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 2016 영광군민 한책읽기운동 선정도서 선정, 아침독서 선정, 2013 경남독서한마당 선정 바람그림책 6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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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잘 모르는 얘기인데,

난 한때 첼로를 했었다.

아니, 잠깐 첼로를 만졌었다.

아니, 그보다... 하고 싶어 했었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대학 신입생 때 우연히 듣게 된 미샤 마이스키에 홀딱 빠져서,

어느날 그때 돈으로 거금 10만원을 주고 연습용 첼로를 사서는

혼자 '낑낑'거리고 '끙끙'거리고 '앵앵~♬'거리다가 끼고 잠들기를 여러날,

드디어 소리가 나와주셨고(어렸을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조금씩 했었다.)

하늘이 주신 천부적인 자질을 그냥 썪힐 수 없어 전공을 첼로로 바꿔야 하는게 아닌가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ㅋ~.

남동생이 계획에도 없던 작곡과에 대학 원서를 써서 걔네 학교와 온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바람에...

한 10개월을 혼자 '낑낑'거리고 '끙끙'거리고 '앵앵~♬'거리던 첼로를, 접었다.

 

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의 추억에 연연하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현실에 대략 만족하고 안주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희망사항 되시겠음~--;)

고작 마흔 몇 해를 살아온 인생이고,

첼로를 했던 건 고작 10개월이기 때문에,

돌이켜 감상에 젖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끼치긴 했나 보다.

그때 그렇게 잘라냈거나 가라앉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걸 보면 말이다~--;

 

친구가 '이세 히데코'의 책 몇권과 함께 <천개의 바람, 천개의 첼로>를 '참 좋다'면서 선물로 주었던게 한참 전의 일이다.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는게 '인지상정'인데...

추억이라도 들추어낼까 봐 그랬는지,

들추어내면 상처를 헤집게 될까 봐 그랬는지,

상처를 헤집어 통증을 들쑤셔낼거라고 생각해서 였는지,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 마냥,

책이 칼이라도 되는양 지레 겁먹고 한쪽으로 치워놨었다.

그런데, 이 책은 상처를 헤집는 책이 아니라...치유, 힐링이 되는 책이었다.

세상에, 책이...또, 그림이 힐링이 될 수 있다니 좀 놀라웠다.

 

'이세 히데코'는 좀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화가 겸 그림책 작가이다.

1949년 홋가이도 출신으로 그니의 남편은 르포라이터란다.

증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해서 첼로를 배웠웠고,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에서 1년간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재원(才媛)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니는 서른 여덟 살때 눈병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는다.

열세 살때 첼로를 배우고,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로라면,

집안이 어렵거나 제때 손을 못써 눈병을 고치지 못했을리는 없을텐데 말이다.

오른쪽 시력을 잃은 것이, 그니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물을 보는 것은 어쩜, 눈이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첼로의 음을 읽어내고 연주하는 것 또한 어쩜, 눈이 아니고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는게 다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거니까,

아니,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온몸으로 통과해 내야...

그려낼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요즘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대세다.

자기치유, 자체치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은 '아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따위의 말들은 동병상련의 위로는 될지언정, 처방이나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의 개념은 아니다.

 

자신이 아파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자신이 직접 겪고, 온몸으로 통과해 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단순히 백과사전에 나오는 지식의 나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니의 책이, 그림과 글이 힐링(healing)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니가 온몸으로 직접 겪고, 온몸으로 직접 통과해 낸 알음 앎의 과정을 담담히 담아내고 표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아이는 내가 연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곡을 술술 켰다.

힘이 넘쳤지만, 왠지 화를 내는 것 같은 연주였다.

 

"네 첼로 소리는 꼭 강아지 소리 같더라. 앙앙거리는 게."

이런 문장은 어찌보면 쉽게 쓰여진것 같지만,

직접 첼로를 켜보지 않고는,

이렇게 첼로에 감정을 이입하는 첼로 연주자의 감정을 읽어내는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혼자 열심히 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웃으며 옆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느끼면서 연주하면 돼."

 

 

위 문단은 <천개의 바람, 천개의 첼로>라는 이 책 속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전반에 대입시킬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치유', '자체 치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힐링(healing)'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지하게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수도 없고, 맞추어 나가기도 힘들다.

 

다시말해, 내가 아파봐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내 눈이 보이지 않아 봐야,

눈 이외의 다른 감각들을 일깨워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느끼고, 그려 내고,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감정들을 통하여 우리가 한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삶 또는 자연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듯,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겪어내고 통과해 나가는 수밖에~--;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말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에게 이 책을 권해준 친구는,

나름 아프거나 고통 받아봤을테고...

아마도 이 책을 통하여 치유, 힐링(healing)을 경험하였나 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건...

내 슬픔이나 아픔 또는 고통을 자기 등에 나눠 함께 짊어져 주려는 그 '마음'이다. 

지휘봉이 움직이고, 조용한 공연장에 천 개의 첼로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진다.

노래하는 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 서로 합쳐지는 소리들, 빠르게, 느리게, 부드럽게, 힘차게,

앞으로 나왔다가 뒤에서 받쳐준다. 사람들이 온몸으로 귀를 기울인다. 천 명이 첼로를 켠다.

다가왔다가 물러가는 파도 같은 첼로의 활, 바람이 되어 스치고 지나가는 첼로 소리ㆍㆍㆍㆍㆍㆍ.

치유, 힐링(healing)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였을 때 의미가 있다.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지의 여부는 본인의 경험의 내재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이 현실을 외면하게 하거나 현실의 도피처라면 '자기계발'이라는 허울 좋은 독이 될 수도 있다. 힐링(healing)의 자리에 '책' 또는 '친구'를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은 단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 행위만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마냥 상대방을 통하여, 나의 현실 또는 현위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투영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겠다.

 

 

 

중언부언, 말이 길었다.

참 좋다.

