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
서영 지음 / 책벗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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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성의 존재감에 대한 변화를 많이 느끼곤 하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기는 소식도 접하게 된다.

'북어와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라는 무식한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건국신화에서도 보면 사람을 닮은 신은 남자고, 짐승이었던 곰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참아내야 겨우 사람이 되었다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뿐인가?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 성경에서도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들어졌다고 기록이 되었으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여성의 존재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은 기록에서 확인하곤 한다.

 

역사 속의 여성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존재는 대부분 남자의 기록에 의해 남겨진 역사에도 확실히 있다.

<중국 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이란 책을 통해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맞서 당당하게 역사의 한 줄로 존재감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읽어보게 된다.

 

중국 역사 속에 남겨진 여인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서너 명의 이름만 중얼거린다. 그나마도 경국지색이란 단어와 연관된 그런 인물들만 기억하곤 한다.

여성들의 존재감이 없음을 부당하다고 하면서 여성 스스로 자신의 미모로 한 나라를 또는 그 나라의 왕을 좌지우지한 야사만 기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 스스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괜한 바른생활 자세를 잡아본다.

 

<중국 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이란 책에는 모두 15명의 비범한 여성들이 소개된다.

최초의 미녀 스파이 '서시', 중국 역사상 첫 번째 황후 '여치', 위대한 여사학자 '반소', 유일무이 여황제 '무측천', 천하제일 여재상 '상관완아', 방직의 어머니 '황도파', 천하제일 명기 '이사사'등 중국의 길고 복잡한 역사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 오랜 시간 철저한 준비를 했음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이 남겨진 원문을 언급하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유적이나 유물의 사진을 함께 실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역사의 기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어려운 중국 역사나, 지명, 또는 인물명이 나열되어도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당시의 사건이라던가, 연관되는 중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기만 하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한 설명에 중국 역사에 대한 지루함보다는 역사 속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전혀 다른 시대의 여성들도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내주었고, 새로운 문물이나 학문에 앞장서는 이가 분명 있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자, 또는 가장 힘이 센 남성이기 때문에 수많은 여인들은 기록에 남겨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서 단 한 줄이라도 그들의 기록이 남겨졌다는 것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고 싶어진다.

어떤 이는 후세에 길이 언급되는 덕 있는 여인으로 칭송될 테고, 또 어떤 이는 한 나라와 나라의 왕족을 몰살시키는 사악한 여인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긍정적이던 그렇지 않던 그들인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대단한 일이다.

 

<중국 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을 통해 존재조차 몰랐던 여성들을 기억하게 되고, 역사적 사건을 알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중국의 역사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또는 역사 속에 숨겨진 여인사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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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5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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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의 시작이 곧 다가옵니다.

5월은 그 어감만으로도 푸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샘터 5월호에는 눈부신 푸름과 따사로운 5월의 햇살을 느껴볼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5월의 특집은 <미숙한 이들의 합창>입니다.

몇 년 전 모 프로그램에서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준 예능이 있었습니다.

각기의 삶도 다르고, 각각의 주장도 다른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고운 화음으로 완벽하게 맞춰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을 겁니다.

<미숙한 이들의 합창>은 제목에서 말하듯이 나의 부족함을 메꾸어주는 또 다른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찍 초등학교를 중퇴한 친구를 위해 검정고시 학원의 1년 수강증을 선물로 챙겨준 친구의 이야기. 불이 난 친구의 집에 가서 마음을 전한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나, 봉사활동으로 세상의 따뜻함을 베풀어준 고등학생과 그 아이들을 이끌어준 선생님의 사연을 들으면서 잠시 우리의 작은 힘을 잊었던 때를 다시 새겨보게 됩니다.

내 힘을 작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하나의 힘을 보태는 것이 얼마나 큰 따뜻함을 베풀 수 있는지, 5월의 특집을 통해서 실천해보는 계기를 가져보려고 합니다.

 

5월호에는 특별히 샘터상에 선정된 작품이 실렸습니다.

저도 한번 응모해볼까 하다가 말았던 글 대회이죠. 선정 작품 중에서 '생활수기 당선작'인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되어>는 정말 대단한 분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요즘은 자기의 아이도 학대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3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정말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사랑으로 가장 멋진 아이들로 키워냈습니다.

본인도 병마와 싸우면서 말이죠.

 

한 달에 한 번 샘터 월간지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정말 보통보다 더 값진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불평불만으로 표현하려는 나의 생활을 조금은 흔들어보게 됩니다.

 

남의 사연들이 그렇습니다.

