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속의 비밀 1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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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던 보드게임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이번엔 얼마나 더 기발한 게임규칙들이 긴장과 재미와 감탄을 줄까요. 2권을 주문 해두고 설레며 1권 읽기 시작.




 

의식은 여러분의 뇌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의식의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지 않아요.”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진짜고, 사실 그대로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작가의 호언장담이 첫 페이지에 기록된 것이 반갑다. 진위와 무관하게 크게 웃으며 더 흥미롭게 읽게 된다.

 

기호학은 여전히 재밌고, 노에틱은 어떤 학문인지 모르지만, 등장하는 소재들이 길게는 30년 전에 내가 관심이 가졌던 것 - 새들은 어떻게 부딪치지 않고 군무를 출 수 있을까* - 도 있고, 내 비밀번호를 구성하는 Pi가 등장해서 잠시 등골이 서늘했다. 덕분에 몇 년 만에 중요한 비번 몇 개 변경 완료. * 행동 동기화

 

“‘프라하문지방이라는 뜻이었다. (...) 수 세기에 걸쳐 이 마법의 도시에는 신비주의, 유령, 정령이 들어찼다.”

 

그 외에도 인간의 감각이 사물을 실체 그대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인간의 뇌가 얼마나 착각, 편향, 오류 기억이 쉬운지를 보여주는 점이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모든 것이 진짜라는 장담에 설득력을 더한다.

 

더구나 현재의 과학기술들과 전 세계인이 소셜 미디어에 의심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정보들이 전 세계인 누구라도 감시, 사생활 침해, 더 나아가 범죄 가능하도록 활용되는 전개는 허구가 아니라서 소름이 끼친다.

 

우리는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사실 우리는 완전한 전체에 통합된 존재인데 말이죠. 개별성은 우리 모두의 착각일 뿐이에요.”

 

주요 캐릭터들은 아주 매력적이고 특징적이다. 역시 영화화하기에도 최적인 설정이라 느낀다. 물론 그저 편히 읽게 두지는 않는다. 크고 작은 반전들은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지 전에도 계속 이어진다.

 

좀 더 오래 산 덕분일까, 저자의 전작들을 재밌게 읽으며 기호학 훈련이 된 덕분일까. 이번에는 암호의 힌트들이 비교적 쉽고 빠르게 보였다. 이제 캐릭터들의 배경과 서사는 거의 나온 듯하다. 이어질 2권의 내용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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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극장 -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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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가 평생 중 가장 빨리 사라진 한 해 같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난 내란 이후의 날들... 모든 소식을 따라 읽기엔 체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기사 제목만으로도 충분한 분노와 모욕을 거듭 맛보며 산다.

 

그래도 그 시간을 극장 무대에 올린 든든하게 큼직한 이 책의 서사와 사유는 차분하게 따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고맙게 내 안의 것들도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모인 글은 20223월부터 2025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것들이다. (...) 36개월을 아우른다.”

 

새삼스럽게 36개월에 눈이 시리다. 끝없는 모욕감과 분노로 정신을 앙다물고 지나왔던 시간이다. 현대인이 당면한 많은 문제는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준거가 지켜지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익이냐 사익이냐의 척도가 없던 이 정권의 결말은 이토록 필연이다.

 

신문에 실린 논설이라서, 한편마다 주제와 논조가 선명하다. 한 권의 책이 된 집적물이, 바로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주는 역사다. 지난 정권의 악행과 무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대의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다시 확인하며, 결국 시민이 분별력과 정치적 문해력을 갖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절감한다. 고단하지만, 오염된 것도 망가진 것도 너무 많으니 시민이 해야할 일은 산적해있다.

 

반상식이 상식 노릇을 하면 공동체의 윤리성은 존립의 토대를 잃는다. (...) 상식을 희롱하고 공동체를 모욕하는 반공동체 세력을 공적 공간에서 퇴출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식이다.”

 

극우의 부상, 혹은 극우라는 이데올로기조차 갖추지 못한 폭력배들의 부상은, 짐작보다 오래된 계획과 체계적 지원의 결과일 것이다. 언급되는 것은 이명박 정권 때이지만, 한국 사회에 이런 유의 집단적 경험과 구조로 굳어진 집단적 의식은 청산하지 못한 더 먼 역사적 뿌리를 가졌다.

 

그러니 힘이 많이 든다. 일단 성립된 존재들이 가지는 관성은 공고하고, 항상 이익과 계산이 최우선인 집단의 성실함과 끈질김은 최강이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싸워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히드라의 머리를 다시 자라게 하는 심장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썩은 검찰 사법이라는 저자에게 동의한다.

