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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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휴休. 많이 좋아하는 한자입니다. 사람이 나무에 가만히 기대어 쉬는 모양, 그 시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단함을 옆에 눕히고 깊은 호흡을 하며 쉴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니카라과에는 그녀의 큰 숲이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홀로 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

 

숫자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백만 그루... 가늠이 안 된다. 씨앗 뿌리기부터 시작했다고 하시는데, 묘목 키우는 일도 옮겨 심는 일도 공장 생산품이 아니라, 변수가 크다. 그 일의 ‘반복’이 백만이라는 숫자보다 더 큰 기적 같다.

 

누군가 내게 종교를 물으면 한 때는 ‘나무교’라고 했던 진심이 무색하게 나무숲과 멀어지기만 하는 내 삶이 다시 불만스럽게 낯설어진다. 곧 떠날 지도 모르는 사람이 열심히 나무를 남기는 이야기, 책으로만 말고 그 숲에 가보고 싶은 기분이 불쑥거린다.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 다른 것 알아요?”

 

저자는 과학자다. 그래서 불편하게 아득한 신비주의적 사고나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절개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와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오래 전 자주 만난 다정하고 아름다운 생태주의자 친구들을 생각나게 한다.

 

“오래 살아온 한 생명과 그 앞에 선 또 하나의 생명”으로서, 상실과 실패를 경험한 짧지 않게 산 사람으로서, 저자가 독백처럼 전하는 문장들이 새로 뻗은 부드러운 나뭇가지 같다. 저자보다 덜 살아본 독자로서, 알게 되는 지식마다 이젠 부담과 책임으로 느껴질 뿐 즐겁지 않은 나의 요즘을 잠시 관찰해본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순간, 무엇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알려주는 과학을 전공하고 내내 배우며 살았지만, 요즘엔 어린이들까지 첨단과학기술 상품들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살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대답은 부재하거나 부족하다.

 

지식 정보는 넘쳐나는데, 욕망을 절제하는 법도 약한 생명을 연민하는 태도도, 미래에 태어날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도 부재하거나 부족하다. 지혜를 배우지 못한 기술자들의 세계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생사의 순간에도 멈춰 서지 않는 어리석은 속도전의 세상 같기도 하다.

 

한 그루가 다른 한 그루와 같지 않다는 것을 오래 바라보아야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도 그런 속도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가며 살아야 살육 대신 평화가 틈입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자발적 디스토피아 구축 속도에 멀미가 난다.

 

“인간은 나무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구원받아야 할 존재는 나무일까,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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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 사전 - 라스트 아날로거 시인이 포착한 요즘 언어의 이면
이소호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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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시인의 산문집 방식 사전, 외계어 같은 젠지어를 배워볼 용기(?)가 생긴다. 먹기 아까운 최애 요리처럼 설레며 펼쳤는데, 프롤로그 읽다가 이미, 벌써, 너무 웃었다. 배 근육(?) 아프게 웃어본 게 아주 오랜만, 엄청 두꺼운 사전이었음 좋았을 걸... 읽기 아깝다.



 

“외로움, 불안, 정체성에 대한 질문. “너는 여전히 너야?”라는 물음은 (...) 유독 이들에게 절실하다.”

 

엠지Millennials와 젠지GenerationZ 세대로 분류되는 가족 구성원들이 있지만, 내게 X세대란 구분이 별 의미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딱히 세대별 특징에 관해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젠지 유행어는 그걸 재미있어하는 내 또래 친구들에게 더 많이 들었다. 너... 괜찮은 거니... 라고 묻고 싶을 만큼 이상한 표현들도 있었다. 그럴 때 확인 겸 아이들에게 뜻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곤 했다.

 

내가 쓸 일은 없을 것 같은 곧 사라질 유행 같지만, 알게 되는 표현들이 늘어가니, 어떤 배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의사소통을 하는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그 의문을 기대 이상 속 시원하게 파헤쳐주는, 시인의 글이라니, 이런 즐거운 호사가 없다.

