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면역력을 키우는 어른의 소통법 - 손절은 쉽고 대화는 어려운 우리에게 필요한
게이브리엘 하틀리 지음, 최다인 옮김 / 부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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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성별, 국적과 상관없이 인간관계는 우리의 공통적인 고통이자 행복이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건 내 체력만이 아니다. 원래도 많지 않던 관계 면역력은 예고도 없이 효과를 다했다. 자연인처럼 살 수도 없고, 면역력 제로 상태로 감정적 반응에 지친 채로 지낼 수도 없다. #관계면역력

 

이해인 수녀님도 신영복 선생님이 주신 평정심’, 세 자를 액자로 걸어두고 본다고 하시는데, 나야말로 사방에 평정심을 써서 붙여야할 처지다. 변명을 하려면 길게도 가능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무 도움도 변화도 주지 못한다. #평정심

 

여러분이 이러한 갈등에서 감정적 자유, 다시 말해 내가 평정심equanimity’이라 부르는 상태에 도달하게끔 돕는 것이 내 목표다.”

 

손절이 관계의 정답인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관계 전반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는 건 곤란하다. 아직 큰 실수를 하기 전이니, 작은 변화와 구체적인 해결법을 배워서 따라 해보고 싶다.

 

관계와 뗄 수 없는 소통의 문제를, 아주 담담한 가이드북처럼 설명하고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책을 만나서 차분하게 읽었다. 사례는 구체적이고 설명은 친절하고, 연습 질문들도 부담스럽지 않고 실용적이라서 모든 게 적당하다.

 

갈등을 다루는 우리 능력이 몹시 서툴러졌다는 점이다. (...) 의견 차이는 정상이며 심지어 인간관계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지금이 소통 부재의 시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통 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건 맞는 듯하다. 소통의 한 축이 전달 기술이라는 점에서 연습할 기회와 시간이 적어지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타인과 직접 소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생존은 가능하다. 다만 그 상태는 제대로 삶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작은 늘 좋다. 내용 전개에 따라 수련 가능한 연습문제를 배치해두었다. 전 과정을 다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알려준다. 나도 체크도 하고 빈칸도 채워보고 일기처럼 짧지 않은 글도 써보았다.





 

습관은 머릿속, 특히 우리가 주변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에도 숨어 있다.”

 

하고 싶지 않은 반응을 반복하는 일,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점, 단단하게 자리 잡지 못한 변화를 위한 습관들, 후회하는데 말고는 쓸모없는 과거의 감정 반응들, 이것들을 떠올리는 건 힘들지만, 아주 조금씩 재조정이 가능하다.

 

마음은 고요하고 생각은 유연하게살고 싶은데, 정반대로 살아가게 될까 두렵다. 저자도 예민할 때 심호흡을 한다고 하니, 이미 그 효과를 알아서 안도도 되고 서글프기도 하다. 다행인 점은 심호흡이 늘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감정이 자극되면 사람은 스트레스에 영향받은 결정을 내린다. (...) 그러다 보면 이분법적 패러다임에 갇혀 (...) 대화를 나눌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만다.”

 

감정 원판이 등장해서, 검색해보았는데 다양한 감정이 표기된 원판 종류도 많았다. 감정을 무거운 한 덩어리가 아닌 가능한 구체적인 상태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언어로 인수분해한 듯 기분이 가벼워진다. #감정원판



 

감정적이거나 반사적인 반응 말고, 앞으로는 남의 말을 좀 더 잘 듣는 경청이 내게 필요하다. 어렵다. 했던 얘기 또 들어야하는 경우는 특히. 좀 더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내게도 타인에게도 더 나은 소통 기회를 주고 싶다. #경청

 

갈등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관계에서 내 역할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감정 서사를 파악한 다음 이대로는 의미 없는 싸움이 반복된다고 판단되면 대화나 관계를 보류하자.” #감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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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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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한계가 있고, 인류는 언제나 그 한계 너머의 의미를 갈구해왔다. (...) 다 괜찮다고 본다. 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말이다(중요한 건 이거다).”

 

물리학 공부를 하는 동안, 아이디어idea와 가설hypothesis과 이론theory과 법칙law의 차이에 대해서 배웠다. 설명력이 없는 아이디어들, 관측 계산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가설들, 수학으로 바꾸는 어떤 방법이 옳은지 말해주는 데이터가 없으면 과학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과학의 목적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

 

물리학에서 안다는 것은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물증이 반드시 요구되는 특성 상, 이론적으로 완벽해도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물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 일부들이 그렇다. 관측 가능한 천체망원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진위를 입증할 수 없었다.

 

자연에 기반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만 고수할 것이다. (...) ‘현재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이 책이 질문하고 답하려는 혹은 답이 충분하지 않거나 아직 모른다고 하는 내용들을 통독을 해본다. 어떤 질문은 내가 관심이 없거나 그 질문이 궁금할 만큼 아는 바가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차피 이 책은 내가 남은 평생 거듭 읽어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재밌다. 부담도 없다.

 

세상은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답이 없는 라는 질문을 품은 채 남겨질 것이다.”



 

생의 반환점을 돈 독자로서, 이런 질문들의 정답이 언젠가 구해질 것인가 상상해보는 일은, 기후변화로 멸종할 것 같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보다 즐겁다. 운이 좋으면 결합이 끊어진 내 몸의 원자들이 다시 인간으로 결합하여 우리 우주의 첫 시작을 배우게 될 지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니다. 우주 안에 든 물질 대부분(85퍼센트)은 암흑물질이고, 우리의 구성 물질은 암흑 물질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튼, 우리가 뭘 이루고 성취하든 결국엔 엔트로피 증가로 다 씻겨져 없어질 것이다.”



