 그어서 볼 수도 있고, 읽다가 막힐 때면 책 귀퉁이를 접어두고 나중에 읽어도 좋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를 보면서 책의 실제를 보는 안목이 생긴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중독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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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장만주엔 지음, 정세경 옮김 / 페이지팩토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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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었다.

어쩌다,, 어쩌다 이 시간이 다가왔을까.

말 그대로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났고, 어느덧 나는 '중년'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 단어가 친숙하지는 않다.

내 입으로 나를 '중년'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삶의 진득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면으로 나이가 들었음, 고리타분함의 주체라는 선입견을 갖기 때문이다.

결코 위축될 나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삶의 바쁨을 충분히 겪어왔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데 말이다.


이런 공감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에게 누군가 쓰다듬어 준다면, 중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고, 큰 인생의 계획표를 다시 정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축 처질 수 있는 독자들에게 친구처럼, 인생의 선배처럼, 때론 삶의 경험자처럼 중년에 대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50대인 저자 장만주엔은 40.50.60대 타이완 중년들에게 문학적 우상이라고 한다. 독특한 매력으로 큰 인기를 받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SNS에 올린 칼럼 21편을 엮어 이 에세이를 만들었단다. 수많은 중년들의 공감을 얻고 중년 독자들의 열띤 토론을 이끌어 냈던 글들이라고 하니, '중년'이라는 막연한 무게감에 축 처져있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나도 중년이고 너도 중년인데 내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모습이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중년의 당신에게


우리는 중년이 되어서야

많은 것들을 미뤄왔음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

모두 미뤄왔다.


이제 펜과 종이를 꺼내 인생 전반전 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보라.


미뤄왔던 것들이 많을수록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았고

스스로 손해 본 것도 많았다는 뜻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중년이라는 나이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되짚어보는 여유를 갖게 하고, 스치는 시간 속의 담긴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어제는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오늘은 의미를 지닌 그런 날이 눈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정말 묵직하다. 오히려 삶의 최고인 노년보다 더 묵직함을 준다.

아직도 삶의 여정 중에 있고, 그 삶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저 조금 더 앞서서 삶과 부대끼고 있다는, 중년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다 알 것 같다는 것,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긍정도 있지만 때론 무조건 모른척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작용한다.

조금 더 어른이다는 이유로, 삶의 원숙함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나의 꿈과 미래와 또는 사랑에 대해 자의반 타의 반으로 그저 무던하게 무덤덤하게 일부러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고 느끼며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가장 큰 쓰임새일 것이다. 중년이라면 사소한 일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

중년이라는 나이 역시 여전히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세대이다. 그저 청춘보다는 경험해온 삶을 딛고 신중하고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약간의 경험만 가진 그런 지나가는 세대일 뿐이다.

젊음보다는 원숙함과 완성됨을 행할 수 있고, 노년 세대보다는 그래도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중년이다.


사람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미뤄 왔음을 깨닫는다. 꼭 해야 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미뤄왔다. 때로는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혹은 남을 먼저 배려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인생의 절반을 산 중년은 더 많은 좋은 날과 비바람, 황혼을 겪어야 하며 쉽게 마침표를 찍어선 안 된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나이가 됨과 동시에 삶에 대해 너무 아는 척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독자라면 충분히 기회도 있고, 경험도 있음을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중년이라는 선에 올라서고 보니 첫 느낌은 막막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어온 중년에 대한 무거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단어를 먼저 업기보다는 조금 더 삶을 경험한 자라는 타이틀을 업고 세상을 본다면, 삶을 본다면 우리의 여정은 아직도 여전히 시작이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그런 책이다.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고리타분함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앞으로의 여정은 더 멋지고, 더 행복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나이 들어 초라해지는 중년이 아닌, 원숙함과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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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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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이란 말이 이젠 너무 익숙한 그런 시간에 살고 있다.

'마음의 병'을 겉으로 내보이고 서로 위로를 받으면서 고쳐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노와 우울의 극단적 결과로 잔인한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그런 시간에 살고 있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마음의 병은 분노로 표현된다. 마음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삶과 정신의 피폐까지 이어지는 그런 삶도 있다.

특정한 이도 아니고. 특정한 장소도 아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 현실이기도 하다.

