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단어라고 하기에 좀 거시기한 것이 내가 사용하고는 있지만,

(국어사전에 나오거나 인터넷을 찾아 보면 나오는 단어가 아닌 것으로 미루어)

표준어도, 온라인 축약어라고 하는 유행어도 아닌 것을,

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생면 부지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영혼의 빛깔'이 같은 듯 여겨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마냥 반갑다.

 

 

이 책은 'ㅅ'님의 리뷰를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누군지 모르는 저자 이다혜가 궁금하고 기대되도록 맛깔나게 소개해 주셨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씨네21> 기자라는 것과, 예전에 <환타스틱>이라는 잡지의 기자로 일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환타스틱이라고 하면 내가 한때 죽고 못살았던 장르문학을 주로 소개하는 잡지였다. 그래서인지 처음 접하는 글들이었지만, 낯설지않고 착착 달라붙고 감기는 것 같은 것이 그만이었다.

 

고백하자면...

책 뒷표지의 '그저 책을 다 읽고 딴소리를 할 뿐이다' 라고 하는 김중혁의 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짬뽕공 같기도 하고 엉뚱하지만 재치발랄한 마리 앙토와네트와의 대담 같기도 한 것이,

또 다른 날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ㅋ~.

 

제목은 <책 읽기 좋은 날>이지만, 부제는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이어서,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기자도 뭣도 아닌 나 같은 경우에도...딱히 '책읽기 좋은 날'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책이 좋고, 책 냄새가 좋고, 뭔가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지...거기에, 인과관계나 상관관계 따위가 필요한건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에필로그를 읽다가...부제는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은 그녀 특유의 언어구사, 다시 말하면 일종의 반어법 같은 거라는 걸 알겠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재발견하고 싶어서, 모르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어서, 내 작은 방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지하철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취객의 말을 무시하고 싶어서 읽는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다.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그저 좋아서' 읽는다.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사양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하나쯤은 온전히 도락으로 남아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도 당신에게 그렇게 아무런 목적없이 남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이나 DMB와 '다른' 즐거움으로ㆍㆍㆍㆍㆍㆍ.

 

'책읽기 좋은 날'같은 건 없다고 얘기했고, 물론 책을 읽으면서 즐거울 때는 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라는 '랄프 에머슨'의 말을 그녀도 인용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즐거울 때는 나와 독서취향이 겹치는 사람을 만날때이다.

알라딘 서재 이곳에서 때때로 상처 받기도 하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가서 이렇게 맘놓고 책 얘기를 할 수 있겠으며,

독서취향이 제대로 겹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 책을 읽고 각자 다른 감상과 느낌을 얻어가졌다 하더라도...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

다시말해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안테나나 더듬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의 처음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그녀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영혼의 빛깔'이 같다는 둥,

내가 좋아하는 장르문학을 소개하는 잡지 <환타스틱>의 기자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뭔가 통한다는 둥,

해가며 설레발을 쳤지만...

실은 그녀가 이 책에서 소개한 123권의 책들 중 나와 겹치는 건 반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
(일본작가의 작품과 로맨스소설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독서기를 엿보고 있노라니까...

내가 안 읽은 그것들까지 슬금슬금 궁금해지는 것이,

기꺼이 트라이 투(trt to)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제대로 지름신 되시겠다.

 

심지어 완공 전의 공사 현장 사진을 싣고 '미완의 에너지'가 보여주는 매혹을 강조하는 대목도 있다. 그는 또한 예술가로서의 젊음과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여덟 이후로 체중 변화가 없도록 몸 상태에 신경 쓰고 그만큼 치열한 고민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감탄하기에 앞서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다.(37쪽) 

 

'안도다다오'는 나도 몇권인가 읽었는데...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구절이다.

'미완의 에너지'가 보여주는 '매혹'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데...예술가로서의 젊음과 열정을 유지하는 것과 열여덟 이후에 체중 변화가 없도록 체중관리를 하는 것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41년생이라면 지금 일흔이 넘은 나이인데, 열여덟 살 때의 체중을 일흔까지 유지하는 건 내가 보기엔 젊음과 열정이라기 보다 병적이다.

 

차라리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의 이런 말을 인용하는게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리석음, 이기심, 건강은 행복의 세 가지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어리석음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이 있어도 소용없다.

 ㆍㆍㆍㆍㆍㆍ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의 중독자에게 있어 모든 클라이맥스는 동시에 안티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껏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 올린 돌이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밀어올리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 노동이 언젠가는 멈추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가능성을 믿어야만 한다. 믿는 행위에 의미가 있고, 찾는 행위에 진리가 있다. '영원한 가능성'의 단어라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참 산뜻해 보인다는 뜻이다.(106쪽)

'플로베르'를 인용한 뒤에 덧붙이는 그녀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힙합 음악을 구사하는 랩퍼도 아닐진대, 라임(Rhyme)이 느껴진다.ㅋ~.