 

종교를 갖지 못해서 늘 아쉬웠고, 과학을 배워서 내내 즐거웠다. 시간의 비가역성에 관한 논문을 쓰고 졸업했지만, 아직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주 나이만큼 제정신으로 살고 싶지만 몇 십 년 안에 죽을 것이다. 짧은 생에 진지한 질문과 고민은 미친 짓일 지도 모른다.

 

이렇듯 여행과 공부는 할수록 내 존재의 하찮음을 가르쳐줬다. 거역하면 안 되는 소명과 미션이 없어서 해방감을 느꼈다. 덕분에 경계 없는 책 읽기가 즐겁다. 이 책은 수학식 하나 없는 재밌는 물리학 책이자,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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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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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장애를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몇 달을 소설에 잘 몰입이 되지 않아서 드물게 읽었다. 지식과 경험도 적으니 작품을 평가할 능력은 없지만, 수상작 중에 내게는 최고로 강렬한 작품이다. 문학 체험 같기도 하고, 사회과학논문을 읽은 듯도 하고, 현대사 이슈들에 대해 작가와 신나게 토론한 듯도 하다. #최고

 

인종주의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는 거였지. (...) 인종주의는 사람들을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 (...) 이 시스템은 열등한 타자를 등장시켜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서로를 공격하느라 진짜 적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아. (...) 효과가 있다니까. 언제나.”

 

, 이렇게 실감나는 작품이 다 있는지 많이 놀랐다. 내가 만난 이 세계와 인물인데, 현실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 것이 진정한 창조능력인가. 조금만 읽고 천천히 읽으려 했는데 놓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재일의 다음 여정이 궁금하고 염려되어 애가 탄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는 현자가 아니었다. 나는 개인이었다. 작고 어린 파란색이었다.”

 

30쪽이 넘는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한 뒤, 문학도 허구도 이겨먹는 기막힌 현실을 떠올렸다. 인간이 다 만들었는데, 어떤 인간들은 교묘하고 강력하게 이용해먹고, 다른 인간들은 목적도 결과도 상상조차 못한 채 휘둘려서 서로 죽고 죽이는 문명. 결국엔 공멸할 듯한 어리석음.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최고의 상상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량한 이웃으로, 이상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잔잔한 농담이 나를 찔렀다. 공기처럼 지나가는 경멸과 혐오가 나를 두들겼다, 흉터는 영혼에 남았다.”

 

바로 전에 읽은 흑인 소녀의 자전 소설 속 문장들과 같은 이야기를 만나서 망연했고, 더 이전에 읽은 사회학자의 탄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만나서 불안감에 휩싸였다. 태어나보니 다수가, 정상이, 평범이 아니라서, 저주에 걸린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 악당 한 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듣지도 않는 시스템과 싸워야 하는 막막함.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작년 어느 날에는 리얼리즘이 리얼리티를 못 이기는구나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만나서 그동안 삼킨 말들을 한 번에 다 쏟아낸 듯 후련하기도 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을 아주 큰 소리로 읽고도 싶었다. #강추

 

생각해봐요. 언젠가 (...) 피부색만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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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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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성 차별과 저열한 폭력에 망가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장한 재일이라는 희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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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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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는 몰라서 못 읽은 한국어 초반본에 대한 아쉬움과 10년 늦은 애도를 담아 만나보고 싶은,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문학의 힘.

 

여성이 자신을 위해 일어서는 것은, 모든 여성을 위해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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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흑인 여자아이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추방당한 느낌을 의식한다는 것은 목덜미를 위협하는 면도날에 슬어 있는 녹이다.”

 

문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소개 받은 몇 편의 미극 흑인문학 작품을 읽어서일까, 아는 바도 없고 접점도 없는, 1969년 흑인 여자 아이의 삶 속으로 이야기를 따라 빠르게 입장한다. 문학이 가진 힘은 신비롭다. 간혹 기시감을 느끼는 투명인간처럼 어린 소녀의 삶을 그 풍경 속에서 지켜보듯 읽는다.

 

개념어들은 때론 공허하다. 같은 테두리를 가졌어도 그 안의 내용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울감이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보이듯, 차별 역시 경험한 서사가 다를 것이다. 일기장을 공개한 듯 더없이 솔직한 자전 소설은 어린 마야의 아직 내가 되지 못한시간들이 차별의 구체적인 기록이자 메시지이다.

 

부인 말로는 무지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문맹은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어도 대학교수들보다 더 아는 것이 많고 심지어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저주에 걸려 백인인 외모를 잃었다고 상상하는 일, 백인 작가의 작품을 애정하게 되는 일, 백인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일 등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만큼 더 늦추게 만든다. 주류가 아닌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소외와 박탈과 부정을 경험을 공유한다.

 

한 종으로서 인간은 그야말로 혐오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마야가 성장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흑인이 아닌 다른 누구도 겪지 않는 일들은 아니다. 자전 소설이기 때문에, 일련의 갈등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질주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발견이라는 성장 과정을 훨씬 더 차분하게 읽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순탄하기만 한 삶은 거의 없으니, 상처가 난 대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어느 날엔가 배웠다. 그렇다고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을 판단하고 싶진 않다. 다만... 성장기였기 때문일까,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양한 상처들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다 견뎌 내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마지막 선택과 결말은 뜻밖이었다. 어머니의 반응도 놀라웠다. 아무도 이들을 끝까지 좌절시킬 수는 없어 보였다. 덕분에 마야의 삶이 책장 너머로 계속 이어지는, 창작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연속성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새 장에 갇힌 새는 쳐다보기도 어렵겠지만, 노래라도 부른다면 듣기도 마음 아플 테지만,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채로, 태어난 사회에 맞춰 사회화된 채로 살아가는 모두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 그러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놀랍도록 강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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