잠시 눈을 돌려보면 나보다 더 힘들지만 웃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나보다 더 지독한 고민 속에 있지만, 용기와 배짱으로 웃어넘기는 사연도 있습니다.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다져보게 됩니다.

 

그래서 샘터가 좋습니다.

사람이 늘 만족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을 알지만,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고, 좌절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저는 이런 다짐을 샘터에서 많이 느낍니다.

5월의 싱그러움처럼 샘터를 통해서 삶의 싱그러움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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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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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우리는 수업이란 단어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될까?

 

새로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앎의 장소와 시간을 떠올릴 수도 있고, 때론 전혀 이해하지 못함에 힘들어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수업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앎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성취감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한다.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라는 제목만으로는 배움의 깊이에 대해 겸손해지는, 뭐 그런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게 된다.

부제로 붙은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라는 것 역시 무언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거쳐가는, 거기에 보탬을 하자면 그 난관을 극복한 그 무엇, 행하는 사람의 자세, 마음가짐, 긍정, 성취감 등등의 여러 긍정적인 결론을 내심 먼저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대적인 결론 때문에, 기대감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서의 산만함이 거슬리는 편이다. 

난해하다고 하기에는 가벼운, 무엇인가 무척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지만, 귀에 담아지는 것이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저자는 어릴 적 신체의 약함에 강함을 주기 위해(또는 변화를 주기 위해) 합기도를 시작했고, 상당히 오랜 수련기간을 가져왔다.

수련을 하면서 얻게 되는 명상적인 내용이라던지,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되는 육체와 정신의 가다 듦 등을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겠지만, 너무 많은 사례와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 글, 그리고 때론 과학적인 견해에 반하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떤 줄기를 잡고 읽어야 할 것인가... 독서 내내 그것이 궁금하다.

 

다행히도 책의 마무리에 저자는 책의 구성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없었다면 당최 무슨 내용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히려 독자인 내가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합기도 전문지에 2년간 연재했던 내용과 불교계 잡지의 특집에 기고한 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신교 신앙과 무도 수입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 쓴 기고문에 쓴 것이라고 한다.

글쎄...

물론 저자가 직접 경험을 하거나 자신의 깊은 신앙심이나 주관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좋다.

하지만 독자가 이 책을 선택하고, 그 독자에게 들려줄 말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정리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읽기 쉬운 책이 좋은 책이라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라는 책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저자가 말한 강한 정신, 건강한 신체 등등에 대한 이야기나 배움에 대한 자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쯤은 짚어볼 수 있지만, 작가의 표현처럼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책을 펼쳐보라고 하지만 그렇게는 손이 안 가는 책이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내용 중에 밑줄을 긋고 한 번쯤 기억할 만한 내용도 분명 있다.

하지만 독서를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모습만으로 비친다.

 

꼼꼼하게 읽어보려고 했지만, 산만해져서 읽기 힘든 책..

이 책의 결론을 이렇게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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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담은 글씨 -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캘리그라피 책, 박병철의 멋글씨 가이드북
박병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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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글씨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할 때가 있다.

예전만 해도 반듯한 글쓰기 수업은 반드시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의 글씨체를 보면 참... 민망할 때가 간혹 있다.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직접 글씨를 쓴다는 것은 드문 경우가 많다. 간혹 축하 카드나 청첩장의 인사말 정도라도 자필로 쓰인 것을 받을 때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더해지는 경험도 있다.

이만큼 글씨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가볍게 그 사람의 그냥 쓰는 습관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써나가면서 익힌 습관을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글씨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손글씨를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캘리그라피'라는 단어에 무척 많은 호기심이 생긴다.

관련된 학원도 생기고, 인강도 생기고, 해당되는 재료를 사고파는 곳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거보니 또 하나의 유행인가 보다 싶다.

'캘리그라피'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서예(書藝)가 영어로 캘리그라피 또는 캘리그래피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원래 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 레터링 기술을 뜻합니다.

calligraphy에서 calli는 미(美)를 뜻하며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캘리그라피를 제대로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캘리그라피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뜻, 내용, 모양, 소리, 동작 등을 멋스럽고

아름다운 글꼴로 표현하는 것'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으로 유명한 박병철 작가가 <마음 담은 글씨> 서론에 언급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 '캘리그라피'를 '멋글씨'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2012년 국립국어원에서 캘리그라피의 순화어로 선정하여 발표한 것이다.

이젠 우리의 멋글씨를 찾아, 우리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딱 맞는 이미지인듯하다.