참 좋은데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일독을 권할 밖에...~--;

 

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오후내내 전화기를 붙잡고 수소문을 한 끝에,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몇 다리 건너 건너 전해 듣게 되었다.

어찌 어찌 전화번호를 따서,

왜 그렇게 되도록 연락이 없었냐고 다그치자 이 친구 한다는 말이...

내가 편한 친구가 아니라, 이쁜 것만을 보이고 싶은 친구란다.

옆에서 전화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리 아들이 툭 한마디 던진다.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네. 우린 그런 사이를 경쟁자라고 불러, ㅋ~."

나는 지금 그 친구가 몹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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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1-12 23:48   좋아요 0 | URL
글 참 아련하고, 달콤 쌉싸름하고, 아프고 끝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네요.
이 책 저자와 출판사는 양철님께 고마워해야할듯. 쫀득쫀득한 호기심을 발라놓는 글, 즐감합니다.^^*

마녀고양이 2013-01-13 11:59   좋아요 0 | URL
와, 아들의 통찰력으로 인해 댓글을 달게 되네...
그러게, 예쁜 것만 보이고 싶은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경쟁자라고 생각되는걸.
하지만 궁금하여 오후 내내 전화기 수소문을 한 그대는 참 예쁜 사람이네요, 나는 그렇게 못하는 걸. ㅠㅠ

힐링이라... 그냥 뜻 말고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참 예쁘지 않아?
부드러우면서도 H의 칼칼함이랄까 단아함이랄까 상쾌함이랄까, 난 이 단어 자체가 참 예쁘더라.

같은하늘 2013-01-17 01:25   좋아요 0 | URL
이 책 찜하고 선물은 해봤지만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니 다시 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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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을 흔히 '취미'라고 한단다.

지난 며칠동안, 아들과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자사고에 다니는 울 아드님께서 사상 초유의 성적표를 받아온게 발단이 되었다.

난 모든 엄마가 그렇듯,

공부에 관한 잔소리를 조금, 아주 조금 늘어놓았을 뿐이고...

울 아들은 공부가 재미없으니 다른걸 하고 싶으시다는 거다.

그 과정에서 울 아들은 밥 몇끼 굶는게 낫지,

평생을 재미없는걸 하면서 불행하게 사는게 낫겠냐며 날 설득하는데...헐~--;

'엄마, 아빠가 너 밥을 안 굶겨봐서 니가 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

는 소리가 입밖으로 돌출하려는 걸 맨밥을 삼키듯 꾹꾹 눌러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울 아들이 하겠다는 공부 아닌 다른 것이...

어느 특정한 한가지도 아니거니와,

그 중 어느 것도 밥을 벌어먹을 만큼 특출난 것이 없다.

 

아들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때...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난, 그저 공부를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잔소리를 할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난 변변히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독서 밖에 없다.

마흔이 넘은 인생을 돌이켜볼때,

그나마 땀과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던 건 '공부'가 있겠는데...

그렇다고 공부가 취미라고 할 수는 없는거고 말이다.

(어째 내가 생각해도 얘기가 점점 밥맛으로 흘러가고 있다~--;)

 

요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발달로 주변을 보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취미들을 갖고 자기계발을 하고,

그 과정을 블로그나 카카오 스토리 따위에 소상히 밝혀놓기도 하곤 하던데,

운동이나 여행, 맛집 탐방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몹시 부러울 따름이지만,

난 그야말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는건 딱 질색인 저질체력되시겠다.

그래서 여행은 이렇게 여행기로 만족하고,

맛집탐방은 집에서 레시피를 보고 흉내를 내서 해먹는 걸로 대만족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여행기와 맛집탐방기 따위로 대리 만족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행과 맛집이라는 책의 필요조건 말고 한가지 더 고려하게 되는게 있는데,

그게 소위 '글발'이라고 하는 '글의 맛과 멋' 되시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훈, 신경숙, 은희경, 박찬일, 이적,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박칼린, 장기하에 이르기까지

검증된 '글발'의 집합소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제품사양서 마냥 빵빵하고 폼나는 사진과 지도, 그 밖의 자료들을...

감정이입 없이 빽빽하게 실어놓은 책을 만나게 될 경우가 있다.

그런 책은 지도를 읽지 못하는 내게 지도가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읽어도 전혀 재미있거나 즐겁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암튼, '여행이 그다지~--;'인 내가 이상한 것인지,

열 명의 사람들은 마음을 빵빵한 이스트 불리듯 불려가며...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

추억을 찾기 위해,

이미지를 찾기 위해,

휴양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등등 여행의 변을 늘어놓는다.

 

나의 '여행이 그다지~--;'인 것과 가장 근접한 구실을 찾는다면,

얼마전 읽은 이다혜의 '책읽기 좋은 날'에서 만난 이런 구절이다.

그녀는 서경식과 타와다 요오꼬 사이에 편지 글로 오고간<경계에서 춤추다>를 읽고 이런 생각을 남겼었다.

이름이 보통명사와 다른 점은 시간이 지면서서 의미를 잊게 된다는 사실이다. 설령 의미를 알고 있더라도 쓰면서 의미를 잊게 된다. 그게 좋은 것이다. 여행은 자신을 붙잡아 두고 있는 일상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름을 말해야 하고, 신분증명을 요구당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행이라는 것 역시, 자신을 재정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다혜의 '책읽기좋은날'181쪽)

자신을 붙잡아 두고 있는 일상으로부터 일시적으로라도 해방 되기를 바라고 계획한 여행인데...

잘못하면 안 되는 언어로 끊임없이 이름을 말해야 하고, 신분증명을 요구받고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놓여나는 게 아니라,

잘못하면 자신의 존재의미를 되묻고, 자신을 재정의해야 하는 '자기 증명'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일상으로부터 일시적으로라도 해방되기 위해서 나는 '여행'이 아니고 '쉼'을 택하고 볼 일이다, ㅋ~.

 

암튼, 책을 다 읽은 후...여행의 결과물을 놓고 봤을때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이병률이었다.

