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시 - 한시 학자 6인이 선정한 내 마음에 닿는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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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는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먼저여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문학으로 여기게 된다.

더구나 한시는 특유의 형식과 표현 때문에 시 속의 의미를 이해하기는커녕 원문의 뜻조차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또한 어쩌다 접하는 한시는 군주를 향한 신하의 충성심이거나, 그리운 사람을 에둘러 표현하는, 또는 자연의 여유로움을 읊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어쩌면 그 시대의 있는 자들의 여유만을 표현한 것 아닐까라는 엄한 선입견도 한시를 멀리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시라는 것이 결코 음풍농월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인 한시는 고상한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을 달리하게 하는 책이 <하루 한시>이다.

한시 학자 6인이 마음에 닿은 한시를 뽑아 독자들에게 한시의 깊음을 전한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전하고 인생의 낭만을 전하는 것도 있지만.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불우한 삶을 하소연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은 <하루 한시>에서 얻게 되는 것은 인생의 깨달음이다.

 

<하루 한시>는 한시 학자 6인이 모여 고상한 문학작품과 이것을 외면하는 대중 사이를 좁혀보고자 학문의 영역에서 벗어나 일상의 영역이란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한시를 전하고 있다.

이런 취지이기 때문에 원문에서 가장 와 닿은 부분만을 읊기 때문에 원문이 전하고자 하는 느낌과는 다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시는 시대의 일상을 읊던 문학이었다.

일상 자체였다.

<하루 한시>를 과거와 현재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를 읊어보게 된다.

 

한 떨기 연꽃 머리엔 비취 장식 꽂고

꾀꼬리, 제비가 모두 무색하구나

석류꽃 수놓은 치마 밑 비단 버선발을 드니

초승달 모양 귀밑머리에 귀고리가 흔들리네

 

19세기의 중인층 시인 김진수의 작품이다. 청나라로 가는 조선 사신단을 따라갔다가 북경의 저잣거리에서 배우들의 공연을 본다. 다른 여행기에서는 조선에서 볼 수 없던 잡기에 관한 기록이 흥미진진하게 기록이 된다. 물론 배우들의 겉모습에 대해서만 기록이 남긴다. 하지만 김진수를 이 글을 남기면서 소년 배우에 대한 글을 남긴다. 외모가 예쁜 사내아이가 팔려와서 춤과 노래를 가르쳐서 공연을 하고, 때론 왕공귀인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버려지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내면.. 그것을 김진수는 한시로 남긴다.

 

모르겠네, 옛사람은 무슨 운수였기에

내 나이에 벌써 명성과 사업을 이루었나

 

그 예전에도 자신의 성공 여부에 대해 한탄함이 있었는가 보다. 이 시를 지은 김낙행은 31세 되던 해에 제주로도 유배된 부친을 따라 머물고 있었다. 김낙행이 그리던 영웅들은 이십 대에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을 보고 있으니 제주도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보다 먼저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먼저 결론에 도달하는 이들을 나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김낙행도 이 시를 지었던 당시에 몰랐던 것이 있었다. 시대의 영웅 중에는 대기만성으로 나이가 지긋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남보다 늦는다고 안타까워하지 말자. 인생은 길다.

 

<하루 한시>는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들의 성공과 나의 현시점을 비교하는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전지는 오롯이 나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짐을 담담하게 적어가는 한 시도 있다.

아침이든 낮이든 잊지 말고

언제나 그 길에 몰두하자

라는 시어로 나를 다시 다잡는 마음을 일컬어보기도 한다.

 

어렵게만 느끼던 한시의 매력이 시대를 벗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임을 <하루 한시>를 읽으면서 알게 된다.

모든 일은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현대인들은 이런 점에서 나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올바른 계획과 목표를 이끌어가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끝없이 읽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독자라면 <하루 한시>를 읽어봄이 어떨까?

 

나태하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채근하는 한시도 있고,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근심을 하소연하는 한시도 있다. 때론 녹록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시도 있다.