빈틈없이 빡빡하고, 나도 모르게 경쟁의 시대로 등떠밀어지는 지독한 현실을 살아 갈수록, 언제부터인가 좋은 말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더 자주 나오는 나를 발견한다. 이것이 분명 마음이 다쳐서 표현하는 것중의 하나이겠지만 정작 본인은 마음이 다쳤다는 생각은 못할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바쁜데 누가 마음까지 다독이냐..라는 생각이 앞서는것을 보면 이것조차, 즉 마음을 되돌아보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기는 삶의 여유가 없는 탓일까?


누군가는 그런다.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고...

마음을 다치는 이들이 있지만, 마음을 다독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양쪽의 선택길에서 나는 매번 결정을 주춤한다.

뭔가 어긋나는 느낌은 있는데, 해결을 하자니 그게 문제가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이건 뭔가 아닌데라는 두려움같은..느낌도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자세이겠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머리로는 상황을 알면서도 깊이 박혀있는 마음의 상처를 결코 치유할 생각을 못한다. 아니 안한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굳이 내가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라는 원망의 마음이 우선시된다.

알고 있으면서 못하는 것, 안하는 것...아마 이 조차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래도 나는 늘 해결을 찾고 싶어한다.

마음의 혼란함으로 원망의 말이 더 많아지는 나로서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다.

마음을 왜 다치는지. 왜 단단하게 잡지 못하는지를 알면서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나와 내 내면의 갈등은 끝이 없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으면서 늘 노심초사하는 이 좁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심경>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심경>을 이야기한다.

다산 정약용, 퇴계 이황, 그리고 정조는 마지막까지 읽었다는 책이 <심경>이다.


중국 송 시대 학자인 진덕수가 편찬한 책으로 <심경>은 이름 그대로 ‘마음’에 대해 다룬 유교 경전이다. 중국 학자의 책이지만 오히려 조선의 선비들이 더 철저히 연구하고 이에 관한 저술을 더 많이 남겼다고 한다. 퇴계는 서른 무렵 이 책을 접한 다음 마지막 순간까지 매일 새벽마다 이 책을 읽었고,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학문체계를 정리하며 <심경>을 공부의 마지막 경지로 여겼다고 한다. 또한 조선의 국왕들은 <심경>을 통해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잡는 책이었다고 하니 그 깊이가 정말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책은 제목처럼 다산의 이야기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경>에 대한 연구이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을 대표하는, 조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런 다산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심경>이고, '유교 경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심경>이기에 당대 학자가 그 속에서 찾았을 그 무엇을 독자들 역시 함께 찾아보는 묘미도 기대해본다.


퇴계와 다산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학문의 마지막 과정으로 이 책, 즉 '마음'을 선택했을까?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이 왜 마직막에는 마음에 중점을 두었을까?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얘기를 저자가 이렇게 말한다.


...(중략)... 잃어버렸다는 것은 곧 자아를 상실한 것과 같다. 마음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중략)...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잃고 상처를 받았기에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를 절제하지 못한다. 또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지만 가져도, 갖지 못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중략)... 무엇보다도 힘이 드는 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결핍이다. 외로운 것이다... (중략)

저자는 정약용이 최악의 고난에 처했을 때 마음을 다스렸다는 <심경>에 주목을 했다. 마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정말 마음을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나는 저자처럼 큰 그림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마음의 무게를 찾고 싶었다.

그것이 상처이든, 외로움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내 속이 든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눈엣가시로 보이고, 상처로 보이고 미움과 원망의 독설을 내뱉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상처라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책임은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는 오히려 나보다 더 좁은 세상의 삶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렇겠지라는 나에게 위로를 해본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약동 석천(若冬涉川) 당당함은 삼가고 반추하는 데에서 나온다.

거피취차(去彼 取此) 이상에 취하지 말고 일상에 몰두하라

전미개오(轉迷開梧) 껍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중심을 세워라


나를 당당하게 여기고, 나를 직시하고, 나 자신을 믿는 것... 이렇게 해석해보면 될까?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순서대로 읽을 이유는 없겠다. 매번 번복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에 따라 끌리는 구절부터 읽어가도 충분하다.

누구든 나만의 자존감이 있고 당당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삶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당당함은 언제부터인가 소심함으로 바뀔 때가 있었고, 자신감 있던 삶은 위축된 모습으로 남겨질 때가 있다. 나는 분명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아이들보다 더 유치함을 주장할 때가 있고,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소심의 극치를 우길때도 많다.