박찬일 세프는 내가 닮고 싶은 형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의 솜씨가 그렇고 그의 지적인 사고의 기럭지가 그렇고 그의 부러 탈색시킨 듯한 내면의 다면이 매력인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6쪽, 이병률)

나야말로 여행에서 '사람' 하나쯤 얻어가질 수 있다면...아무리 힘들고 녹초로 만들어 놓는 여행이라도 불사하겠다.

게다가 그가 박찬일 쉐프로부터 닮고 싶다는 것이 발가락도 아니고,

지적인 사고의 기럭지와 일부러 탈색시킨 듯한 매력있는 내면의 다면이라고 하니 말이다.

흔히 생김새와 성질을 닮는다고 하는데, 그리하여 '지적인 사고의 기럭지'라는 생김새와 '매력있는 내면의 다면'이라는 성질을  만들어준 그의 언어유희도 눈여겨봐둘만 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은희경'이다.

난 (포도밭을 지나도 그리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밀밭만 지나도 취하는 타입이니,

그니의 여행이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한 답사라는 고고스한 것이여서...는 아닐테고 말이다.

술의 맛을 만드는 조건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 술을 마시는 순간 내가 붙잡은 시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전 조금 친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힘든 사랑 때문에 붉은 와인에서 죽음의 달콤한 맛을 느꼈듯이. 그리고 내가 서늘하고 향기로운 화이트 와인의 맛에 오래 떠나 있던 집을 떠올렸듯이, 밤의 비행기 불빛을 그리움 속에 가만히 바라보았듯이.(16쪽, 은희경)

'술'이란 단어를, '여행'이나 '추억'으로 바꾸어도 좋겠다.

그리고 햇살...

(술꾼이 아니라서, 술의 참맛을 모르는) 난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포도의 당도라고 생각하는 고로,

햇살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고,

햇살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포도의 당도 뿐만 아니라, 여행과 추억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꿈같은 여행과 추억은 그래서, 꿀 같은 여행과 추억과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ㅋ~.

나는 야생 새들에게 먹이를 줄 때 신기하긴 했지만 그들이 사는 이끼 낀 나무 사이를 걷는 게 더 좋았다. 삽으로 석탄을 부으며 움직이는 기차 체험도 재미있었지만 그 기차를 타고 달릴 때 숲의 햇살이 더 좋았다.ㆍㆍㆍㆍㆍㆍ벽난로 위의 선반에 여러 대에 걸친 가족사진 액자가 겹쳐 놓여 있었다.ㆍㆍㆍㆍㆍㆍ어쩐지 마음이 애틋해지는 사진이었다. 인연을 맺는다는 것, 관계를 지속하고 또 넓혀가는 것, 마음을 나누는 것,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33쪽.은희경)

그래서인지 나도,

여행을 할때 야생 새들에게 먹이 주기나 석탄으로 움직이는 기차에 석탄을 부어주는 등 독특한 체험을 하는 것보다는,

나무 사이의 산책이나 기차 차창으로 느껴지는 햇살바라기 등 어디에서나 넉넉하고 고르게 누릴 수 있는 그런 것들 사이에서...

문득 사는게 고마워지는 걸 느끼게 되고 뭉클해지는 게 더 좋다.

다시 말해, 여행에서 고마움을 느끼게 될때는 특이한 경험이나 독특한 체험, 멋진 장관 등을 봤을 때가 아니라...

내가 일상을 떠올리고 생각나는 그런 순간,

지지고 볶고...그러고 평범하게 사는 게 문득 고마워지는 그런 순간, 들이다.

게다가 여행하는 동안 사진도 찍지 않고 메모도 하지 않는다. 여행의 기록은 몸 속에 새겨지는 것이므로 그 시간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록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소문난 장소와 유명한 코스를 답습하기만 하는 여행은 마치 필기한 노트처럼 잃어버리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 발견하고 즐겨야 내 것이 되지 않을까.(38쪽.은희경)

여행에서 처음하게 되는 특이한 경험이나 독특한 체험은 놀랍고 생소하기는 하지만,

습관이나 버릇을 몸이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필기한 노트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직접 체화하여 내 것으로 만들었을때 의미가 있다.

 

아래 문장 같은 경우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니가 햇살이, 또는 바람이 되어 대지의 등에 올라타 본 후에만 나올 수 있는 그런 문장이니까 말이다.

그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등뒤의 벽에는 책장에 꽂힌 책들처럼 벽을 가득 채운 와인들이 꽃혀 있고. 겨울 와이너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른한 평화와 달콤한 탈선의 의식이랄까. 잠깐 와인 잔을 들고 나가 맨발로 풀밭을 밟아보았다. 내가 밟고 선 땅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스쳐갔고, 그러자 대지의 등에 올라탄 듯 잠깐 몸이 흔들렸다.

 

와인 투어를 진행했던 와이너리의 매니저에게 물었다. 겨울에 와이너리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대답은 간단했다.

 

 - 포도 밭을 가만히 놔둡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죠.(41쪽)

 

이어지는 와이너리 매니저의 선문답도 그렇고,

이어지는 다음 문장들도 그렇다.

똑같은 와인이 담긴 병이라고 해도 와인은 마시는 순서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기분의 높낮이에 따라 맛이 다르다. 살아 있는 술이기 때문이다. (45쪽)

 

 

 

 

여행에서 평범한 일상을 떠올리고, 우리의 삶이란 것 또한 그렇게 평범한 하루 하루가 모여서 되는거라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난 '이명세'의 여행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ㆍㆍㆍㆍㆍㆍ그러나 퍼즐이란 무엇인가?