시대가 변했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원인과 결과로 분석하는 자기 계발서도 좋겠지만, 한시에서 말하는 삶의 이야기를 자기 계발서로 써봄은 어떨까? 한시가 전하는 여유가.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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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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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경쟁의 긴장감을 늦출 수도 없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타인들과의 관계 지속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일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미래를 방향을 다시 정할 때도 있기 때문에 늘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은 서로 간의 대화에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고민스러운 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소통의 가장 기본이 되는 '대화'라는 점이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하면서도 즐겁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겠지만,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더구나 절대 피할 수 없는 사람이거나 상황이라면 대화에 있어서 의외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이란 제목이 의외다.

까칠보다는 착하게라는 말에 더 의미를 두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실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연 까칠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까칠하다의 느낌이 아주 반기는 긍정의 표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까칠하게 말해도 된다는 의미는 좀 더 솔직한 대화, 좀 더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해보라는 의미로 읽게 된다.

 

세상이 진실만 남게 되고, 그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굳이 대화의 기법이라던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그렇게 고민할 일이 있을까.

다시 말하자면 거짓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살다 보니 속마음도 감춰야 할 때가 있고, 그런 행위가 결코 나쁘지 않은, 어쩌면 경쟁시대에 살면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된 듯하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일본의 문예평론가 후쿠다 가즈야가  '악惡 시리즈'의 하나인 <악의 대화술>을 집필했다.

 

'대화'와 '악'이라..

묘한 어울림이 있는 주제이다.

이 책의 부제 역시 강렬하다. <착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란다.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반면에 착하다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약함, 손해 등등의 이미지도 동시에 떠오른다.

경쟁력이 대단한 현실에서 무조건 착하게라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한 예로 나 역시 까칠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어릴 적 학습의 영향으로 까칠함은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비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성격을 드러내기보다는 우선적으로 감추려고 했던 점이 많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듯이 <가끔은 까칠할 필요>가 있다고 하니, 과연 반전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늘 고민되는 부분이 나와 타인과의 좁혀지지 않는 생각의 차이를 맞닥뜨릴 때 있다. 내가 그러던, 상대가 그러던 어느 누군가는 주장을 하게 되고, 나의 이야기를 더 믿어줬으면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방도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예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결코 좁아질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뼈 있는 농담을 종종 한다. 사실이 아니고 싶지만, 절대적인 사실인 이야기이다.

이런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 역시 결코 좁아질 수 없는(좁아졌다는 착각을 결과로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상대방이 결코 나를 완전하게 이해하리라 기대해서도 안되다는 점이 이 책이 전하는 매력이라고 하고 싶다.

 

<악의 대화술>이라는 제목처럼 책의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보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진중하게 생각을 해봐야 하는 책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학습해왔던 <착하게만 살아라>는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조직사회에서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분명 있다. 그리고 더욱 확실한 것은 나와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더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내가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되. 나를 확실하게 인식시키면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싫다고 안 보는 유치함은 결코 사람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의 행동이 아니란 것이다.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의 저자는 어쩌면 독자들 스스로가 듣고 싶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억지로 착할 필요가 없고, 억지로 상대방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때론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내가 어떤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지. 소통을 유지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을 긴장시키게 하는 나만의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남들은 잔꾀를 내고, 상황을 벗어나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는데 나만 홀로 순진하게 눈만 깜빡이며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정확한 것. 내가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내 스스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이 세상과의 소통에서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에서 충분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란 존재를 연출하는 것, 그리고 대화 속에서 긴장감을 느끼게 하면서 나란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 때론 아부를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것 역시 관계 유지를 위한 나만의 노하우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러준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 한다.

같은 험담이라도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것이 있고, 상대방이 스스로 인정하게끔 만드는 것도 있다.

아부하는 모습이 비굴하게 비치는 경우도 있고,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비칠 때도 분명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예스맨이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나만의 탄탄한 이미지를 다져가는 까칠한 사람도 분명 매력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무지한 어른이 아닌, 나만의 우아한 대화 기법을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을 통해서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어떨까?

