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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생존자예요"
600페이지가 넘은 두꺼운 이 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문장이다.
옛날 영화 속에 나올법한 작은 마을.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치고, 어느 가정의 비밀이 비밀이 될 수 없는 그런 마을.
하키라는 중심체가 없었다면 이 마을은 무언가조차 일어나지 않는 깊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존재조차 희미한 마을...
베어타운의 모습이다.
마을 전 주민의 무조건적인, 그리고 그냥 당연한 듯한 하키 구단을 중심으로 마을의 모든 이야기가 일어난다.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에서 일어났던 사건 이후의 마을 모습이다.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한다. 그것도 온 마을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열광하는 하키단의, 하물며 그들의 영웅이라는 남자아이에게 말이다.
마을은 침묵을 선택했다. 무관심을 선택했다.
전적으로 나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그런 침묵으로 도피를 했을까?
나의 식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때로는 그저 이웃이기 때문에 그냥이라는 이유로, 또는 내가 살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이유로, 범죄는 표면 속에 묻힌다.
그 속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그냥 그렇게 덮어버린다.
하지만 그 속에 치열하게 살아남는 이는 분명히 있다.
남아있는 자들과 떠난 자들. 방관하는 자들과 부딪히는 자들, 마을 사람들은 늘 치열하게 싸운다
나와 너. 나와 그들. 그리고 나와 조직들은 늘 치열하다.
무너지는 마을에서 하키 구단의 존재는 마을 그 자체이다.
베어타운과 헤드. 그들의 맞섬은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이고 진실과 이익의 이야기이다.
베어타운에 나타난 새로운 코치와 하키 단장. 그리고 베어타운 하키팀의 선수들은 치열하게 맞선다.
사람들의 어긋난 시선과 불편한 시선들과 치열하게 맞선다.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잘난 사람들이 정해놓은 룰에서 본다면 루저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했지만 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단장. 성범죄 피해자이면서 오히려 더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마야,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이 부끄러운 아나, 하키 주장을 맡을 자질을 가졌지만 타인과 다른 성 정체성 때문에 공격을 받는 벤이. 그리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최고의 말썽꾼 비다르.
이들의 모습은 잔잔하다. 그리고 가슴이 아프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들이 부딪히는 일상이 아프다.
루저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결코 루저가 아니다.
이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악착같고, 지독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의 피해로 또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우리는 나와 당신들을 기억하게 된다.
비록 이어지지 못한 사랑이라고 해도, 비록 거머쥐지 못한 우승이라고 해도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그 시간, 그장소의 사람들과 그 느낌을 그대로 기억할 것이다.
결코 잊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 했던, 하고 싶어 했던 것을 묵묵히 같이 지니고 같이 기억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그 분주한 소란과 이기심이 참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피하고 싶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더러워도 걸어가야 하고, 지긋지긋해도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 말이다.
사랑이 아름답게 남아줬으면 좋으련만. 어디 내 맘처럼 그렇게 되나.
사람 일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느 일이 어느 때에 기쁨으로 나타날지 슬픔으로 나타날지..
때론 너희들은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고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냐고..
아니. 이들은 당하는 게 아니다. 이들 나름의 방법으로 버티고 헤치고 나간다.
불편하고 아픈 마음을 가진 독자는 이들의 여정을 내내 쫓아가게 된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깊은 한숨 속에서, 그리고 갈등 속에서 이들이 가슴속에 간직하는 그 단단함을 보게 되면서 독자는 비로소 웃게 된다.
울면서 웃는.. 딱.. 그 모습으로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느 곳을 가던지 이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에서 배척을 받게 된다고 해도 이들은 다시 꿋꿋하게 생존해 나갈 것이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생존자예요"
독자들은 이 말의 여운을 오래 느낄 수밖에 없다.
생존... 그 지독한 악랄함 속에서 생존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따뜻함을 보낼 수밖에 없다. 아무 말도 필요 없이. 그저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