 

“밤티는 (...) 저건 추해, 저건 미감이 없어, 라고 선을 그으면서 그 선 안쪽에 있는 나는 안전하고 세련된 존재라고 믿고 싶은 욕망이다. 혐오는 늘 그 안에 자기 확인의 구조를 품고 있다.”

 

읽다보니, 아는 건 없이 선입견만 가졌다는 깨달음이 컸다. 그럴 거야, 라고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젠지들의 생각, 이해, 태도에 놀랐다. 대화가 불가능한 채로 편견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건 순식간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크게 반성했다.

 

한편, 어떤 면면은 내가 늘 바라던 외부 세계의 조건들이라서 또 놀랐다. 자발적으로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전시되거나 소비되는 무대가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 평가에 질리고 지치는 기분. 도대체 인간 활동은 어디까지 줄어들어야 하는 건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절대 안 되는 건지, 온갖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자동화시키는 상품들에 대한 불만 등등.

 

“그들이 우슐랭에 열광하는 건 단순히 맛집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광고 냄새가 나지 않는 무언가가 간절했던 것이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살았고, 광고에 익숙하고, 상품 저항성이 적다고 생각한 세대인데, 젠지 세대가 광고를 극혐하고, 아날로그 노스탤지어를 가진 채 “불편함”을 오히려 동경하는 줄은 몰랐다. 또래들만이 아니라, 다른 세대의 생활 방식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다.

 

주류에 저항하고 부정하느라 결과적으로 현상도 본질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고,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서 실컷 경험하고 살다보니 오히려 그 세계의 한계와 거짓을 선명하게 파악할 능력을 갖추게 될 수도 있다.

 

매서운 재미가 가득한 글을 쓰는 이소호 시인이 X세대 사전은 안 써주시려나, 간절한 기대가 생긴다. 그 사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그 세대라 불렸을 때 살던 세상을 배우고, 다시 돌아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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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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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북이라 제목이 궁금했습니다. 이런 색감의 표지, 이런 파랑을 잇는 바다였네요. 단편이 다섯 편이나 담긴 새 소설집, 넉넉한 준비를 마친 계절처럼 든든한 기대가 차오르는 기분입니다. 


📖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동해가 천오백만년 전까지 계속 확대되면서 일본열도가 지금 위치까지 이동하게 된 거예요.”

 

표제작을 먼저 읽고 싶은 버릇과 욕망을 단단히 누르고 실린 순서대로 읽었다. 처음 만난 작가의 글인데... 친근하고 강렬하다. 글에 미혹된 정신이 중심을 벗어나 날아가려는 힘이 불쑥 커지곤 했다. 무리가 가지 않게 호흡을 거듭 골랐다. 작품의 분위기도 인물들도 오롯이* 당당하다. * 고요하고 쓸쓸하게,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각자가 각자의 이유로 선택하는 ‘일’이 그대로 존중받는 삶이면 좋으련만,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가벼운 평가들로 시끄러운지... ‘이 일을 하니 살 것 같다. 인간답게 사는 것 같다’...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무엇이 부족한 건지. 이런 뾰족한 생각을 하며 중요하지도 않은 이들의 평가에 휘둘리던 젊은 나를 떠올린다.

 

“요시노 삼나무가 높은 품질을 유지해온 것은 산지기를 통해 대대로 전수된 고도의 육림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세기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듯한 배경과 내용이다. 인간에 의해 파헤쳐져서 이제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야생이란 하나도 남지 않은 건가 싶어서 ‘늑대(혼혈인 개)’ 이야기가 숲 속 공기처럼 서늘하고 설렜다.

 

이곳 말고, ‘돌아갈’ 다른 야생이 있으면, 인간도 얼마쯤은 무리에서 이탈하고 싶을까... 나도 그래서 문득 집이 낯설어지곤 하는 건가 생각했다. 인간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인간도, 인간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법을 터득한 동물도, 삶이 고단해 보인다.

 

“바다거북을 늘리려면 연구자를 내쫓지 말고 제방부터 없애야죠.”

