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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죄
존 위티 주니어 지음, 정두메 옮김, 김형태 감수 / 한길사 / 2025년 5월
평점 :
“나의 주된 목표는 성경과 전통에서 제기된 혼외출생의 원칙에 대한 찬반양론들을 다시 따라가보는 것이다.”
대학이 기업 인력 충당소로 빠르게 변모하는 시절에, 연구기관인 대학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의 결과를 만나는 일은 감동적이다. 더구나 그 주제가 멸칭으로 사용되는, 유구한 구조적 차별을 받은 ‘혼외자’에 관한 인식, 그 유래를 배워 볼 기회라면 더 반갑다. #혼외출생자의원칙 (doctrine of illegitimacy)
역사적으로 혼외출생으로 고통받은 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며 관련 차별과 혐오와 배제가 사라진 적도 없다. 이 책은 이런 방식으로 성(sex)관계를 정의하고 규제하기 위한 절차들을 왜 그리고 어떻게 고안해왔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는, 법과 종교와 사회를 아우르는 연구 결과다.
“교회는 교회법, 고해, 교회법정 등의 장치를 통해 교인들의 내적 삶을 감독했고, 국가는 성범죄에 대한 정책, 기소, 처벌 등의 장치를 통해 시민들의 외적 삶을 감독했다.”
덕분에 서구의 고전 문헌과 성경을 탐구한 내용, 고대 로마법, 중세 캐논법, 영국의 코먼로, 미국의 혼외자법에 대해, 통시적으로 읽고 배울 수 있었으며, 현대사회에서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관련 문제의 유래와 연원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한 권의 책이 전달할 수 있는 지식 정보의 양질 모두가 대단하다.
조급한 심정에 늘 시야가 좁은 독자인 나는 늘 성급하게 실망을 거듭한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양도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들을 부여받았다”고 쓴 뒤, 미국 법에서 친자와 혼외자가 똑같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완전한 인정을 얻기까기는 200년이 걸렸다.
입양과 관련된 제도적 약점과 불완정성이 존재하고, 변화란 대개 아주 고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태어난 존재들에게 사회가 제도적 지원을 최대한 제공한다는 지향만은 선명하다.
다만, ‘임신’과 동시에 ‘해당 자녀’를 보호해야할 책임이 생긴다거나, ‘무책임하게 임신’하는 부모에 대한 자격 문제라거나, 자녀의 임신과 양육이 ‘결혼’제도 하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권장될 방식이라는 내용에는, 단번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반박 주장을 제대로 할 지식 배경도 없지만.
“혼외자법의 가장 주된 요점은 진정한 상속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이견과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출생’한 방식 - 자신이 알 수 없던 - 만으로 죄악을 부여받고, 이후의 모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에는 전면 동의한다.
날마다 새로운 차별과 혐오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변형 전파되는 시절에, 일상적으로 흔하고 오래된 차별과 혐오에 대해 깊이 배워보는 기회가 든든한 격려와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