그러고보니, 어쩜 그녀와 힙합 장르는 정서가 닮은걸까, 아님 근원이 같은걸까?

거짓이 사회의 윤활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 윤활유도 엔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엔진은 바로 정직과 솔직이다.(160쪽)

이건 그녀가 쓴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문장을 골라내는 능력도 힙합적으로 분류하고 싶다.

 

또 다시 책 뒷표지의 김중혁으로 옮아간다.

그는 그녀를 'ㆍㆍㆍㆍㆍㆍ거기에는 상식에 대한 야릇한 반항심이 있고, 주류에 대한 은밀한 조롱이 있다.' 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축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의 처음에서 거창하게 '영혼의 빛깔' 운운했으면서도, 김중혁의 이 문장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아래의 글 때문이다.

소설'밀레니엄'의 남자 주인공을 두고, 이런 글을 쓰고 귀엽다고 하는 그녀를 보면...

그녀만의 독특한 독서 취향과 독서편력을 가히 짐작하고 남겠으며, 어쩜 이상형에 대한 편력도 독특하지 않을까 싶다.

(편력이란 말 속에는 이미 '독특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나 지금 뭐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나~--;)

 ㆍㆍㆍㆍㆍㆍ정의감이 넘쳐흐름. 외모에 대한 상찬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여자들은 그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기꺼이 옷을 벗고 안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같이 잘 것 같았다나. 연상의 유부녀부터 상류층 유부녀, 딸 나이의 여자까지. 이 남자, 매력적이긴 하다. 사건의 핵심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반듯한 정의감, 책임감. 그렇다고는 해도 난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가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거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ㆍㆍㆍㆍㆍㆍ평생 성적으로 분방하게 살지 않은 여자가 "당신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내주었어"라며 안긴다.

 

  스릴러물의 남자 주인공들이 싸움 잘하고 머리 좋은 것으로 부족해 꼭 여러 여자와의 섹스로 우월함을 증명할 때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신감 결핍인 것보다는 차라리 근거 없이 자신만만한 게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아이거 빙벽만큼 대단한,<아이거빙벽>의 남자는 뭐랄까, 차원이 다르다.(164~165쪽)

'밀레니엄'이란 소설이야말로, 특정 장르의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장르에 해당하는 소재, 주제, 양식 등의 특징에 맞춰 쓰인 장르소설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밀레니엄이 밀리언셀러가 된 데에는, 장르소설을 읽는 특정 계층의 독자만이 아니라, 전 계층을 아우르는 뭔가 비밀 무기가 있었을 것이고...그 촘촘한 그물이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다 걸려들었기에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여자들이 빠져드는 매력적인 남자의 기준이 뭔가 말이다.

밀레니엄의 저자 '스티그 라르손'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내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이 책의 저자 '이다혜' 그녀는 '사건의 핵심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반듯한 정의감, 책임감' 따위를 꼽았다.

스릴러물의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들은 '싸움 잘하고 머리 좋은 것으로 부족해 꼭 여러 여자와의 섹스로 우월함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남자의 기준은?

내가 그에게 무언가 배울게 있고,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되시겠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분홍분홍*^^*해 진다.

 

최근에 만난 그런 사람으론 '법륜스님'이 있다.

배울게 있고,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존경할 수 있고, 는 물론이고...

거기다가 묘한 카리스마까지 갖고 계시다.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중)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하나 인용하겠다.

 

같이 살거면 상대를 그냥 날씨나 꽃처럼 생각하세요. 피는 것도 저 알아서 피고, 지는 것도 저 알아서 질 뿐, 도무지 나하고 상관없이 피고 지잖아요.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꽃구경 가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참고로 벚꽃은 1년에 딱 일주일만 핀다는 사실!(278~279쪽)

그런 묘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법륜스님을 이렇게 인용한 이 책의 저자, 그녀 또한 묘하게 매력적이다.

그녀는 법륜스님의 글에 이렇게 느낌표를 찍는다, 헐~(,.)

참고로 벚꽃은 1년에 딱 일주일만 핀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글들이야 말로 '읽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매일 매일 '읽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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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1-06 10:10   좋아요 0 | URL
오늘도 즐겁게 아름다운 책 누리셔요

꿈꾸는섬 2013-01-07 23:3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전 오늘 책 읽기 좋은 밤인데, 오랜만에 서재 나들이 하고 있어요.^^
여전히 좋은 글, 반갑고 좋아요.

하늘바람 2013-01-08 00:5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리뷰는 묶어서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