 

드디어 표제작, 기대가 컸는데... 울 뻔 했다. 회귀하고자 하나 장소가 사라진 바다거북도, 떠나고 싶으나 아직 어디로도 혼자 떠날 수 없는 아이도, 확실한 건 없지만 몸속에 내장된 듯한 지도를 따라 원류로 회귀한 이방인도... 그리움과 쓸쓸함이 각자 다른 비율의 양념처럼 섞여 혼미한 맛을 뿌린다.

 

“파랑을 잇는 바다”는 현실에서도 작품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사연을 실어 나른다. 알고 보면 생명의 조건을 서로 빌려 사는 생명들을 해류를 따라 내보내기도 하고 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실은 아무도 헤어지지 않고 이 지구상을 유영 중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조금, 아주 잠시 덜 쓸쓸하다.

 

“우리 인간도 똑같아.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곳, 거기서 살면 돼. 자기가 태어난 곳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대상이 누구든, 어떤 감정을 품고 있든지,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 채로만 산다. ‘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아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리 많지가 않다. 그 헛헛한 관계의 진실에 대한 위무일까, 작가는 참 많은 자료, 조사 기록, 조언, 정보들을 성실하게 수집하고 참고했나 보다. 이토록 탄탄하게 아름다운 위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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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B급 홍보 개척사 - 한 소도시를 당대의 히트작으로 만든 홍보의 전설,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종합 부문 대상작
조남식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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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보장 확실하다고 해서 그 점에 가장 끌렸습니다. 크게 웃어보고 싶었거든요. 기대 충만!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단지 재미를 공유한다.”

 

‘충주’를 방문한 기억이 안 나서 - 정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단 말인가 - 살짝 당황하면서, 낯선(?) 도시 충주를 처음 배워가는 기분으로 읽었다. 모르는 것은 지역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의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수명이 짧고 매 시기 바쁜 이유는 늘 있지만, 내가 경험한 장소도 그에 따른 사고도 이렇게 협소하구나 새삼 느낀다.

 

고마운 점은 약속 받은 대로 배를 떨며 자꾸 웃었다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로 저런 그림을 그려서 행정 업무를 홍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진짜 못했다. 깜짝 놀랄만한 저 색감들이 웃음을 키운다. 당시 목격한(?)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또 즐거웠을지 상상하는 순간도 큰 재미다.

 

“총괄이란 말은 꽤 매력적이다. 굉장히 권한이 커 보이고 능력 있어 보인다. (...) 그러나 대부분의 실무 현장에서 총괄이라 함은 담당자가 한 명이라는 소리다.”

 

더구나 SNS도 홍보 경험도 없는 공무원이었다니! 역시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직책은 단 한명이 업무를 다 책임지는 ‘총괄’이었지만, 그 점이 이런 파격 홍보와 성공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본다. 순서대로 결제를 다 받아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업무란, 문서 작성부터 시행 직전까지 하염없는 기다림과 지연이 필수니까.

 

그렇게 충주시 SNS가 대단한 성공을 거뒀는데, 당시 나는 전혀 모르던 소식이라서 실시간 추억이 없어 좀 아쉬웠다. 그때도 무성의한 만큼 공격적인 댓글들은 없지 않았지만, 지역기반 업무와 행사의 잇따른 성공이 실체가 불분명한 그런 공격쯤은 잘 견뎌낼 힘이 되어 다행이다.

 

“공무원이 전출 심의를 받았다는 것은 네가 간다면 막지 않고 보내주겠다는 뜻이지 갈 곳을 알선해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홍보를 잘 할 줄 모를뿐더러, 과한 홍보의 세상에서 사는 일이 피곤하다. 의심과 불만으로 보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제철 옥수수와 고구마를 잘 판매하는 일이라면 반가울 따름이다. 당시 대중문화나 유행어도 잘 모르지만, 기어코 각인시키고 호감을 갖게 만들겠다는 담당자의 의지가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매번 감동이다.

