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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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한 개자식보다 훨씬 강렬한 놀라움일 듯, 이 제목 아래 담긴 내용이 너무나 궁금하다.


도서제공: 비채


 

우리 언제 만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편지 속이 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최강 변론처럼 들리는 소통방식의 소설이다. 밑줄을 긋거나 필사하거나 메모를 첨부하고 싶은 문장이 가득하다. 억측과 거짓과 왜곡과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 악랄함이 너무 시끄럽다. 입을 열면 욕이 튀어나올 듯한 감정 격변을 달래는 중에 정제된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듣지 않고 혹은 들을 여유가 없이 살다보면 누구의 목소리도 충분히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듣는 방법을 잊고 인내심을 잃는다. 말이 되든 안 되든 구호 같은 외침이 점점 더 커지고 호응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거침없이 솔직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버거워서 놓아버린 선택이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평안을 얻은 걸까. 겁쟁이에 게으른 편이라 생존 도모를 위한 에너지 배분이었다고 변명부터 또 하고 싶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없네.

 

우리를 인정하기를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대개 외모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애석해하지만, 더 심각한 변화는 지성의 퇴보가 아닐까. 한 때 빛나던 이들의 황당하고 비겁한 언행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보곤 했다.

 

문화사대주의자라고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알코올 대신 진한 커피를 마시며, 밤새 혹은 몇날며칠을 새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타협하는 법 없이 토로하는 프렌치 필름을 감상한 듯하다.

 

뭘 해도 뭘 봐도 현실 도피에 실패하는 날들이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빠져들어 탐독했다. 그동안 세상은 다 망하지 않았고, 현실은 강고하게 퇴행하고 있지만, 나는 언어의 힘을 더 독실하게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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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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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가 다른데도... 한강 작가님 작품이 설핏 생각나는 어떤 분위기... 어리석은 코미디 같은 날선 비극, !




 

늙은 친구를 조로증에 걸린 아이로 착각할 만큼 두 사람의 유사성은 맹백했다. 흰 눈썹, 주름, , 눈썹까지.”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가야하니 온갖 비극이 난무한다. 관계 속에서 생존한다는 일은 이토록 뇌를 진화시켜야하는 일이었을까. 마치 통제가 불가능한 기술로 망하는 부작용처럼, 인간이 그 뇌로 구축한 엉망인 시스템들 속에서 끝없이 죽고 죽인다. 그렇게 끝나기 전에 죽을 만큼 서로 괴롭힌다.



 

세 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둔중한 충격을 가한다. 날카로운 부분 타격과 달리, 온 몸이 울리고 호흡이 딱 멈추는 강력함이다. 르포르타주가 아닌 소설이라서 도리어 실제 사건들인 양 세세히 생생하다. 여행조차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들의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사람의 이야기로 낯설지 않다.

 

그이에게 그 탄피들은 이후 우리를 남편과 아내로 묶어주는 계약의 증인이었던 셈이야.”

 

담담해서 더 두근거리는 문장들과 단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촘촘한 그물 같은 암시들은 추리나 미스터리 장르물 못지않게 읽는 이를 긴장케 한다. 깊고 어두운 음모의 완성 같은 결말들은 오래 기억하는 게 두려울 정도로 강렬하다.

 

악랄한 함정 같은 시스템들 속에서 개인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순전히 인가... 새삼 한탄하게 만드는 작가의 통찰력은 체제의 저변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구조적 비극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과 시시각각 변화될 미래의 사회는 과연 이보다 덜 파괴적일까.

 

짐승의 이름이 중국어로 산을 뚫는 갑옷인 것은 그래서였다. 이 짐슴의 과학적 명칭은 천산갑穿山甲이었다.”

 

생명은 다치고 망가지고 부서져도 살아남는 끈질긴 복원력을 가지긴 했지만, ‘생존만이 유일한 선택지라면, 비대한 뇌를 가진 - 모순적이게도 사피엔스라는 학명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고 자기파괴적인 - 인류는 그래도 아름다움을 바라고 추구하며 애쓸 것인가.

 

작가가 드러낸 낯선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쓰리고 아파서 기분 나쁜 냄새를 품은 공기 속을 천천히 걸으며 한참을 서러워했다. 조금도 현명해지지 못한 탓에 우매한 질문들 속을 여태 헤맨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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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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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의 행사에 제한을 두는 일을 자유liberty’라고 불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바로 이런 자유, 권력에 제한을 두는 일을 다루고 있다. 특히 (...) 토론을 통해 자유롭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학전공자치곤 운이 좋아서 30년 전부터 <자유론>을 거듭 읽고 산다. 원문 영어가 정갈하고 아름다워서 기왕 하는 영어공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열심히 권하는 독자이나, 새로운 번역본도 매번 궁금하다. 체온과 지향이 함께 느껴지는 김만권 번역가의 문장들이 멋지다.

 

인간은 과거를 미화하는 만큼 아름다운 미래를 꿈꾼다. 이런 시절을 살게 될 거란 상상을 못해서인지 형언할 수 없이 괴롭고 지친다. 더구나 동료시민들임이 분명한 이들의 함께 욕하는 쾌락만 발산하는 무지성과 폭력과 돈벌이에 골몰하는 행태들은 마주할 때마다 상처가 된다.

 

영원히 박제된 고전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유론>은 따라서 지금 다시 읽기에 완벽한 사상이며, 다시 읽고 싶어서 읽었더니 심신의 고통을 줄이는 회복 효과도 준다. 차근차근 생각하며 따라가는 지성과 가치와 사상과 철학은 영양실조에 걸릴 듯 그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부재한 현실에 꼭 필요했다.