나만의 소신대로 분명 잘 살고 있다고 큰소리 치지만, 매번 우왕자왕하는 마음속을 헤매는 것 역시 나이기 때문에 왜 이런 갈등속에서 매번 힘들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를 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의 중심이 단단하다면 삶의 어지러움 속에서 그래도 꿋꿋한 나의 중심을 더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큰 것을 따르면 대인이 되고. 작은 것을 따르면 소인이 된다는 맹자의 가르침처럼 큰 것 즉,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은 눈과 귀를 통해 보는 작은 것보다는 훨씬 큰 결과를 얻는다는 고전 속의 가르침을 이 책을 통해서 읽어보게 된다.


마음은 하늘이 준 기관의 가운데 빈 곳에 머무르면서 외관을 다스린다고 한다. 정약용은 마음을 수양하고 학문에 증진하는 것을 대체라 했고, 대체를 따르기 위한 방법으로는 경전, 즉 인문학 공부를 통해 덕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질문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거듭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 이것은 삶의 의미를 깨닫고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공부와 생각을 통해 덕을 쌓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중심을 잡아가는 어른의 모습이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닌 배운 것을 깊이 고민함으로써 작은 욕망과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한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즉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간단함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는 이 답을 너무 먼 곳에서 찾는 것 아닐까? 정리가 잘 된 글 속에서만 찾으려고 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한동안 유심히 들었던 어느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모든 것은 평범함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그 모든 것은 평범한 나에게서 일어나는 생각과 행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내가 느꼈던 이 결과가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으면서 같은 맥락이라는 느낌을 가져본다.


성현들이 남긴 글과 그들의 행적, 또는 그에 대한 토론이 이 책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시대를 아우르는 성현들 역시 삶과 사람 그리고 마음에 대해 늘 고민하고, 그에 대한 실천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다.

저자는 수많은 고전에서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쉽게 풀어준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준 것 중에 가장 공평한 것이 시간이다. 어떤 부유한 사람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살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 중에서 오직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 현재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우리 것이라 할 수 없다. 미래 역시 아직 오지 않았다. 마치 외상처럼 당겨쓸 수도 없으니 역시 우리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우리의 것인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바로 오늘, '내면의 성실함'을 채워가야 하는 것이다.

맞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속에서의 삶도 한정되어 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도 무방하지만. 이왕 사는 삶 좀 더 생각을 깊이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는 독자들이라면, 그의 삶은 아주 평범함보다는 조금 더 깊이를 갖춘, 진득함을 가진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 좁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어찌 보면 [다산의 마지막 공부]에 서술된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당연시되는, 이를테면 이론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마음에 대해 언급을 하고, 성현들의 실천을 언급할까?

그렇다.

실천을 하기 위해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머리고 읽고 마음으로 움직이는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 우리의 것이다. 그 마음을 붙잡는 것도 나 자신이며 잃어버리는 것도 바로 나인 것이다. 잃어버리기는 쉽지만 설사 잃었다고 해도 다시 찾아오면 된다. 옛 선비들이 했듯이 치열한 공부와 수양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잃으며 작은 깨우침을 하루하루 쌓아간다면,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되돌아올 것이다

어떤 면으로 본다면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조금 어려운 책이다.

어려운 고전의 문장도 그렇고,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에피소드도 간략하게 언급되긴 하지만, 그 깊은 의미를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저자가 풀어놓는 덕에 알지 못했을 고전의 묘미와 그 생각을 접하게 된다.


사실 마음공부에 핵심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모든 것과 동일하다. 너무 간단하고 당연한 결론을 유추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잠시 당황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문장이 있다.

"마음은 내 것이지만 평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는 깨달음이다.

마음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조절할 줄 알았다면 고민할 일이 있을까? 분노할 일이 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할 일이 있을까?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늘 씩씩하고 자신만만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우리를 직접 경험하고 살아간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 조금 더 깊이가 있는 나의 삶을 찾기 위함이라면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편안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결코 급하게 읽을 필요도 없고, 문득문득 떠오를 때 한 문장씩 읽어가는 재미도 충분한 그런 책이다.

고전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속의 깊은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함도 당연하다.

비록 눈에 보이는, 쉽게 알아듣는 문장만 보인다 하더라도 옆에 두고 잠시 손이 스칠 때 읽어보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마음을 잡는 것.

마음을 알아가는 것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심경>을 읽으면서 성현들은, 그리고 저자는 또 다른 결론을 얻었겠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봤다는 것에 만족을 하고 싶다.

아니라고 감추고, 상처를 아닌 척 덮어두려던 마음에게 그래도 수고했다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나를, 나의 마음을 돌아봐주는 것.

이것이 지금 이 시간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고 난 후의 나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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