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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다샤 키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평점 :
“가족 구성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광기의 일부가 되어간다. (...) 사랑하는 사람의 인지 저하를 그저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어 매일 매분 초현실적이고 암담한 현실을 살아간다.”
인간이 직접 경험만으로 만사를 가장 잘 배우고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경험은 그 고유성과 구체성으로 인해, 지극히 사적인 고통과 힘겹도록 느린 시간을 견뎌야만 앙상한 관계와 빈약한 실체를 겨우 알아차리게 되기도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많겠지만 불운하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누구나 늙고 죽는다는 간단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의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노화와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사건들에 허덕인다. 그저 간신히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든 순간에 잠시 안도할 따름이다.
“우리의 뇌는 보호자와 환자 사이의 모든 오해, 언쟁, 비난이 가리키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늘 써먹던 무의식적 편향과 가정이 이제는 우리를 헤매게 한다.”
전무하다곤 할 수 없지만 노년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한숨 나올 지경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그 돌봄을 감당하고 있다. 24시간 돌봄 노동을 하는 건 아니라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면면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가족의 몫이겠으나,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하나도 없는 건가 싶게 잦다. 가족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더 힘든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크게 오해하는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불필요하게 큰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환자가 기억을 잊어버릴 때 자신이 지워진 기분을 느끼고 (...)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받는 쪽은 보호자다.”
보호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잘 전달하는 저자의 연구 결과 덕분에, 결정권자이자 보호자로서의 나를 아주 많이 위무하며 읽었다. 알고 있지만 다 잊고 감정적 반응을 보인 순간들도 다시 연구자의 문장들로 읽으니 차분히 정리가 된다.
내 경우에 배운 대로 살지 못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습이 부족해서다. “의식적 반응으로 전환”하는 습관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끈질기게 연습해야겠다. “오래 된 상처”를 자꾸 들춰내는 일이 줄어들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이 돌봄 노동과 관계에서도 해소와 구원의 면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바란 것은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 특히 자책, 겉보기에 비합리적인 행동, 그에 따르는 후회처럼 그들이 자초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아주 분명하게 보호자들의 어려움을 알아봐줘서 도움이 크다. 내가 겪는 감정적 어려움들이 아픈 상대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한 나의 뇌에 있다는 것, 내가 만들어 온 편향과 내가 좋아하는 성향으로 기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하자.
병을 앓는 건 병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 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약화 이외에 관계적, 윤리적, 도덕적 일탈 - 처럼 보이는 - 을 저지르는 것은 병에 걸린 사람 탓이 될 수 없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신경학적 원인으로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