 다 제자리에 들어가야 비로소 하나의 장면,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있는 그대로 대상을 사랑하기다. 있는 그대로 사랑할 뿐이다. 가끔은 다가가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조급증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상은 모습을 감추거나 거리를 둔다. 그럴 때면 너무 원망스러워 대상에서 등을 돌리거나 대상을 향해 소리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용없고 부질없는 짓임을 경함을 통해 뼛속 깊숙이 알고 있다. 결론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다.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처음부터 기다리는 대상이다. 그저 사랑하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 그것이 전부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래서 언젠가 대상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를 받아들여줄 때 나는 그때 대상이 갖고 있던 본래의 이미지를 만난다. 하여 이미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T.S.엘리엣의 시론에서 말하는 '당구알을 그리기 위해서는 당구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결정되기 전 이미지란 환영幻影과 같다. 하여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부수기 위한 대상이다. 지우기 위한 대상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내 기억 속에 자리잡은 풍경을 부수고, 지워야만 지금 그대로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남이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나에 의해서 규정된 것들을 몽땅 버리고 말 그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59~60쪽, 이명세)

이병률은 또 어떤가?

'바로 내가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사람이 한말에서 그런 선물같은 문장을 끄집어내는 그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ㆍㆍㆍㆍㆍㆍ그럼 남편에게는 어떤 선물을 준비했냐고 묻자 더 파랗게 눈을 빛내며 대답한다.

"남편한테 선물을 왜 해요? 내가 바로 선물이죠."

뭐, 그러면 됐다. 그 사랑 한번 믿음직스럽다.

ㆍㆍㆍㆍㆍㆍ지휘를 맡은 안나에게 '이번 대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냐'고 묻자, 다른 달도 아닌 이 12월에 이렇게 모여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고마운 일 아니냐고 한다. 맞다, 휙.(Huick. 많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에스토니아 말) 이 12월에는 뭐라도 해야 한다. 피가 돌게 마른 감정이라도 연소해야 한다.(96쪽)

 

쉰살 화가인 알렉산드르 사브첸코프를 만난 일은 조금 농담 같다. 도미니크 수도원의 기도실이라고 알려진 지하방을 찾았을 때 놀란 것은 동굴 같은 공간에 가득 채워진 그림들 때문이었고, 또 한번 놀란 것은 그 그림들은 그림의 숫자만큼이나 각자 다른 화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그림들 모두 단 한사람 알렉산드르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ㆍㆍㆍㆍㆍㆍ

"이 겅간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영적인 보살핌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왠지 그런 느낌들을 문득문득 받고 있을 것 같아 묻는 겁니다."

나의 물음을 살짝 비껴 그가 말한다.

"신은 항상 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노력하고 바라는 이에게 영감도 주죠. 영감이란 건 무의식적으로 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주지는 않아요. 메마른 땅에 아무나 데려다놓았을때 그 사람이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난 장미를 그린 그림 한 점을 산다. 배낭에 넣어다니면 이 12월이 춥지 않겠다. 헤어지는 길에 그가 나뭇가지 하나를 내민다. 정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가끔 이런 모양의 가지를 떨어뜨린다면서 건넨다. 가지와 가지가 만나 서로 혈관을 나누고 십자가 모양을 이루면 아침 정원 바닥에 무심히 떨어진다고 한다. 십자가 모양의 나뭇가지. 그가 기도를 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그의 기도는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한다. 수많은 이들이 기도실을 찾느라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리면서 귀찮게 해도 그가 그것을 등질 수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이 분명하므로. (100~101쪽)

 

신은 어느 곳에 있고 공평하다는 말은 어쩜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이라면 영적으로 깨어 있고, 준비하는 자를 편애하실 것 같다, ㅋ~.

암튼 여기서도 느끼는 것은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의 중요성.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 만이,

여행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쯤되면, 내가 그동안 여행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을 한장 한장 읽어나가면서,

여행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던 나는, 김훈의 이 한문장으로 명쾌해졌다.

물고기가 잘피 숲에 모여 살 듯이 그들은 숲속이나 병영의 잔해에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숲에서는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는 있었다. 그들의 가난을 무소유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무소유는 소유가 있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스타일리시한 개념이었다.(181쪽)

어쩜, 김훈의 이 한문장은 수백번 아니 어쩜 수천, 수만번을 지우개로 고치고 다시 쓴 한문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글들도...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는건 딱 질색인 저질체력'이어서라는 구실로...

'여행이 그닥~--;'인 내가 '여행 한번 해볼까~?'라고 변심을 하게 하지는 못하다가, '장기하'에 가서 마음이 움직였다.

 

 세렌디피티. 그것은 혼자 하는 여행이 주는 가장 짜릿한 선물이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여행중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그것이 좋은 일일 경우에는 그 순간이 여행의 절정으로 기억되곤 하는 것이다. 나는 길치라서 어디가 어딘지를 잘 알지 못하지만, 또 길치라서 세렌디피티를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285쪽, 장기하)

장기하와 나 사이엔 아주 큰 공통점이 있었다.

나 또한 길치라서 어디가 어딘지를 잘 알지 못하지만,

또 길치라서 세렌디피티를 자주 마주치기도 할 지 모르니까 말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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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01-11 09:56   좋아요 0 | URL
흐음...... 나는 절대 못 읽을 책이네,
얼마 전에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서 3박4일 해외 여행이라는 책을 읽다가
더 심통이 터져서 던져버렸오. 내가 먹는거 관련 책을 못 읽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나란 사람은 내가 직접 해야 되나봐.............

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여행가고싶다
 
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단어라고 하기에 좀 거시기한 것이 내가 사용하고는 있지만,

(국어사전에 나오거나 인터넷을 찾아 보면 나오는 단어가 아닌 것으로 미루어)

표준어도, 온라인 축약어라고 하는 유행어도 아닌 것을,

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생면 부지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영혼의 빛깔'이 같은 듯 여겨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마냥 반갑다.

 

 

이 책은 'ㅅ'님의 리뷰를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누군지 모르는 저자 이다혜가 궁금하고 기대되도록 맛깔나게 소개해 주셨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씨네21> 기자라는 것과, 예전에 <환타스틱>이라는 잡지의 기자로 일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환타스틱이라고 하면 내가 한때 죽고 못살았던 장르문학을 주로 소개하는 잡지였다. 그래서인지 처음 접하는 글들이었지만, 낯설지않고 착착 달라붙고 감기는 것 같은 것이 그만이었다.

