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편소설이 좋다. 단편을 읽는 재미를 여러 해 전에 겨우 배웠지만. 긴 이야기 속에 파묻히는 그 세계로 이동하는, 한참을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그래서 설레는 간만의 벽돌책,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날은 수요일이었다. 나쁜 수요일로 예정된. 슬픔 등등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을 시작하게 한 질문은 무엇일까. 내가 발견할 질문은 무엇일까. 요즘은 문득... 멸종이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내가 아는 세상은 벌써 끝난 것도 같다. 벽돌집처럼 단단하다고 생각한 것들, 생물종으로서, 인류로서, 시민으로서 합의한 생존 조건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어떤 아침에는 내가 지키는 규칙이 아직도 적용되고 있는 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살고만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장대한 작품이 더 든든하다. 오래 붙잡고 있으려고 100쪽 남짓만 매일 읽을 결심을 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이게 끝은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읽게 될 것이다.”

 

100쪽만 읽었을 뿐인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내 주인공 아이가 너무 고단하다. 숨을 몰아쉬기를 몇 번이나. 나는 가본 적 없는 온갖 위협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직 살아간다. 커가고 있다. 잠시 내 목의 통증도 잊혔다. 제목을 다시 보았다. 이제 이름(Demon Copperhead)이 주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그 다음엔 쪽수를 세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되었다. 이 아이가 빨리 자라서 힘을 가지게 되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죽어라죽어라 하는 것들을 다 물리치길 바라기도 하고, 요령 있게 피해서 모두 비웃듯 신나게 살기를 바라기도 하고, 어쨌든 죽지 않기를 응원하는 심정이 되었다.

 

대체로 내게 자란다는 건 계속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데몬은 죽지 않았지만, 엄마는 죽었다. 데몬도 학교를 다니고, 재능을 찾고, 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고, 당연한 권리처럼 주어졌어야 하는 평범한 일들이 데몬의 이전 삶과 대비되어 독자인 내 눈이 잠시 부셨다. 뒤틀린 시스템과 짐스러운 구조가 그리 쉽게 누군가를 놓아줄 리가 없는데, 살짝 유치해도 좋을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되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소설 속 인물을 응원하며, 나는 파멸을 막는 조력자와 같은 심정으로, 이제까지 읽은 분량만큼이 데몬의 생존기가 되어, 그 기록의 힘이 생존 이상의 삶을 만들어내기를 바랐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는 행복의 내용은 무엇도 맞지 않았지만, 작은 선물 같은 일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조금 더 간절해졌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행복을 바란 적이 있을까? 그랬다면 나를 아주 잘 속여 넘긴 셈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마음 졸인 것이 작가에게 미안한 작품의 마무리를 만난다. 소설의 세계가 마지막 문장들 덕분에 책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쭉 발을 뻗는 느낌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 걸까, 얼마나 넓은 세계일까. ‘생존자인 모두를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을 결심을 다시 한다. 서로를 그렇게 봐주기를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의들의 스승, 그들 - 그들은 어떻게 존경받는 의사가 되었을까?
권순용 지음 / 시공사 / 2024년 5월
평점 :
예약주문



 

너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해. (...) 환자에게 부작용, 합병증이 생기면 치명적이야. (...) 그런 일들은 다 서두르다 생기는 거야. 그러니 무조건 천천히 해라. 선배들이 빨리 한다고 해서 부러워할 것도 없고, 수술 속도는 네가 알면 아는 만큼 저절로 빨라지게 되어 있어.”

 

세상에 으로 정확하고 충분히 계산되는 가치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미화와 찬사와 말로 하는 감사만으로 교묘하게 강요하는 무료봉사나 재능기부에는 반대다. 후원과 기부는 정당한 지급을 받은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완벽하지 못한 세상살이에도, 자신의 손해만을 세세히 헤아리지 않고, 보수나 계약 이상의 일을 하는 이들은 많다. 직업윤리가 강한 이들도, 남다른 소명 의식을 가진 분들도 계신다. 혹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 직업 이상의 의미로 즐겁게 몰두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위계적 직업관에 동의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직업 중에서도 의업은 아픈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과 도움을 주려는 의지가 필요한 일이고, 여러 이유로 여러 좌절을 겪어서 각자의 생각에 차이가 생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작은 그렇지 않을까 전제하게 되는 직업이다.

