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9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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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유럽에서 여러 해 살다가 귀국하니 정보를 통제당한 사회에 사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국내 언론에서 생산하는 단타 기사는 의미 없고, 미국 중심인 정보들이 지겨웠다. 르몽드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있다는 소식에 구독을 시작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부하듯 읽었는데, 월간지를 완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정책과 외교와 관련 없는 직업에 점점 익숙해지고, 생활반경보다 사고반경이 더 빨리 줄어들었다. 그 르몽드를 다시 만나는 일은 매번 뭉클하다.

 

불안과 불만이 식욕을 소멸시키는 지금은 어떤 시절이며, 호흡을 몰아 쉬어야하는 갑갑함 속에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할지, 여러모로 저널리즘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른 국가들 어떻게 사는지 9월호는 좀 더 복잡한 기분으로 읽었다.


 

국제사회의 협의체가 변하고, 외교의 룰이 바뀌고 - BRICS 외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공동 이해를 만나니, 기분은 더 답답해진다. 한국사회는 주저 없이 퇴행 중이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망해가는 중이고, 얼마나 더 견디고 언젠가 회복할 지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안들 중에서도 소위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안들이 있는데, 과학기술과 환경이 그렇다. 이 두 분야에 대한 현정부의 인식은 참혹(지나칠 정도로 한심)하다.

 

그래서 한국의 영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착착 진행되는 약탈 준비와 영토와 영해를 지킬 능력도 의지도 전혀 없는 정부를 둔 국민으로서 동해(한국해)/일본해(병기 표기)에 대한 이슈와 독도에 대한 문제 제기(주강현)가 반가웠다.

 

이 문제는 망가진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를 핵종 제거가 아닌 희석으로 투기하겠다는 공공연한 사기 발언과 이에 찬성하고 자국 세금으로 뒤처리까지 해준다는 듣기도 믿기도 괴로운 현 정부의 행태로 이어진다.

 

어떻게 지구의 바다에 이런 짓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그동안 몰래 버리고 감춘 노력이 가상해질 지경이다.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환절기 탓인지, 비가 와서인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손가락 통증이 데인 듯 뜨겁다.


 

피에르 막 오를랑(Pierre Mac Orlan, 1882~1970)의 색과 메시지가 번진 9월호 표지에 울 것 같은 기분을 위로 받는다. 거대한 고통과 비극으로 수렴될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든 대가, 노래할 사회의 환상은 무엇.


 

무능과 무지와 독선이 결합된 한국의 정치와 외교가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사의 풍경으로부터 독자인 나를 한없이 소외시킨다. 남 일처럼 구경하는 것도 한심하고, 엉뚱하게 휘말리지나 말았으면 하는 초라한 기대가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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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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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지난 세월을 가늠하는 일은 어쩐지 조금 덜 서글프다. 손으로 꽉 잡은 종이책의 물성이 위로가 된다. 1993년 나는, 대학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막 전공과목을 배우기 시작한 자연과학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사학과가 읽는 책인가 싶은 제목의 답사기를 운이 좋아 나도 만나게 되었다. 과내 산악동아리 선배들은 돈도 없이 신이 나서 목록을 따라 방학 중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후배들 역시 돈도 없이 선배 따라 떠나는 여행에 설렜다.

 

시작은 그토록 들뜨고 진지했지만, 목표한 문화, 유산, 국토에 대한 공부를 충실하게 하지는 못했다. 어딜 가나 학생들에게 너그러웠던 분들의 배려에 어리광을 부리며, 한껏 민폐를 끼치고 소란스럽게 굴다 먹다 쉬다 돌아왔다.

 

전공을 바꿔 진학한 대학원 시절, 함께 조교일을 하던 문사철 친구들과 두 번째 답사여행을 떠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여전히 놀러가기 위한 지적인 변명과 기회였고 여행의 풍경은 여전히 조금 배우고 많이 노는 시간이었다.