 

고백하자면...

책 뒷표지의 '그저 책을 다 읽고 딴소리를 할 뿐이다' 라고 하는 김중혁의 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짬뽕공 같기도 하고 엉뚱하지만 재치발랄한 마리 앙토와네트와의 대담 같기도 한 것이,

또 다른 날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ㅋ~.

 

제목은 <책 읽기 좋은 날>이지만, 부제는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이어서,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기자도 뭣도 아닌 나 같은 경우에도...딱히 '책읽기 좋은 날'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책이 좋고, 책 냄새가 좋고, 뭔가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지...거기에, 인과관계나 상관관계 따위가 필요한건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에필로그를 읽다가...부제는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은 그녀 특유의 언어구사, 다시 말하면 일종의 반어법 같은 거라는 걸 알겠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재발견하고 싶어서, 모르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어서, 내 작은 방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지하철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취객의 말을 무시하고 싶어서 읽는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다.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그저 좋아서' 읽는다.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사양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하나쯤은 온전히 도락으로 남아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도 당신에게 그렇게 아무런 목적없이 남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이나 DMB와 '다른' 즐거움으로ㆍㆍㆍㆍㆍㆍ.

 

'책읽기 좋은 날'같은 건 없다고 얘기했고, 물론 책을 읽으면서 즐거울 때는 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라는 '랄프 에머슨'의 말을 그녀도 인용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즐거울 때는 나와 독서취향이 겹치는 사람을 만날때이다.

알라딘 서재 이곳에서 때때로 상처 받기도 하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가서 이렇게 맘놓고 책 얘기를 할 수 있겠으며,

독서취향이 제대로 겹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 책을 읽고 각자 다른 감상과 느낌을 얻어가졌다 하더라도...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

다시말해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안테나나 더듬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의 처음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그녀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영혼의 빛깔'이 같다는 둥,

내가 좋아하는 장르문학을 소개하는 잡지 <환타스틱>의 기자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뭔가 통한다는 둥,

해가며 설레발을 쳤지만...

실은 그녀가 이 책에서 소개한 123권의 책들 중 나와 겹치는 건 반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
(일본작가의 작품과 로맨스소설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독서기를 엿보고 있노라니까...

내가 안 읽은 그것들까지 슬금슬금 궁금해지는 것이,

기꺼이 트라이 투(trt to)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제대로 지름신 되시겠다.

 

심지어 완공 전의 공사 현장 사진을 싣고 '미완의 에너지'가 보여주는 매혹을 강조하는 대목도 있다. 그는 또한 예술가로서의 젊음과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여덟 이후로 체중 변화가 없도록 몸 상태에 신경 쓰고 그만큼 치열한 고민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감탄하기에 앞서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다.(37쪽) 

 

'안도다다오'는 나도 몇권인가 읽었는데...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구절이다.

'미완의 에너지'가 보여주는 '매혹'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데...예술가로서의 젊음과 열정을 유지하는 것과 열여덟 이후에 체중 변화가 없도록 체중관리를 하는 것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41년생이라면 지금 일흔이 넘은 나이인데, 열여덟 살 때의 체중을 일흔까지 유지하는 건 내가 보기엔 젊음과 열정이라기 보다 병적이다.

 

차라리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의 이런 말을 인용하는게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리석음, 이기심, 건강은 행복의 세 가지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어리석음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이 있어도 소용없다.

 ㆍㆍㆍㆍㆍㆍ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의 중독자에게 있어 모든 클라이맥스는 동시에 안티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껏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 올린 돌이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밀어올리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 노동이 언젠가는 멈추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가능성을 믿어야만 한다. 믿는 행위에 의미가 있고, 찾는 행위에 진리가 있다. '영원한 가능성'의 단어라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참 산뜻해 보인다는 뜻이다.(106쪽)

'플로베르'를 인용한 뒤에 덧붙이는 그녀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힙합 음악을 구사하는 랩퍼도 아닐진대, 라임(Rhyme)이 느껴진다.ㅋ~.

그러고보니, 어쩜 그녀와 힙합 장르는 정서가 닮은걸까, 아님 근원이 같은걸까?

거짓이 사회의 윤활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 윤활유도 엔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엔진은 바로 정직과 솔직이다.(160쪽)

이건 그녀가 쓴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문장을 골라내는 능력도 힙합적으로 분류하고 싶다.

 

또 다시 책 뒷표지의 김중혁으로 옮아간다.

그는 그녀를 'ㆍㆍㆍㆍㆍㆍ거기에는 상식에 대한 야릇한 반항심이 있고, 주류에 대한 은밀한 조롱이 있다.' 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축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의 처음에서 거창하게 '영혼의 빛깔' 운운했으면서도, 김중혁의 이 문장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아래의 글 때문이다.

소설'밀레니엄'의 남자 주인공을 두고, 이런 글을 쓰고 귀엽다고 하는 그녀를 보면...

그녀만의 독특한 독서 취향과 독서편력을 가히 짐작하고 남겠으며, 어쩜 이상형에 대한 편력도 독특하지 않을까 싶다.

(편력이란 말 속에는 이미 '독특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나 지금 뭐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나~--;)

 ㆍㆍㆍㆍㆍㆍ정의감이 넘쳐흐름. 외모에 대한 상찬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여자들은 그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기꺼이 옷을 벗고 안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같이 잘 것 같았다나. 연상의 유부녀부터 상류층 유부녀, 딸 나이의 여자까지. 이 남자, 매력적이긴 하다. 사건의 핵심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반듯한 정의감, 책임감. 그렇다고는 해도 난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가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거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ㆍㆍㆍㆍㆍㆍ평생 성적으로 분방하게 살지 않은 여자가 "당신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내주었어"라며 안긴다.