 

그러니 정치권은 가진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고, 시민들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통찰로 오염된 생각과 언어를 바꿔야한다. 공동체의 요구로 만들어야한다.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카이로스timing가 지금이 아닐까.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 (...) 좋은 정치는 언어를 정련함으로써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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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 계엄의 밤, 국회의사당에서 분투한 123인의 증언
KBS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작팀.유종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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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벌써 123, 가짜뉴스 같았던 뜬금없던 계엄, 내란 발발 이후 1년입니다. 씹히지 않는 음식을 뱉지 못하고 씹어야하는, 소화되지 않은 시간을 잘 듣는 약 없이 버텨야하는, 그런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카운트 할 1년 내에는 관련 범죄가 모두 소명되고 합당하게 처벌되고, 재발 방지도 확실히 마련될까요. 그럴까요.



 

우리가 그동안 싸워서 지켜왔던 민주주의,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한 발 한 발 디뎌온 민주주의인데, 이걸 한 방에 이렇게 해칠 수 있나? (...) 담 넘을 때 마음은, 되게 슬펐어요.”

 

날이 밝기 전에 계엄이라도 해제시켰으니, 신경이 찢기던 허둥대던 상황도 타임라인을 찾아갔지만, 그 밤부터 여러 달을 통과하던 시간은, 다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버텨온 날들이었다.

 

시청한 지도 까마득한 KBS에서 이 기록물을 만들었다는 게 생뚱맞고 반발감도 들었지만, 이야기장수에서 출간했다는 사실이 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품게 한다. 윤석열 파면까지 참 많은 분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이 책 덕분에 함께 한 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니 잠시 분노 대신 온기가 몸을 채운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 계엄군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 국회 경내에 계엄군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의도가 명백한 일인 거죠. (...) 잡혀갔으면 당연히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친위 쿠데타였기 때문입니다.”

 

내란 청산은 나와 지인들의 체력 회복만큼이나 더디다. 그래도 그 어두운 밤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아 걸어 나왔다. 나와 보니, 살던 세상의 문제들은 더 커 보이고, 때론 더 악화되기도 했다. 법치주의의 속도를 약점 삼아, 반성 대신 발악을 하는 내란 세력과 동조 세력들의 흉측한 언행은 계절의 아름다움도 잊게 만들었다.

 

아직 십대인데 대통령 탄핵을 두 번이나 경험한 우리 집 아이들이 내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는 않지만,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요즘도 문득 얼굴이 달아오르곤 한다. 동시에, 내가 누리고 산 얼마만큼의 민주화된 세상을 위해 갖가지 희생을 한 선배들의 삶을, 이제야 기록과 숫자가 아닌 역사로 체험하기도 한다.

 

저는 국민들께서 또 다른 국민적인 영웅이 될 검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윤석열 검사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12.3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평생을 질문 받아도 대답은 같다. 그날 그곳에 계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그 후 여러 곳들에 계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여전히 필요한 광장에서 다시 만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내란 가담자들은 구속조차 되지 않고, 우두머리는 여전히 헛소리 같은 변명을 자유롭게 남발한다. 그토록 큰 위기를 겪어도, 세상의 어떤 면면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익 카르텔은 견고하며,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할 일이 참 많다. 할 일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바꿀 수 있는 게 많으니 다행이라고 그렇게 나도 주변도 다독인다. 내년 123일에는, 내란은 다시 시도조차 못할 체계가 형식이라고 구비되었기를, 범죄를 예방 효과가 확실한 수준으로 합당하게 처벌할 법도 제정되었기를,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뤄 낼 교육 내용도 충분하게 마련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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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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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좀 보세요! “늙어서 이래...”를 저도 하고 지인들도 다 하고 사는 지라, 임상 결과와 저자의 결론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악화를 늦추는 정도가 아니라 회복이 가능한 것일까요.* ReCODE: Reversal of COgnitive DEcline. 나빠진 인지 기능의 회복 프로그램.