 

졸업 후 문화도 유산도 국토도 언어도 다른 곳으로 유학을 갔고, 책도 답사여행도 잊었다. 귀국 후 취업을 했고 출장과 업무에 바빠서 잠만 자던 오피스텔의 책장 속에는 추억이 된 여행과 문장들이 자리를 지키며 흐려지고 낡아갔다.

 

혼자 떠나거나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한 삶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답사 여행에 모셔보지 못한 조부모님들이 돌아가셨고, 언젠가 함께 여행을 가자는 생각만 하는 사이, 부모님이 날로 쇠약해져갔다.

 

사랑해서 알게 되는 것들엔 경계가 없을 텐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소홀한 이유가 되어버렸다. 기저질환과 고령으로 여행을 반기시지 않는 부모님 앞의 나도 반백()의 머리를 한 반백()이 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최재현 교수가 사경을 헤매느라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입모양만 보고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던 분은 부인 한 분뿐이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풍경 속 그리운 분들이 떠나고, 기후도 식생도 건물도 변했지만, 옛적 사진을 꺼내보는 일보다, 현실의 풍경을 눈에 담고 냄새를 공기를 느끼는 것은 살아 있는 특권이자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본래 화려함에는 으레 번잡스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배롱나무의 청순한 맑은 빛에서는 오히려 정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니 아무리 격조 높은 화가인들 이처럼 맑은 밝고 화사한 색감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부모님께서 가깝고 익숙한 곳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으실지, 낯설고 먼 곳을 더 궁금해 하실지 열심히 캐물어볼 것이다. 약을 다 잘 챙겨서 일단 떠나보자고, 못할 게 뭐냐고 얼얼한 마음으로 졸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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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다 - 전·현직 음료 연구원 & 마케터가 말하는 음료의 역사부터 광고이야기까지
김송이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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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엔 선호하는 음료가 분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음료를 기꺼이 마시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식품업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공저한 최초의 음료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많이 궁금하고 반가웠다.

 

생수역시 음료에 포함된다는 것을 배우는, 편견을 깨는 시작 내용부터 흥미로웠다.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서 마시는 일은 없지만, 관련 이야기는 유익했다.


 

연구원들과 마케터 분들이라서 제공하는 정보가 체계적이고 쉽게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는 가독성이 좋다. 적어도 한국 내에서 판매되는 많은 음료에 대해서 이 책을 숙지하면 기초 전문가 수준에 이를 듯하다.


 

음료의 역사는 어릴 적 특정 음료를 좋아하던 나의 역사와도 연결이 되고, 미각과 함께 하는 기억은 아주 강렬하게 재생된다. 잊고 살았지만, 음료에도 분명 트렌드가 있었다. 입맛이 보수적이라 마시던 것만 마시던 나와는 달리.

 

음료에 관해서 내가 선호하는 기업은 매일유업이다. 사게 되면 매일유업에 해당제품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이익추구의 측면만이 아니라, 팔수록 손해가 되지만, 꼭 필요한 소비자를 위한 제품들을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비건 음료가 필요할 때는 매일유업 제품을 늘 이용한다. 예전처럼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비우고 다시 유리병을 수거하는 시스템은 불가능하겠지만, 나의 소비가 어떤 식으로든 선순환에 보탬이 되길 고심하며 매번 구매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제품들과 상세 내용으로 매일유업이 소개되어 반갑게 읽었다. 선호하는 기업과 제품이라 해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를 배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음료의 역사도 볼 수 있고, 현재 판매 중인 제품들 성분과 제조법 등등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한 책이다. 다 읽고 나서 어릴 적 홀렸던 오렌지색 탄산음료 환타가 생각나는 것이 재밌는 부작용(?)이다.


 

가족력도 있고, 혈당 조절이 중요해진 중년이지만, 어느 날 추억의 음료 중 하나를 마시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그때도 이 책에서 배운 정보들이 기억나면 조금 뿌듯하고 많이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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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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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번역가를 확인하고 의심(?)걱정 없이 반가운 기분이 드는 경우도 있다(느리지만 늘어나는 중). 안톤 허 번역가는 정보라/박상영 작가님 책과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존재감이 남달랐다.