 

  스릴러물의 남자 주인공들이 싸움 잘하고 머리 좋은 것으로 부족해 꼭 여러 여자와의 섹스로 우월함을 증명할 때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신감 결핍인 것보다는 차라리 근거 없이 자신만만한 게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아이거 빙벽만큼 대단한,<아이거빙벽>의 남자는 뭐랄까, 차원이 다르다.(164~165쪽)

'밀레니엄'이란 소설이야말로, 특정 장르의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장르에 해당하는 소재, 주제, 양식 등의 특징에 맞춰 쓰인 장르소설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밀레니엄이 밀리언셀러가 된 데에는, 장르소설을 읽는 특정 계층의 독자만이 아니라, 전 계층을 아우르는 뭔가 비밀 무기가 있었을 것이고...그 촘촘한 그물이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다 걸려들었기에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여자들이 빠져드는 매력적인 남자의 기준이 뭔가 말이다.

밀레니엄의 저자 '스티그 라르손'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내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이 책의 저자 '이다혜' 그녀는 '사건의 핵심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반듯한 정의감, 책임감' 따위를 꼽았다.

스릴러물의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들은 '싸움 잘하고 머리 좋은 것으로 부족해 꼭 여러 여자와의 섹스로 우월함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남자의 기준은?

내가 그에게 무언가 배울게 있고,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되시겠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분홍분홍*^^*해 진다.

 

최근에 만난 그런 사람으론 '법륜스님'이 있다.

배울게 있고,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존경할 수 있고, 는 물론이고...

거기다가 묘한 카리스마까지 갖고 계시다.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중)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하나 인용하겠다.

 

같이 살거면 상대를 그냥 날씨나 꽃처럼 생각하세요. 피는 것도 저 알아서 피고, 지는 것도 저 알아서 질 뿐, 도무지 나하고 상관없이 피고 지잖아요.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꽃구경 가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참고로 벚꽃은 1년에 딱 일주일만 핀다는 사실!(278~279쪽)

그런 묘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법륜스님을 이렇게 인용한 이 책의 저자, 그녀 또한 묘하게 매력적이다.

그녀는 법륜스님의 글에 이렇게 느낌표를 찍는다, 헐~(,.)

참고로 벚꽃은 1년에 딱 일주일만 핀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글들이야 말로 '읽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매일 매일 '읽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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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1-06 10:10   좋아요 0 | URL
오늘도 즐겁게 아름다운 책 누리셔요

꿈꾸는섬 2013-01-07 23:3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전 오늘 책 읽기 좋은 밤인데, 오랜만에 서재 나들이 하고 있어요.^^
여전히 좋은 글, 반갑고 좋아요.

하늘바람 2013-01-08 00:5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리뷰는 묶어서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가짜 우울 - 우울 권하는 사회, 일상 의미화 전략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세계보건기구(WHO)의 장애 분류 안에 의하면 장애는 세 개의 차원으로 분류된다. 제1차 장애는 impairment로 신체의 생리학적 결손 내지 손상이다. 제2차 장애는 disability로 제1차 장애(impairment)가 직접, 간접적인 원인이 되어 심리적 문제가 직접 간접적 발생할 경우의 인간적 능력(주체적 행동개념)이 약화 또는 손실된 상태이다. 제3차 장애는 handicap으로 제1차 장애와 제2차 장애가 통합된 형태에 다시 사회 환경적 장애(물리적 장애, 문화적 장애, 사회 심리적 장애)가 통합된 형태로 사회적 불리이다. 즉 모든 장애요인이 중층적으로 통합되어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불리한 입장에 처한 상태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

내가 '네이버 지식백과'까지 인용하면서 장애를 분류하여 정의를 한 것은, 이 책의 제목 '가짜 우울'을 얘기하기 위해서이다.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우울하니 어쩌니 하는 말들을 하고 듣고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우울을 증상이나 병명으로 누구에게 처방 받았냐고 물어보면 하나 같이 이상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이렇게 기분이 꿀꿀하다 못해 슬프기까지한데 우울증이 아니면 뭐겠다고 되묻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우울증을 자가진단하고 있고,

가끔 가다가 한두 명은 의사에게(정확하게 정신과 의사인지는 알 수 없다~--;)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다.

내가 이들을 보면서 느낀 건...집단최면 같은게 걸린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 뿐이었다.

나와 똑같은 의구심을 갖고 고민을 한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급기야 '에릭 메이젤'이란 사람은,

우울증을 두고 '정신장애가 아니라 인간의 슬픔을 두고 잘못 명명한 것'이라며 반기를 들고 나선다.

'에릭 메이젤'이 반기를 든 건,

저 장애 분류의 3가지 방법에 대한 정확한 구별이나 구분 없이, 두루뭉술하게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거슬러 올라가, 우울증이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한 까닭을 유추해볼 수 있을텐데...

장애 분류의 3단계 중 1단계인 'impairment, 신체의 생리학적 결손 내지 손상'조차도 명확히 비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암튼, 이 책은 왜 사람들이 '우울증이란 정신장애'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하고,

제약회사의 막강한 영향력에 힘입어 우울증을 정신장애로 키운 전문가 집단이 있음을 밝히고,

자신이 느끼는 깊은 슬픔이 꼭 우울증은 아니고,

그 깊은 슬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아픈 걸 느낄 수 있고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건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아프고 슬픈 걸 느낄 수 있는 통각중추를 차단해 버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사람이 아프고 슬픈걸 느낄 수 있다는 건,

그게 유쾌하고 불쾌하고...를 떠나서 살아있다는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렇게 따지면, '살아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라는 근원적인 명제에 의문을 제시하게 만드니 차치하기로 하자.)

그것들이 이따금씩 만성적으로 지속된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장애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해서, 알약이나 치료사나 사회복지사나 목회상담사 등 우울증 전문가를 찾게 만든다.