 

중요한 변화는 니나가 나이 들면 다들 겪는 일이라고 여겼던 문제가 전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전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해야 할 일을 깜빡하지도 않고, 집중하지 못해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읽기 시작할 때는 이번에야말로 완전 획기적인 비법 같은 걸 찾았을까 혹하는 기분도 있었다. 이렇게 쉬운 길을 갈망하는 게으름은 늘 나의 큰 약점이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다른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뇌 건강 역시 꾸준하게 상식적인 방법들을 오래 이어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수긍을 하게 된다.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고, 불필요한 수요를 늘리는 요인들을 줄이거나 이상적으로는 없애야 하는 것이다. 뇌도 육체니 당연히, 건강한 식생활과 생활습관이 기본이고, 유독하고 유해한 물질이나 스트레스를 피해야한다. 생활습관과 환경이 다른 미국의 사례이나, 자신의 삶은 본인만이 바꿀 수 있는 것이나, 결과적 희망의 근거로 삼기에 유용하다.

 

인지 기능의 저하는 20여 년에 걸쳐 진행된다. 치매는 전체 과정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이므로, 최종 단계에 이르기 전에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다.”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뇌 건강에 관한 종합지식정보를 잘 정리해둔 한편, 후반부에서는, 당장 따라해볼만한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한다. 겁 낼 필요는 없지만 결심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하지는 못하는(또는 안 하는) “반복과 습관이 뇌 건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상세 내용은 뇌 건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익숙한 것들이며, 중요한 건 그 노력이 꾸준하게 실행되어 만들어지는 전반적인 효과로서의 뇌 건강이다. 작심삼일하기 딱 좋은 성실함을 요하는 것들이다. 그 중 내게 가장 도전적인 제안은 루틴을 깨는 것이다. 에너지를 최소화하며 사느라 루틴에 집착하는데, 그걸 깨야 새로운 뇌신경 경로가 생기고, 신경가소성이 커진다고 하니, 고민이다.

 

신경가소성이 발달하도록 진화한 하위 신경망에 이상이 생기면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한다. (...) 필요한 자원 공급을 줄이거나 자원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소는 모두 신경퇴행 위험성을 높인다.”

 

누구도 건강과 인지를 상한 채로 장수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고려들을 차근차근 살펴서, 일상적인 실천과 훈련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 책을 지침으로 삼아, 애써 볼 이유는 분명하다.

 

어느새 12월이다. 연말연시에도, 매일 늙어가는 우리 모두가, 뇌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힘든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 생긴 힘든 일은 오늘 다 슬어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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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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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부분이 그것에 묻혀 있었다. 펼쳐지지 못한 충동들과 구원받지 못한 청춘 시절 꿈들은 이 얼마나 충만한가!”

 

만듦새가 아름답고 시집 한 권 정도의 무게라서 사랑스러운 책이다.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헤세의 산문은 산문시처럼 읽혀서, 소리 내어 짧은 한편 한편을 천천히 읽고 싶어진다.

 

더위에 취약해서, 가을 겨울이 되면 상대적으로 정신이 좀 더 맑고, 문득 행복해지는 기분도 들고, 깊은 잠도 때론 자고, 어릴 적부터 반복해서 꾸는 광대한 꿈을 다시 꾸기도 한다.

 

고요한 슬픔 밤이 나를 위로하고 잠재우며 내 위에 궁륭처럼 떠 있다. (...) 잠과 꿈이 내게로 찾아와 죽을 것만 같은 무게를 내 어깨에서 여행 보따리처럼 내려주었다.”

 

헤세는 자신의 뮤즈가, 스스로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욕망과 사랑과 떨림과 의혹과 맞닥뜨린 모든 한계점들을 담은 자신의 글에 한숨을 짓는다고 하지만, 창백한 죽음과 같은 시간이야말로 이해되지 않은 불가능한 세계여서 경이롭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는 조악한 낮의 현실, 그 막막함도 어둑해지는 저녁 귀가 시간이 되면 호흡을 찾게 허락한다. 달라진 공기의 질감을 느끼며 연습을 무용하게 만드는 이별로 상실한 이들을 살이 저미듯 그리워한다.

 

모든 낮의 삶에는 부족함이 배어 있어요. 모든 어둑해지는 저녁은 귀향이, 열리는 문이, 모든 영원의 소리가 들림이 아닌가요?”

 

어둠은 가장 진실해지는 공간이고, 밤은 가장 절친한 영혼이다. 누구에게도 그 내밀한 진짜 나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헤세는 그 어려운 일을 문학의 형식으로 창작의 방식으로 언어화시키니 이 산문집이 참 소중하다.

 

손가락 두 개로 들어도 무게가 감당되는 인간의 깊은 밤 풍경들, 한동안 기꺼이 가방 속에 쏙 넣어 다니려한다. 어둑함의 표지의 빛을 닮은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다시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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