답답할 만큼의 예의 바름을 무조건 주장하기보다는 신선하게 까칠한 나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휘하는 그런 대화법을 이 책을 통해서 습득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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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3 존 코리 시리즈 3
넬슨 드밀 지음, 정경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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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6년 7월 17일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20시 31분. 뉴욕 JFK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파리로 향하던 TWA 800 보잉 747-131기는 이륙한 지 12분 만에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한다. 승무원 포함 탑승자 230명 전원 사망, 미국에서 일어난 항공 사고 중 가장 큰 규모의 비행기 사고로 기록된 이 참사는 노후된 기체의 결함, 적국의 테러 가능성, 군사 훈련 중 미사일 오작동 등 폭발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종결되었다.

 

'존 코리'시리즈로 불리는 넬슨 드밀의 대 테러 액션 스릴러인 <나이트폴>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발단은 실제 일어났던 1996년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라는 것과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보인 미국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에도 세계 10대 '비행기 실종 미스터리'에서 기억될 만큼 그 원인과 후속 처리에 대한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나이트 폴 NIGHT FALL>의 주인공 대테러 특별 기동대 소속의 존 코리는 FBI 요원인 아내의 손에 이끌려 TWA 800사건 추모식에 참석을 하게 된다. 추모식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던 존 코리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격담이 일치하고, 우연찮게 참석한 추모식에서 느낀 희생자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다른 요원의 경계하는 모습에서 존 코리는 이 사건에 숨겨진 음모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존 코리는 이 사건을 단독으로 파헤치게 된다.

물론 그의 결정에는 아내가 은근히 전하는 사건의 의문점도 동기를 유발한다.

업무상 모든 사건의 정보는 흘릴 수 없는 원칙이 있지만 그의 아내는 두루뭉술하게 그 사건에 대한 모종의 음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존 코리의 의구심은 깊이를 더해간다.

 

이 소설은 이 무지막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어느 누군가에게 우연히 촬영된 것이 있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와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졌다.

사건에 대해 감쪽같이 사라진 증거들과 과학적, 기술적으로 최첨단을 달린 수사기관의 후속 처리는 너무나도 미흡하다. 존 코리는 본능으로 이들이 남긴 어긋난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내기 시작한다.

 

정부이던, 수사기관이던 분명 음모론은 진행이 되었다. 존 코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심증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와 아내는 상부의 압박으로 전출을 가야만 한다.

누군가가 존 코리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말이다.

존 코리의 성향을 본다면 마치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과 흡사하다.

정의를 위해서 뛰어드는 경찰, 또한 수사기관 내에서의 직책과는 상관없이 옳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멈출 줄 모르는 추진력, 그리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놓지 않는 유머감각은 또 하는 존 맥클레인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미국의 액션 스릴러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 존 맥클레인을 닮은 듯하다. 시대의 영웅,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해가는 여유를 보이면서 절대 꺾이지 않는, 그리고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 같은 존재... 모든 것이 발단한 미국에게도 이런 영웅은 존재해야 하는가 보다.)

 

존 코리의 수사는 상부의 방해에도 꾸준히 진행을 하게 된다. 반 억지에 의한 예멘으로, 아내 케이트는 탄자니아로 추방되다시피 임시 파견을 다녀온다. 상부에서는 두 사람에게 따끔한 벌을 줬다고 생각을 하고 그 사건에 대한 행동도 안 하리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 코리는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났어도 오히려 그의 분노는 여전하다.

 

보일 듯한 진실이 눈앞에 있다. 수사관의 본능이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은폐되었고,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시민 230명이 바다로 추락해서 시신조차 제대로 못 찾고 있는 것이다.

귀양살이 후의 다시 도착한 뉴욕에서 존 코리의 행동은 빨라진다. 존 코리와 케이트의 행적을 누군가 감시하고 체크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 이상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존 코리는 수사기관에서 놓친 하나의 증거를 찾아낸다. 그들은 그것이 마지막의 증거물이라고 생각하고 처리를 했겠지만, 존 코리는 아주 미세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 줄기를 따라 결국 증거물과 목격자를 찾아낸다.

