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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평점 :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실제로는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폭발해버린 지경인데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여도.”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생존’을 늘 염려하며 사는 현대 사회, 어느새 그게 상수가 되었을까. 짜증나도 퇴근 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일까. 현실은 이미 그러니 더 애틋하다. 소중하게 읽을 결심.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웃었다. 뭔가... 미칠 듯 갑갑한 현실이 자꾸 끼어들어 웃음소리가 어색하도 느껴졌지만, 엄청나게 지적인 블랙 유머 정서에 속절없이 기분이 팡팡 터졌다. “엄청 웃었다”로 기억될 소설이다.
아주 오래 전, 20세기에 모든 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던 아주 멋진 카탈로니아 출신 친구가 있었는데, 영국의 냉소적이고 비하적인 서늘한 농담에 스페인의 여름 한낮의 공기가 섞인 듯 뭔가 그립고 신나는 문제작(?)이다.

인용되는 문구들의 출처들이 반가운 사상가들 - 작가, 철학가, 학자 등 다양 - 이라서 무지성의 시절에 눈물겹고, 일기 같은 월기 형식의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와 주인공을 마구 헷갈리며, 둘 다 경애하며 빠져들었다.
“역사상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역사상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세대라는 이유로.”
소재는 주먹으로 망치로 쳐도 꿈쩍도 안하는 갑갑한 시스템과 현실이다. 말 잘 통하는 동료나 친구와 거리낌 없이 같이 욕하는 속 시원한 독서이기도 했지만 매순간 욕할 게 이토록 많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욕하다 힘 빠지고 더 우울해지는 부작용 없이, 짱짱해지는 격려 같아서 더 좋다.
“불안감과 일상이 구두 밑창에 달라붙은 껌처럼 발목을 잡겠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온 집안의 먼지와 벽지를 다 닦아내고, 모든 칼과 가위를 갈았다. 그나마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강박적인 방법으로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숨이 막힌다. 그럴 때 고맙게도 와 준, 완벽한 휴식과 힘이 되어준 사회철학을 영민하게 녹여낸 재밌는 소설이다.
! 화가 나고 답답하고 불면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