 

! 한국문학번역원 유튜브 토크 영상 검색해 보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번역가의 토크에 그렇게 크게 웃어본 건 처음이었다. ‘번역가란 여러 통상 이미지와 전혀 합치되지 않는, 낯설지만 유쾌한 분이었다. 직접 에세이를 쓰실 거란 생각은 못해서 깜짝 선물처럼 느껴진다.

 

토크 영상을 보며 궁금한 것들이 생겼는데, 그 이야기도 혹 들을 수 있을까 해서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설레며 읽었다. 주말엔 책을 읽지 말고, 몸을 움직이자는 결심을 했는데, 토요일은 넘기고 일요일인 오늘은 결국 참지 못했다.



 

아주 두꺼운 에세이였으면 좋겠단 희망보다는 작은 책이지만, 재밌고 즐거워서, 아른아른 노란색에도 자꾸 웃음이 났다. 겁쟁이고 겁쟁이로 살 거라서, 내 손으로 망치는 인생이 무섭지만, 기회(?)가 온다면 덕분에 주저 없이!

 

번역은 창작이고(예술이고) 번역가는 작가이고, 수입 번역 학문과 문학 등등이 이렇게나 많은 국가에서 번역청 없는 거 수십 년 전부터 이상하고, 그나마 배정된 관련 예산마저 없애는 정권…….

 

급 무력하고 무기력하고 울울해지지만, 그럴 때 다시 책으로 얼른 돌아와 계속 읽으면 또 웃게 된다. 지긋지긋한 주류니 정상이니 유효기간 지난 작동하지 않는 것들 다 치우고, 새로운 가치 사회를 만들어 여러 가지 낯설고 유쾌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실감하며 살고 싶다.


 

하지 말라고 안 했으니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종종 하며, 그래도 무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의지적이고 능동적이라 품위 있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봤다는, 살아가자는 멋진 이야기다.

 

지식은 번역가에게 해로우며, 지식의 해를 최소화하려면 더 많은 지식을 체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을 체득하다 보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죠. 이때 따라오는 회의감과 불안이 좋은 징조인 이유는 무지의 인지를 여러분이 더욱 열심히 번역하게끔 독촉하고 배우는 자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가짜뉴스에 챗gpt가 만드는 가짜뉴스에, 오래되고 강력한 가스라이팅에, 끝없이 갱신되는 프로파간다에 정신이 없지만, 제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 믿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아름다운 번역과 문학의 이야기였다.

 

번역은 단어에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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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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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소개글을 읽고 여름에 읽기 좋은 판타지 소설인가 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역사서를 읽는다고 해도, 모르는 아픔이 더 많다. 1990년대 스리랑카 내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국사회의 상처 깊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아픈 역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작가들이 되살리고 되새기고 위로를 건네듯, 이 책 역시 죽어도 잠들 수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사연을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해 둔 글이다.

 

네가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영원히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 다시 잠드는 것이 차라리 낫다.”

 

등장인물을 먼저 만나고 이름을 대략 외우고 읽기 시작하는 방식이 낯선 역사와 사회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주요인물은 물론, 다른 인물들도 모두 기록하며, 하나의 달이 지는 동안 어렵지 않은 이름들에 점점 익숙해졌다.

 

작품 속 저승의 달도 28일 주기인가 했는데, 아니다. 하루에 하나씩 진다. 더 짧아진 저승에서의 시간이 왠지 더 서글프다. 살아서 못 다한 말들과 일들이 죽기 전까지의 삶의 무게만큼 무거울 텐데.

 

, 죽음, 죄책감, . 어째서 귀일까. 스리랑카에서 듣는다는 건 다른 감각보다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 말리가 으로 갈 수 없는 어쩌면 (첫번째) 이유는 귀에 기록된 삶 때문일까.