 

전혀 밝힐 수 없는 목격자의 상황과 그 사건은 눈앞에서 보고 5년간 마음속에 짐을 지고 살아가던 목격자. 그리고 그 목격자의 입을 막으려는 또 다른 압력들...

그들은 존 코리를 막고자 우회로 케이트를 협박하려는 상황까지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영화로 보면 참 좋겠다.)

 

마침내 누가 적인가(존 코리의 입을 막으려는 자들을 적이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를 알아내고 최후의 결전을 위해 존과 케이트 그리고 목격자와 그들의 진실 규명을 도와주려는 동료 경찰들은 뉴욕의 한 곳을 향해 간다.

 

존 코리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트폴>은 전혀 뜻밖의 사건을 말미에 삽입한다.

미국 역사상 끔찍했던 그 사건을 말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최후의 결전에 나섰던 이들의 생사를 좌우하게 된다.

 

사람들은 희생이 되었고, 사건은 알게 모르게 은폐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사랑하는 이들의 안부를 묻는 동안 또 다른 세력은 그 잠시의 시간을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남겨줄 그 증거를 인멸하고 만다.

끝까지 추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장장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이 후딱 읽힌다. 그만큼 긴장감과 긴박감에, 그리고 존 코리가 헤쳐나가는 비밀에 대한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인 뜨거운 열정도 아주 재미있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TWO 800사건

진실을 밝히려는 존 코리 같은 사람이 남아있는지, 진행형인지도 모르지만, 그 진실은 밝혀질 때가 올 것이다. 목격자들이 느끼듯이 그것은 분명한 음모였으니까.

영화 한편을 글로 보았다.

존 코리의 다음 열정이 또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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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 - 잘 숨고 뾰족한 어느 고슴도치의 기록
고슴도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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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의 매력은 훗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예전의 일기를 다시 읽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일기를 끄적일 때의 감정을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고스란히 떠올리게 되고, 때론 일기에 남겨진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늘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만의 일기장으로도 이런 성장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남의 일기장을 읽는 느낌은 또 다른 맛이 있다.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일기장에 써 내려갈 때는 모두 겉모습을 훌훌 벗어던지고 속에 있는 맨몸의 상태로,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쓰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역시 남의 삶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 일기장의 주인공은 자신을 '고슴도치'라고 표현했다.

자신에 대해 전혀 나타내지는 않지만, 감정의 모습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고슴도치의 일기는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일상, 무의미한 일상, 그리고 때론 반기를 들고 바락바락 대들고 싶은 일상을 보여준다.

 

못 돼 처먹은 인간이 온갖 복은 타고 나는.

눈물 나게 억울한 지구 생활이다. -2002.11.6

 

웃음으로 끝난 하루의 느낌도 있지만, 세상이라는 전쟁터를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몸과 마음이 지쳐 하나씩 써 내려간 무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나는 감정의 쓰레받이.

저들이 내뱉는 불순한 감정의 말을 말단 사원인 나는

묵묵히 받아내야 한다. 2002.5.20

 

그리고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과 때론 한 번쯤은 파이팅을 외치며 일어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함부로 인생의 모양을 판단하지 말자.

누가 어떤 계절을 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겨울 다음에 봄 그리고 또 봄이 올지.

봄 다음에 겨울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2013.1.19

이때다 싶으면 과감히 달려야 한다. 기다리는 건 어둠에

갇히는 짓이다. 추워도 문을 열어라. 그리도 뛰면 된다.

반팔인 게 대수냐  2002.12.11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저 그(그녀)가 쓴 짧은 단문만 보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진함을 공감할 수 있다.

피하고 싶지만,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때론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기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잠시 주춤했던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내가 잠시 주춤했던 삶에 대한 열정을 떠올려보게 한다.

