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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평점 :
600쪽이 넘는 기분 좋은 두꺼운 책, 오랜만이다. 공기호흡을 하는 존재임에도, 호흡량이 식사량보다 많음에도, 주저 없이 공기를 오염시키는 무시무시한 인류 문명... 탐정 소설처럼 재밌다니, 이정모 관장님 추천이라니 기대가 크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공기라는 공간 전체에 가득한 생명체를 에어로바이옴, 즉 공기 생물군계라고 부른다.”
미생물학 강의를 들은 대학 시절 친구는 그 후 며칠을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인간의 감각들이 일상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의 지식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못 보고 못 듣고 못 맡지만 존재하는 것. 인간의 ‘의심’은 감각의 한계를 벗어난 세계를 기어이 밝혔다.
낯선 학자들의 이름이 가득한 책 속에서 의구심을 연구와 실험을 통해 확신 가능한 사실로 밝히는 이들의 얘기는 흥미롭고 재밌다. 감각 기관의 기능을 증폭시키는 기계 장치들을 만들어 보고야 마는 집념. 그렇게 공기 중 많은 입자들이 인간의 사진에 찍힌다.
“아마토는 결국 구름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퓌드돔 상공을 떠다니는 안개 한 티스푼마다 수천 개의 미생물이 들어 있었다.”
물리학과 화학의 틀에서 세상을 보는데 익숙한 나는, 공기를 떠올리면 분자량이나 기체 배율 혼합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공기’는 그 자체로 생태계다. 날아다니는 생명체가 가득한 한시적인 생태계다. 애초에 해양의 생명체들이 파도에 의해 공기 중으로 부상해서 육지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덥고 가물 때 육지 생명체들이 간절히 바라는 비도, 겨울을 포근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식물의 발아에 필수인 수분을 보충해주는 눈도, 그렇게 부상한 후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서 사는 다양한 생명체들 - 곰팡이나 조류, 꽃가루, 지의류, 곤충, 세균, 바이러스 등 - 이 응결핵이 되어 주어 발생하는 기상 현상이다.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는 다양한 분자가 들어 있으며, 일부 미생물은 이를 이용해 성장할 수 있다. 구름을 먹고 사는 것이다. (...) 구름 속 미생물은 매년 100만톤의 유기 탄소를 분해하고 있다.”
오래 전 생태학을 공부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구름이 미생물의 이동수단”이라는 점이었다. 이 책을 통해, 구름은 단지 이사를 돕는 것만이 아니라, 구름 자체가 다양한 생명 활동을 보장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인간은 국경선을 만들고 이동을 권리로 명시했지만,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체들은 공기 중에 살며 국경 없이 이동했다. 과학의 장점, 과학서를 읽는 즐거움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 지구생태계 시스템에서 가늠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에어로바이옴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은 구름에까지 미치고 있다. (...) 머리 위를 떠다니는 평범한 구름 하나에 1조 개가 넘는 항생제 유전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비가 올 때 인간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DNA의 빗줄기 속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과학서지만, 과학계 내부의 갈등, 행정과의 불화, 지식과 음모의 괴리 등 다양한 해당 사례를 보여주며, 무엇이 공중보건의 문제인지, 왜 방역을 개인의 책임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지, 사회가 설계해야 할 인프라가 무엇인지를 제기한다. 흥미롭고 유익하다. 동시에 단순하지 않아서 더 선명한, 재밌는 과학사책이기도 하다.
궁금하다. 이 모든 지식으로 우리는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일독을 기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