 

"‘자유야말로 모든 인류가 갈망하는, 자신이 존엄하다는 자기 확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란이 종식되기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제자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사회를 구상하고 만들고 바꾸어나가는 일이야말로 백년지대계 그 이상이어야 한다. 교육은 그런 역할을 할 사회구성원을 키우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빨리빨리가 사회의 정상속도라 믿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실수한 것, 간과한 것,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조차 휘발성이다. 그 모든 선택과 순간들이 모여 거대한 형태로 현실화한 것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숏폼과 한줄 명언 대신 건너뛰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사유의 문장들을 읽자.

 

정치적 사유에서, 이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사회가 일반적으로 경계해야 할 해악 중 하나이다.”

 

그리하여 선동과 가짜뉴스 따위에 혹하지 않는 사람됨을 자치적으로 구축하자. 아무도 타인의 인간됨을 해치지 못하도록, 특히 스스로 자신을 망치지 못하도록. 모든 문장과 사유의 이어짐이 결곡한, 개념을 모른 채로도 바라고 그리워하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다. 백만 번 강추한다.

 

* liberty not freedom. Civil , or social liberty. 권력을 제한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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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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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실제로는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폭발해버린 지경인데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여도.”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생존을 늘 염려하며 사는 현대 사회, 어느새 그게 상수가 되었을까. 짜증나도 퇴근 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일까. 현실은 이미 그러니 더 애틋하다. 소중하게 읽을 결심.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웃었다. 뭔가... 미칠 듯 갑갑한 현실이 자꾸 끼어들어 웃음소리가 어색하도 느껴졌지만, 엄청나게 지적인 블랙 유머 정서에 속절없이 기분이 팡팡 터졌다. “엄청 웃었다로 기억될 소설이다.

 

아주 오래 전, 20세기에 모든 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던 아주 멋진 카탈로니아 출신 친구가 있었는데, 영국의 냉소적이고 비하적인 서늘한 농담에 스페인의 여름 한낮의 공기가 섞인 듯 뭔가 그립고 신나는 문제작(?)이다.




인용되는 문구들의 출처들이 반가운 사상가들 - 작가, 철학가, 학자 등 다양 - 이라서 무지성의 시절에 눈물겹고, 일기 같은 월기 형식의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와 주인공을 마구 헷갈리며, 둘 다 경애하며 빠져들었다.

 

역사상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역사상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세대라는 이유로.”

 

소재는 주먹으로 망치로 쳐도 꿈쩍도 안하는 갑갑한 시스템과 현실이다. 말 잘 통하는 동료나 친구와 거리낌 없이 같이 욕하는 속 시원한 독서이기도 했지만 매순간 욕할 게 이토록 많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욕하다 힘 빠지고 더 우울해지는 부작용 없이, 짱짱해지는 격려 같아서 더 좋다.

 

불안감과 일상이 구두 밑창에 달라붙은 껌처럼 발목을 잡겠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온 집안의 먼지와 벽지를 다 닦아내고, 모든 칼과 가위를 갈았다. 그나마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강박적인 방법으로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숨이 막힌다. 그럴 때 고맙게도 와 준, 완벽한 휴식과 힘이 되어준 사회철학을 영민하게 녹여낸 재밌는 소설이다.

 

! 화가 나고 답답하고 불면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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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대 - 청계천 판자촌에서 강남 복부인까지
유승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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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까지 오롯이 살았다. 그 이전에는 내 부모와 조부모가 사셨다. 개인사의 풍경 사이에 채워질 서울의 시대와 모습이 많이 기대된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도대체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60년대부터 90년대라서 기억과 만나는 접점이 많을 줄 알았다. 같은 시공간을 산다는 일이 모두 다른 시공간을 산다는 일이라는 걸 다시 절감한다. 모르는 서울이 아주 많아서, 경험으로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진다.

 

역사서를 좋아하지만 풍속에 관해 아는 바가 적어서, 이 책을 통해 재밌는 사실과 기록을 많이 만났다. 기록의 매력은 사라진 것들, 떠난 이들을 친근하게 전하고, 더 오래 기억해볼 가치들을 가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연탄은 (...) 원래 이름은 구멍탄이었다. (...) 대체로 19세기 전후로 큐슈 지방의 일본인이 처음 사용했다고 전한다.”

 

특히나 지식도 경험도 거의 없는 가정신앙의 풍속이 흥미로웠고, 한강 주변에 아직 마을신을 모시는 부군당굿을 해마다 벌이는 마을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새삼스레 공간은 수많은 층층의 삶이 겹치는 마법의 장소 같다.

 

“1950년대까지도 집과 토지를 지금처럼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땅은 농사를 짓고 집은 사람이 사는 건축물로 생각하였다.”



 

인간의 수명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긴 시간 같아도, 근현대를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도 느껴진다. 부침이 많고 역사적 굴곡이 거센 한반도에서의 삶도 나름의 연속성은 강해서, 1950년대의 가치가 여전히 설득력이 있기도 하고, 60년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이 여전히 문젯거리다.

 

개인사를 상기할 텍스트를 만나게 될까 했던 기대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양한 풍속을 가진 서울을 만난다. 잃어버린 것들과 잊어버린 것들이 아쉽기도 그립기도 서글프기도 다행이기도 한, 그렇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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