 

때론 한없이 가라앉는 고슴도치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 밑바닥까지 끌려내려가는 듯 하다. 나는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닌데 몇 개의 문장으로 함께 끌려내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올라오려고 기를 쓴다.

타인의 좌절, 무거움을 밟고서 말이다.

 

그래서 일기라는 것이 어쩌면 속 알맹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는 그런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멈췄던 나의 일기에도 자극을 받아본다.

뭐... 쓰다가 말게 되면.. 잠시 멈추지 뭐..

그리고 또 나를 기록하고 싶으면, 내 시간을 기록하고 싶으면 또 끄적이지 뭐.

 

<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는 잊고 있는 일기장을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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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정원 -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된 19개의 시크릿 가든 정원 시리즈
재키 베넷 지음, 김명신 옮김, 리처드 핸슨 사진 / 샘터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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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난다.

우리가 정원이라 표현하는 곳은 울창하지만, 작은 숲 속의 그것과 같은 곳이다.

그 속에서 자연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을 깨우기도 하고, 때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장소로 독자들에게 제공된다.

수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정원의 모습을 세세하게 전한다.

푸름이 가득한 그곳이었다는 것보다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과 과일의 이야기가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햇살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새소리에 스르륵 감기는 잠에 취하기도 하고, 바깥 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비밀의 장소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정원이다.

 

작품을 읽을 때 이 작가가 거닐었던 장소는, 정원은 과연 어떤 곳이었던가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작가들의 정원을 실물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작가들의 정원>이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애거서 크리스티, 버지니아 울프, 베아트릭스 포터, 윌리엄 위즈워스, 토머스 하디, 존 러스킨,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 버나드 쇼, 윈스턴 처칠…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정원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재키 버넷의 이력을 보자면 정원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이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조경 및 자연사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 정원에 관한 시리즈가 올해의 가드닝 칼럼으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그만큼 전문가적인 안목으로 정원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정확하며, 또한 작가의 견해로 보는 정원과 그 정원을 사랑한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자면, 이 책 속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고, 분명 그것을 작품에 녹였을 텐데, 그 작품을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작가의 정원만 들여다보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소개된 작가들이 근대의 인물들이라는 점도... 무시 못하지만..)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들이 자연을 어떻게 표현하고, 그것이 집필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다.

 

그나마 책에서 반갑게 눈에 띄는 인물이 있어서 다행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40년 동안 차트웰에 거주를 한다. 너도밤나무가 아늑하게 가려주고 켄트의 삼림지대 너머 먼 곳까지 조망되는 풍경에 사로잡힌 윈스턴 처칠은 막대한 유지비용이 드는 이곳에서의 삶을 위해 글을 써서 가족을 부양한다. 그의 부인 역시 이 정원에 로즈 가든을 증축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 꾸몄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의 정원 개스 힐 플레이스에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였다. 유별나게 제라늄을 좋아했던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정원을 자랑스러워했고 더 좋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양 좋은 정원을 유지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아내와 별거 후에는 타인의 눈을 피해야 하는 사정도 있고 해서(엘렌 터넌과의 관계가 결정적이라고 한다) 힘겨운 순회강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원을 사랑하지만 돈에 쪼들리게 된 찰스 디킨스의 상황은 작품 속에서도 표현이 되었단다.

"20파운드를 벌어 19.9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행복이지만, 똑같이 벌어 20.0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비극뿐이다"라는 대사가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나오는 디킨스의 강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도 한다.

 

이처럼 작가들에게 있어서의 정원은 작품을 구상하는 아늑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겪던 좌절을 다시 가다듬는 곳으로도 남았다. 정치적 암울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때론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에 좌절을 겪었을 때. 이혼과 실연이라는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정원에서 찾아낸다.

 

어릴 적 읽었던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그 신비로운 화원이 떠오른다. 나만의 숨겨진 공간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고, 꽃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자연과 더불어가는 삶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은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

<작가들의 정원>에서 푸름과 향기로움, 그리고 작가의 세세한 감정을 흠뻑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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