다시말해, 아프고 슬픈걸 '원하지 않는'이란 단어를 '비정상적인'이란 단어로 슬쩍 교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손님의 우울증이 생물학적인 건가요, 심리적인 건가요? 아니면 영적인 것? 실존적인 것? 유전적인 것? 그것도 아니면 호르몬과 관련이 있나요? 만성적인가요? 아니면 태도? 인지 문제? 직장 관련 문제? 애정 문제? 아파트에 사는 쥐 때문인가요?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지나갔기 때문인가요? 뭘 말하는지 알겠죠?(41쪽)

위의 사례는 물론 가상이다.

하지만 위의 사례로 알 수 있는 것은, 원인치료의 탈을 쓰고 있는 대증치료라는 것이다.

저래 놓고는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1대1 맞춤 치료'라는 말을 사용하면, 참 근사~할 것이다, 푸훕~!

어떤 약이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적절한 치료제이기 때문에 복용하는 것과 그 약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복용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중요한 차이가 우울증을 치료하는 세계에서는 보통 흐릿하게 가려진다. 정신건강 산업은 통상적으로 '우리는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하며,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에서 훌쩍 뛰어올라 '이 약품을 복용하시오'에 이른다. 이러한 비약은 당연히 지각 있고 똑똑한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들 역시도 "나에게 생물학적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이 약을 처방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처방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다.(56~57쪽)

예전에 마을을 떠돌던 걸출한 약장사가 있었단다.

걸출하다는 단어에서 어느 정도의 나이를 짐작해도 좋을 그런 사람이었을게다.

대부분의 약장사가 그렇듯, 진시황이 구하려던 불로초부터 시작해서 심봉사도 눈을 뜨고...

별주부전 토끼간, 온갖 파충류 박람회에 출전해도 될만큼의 파충류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약을 선전하고 있었을게다.

장이 파할 무렵 소경인 소년이 슬그머니 오더니, 주섬주섬 전대를 풀어놓으며 돈이 부족한데 그 약을 나눠줄 수 없느냐고 통 사정을 했더란다. 

그랬더니, 이 약장사 曰,

"이게 금전이니,은전이니, 동전이니? 나이가 드니 침침하고 눈이 잘 안보여서 말야...

 그런 약 있으면 내가 먼저 먹어야겠어, 억만금을 준대도 팔 수가 없지..."

정말로 효과가 그만큼 좋고, 그에 비해 부작용도 적거나 없다면...억만금을 벌었을텐데,

앉아서 놀고먹어야할 나이에 장똘뱅이 약장사를 하고 있겠냔 말이다, ㅋ~.

 

아프고 슬픈 걸 덜 느끼거나 잠시 미뤄두는 방법으로 택할 수 있는건 우울증전문가나 우울증치료제 말고도 다른것들이 있다.

 

역으로, 심리치료가 효과가 있는 것은 우울증이라는 정신장애의 치료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가 인간이 경험하는 불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치료해야할 정신장애가 없다면 심리치료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화와 소통'이다.

대화가 사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고 해서, 우울증이라는 정신장애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의 1부는 이렇게 슬픔과 불행이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자연스러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우리 각자에게는 그 불행에 대처할 힘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2부에서는, 우리 내면의 힘과 자유를 발휘해서 불행을 줄이고 진정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분명한 길과 언어를 제시한다.

그 중 한가지가 '의미'이다. 의미를 확고히 하는 법은 책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근데, 나도 이 책의 역자와 마찬가지로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책을 잘못 읽으면 우울증이나 불행이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라고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를 만들어 갈때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할 때도 있다.

때론 우리가 흔히 우울증치료사나 우울증 치료제라고 부르는 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 해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온전한 치료는 스스로의 몫이며, 우리 안에 이미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반성하고 자기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고 꿈을 키우는 것...이 해법이라고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되면 나만 슬프고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내 몫의 슬픔과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느새, 자기연민이 자아존중감으로 바뀌고 자긍심으로 발전하는 걸 느끼게 될 수 있지도 않을까?

불행을 줄여가는 것이, 곧 행복을 늘려가는 것이다...라고 하기엔 엄청난 비약일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생각난 김에 이 노래는 꼭 들어봐야 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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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03 03:57   좋아요 0 | URL
'정신병'이라는 말은 학자집단이 만들었지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지요.
한국말로 하자면 '마음앓이'라고 할 만하다고 싶어요.

마음앓이로 힘든 사람은 '아프'니까,
아주 마땅히,
곁에 있는 살붙이부터 동무와 이웃이
'마음을 기울여 품고 어루만지'면서
'마음에 깃든 아픔을 씻'도록 도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곧, 정신병이라면 제약회사와 병원이 힘을 모아 약장사를 할 테고,
그러니까, 마음앓이라면 살붙이와 이웃이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할 테지요.

프레이야 2013-01-03 12:43   좋아요 0 | URL
자기 안에 문제도 해답도 있다는 말씀, 치유의 힘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잊지 않을게요.
그치만 지난 한 해동안 양철님 덕에 치유도 위로도 받은 사람이 저뿐만이 아닐 걸요.^^
고마워요. 새해 셋째날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곳은 아주 춥다고 들었어요.
기온이 뚝 내려갔다지요. 감기조심하시구요. ~~~
 
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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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장르소설 마니아였다.

(그중에서도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공포 소설, 과학 소설,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이 주 종목이었다.)

지금은 다방면의 책을 두루두루 읽을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때는 노력도 안했을 때여서 지독히 편협한 독서를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난 상상력과 경험이 부족하여,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감동 또는 충격받은 명장면, 명대사가 있더라도...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내거나 묘사하지 못해서...다시 말해 영상화하지 못해 덜 한데,

영화나 드라마 따위로 영상화된 장면이 주는 각인 효과는 치명적이어서,

꼭 꿈에 재현되어 가위눌림을 당하는고로...

장르소설은 두루 섭렵해주시면서도 그게 영화가 되면 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눈감고 귀막아...멀리하려는게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시사문제, 뉴스이다.