 

그런 직업들의 대략적 분류가 있어서, 나는 간혹 많이 벌고 싶은 이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군에서 부당 이득과 부정 취득을 노리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들을 만나면 의아해지곤 한다.

 

물론 교육이 권리로서 사회적 지원을 완전하게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신이나 가족 자본이 많이 투자된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럴 경우, 회수보다 대의를 생각하라는 말이 얼마나 무력한지도 안다.

 

여러 복잡한 원인들이 많겠지만, ‘의료 갈등이란 이상한 호칭으로 불리는 현재의 난리를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교육과 직업과 공공역역과 사회시스템에 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33인의 명의들과 그들의 스승이 등장하고, 모두가 능력 있는 전문의 이상의 역할을 맡아 수십 년을 의업에 종사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의학 전문가가 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인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행정업무까지 도전하고 의미 있는 현실을 만들어낸 분들의 삶이 놀랍다.

 

안전과 종합병원에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 다양한 질환이 동반되어 있는 고령층 환자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내과, 외과, 비뇨의학과 등 다양한 협업과 도움이 필요했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살 수도 없지만, 평생을 성직자차럼 사는 일도 대개는 불가능하지만, 한 인간의 확신과 의지에 충실한 끈질긴 행동이 가져오는 변화에는 존경과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자 경험인지, 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의사란 어떤 전문가이자 인간이어야 하는지, 독자로서, 의료인 가족과 친지로서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거세게 흔들리는 지금 이 시간이 한국 사회의 공공재로서의 의료를 바로 세우는 유의미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자들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정식 출간본이다. 용의자들 중 누가 진범이라 밝혀져도 몹시 슬플 것이다. 설마 모두 다 연관이 있을까. 아프지만... 끝까지 읽어서 진범을 만나야겠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긴 설명 필요 없는 정해연 작가의 신작.

 

................................................


 

나한테 잘해주려고 무리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말이야. 나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하지 말고, 애쓰지도 말고, 불행하지도 말고, 힘들지도 않을 자신이.”

 

슬픈 대신, 마음이 너무 따가워서 울고 싶었다. 소설인데, 가장 작위적인 연출과 구성을 뛰어 넘는 현실 범죄를 다큐멘터리로 자세히 들여다본 기분이다. 사건의 내용과 해설이 아닌, 작가가 밀도를 높인 사회 문제의 구조적이고 관계적인 원인들이 더 강력하게 전달되니 무서울 정도로 담담한 진술 같은 문장들이 더 무시무시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는 조언은 자주 들었지만, 우리는 정말 그런 솔직함을 바랄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다. 모두 괴롭고 힘든 면면이 있다는 것은 설명일 수 있으나 변명은 될 수 없다.

 

사람은 이상하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으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든다. 나약해서인지도 모르고 사악해서인지도 모른다. 그건 습성이 아니라 본성이다.”

 

각자가 느낀 절박함의 강도를 헤아려보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수치로 정량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저항력과 방어력과 돌발 계수는 또 다르니까. 세상만사를 시스템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지만, 도망갈 구석도 없고, 도움을 받은 통로도 없고, 그저 혼자 안간힘을 쓰다 망가지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건 분명 시스템의 미비다.

 

자신을 때리고 나면 비는 남편, 선생을 사람이기 이전에 신선으로 여기는 학부모들. 선생은 어떤 곳에도 한눈팔지 않고 금욕적이고 도덕적이어야만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허용됐다. 그 어떤 곳에서도 선생은 인간이어서는 안 됐다.”

 

힘을 모아 다 같이 조금만 덜 힘들게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나가는 일은 뭐가 그리 어려워야하며, 왜 그렇게 많은 방해를 받아야 할까.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부모와 학교의 경고가 허망할 정도로, 친족과 가까운 이들에 의한 범죄율이 더 높았다. 부정할 수 없는 통계 앞에서 나는 지독한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두렵고 서글펐다.