 

혼자서 잘 모르는 업무를 맡아 고민한 여러 날들이 솔직하고 재밌게 드러난 글이다. 마치 이것이 현실 홍보라고 당당히 연설하는 듯하다. 담당자가 가진 기세, 그 분위기가 유쾌하다. 고민을 나눌 공무원 독자들이 있다면 더 공감하고 이해하며 큰 재미를 느낄 듯하다.

 

“일과 상황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진정성에서만큼은 (...)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행동 기준이고 원동력이었다.”

 

‘복명하복 무사안일’보다 더 유명한 말이 공무원 업무의 성격으로 새로 정의되길 응원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더 많은 사례들이 언젠가 더 많은 책들로 소개되길 바란다. 충주 사과, 고구마, 옥수수, 잘 기억해 두었다가 꼭 맛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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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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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의 야간근무자로 선발되었다. 오래 전 밤샘 근무가 떠올라 무섭... 내가 쓰게 될 야근근무 결과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기대된다.



 

“잠을 안 자는 사람들이 자기 잠을 팔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그 잠을 사고 있었다.”

 

진하고 굵은 펜으로 죽죽 써내려간 듯 선명하게 집중되는 글이다. ‘스마트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의 고분군이라는 대조적 배경’은 (자발적 형식을 취하나) 잠을 빼앗긴 21세기 물류 노동자들과 영원한 잠에 든 고대인들의 대조라는 인상적인 설정을 이룬다. 결말 부분에 이 시공간이 어떻게 뒤섞이는 가는 특히 강렬한 풍경이다.

 

잠을 줄이는 이유는 다양하고 많다. 얼핏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는 이유들도 실은 사회 시스템이 강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을 밝힐 수 있게 된 인간은 밤을 줄이고 밤을 없애기도 하며, 수면을 통제했다. 종종 ‘꿈과 미래’를 위해서란 달콤한 이유로.

 

“노동자들의 피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직감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 수면을 박탈당한 혈액에는 정상인의 혈액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예외가 되는 사회에서는, 잠을 자는 행위가 심지어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잠을 자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생명체임에도, ‘스스로 내면화한 논리로’ 잠을 줄이고 몸을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이제는 잠을 줄이고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있는지의 여부가 관심사가 된다. 물류센터의 잠을 자지 않는 노동자들은 ‘뇌가 잠을 요구하지 않으니 일이 즐겁다‘고 느낀다. 고용인은 잠과 꿈을 잃은 이들을 “꿈의 노동력”이라 부른다.

 

“나한테 왜 잠을 자느냐고 물어요. 잠을 안 자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왜 자느냐고. 바보냐고.”

 

잠을 안 자게 해줄 수 있다는 브로커가 등장하고, 이들의 혈액을 활용한 상품을 강남 부자 고객들에게 팔아 빚도 갚고 성공하고 싶은 전직 의사는 의학적 문제들을 알아차리지만 수익 프로젝트 성공에 집중한다. 이 팍팍하고 피곤한 이야기가 얼마나 더 잔인해질지 기분이 서늘해졌다.

 

“아르고스가 그걸 일부러 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희망이 면역 반응처럼 등장하면서 반전을 맞는다. 같은 조건에서도 잠을 빼앗기지 않은 이가 있다. 그의 의심은 어쨌든 과학적 상황 이해와 분석이 가능한 전직 강남 피부과 의사와의 협력으로 믿을 만한 가설이 된다.

 

물류 센터와 고분군이라는 장소는 극적인 타격과 변화를 맞게 되지만, 이 작품의 힘이자 묵직한 감동은 영화 <테미네이터>와 같은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소설이지만, 속보로 뜬 현실 르포 같기도 하고, 초근미래 예언서 같기도 해서 무섭다.

 

인간은 실망보다 더디게 성장하고 변화한다. 하나의 경험으로 도덕적 성장이나 선한 존재로 변하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방법을 알고서도 전혀 행동하지 않는, 한심한 상태에 머무는 선택이 가장 흔하다(다... 제 얘기입니다.). 그러니... 잠을 자야 살 수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계산으로 올바른 행동에 도달했다. 도덕이 아니라 생존이 나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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