혹자들은 보고있으면 화가 나고 울화통이 치밀어서...라고 하던데,

때문에 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 따위는 일찌감치 밥 말아 잡수셨고,

맨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집과 회사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왔다갔다 하면서 지낼 뿐,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 - 시사문제, 뉴스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우리나라 장르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 당근,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작가들은 다 외국 작가들이었고,

그 중에서 마이클 코넬리를 좀더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회범죄를 해리보슈라는 형사를 통하여 현실감있고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리보슈를 들여다 보고 있을라 치면, 또다른 날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것이 낯설지가 않다.

고독하고 외로운 설정이 친근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커피를 외로움 치료제처럼 달고 사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암튼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보슈 시리즈를 그럴 법하게 쓰여진 재미난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던 난,

이 책을 권해준 친구가...자기는 눈물이 나서 눈물을 닦고 마음을 다져먹고 읽느라 힘들었다고 했는데,

나도 감성 충만하고 눈물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장르소설쯤으로 생각하고 읽어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눈물이 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오늘 새해 첫 날, 할 일이 없길래 '타워'라는 영화를 보러갔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속 장면들이 각인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남편과 아들은 뭐 그리 눈물나는 장면이 있었냐고 하는데,

난 영화 속 장면도 장면이지만,

그때까지 글자에 지나지 않았던 '현시창'이 현실이 되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상 복합의 초고층 빌딩 타워스카이에서 벌어지는 얘기이니만큼 부자인 사람들이 나오는 얘기이고,

그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그들만 나오는 게 아닌데도...영화 '현시창'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지는 얘기이지만,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청소 아줌마나,

티격태격하는 요리사들이나,

타워스카이가 직장인 사람들의 삶은 '현시창'그 자체이다.

타워 스카이로 출동하는 소방 대원들도 '현시창'이긴 마찬가지이다.

그곳에 상주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시창'의 삶을 살고있다.

 

그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현시창'의 뜻은 무엇일까?

가수이기도 한 에미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8miles>의 한구절이기도 한데,

Like when you gotta stop living up here and start living down here?

이게 원문이고,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로 번역하였다.

그걸 줄여'꿈높 현시'또는 '현시창'등으로 얘기한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에는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보잘 것 없을 때 자조적으로 쓰인단다.

 

부제가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인데,

'타워'영화를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있고 없고, 는 차치하고라도...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돈 있는 자에게 가서 줄을 서고 아첨을 할 뿐인데, 그걸 위로라고 착각을 하는 거다.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던 것은,

이렇게 저렇게 상처를 열고 헤집어 문제를 제기하려 하기만 할뿐,

그래서 이런 저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 볼거리가 넘쳐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고,

상처를 치유하려...아니 적어도 봉합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전 서울시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여러가지 좋은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정규직일 경우 연령에 제한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정년을 넘긴 나이에 일하고 계시는 청소 노동자들의 경우,

그나마 그 일자리에서도 제외되는 것이 된다.

 

법률이나 명령, 조례, 규칙 따위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들이 사람을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 같은 훌륭한 철학자한테나 통용되는 말이다.

우리는 일개 범인(凡人)일 뿐이다.

법이 악법이라면, 적절하게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

 

영화를 보고 분통을 터뜨린 내가,

이 책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책에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려고는 아니더라도,

해결책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가 덧나고 옹이가 생겨 단단해진 자리를 우리는 '훈장'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가?

 

이 책의 지은이는 '현시창'을 '현실(現)을 직시(視)하라, 그리고 창(槍)을 들라'라고 고쳐 읽는단다.

그리고 '지금(現)' '노래부르며(詩)' '창의적으로(創)'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실은 시궁창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현시창'을 이겨나가는 힘은, 그렇더라...권력이나 명예, 돈 따위는 아니더라.

'현시창'을 이겨나가는 힘은 사랑이더라.

그리고 어차피 할 일, 이왕 할바엔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고 즐기면서 룰루거리고 노래라도 불러가며 할일이다.

 

현실은 집단적으로 우울증이라도 걸려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우울하지만,

우리가 집단 우울증이 걸린다고 하여 시간을 거스를 수도 없고 선거를 다시 치를 수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고 격려하고 위로하여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왜 그런 인디언 속담이 있지 않았던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앞으로 5년이면, 멀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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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02 07:54   좋아요 1 | URL
5년이야 짧아요.
훌쩍 지나가는걸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5년쯤이야
아주 가볍지요.
서로 즐겁게 잘 누려야지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3-01-02 10:11   좋아요 1 | URL
맞아여, ㅋ~.
하루 하루 다르게 커가는 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5년은 눈깜짝할새일지도 몰라여.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셔요~!

감은빛 2013-01-02 13:12   좋아요 1 | URL
장르 소설은 읽지만, 그걸 영상화시키지 못해서 괜찮다니.
그거 좀 많이 신기한데요.
저는 오히려 영화보다 책이 더 상상력을 발동시켜서 더 무섭고, 더 끔찍하던데요.
영화는 되려 여러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영상물 등급제, 카메라 기술의 한계 등등)때문에
덜 무섭고 또 덜 끔찍하더라구요.

양철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3-01-02 20:34   좋아요 1 | URL
저도 지난주에 영화 '타워'를 봤어요. '비싼 등록금' 때문에 성탄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학생 청년이 전광판 뉴스를 통해 엄마가 바로 그 '뉴스의 현장'에 갇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이 턱하니 막히고 눈물이 샘솟더군요.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가끔씩 주위에서 힘들다는 푸념이 들리면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저쪽 '북한 주민들'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린 일제 식민통치 36년, 한국전쟁과 지독한 가난, 거기에 유신독재와 신군부 독재까지도 어쨌든 모두 헤쳐나왔어요. 앞으로 5년이 길게 느껴지는 건 물론 MB정부 5년에 잇따른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러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5년은 금방'이라 여겨요. 문제는 어느 곳, 어느 시대와 어느 순간이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매순간만큼은 늘 다시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거죠. 너무 조급하게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