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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ㅣ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평점 :
"마흔은 인생의 오후, 빛은 따듯하고 그림자 길어져, 걸음을 느리게 잡아당기면 곧 펼쳐질 금빛 석양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어 가도 좋은 시간.
아침부터 수고한 마음을 도닥거리고 어루만지면서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하라.
그런 이에게 오후는 길고, 충만하다"(졸저 <마흔의 서재>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디엔가 기록을 해놓고 싶은 구절이 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전에도 읽기는 했지만 아이들 키운다는 이유로 나만의 독서 시간을 내지 않았었다. 우연히 시작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 만족감에 뿌듯함을 느끼는 날도 있다.
주변 내 나이 또래의 중년 아줌마들보다는 조금 별스럽게 책을 많이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한 사람으로 내 만족에 뿌듯하면서도 때론 숙제 아닌 숙제를 짊어지는 듯한 상황이 생길 때면 내가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나라는 반문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는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 인생의 또 다른 그림을 위해 준비하고 있음을 다시 깨치게 된다.
아하... 이런 의미를 찾고 싶은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샘터 아우름 시리즈의 하나인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를 읽는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다독가이자 인문학 저자인 장석주 작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다독가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책을 왜 읽을까?
재미있어서 읽고, TV에 매달려 사는 게 싫어서 읽기도 한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또는 내가 읽은 책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뿌듯함이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만 결론이 내려지는 것 아닐까?
솔직한 말을 하자면 책을 읽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책을 읽기도 어렵지만,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면서 책을 읽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읽고, 내가 쓴 글이 하나씩 쌓여가는 재미와 뿌듯함이 더 배로 크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에서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책읽기가 '지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읽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노동이라는 점에서 거기에는 인내와 수고가 따릅니다. 인내와 수고 둘 중 하나라도 회피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책 읽기입니다.
우린 책읽기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펼쳐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제일 정확하다고 믿고 산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 그리고 수많은 주장일 공존하고 살아간다. 그것을 이루는 여럿의 우주를 다 접하고 살기란 어렵다. 내 우주의 일도 제대로 흘러가지 못해 방황하고 좌절할 때가 있는데 다른 우주를 이해하기를 절대적으로 어렵다.
어려운데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읽기 이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어본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 깊이 있게 읽어야 하나.
여기에도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것이고, 쉽게 쉽게 읽어내려가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모든 책을 빨리 읽어야만 되는건 아니고, 반대로 모든 책을 천천히 정독할 필요도 없습니다. 책은 저마다 그 책이 갖고 있는 지식수준과 밀도에 알맞은 적정 속도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속이 후련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지만, 언제부터인지 책에 눌린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저 책에 대한 욕심으로 일단 무조건 읽어보자 했고, 그냥 책을 읽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깊은 곳까지 되새기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말이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전한다. 물론 사느라 바빠서 시간도 없도 금전의 여유도 없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저자는 책 속에는 그 금전보다 열 배는 더 되는 값어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는 게 어려울수록, 좌절감에 빠질수록 오히려 책과 더 가깝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지침을 느낀다. 늘 똑같은 일상에 지치는 것에 더불어 신체적인 변화에 스스로 위축이 되어간다고 할까? 그동안 달려온 시간에 대해 자꾸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억지가 생긴다. 한동안 밀어두었던 책읽기를 다시 시작한다.
오랜만의 일이라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도 읽는다. 그렇게 그렇게 시작하고 2주정도 지나니 다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우울감이 있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나만의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다독인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를 읽어가면서 많은 공감을 느낀다.
아하... 이래서 책을 읽는구나.. 이래서 내가 책읽기를 참 좋아하는구나라고 다른 시선으로 결론도 내려보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면 느닷없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역시 하나의 경험으로 즐겁게 느끼라는 저자의 말도, 책을 읽되 책의 내용만 기억하기보다는 책에 몰입해서 여러 가지 상상을 동원할 수 있는 느낌을 즐기라는 저자의 말도 참 반갑게 느껴진다.
책을 읽되 아직 초보자의 선을 넘지 못한 내가 느꼈던 책에 눌린다는 느낌... 이것은 책읽기에 대한 어쭙잖은 인식 때문이었나 보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에게 맞춰서 책읽기를 하되 책에 몰입하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책읽는 방법일 텐데 말이다.
또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적인 습관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후련하던지..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라는 말이 옳은 답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간혹 다른 곳에서 길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헤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얻는 경계만큼 나의 우주는 더 넓어짐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혹여나 더 빠른 길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기대감에 그렇게 움직인다.
저자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냈고, 그것을 이어오고, 그것으로 인한 기쁨과 만족감이 가득하다고 한다.
인생의 모호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말처럼 책을 통해서 다시 매진해봄이 어떨까? 아직도 미래의 꿈에 대해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청년 세대들 역시 차분하게 책을 통해서 나의 꿈과 나의 목표를 재정비함은 어떨까?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보다는 수많은 현인들이 남긴 책들과 그것이 여전히 읽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나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꿔 보는 것도 획기적인 인생의 한 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