 

이젠 '캘리그라피'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는 잘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렇다. 독자들은 <마음 담은 글씨>라는 제목의 의미를 조금을 이해하고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글씨라는 것이 정갈하고 반듯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물론 바른 글씨, 정갈한 글씨가 그 사람의 인성을 품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이젠 글씨 속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평범하면서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그런 안목을 지니면 어떨까?

 

서예는 붓을 주로 이용한다. POP 역시 전용 붓과 펜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멋글씨는 사용하는 도구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 나뭇가지, 나무젓가락, 망가진 붓, 때론 면봉이나 구겨진 종이로도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

도구에 따라 표현되는 글씨의 맛이 다르다.

때론 거칠게 표현되기도 하고, 때론 퍼지는 느낌의 부드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감정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글씨 역시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는 글씨에 많은 것을 담아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씨를 마음으로 표현한 작가의 생각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질문을 던지고 <마음 담은 글씨>를 읽어가는 동안, 우리가 글씨에 마음을 담는다는 의미가 참 따습고, 달달한 느낌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나는 손글씨 쓰기를 좋아한다. 내 글씨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유행에 '캘리그라피' '멋글씨'라는 것을 따로 습득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나의 머리에서, 나의 가슴에서 나온 나의 표현의 하나인 것처럼, 멋글씨 또한 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책 제목처럼 마음을 담은 글씨를 또박또박 써가는 것이 나만의 멋진 멋글씨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가끔 다가오는 가족과 지인들의 생일에는 나의 멋진 멋글씨를 선물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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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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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에 대한 가장 큰 표현은 저항 시인, 순수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윤동주'의 삶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에 태어났고, '윤동주'가 사춘기가 되어 세상의 어두움을 온몸과 온 정신으로 받아온 삶을 살죠.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시절을 모르는 후손의 입장에서 '윤동주' 시인이 저항을 했다는 것에 대해 궁금함이 있곤 합니다.

 

저항이라 하면 좀 거친 느낌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을 저항 시인이라고 부리기보다는 순수 시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분명 '윤동주' 시인은 저항 시인입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그가 보냈던 평범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저항 방법을 알아가게 됩니다.

 

<시인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 그리고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벗을 그리는 듯한 소설입니다.

또 다른 느낌이라면 우리가 필히 겪어가는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아픔으로 인한 애국에 대한 심정을 독자들도 깊이 공감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우리가 기억하는 시어처럼 부드러운 말씨는 아니었을 겁니다.

때론 북간도의 사투리도 말했겠지요.

어쩌면 '윤동주' 시인은 어떠어떠한 성향이더라... 모습이더라...라는 이미지는 후손이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것이겠지요.

 

<시인 동주>는 이러한 기존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인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인간 '윤동주', 청춘의 '윤동주', 그리고 격정의 시대에서 자신의 주관을 묵묵히 해나갔던 깊이 있는 '윤동주'를 만나게 됩니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선대의 문학가들이 남겨놓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해하기 쉽게만 해석을 하곤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이런 날>이라는 시입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던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한 학과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 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한 형을

부르고 싶다.

 

_1936. 6. 10

 

이 시를 보면 곁에 없는 형을 그리워하는 아우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시를 느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시를 남기게 된 이유를 독자는 읽어보게 됩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완고함보다는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소설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공부를 하러 오는 것도, 후에 일본의 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틈틈이 습작으로 시를 남기는 것도 자신의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겁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꾸준히 이어졌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그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물론 그가 직접적인 행동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신과 조선의 감성, 그리고 조선의 글로 항일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가 생전에 남기려고 했던 작품집에 서문으로 대신하려던 것이 바로 이 시... 서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1941. 11. 20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후손들도 이 서시를 늘 떠올립니다.

좌절하는 시간이 있거나. 자존감이 흔들릴 때 이 시를 읊어봅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기 위해 괴로움을 토해낼 줄 아는 그런 본성을 지니라는 여고시절 선생님의 말도 떠오릅니다.

 

<소설 동주>는 인간 '윤동주'에 대한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암흑의 시간을 '윤동주'라는 색깔로 바꿔가는 삶을 후대에게 남겼습니다.

비록 그 시절의 '윤동주'에게 지금의 존경함이 전해지겠습니까만, 그런 사람이 그 시절에 이렇게 조국의 한 켠에서 버티고 있었다더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의 별을 찾아봅니다.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별빛을 찾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만, 그래도 어렴풋이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는 별을 찾아냈습니다.

'윤동주'의 존재가 그러한 것 아닐까요?

 

<소설 동주>를 통해서 별을 떠올리고, '윤동주'를 떠올리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간직했을 뜨거움과 순수함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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