 

귀에는 지문처럼 개인의 고유한 무늬가 있어요, 접힌 부분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볼 부분은 과거에 지은 죄를 드러내며, 연골은 죄책감을 숨깁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루 동안 만난 인물들의 면면이 생생하고 다양해서, 전쟁이 얼마나 무작위로 아무나 죽이고 마는지 참담하다. 이런 최악의 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럴 때면 문명이, 성취가, 철학이, 노력이 역겹게 빛을 바래간다.

 

인간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악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힘을 지닌 존재.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치를 떨어야 하는 존재다.”

 

세상의 광기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곱 개의 달이 지고도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천 번의 달 동안 방황하는 이도,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한다. 죽고 나서도 존재의 형태는 달라진다. 생각과 의지가 원한과 억울함이 남긴 힘 같다.

 

빛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어. 악마가 된 사람도 있어. 빛은 망각하게 해. 우리는 절대 망각해서는 안 돼.”

 

눈을 뜰 때마다 꿈이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그러다 악몽 같은 현실을 최대한 피해본다. 그러다보면 잊고도 산다. 문득 생각나면 답답하고 갑갑하고 호흡이 무거우니 다시 잊고도 싶다.

 

빛이 망각하도록 도와준다면, 그게 나쁜 걸까요?”

 

달의 모양과 색감이 모두 같지 않은 일곱 개의 달이 지는 밤이 펼쳐질 것이다. 하룻밤도 현실의 비극을 짐작해보는데 아주 부족하진 않았다. 작가의 모국어를 모름에도 만날 수 있어 번역이 감사한, 아프고 귀한 기록이다.






단 하나의 달, 단 하룻밤을

땀이 배어나는 기분으로 읽었다.

여섯 개의 달, 여섯 밤이 남아 있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전쟁과 폭력

내전이건 외침이건

부상과 죽음과 상실과 망가짐이

뭐가 다를까.

 

종교에도 법에도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데

살인을 멈춘 적이 없는 인류

사필귀정도 신의 상벌도 다 있었으면.

 

크고 푸른 달이 점점 가려지는 매일

하나의 달을 읽어나가야겠다.

6일 후 도착지가 참상의 격전지가 아니기를.

 



 

매일 하나의 달 분량을 읽으며 일독을 마쳤다. 다른 탐정 추리 소설처럼 즐길 수는 없었다. 어째서 스리랑카 현대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이토록 없었는지. 첫 방문한 낯선 곳의 역사를 더듬으며 배워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어서 매혹적이고, 낯설지만은 않은 역사에 슬픔이 덜컹거렸다. ‘억울함은 한국의 전유물이 아니고, 내전과 죽음은 현재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이 분단으로 얼어붙었다면, 스리랑카는 분단 없이 들끓었다. 무려 440년 동안.

 

세계사와 한국가의 현대사와 복잡한 공학을 모두 이해할 지식도 철학도 부족함에도, 워낙 전개가 매끄럽고 번역이 편안해서 어렵지 않게 읽었다. 혼란스럽지 않게 하나의 매시지로 점차 수렴하는 과정이 두려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대개 비슷하다. 분노와 아픔을 느끼는 공동의 경험 - 역사 - 를 잊지 않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다른 미래를 위해 애쓰는 것.

 

인물들이 모두 생생하게 현실적이고, 상상 이상의 다양한 모습들이라서, 글로 쓰인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도 했다. 말리라는 캐릭터 덕분에 거대한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밀착하여 읽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심장이 아플 만큼 놀라기도 했고, 섬뜩함에 소름이 끼치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교묘하게 현대 사회의 갖가지 합법적 장치들로 사람을 괴롭히고 사회적 타살로 몰아가는 바로 지금의 풍경을 생각하면 그저 소설적 장치구나 싶었다.

 

이상한 일이다. 친절, 사랑, 성실, 책임, 아름다움이 사라진 적이 없는 세상과 거침없이 죽이고 빼앗는 세상의 이런 격렬한 공존.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오랜 질문을 또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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