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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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장르소설 마니아였다.

(그중에서도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공포 소설, 과학 소설,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이 주 종목이었다.)

지금은 다방면의 책을 두루두루 읽을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때는 노력도 안했을 때여서 지독히 편협한 독서를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난 상상력과 경험이 부족하여,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감동 또는 충격받은 명장면, 명대사가 있더라도...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내거나 묘사하지 못해서...다시 말해 영상화하지 못해 덜 한데,

영화나 드라마 따위로 영상화된 장면이 주는 각인 효과는 치명적이어서,

꼭 꿈에 재현되어 가위눌림을 당하는고로...

장르소설은 두루 섭렵해주시면서도 그게 영화가 되면 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눈감고 귀막아...멀리하려는게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시사문제, 뉴스이다.

혹자들은 보고있으면 화가 나고 울화통이 치밀어서...라고 하던데,

때문에 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 따위는 일찌감치 밥 말아 잡수셨고,

맨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집과 회사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왔다갔다 하면서 지낼 뿐,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 - 시사문제, 뉴스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우리나라 장르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 당근,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작가들은 다 외국 작가들이었고,

그 중에서 마이클 코넬리를 좀더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회범죄를 해리보슈라는 형사를 통하여 현실감있고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리보슈를 들여다 보고 있을라 치면, 또다른 날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것이 낯설지가 않다.

고독하고 외로운 설정이 친근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커피를 외로움 치료제처럼 달고 사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암튼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보슈 시리즈를 그럴 법하게 쓰여진 재미난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던 난,

이 책을 권해준 친구가...자기는 눈물이 나서 눈물을 닦고 마음을 다져먹고 읽느라 힘들었다고 했는데,

나도 감성 충만하고 눈물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장르소설쯤으로 생각하고 읽어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눈물이 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오늘 새해 첫 날, 할 일이 없길래 '타워'라는 영화를 보러갔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속 장면들이 각인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남편과 아들은 뭐 그리 눈물나는 장면이 있었냐고 하는데,

난 영화 속 장면도 장면이지만,

그때까지 글자에 지나지 않았던 '현시창'이 현실이 되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상 복합의 초고층 빌딩 타워스카이에서 벌어지는 얘기이니만큼 부자인 사람들이 나오는 얘기이고,

그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그들만 나오는 게 아닌데도...영화 '현시창'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지는 얘기이지만,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청소 아줌마나,

티격태격하는 요리사들이나,

타워스카이가 직장인 사람들의 삶은 '현시창'그 자체이다.

타워 스카이로 출동하는 소방 대원들도 '현시창'이긴 마찬가지이다.

그곳에 상주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시창'의 삶을 살고있다.

 

그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현시창'의 뜻은 무엇일까?

가수이기도 한 에미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8miles>의 한구절이기도 한데,

Like when you gotta stop living up here and start living down here?

이게 원문이고,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로 번역하였다.

그걸 줄여'꿈높 현시'또는 '현시창'등으로 얘기한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에는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보잘 것 없을 때 자조적으로 쓰인단다.

 

부제가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인데,

'타워'영화를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있고 없고, 는 차치하고라도...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돈 있는 자에게 가서 줄을 서고 아첨을 할 뿐인데, 그걸 위로라고 착각을 하는 거다.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던 것은,

이렇게 저렇게 상처를 열고 헤집어 문제를 제기하려 하기만 할뿐,

그래서 이런 저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 볼거리가 넘쳐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고,

상처를 치유하려...아니 적어도 봉합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전 서울시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여러가지 좋은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정규직일 경우 연령에 제한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정년을 넘긴 나이에 일하고 계시는 청소 노동자들의 경우,

그나마 그 일자리에서도 제외되는 것이 된다.

 

법률이나 명령, 조례, 규칙 따위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들이 사람을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 같은 훌륭한 철학자한테나 통용되는 말이다.

우리는 일개 범인(凡人)일 뿐이다.

법이 악법이라면, 적절하게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

 

영화를 보고 분통을 터뜨린 내가,

이 책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책에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려고는 아니더라도,

해결책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가 덧나고 옹이가 생겨 단단해진 자리를 우리는 '훈장'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가?

 

이 책의 지은이는 '현시창'을 '현실(現)을 직시(視)하라, 그리고 창(槍)을 들라'라고 고쳐 읽는단다.

그리고 '지금(現)' '노래부르며(詩)' '창의적으로(創)'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실은 시궁창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현시창'을 이겨나가는 힘은, 그렇더라...권력이나 명예, 돈 따위는 아니더라.

'현시창'을 이겨나가는 힘은 사랑이더라.

그리고 어차피 할 일, 이왕 할바엔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고 즐기면서 룰루거리고 노래라도 불러가며 할일이다.

 

현실은 집단적으로 우울증이라도 걸려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우울하지만,

우리가 집단 우울증이 걸린다고 하여 시간을 거스를 수도 없고 선거를 다시 치를 수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고 격려하고 위로하여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왜 그런 인디언 속담이 있지 않았던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앞으로 5년이면, 멀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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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02 07:54   좋아요 1 | URL
5년이야 짧아요.
훌쩍 지나가는걸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5년쯤이야
아주 가볍지요.
서로 즐겁게 잘 누려야지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3-01-02 10:11   좋아요 1 | URL
맞아여, ㅋ~.
하루 하루 다르게 커가는 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5년은 눈깜짝할새일지도 몰라여.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셔요~!

감은빛 2013-01-02 13:12   좋아요 1 | URL
장르 소설은 읽지만, 그걸 영상화시키지 못해서 괜찮다니.
그거 좀 많이 신기한데요.
저는 오히려 영화보다 책이 더 상상력을 발동시켜서 더 무섭고, 더 끔찍하던데요.
영화는 되려 여러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영상물 등급제, 카메라 기술의 한계 등등)때문에
덜 무섭고 또 덜 끔찍하더라구요.

양철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3-01-02 20:34   좋아요 1 | URL
저도 지난주에 영화 '타워'를 봤어요. '비싼 등록금' 때문에 성탄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학생 청년이 전광판 뉴스를 통해 엄마가 바로 그 '뉴스의 현장'에 갇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이 턱하니 막히고 눈물이 샘솟더군요.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가끔씩 주위에서 힘들다는 푸념이 들리면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저쪽 '북한 주민들'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린 일제 식민통치 36년, 한국전쟁과 지독한 가난, 거기에 유신독재와 신군부 독재까지도 어쨌든 모두 헤쳐나왔어요. 앞으로 5년이 길게 느껴지는 건 물론 MB정부 5년에 잇따른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러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5년은 금방'이라 여겨요. 문제는 어느 곳, 어느 시대와 어느 순간이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매순간만큼은 늘 다시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거죠. 너무 조급하게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