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심 삶중심

워킹 데드 해방일지 - 퇴사욕구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좀비화한 요즘 직장인 을 위한 일 철학
시몬 스톨조프 지음, 노태복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9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는 것들에 얼마나 맹목적이고 끈질기게 집착하는지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년도와 과학기술과는 무관하게 더 극렬히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인 풍경도 난무하다.

저자가 명명한 ‘워키즘workism’을 ‘직업이 종교를 대체하는 경향’이라 이해한다면, 가짜노동이 왜 생겨났고 왜 유지되는 지도 잘 이해된다. 모두가 피로하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착취하는 모순이.

“사람들은 열정에 따라 직업 선택을 한다고 믿게 되면, 임금 격차를 구조적 불공정이라는 현실의 문제라고 인정하기보다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하기 쉽다. 이런 유형의 ‘선택 세탁choice washing’은 소득 불평들이 단지 체계적 개혁보다는 열심히 일하기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영속(...)”

현실탐사기록이 물증으로 기록된 것이 좋다. 읽다보면 감정이 식어서 화로 격발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 도움이 된다. 저자가 제시한 넉넉한 도움이 필요한 가이드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는 것을 선별하거나 참고하면 좋겠다.

오래 전 연봉협상에서 4시간 노동에 연봉 절반을 제안한 순간이 떠오르고, 어떻게 포기하고 적응해왔는지 그 시간들이 지겹고, 원하던 삶이 겨우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랐는데 시도도 하지 않는 지금이 서글프다.

일과 직업이 곧 나라는 분들도 있지만, 그게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예외적인 소수라는 것은 분명하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는 가능성이 확률이 그러니까. 이 책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돕자는 책이다.

“저는 일 바깥에서 정체성을 쌓았어요. 그래서 일이 내 정체성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앗아간다면 그 일은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아요.”

어릴 적 수없이 듣던 질문,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 “커서 누가 되고 싶은가”의 질문에 직업을 떠올리도록 프로그램된 그 기억부터 사색을 다시 시작해도 좋겠다. 인간이 성장하여 직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나, 직업을 호칭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그보다 더 심하게는 직책으로 사람을 호명하는 - 사장님, 이사님, 상무님, 팀장님,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등등 - 한국사회에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높은 수준의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이다. 사람들은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때 더욱 의욕이 솟고 성취감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뭐, 벌써 늙고 약해져서 원하는 것들을 못하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뭐라도 하며 살아야 하니까,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이 무용하지는 않다. 바라던 퇴직연령은 이미 지났지만, 희망을 버리면 앞이 더 깜깜할 뿐이다.

“누군가의 권력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권력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지점”을 알아내는 것.

일을 처리하고 남은 나에게 조금의 삶을 맛보게 하는 방식을 끝내야하는데... 이러고 더 살다보면 의지가 아니더라도 끝나게 될 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