 

우정도 사랑도 가족도 이겨 먹는, 얼룩덜룩한 인간의 다른 욕망, 욕심, 시기, 질투, 억울함, 간절함, 추악하고 잔인한 생존욕구, 폭력으로 일그러진 꿈이라 믿는 위선들. 인간은 이렇게 생겨 먹었고, 그런 상태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지향을 가진 교육과 사회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괴로워서 오래 외면한 뉴스와 신문 기사들 몇 년 치를 한 권에 압축해서 목도한 기분이다. 기억나는 작품들 중 가장 무서운 마지막 페이지를 언제 담담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어른이라서 미안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회와 함께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아프다. 이희영 작가는 아마... 그 간절함을 밀도 높은 생생함으로 작품 속에서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누구에게나 유일한 현실이자 삶인 현재에 더 집중하게 해줄 것이다.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틋하고 서러운 나의 기억들과 함께 읽게 될 반가운 작품이다.

 

......................................





 

어느새 중년의 선입견이 이토록 강고한 사람이 되었을까. 표재와 소재에서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묵직한, 철학적인 토로와 고찰을 이어나가는 구성에, 청소년 소설 맞지, 하는 질문이 거듭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전작 <페인트>도 무척 진지하고 심층적인 소재와 메시지였는데, 빨리빨리 대충대충 피상적인 현실의 분위기에 시달려서인지, 그렇게 휩쓸려 사는 게 편해서 동조하며 살아서인지, 결정에 이르기까지 오래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이 오랜만의 감동이라서 진짜 같아서 먹먹해진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됐는데 나우는 오히려 주춤거렸다. 거짓말 같은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 전부를 잃어야 하니까.”

 

과거로 돌아가 친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내 삶이 바뀌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과거의 장면을 바꿀 것인가. 그 선택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없을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런 힘든 일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작가가 독자를 데려가는 곳은, 미리 상상할 수 있는 흔한 둘 중 하나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래서 기대한 만큼 좋았고 고마웠다.

 

인생에서 뒤늦은 ‘if’는 의미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 이 모든 지나간 if는 삶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이라 말할 수 있었다. 무의미하게 과거를 생각하고 그때마다 반복되는 후회로 아쉬워하니까.”

 

지금은 그것만생각하는 법을 종종 잊는다. 생각은 내 몸이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사방으로 달려 나간다. 도착지가 실상이 아니라서 생각은 곧 길을 잃는다. 아무리 고민해도 내 생각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 많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기라도 할 텐데, 갈 수 있는 곳도,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조차 없었다. 어디를 도착하면 이 모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찾을 수 있는 답이 몇 개나 될까, 행동한다고 유의미하게 바뀌는 미래는 얼마나 될까. 하지만, 생각과 행동을 빼면 다른 살아갈 방법이 뭐가 있을까.

 

친구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질문도 답도 친구와는 관계가 없어서, 오랜 숙원처럼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같아서, 청량한 바람을 들이킨 듯 머리가 시원해졌다. 우리가 천착하는 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이다.

 

신은 인간에게 미래를 준비할 혜안을 빼앗는 대신, 그 미래가 현실로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버텨 낼 힘을 주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우는 깨달았다.”

 

우주와 세상의 비밀을 조금 알았을 땐, 막 종교에 입문한 것처럼 완고해졌다. 인간의 짧은 수명을 반(넘어) 살아보니, 겨우 생각들이 말랑해진다. 시공간을 감각하는 것도, 몹시 자연스럽게 시제를 넘나들줄 알게 되었다.

 

작품에서의 시간 여행은, 사랑하는 상대의 눈을 잠시만 바라봐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직접 경험한 지난 삶조차 내 것이라 할 만한 게 있었는지, 얼마나 공고히 실재했는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상처를 지닌 마음들이 상처를 입은 채로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매일 배우는 중이다. 매일 애틋하고 매일 응원하는 중이다. 읽고 나니 주인공 나우’*의 이야기가 치열한 고민을 차분하게 함께 나눈 귀한 만남처럼 느껴진다. * 지금, 현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간, 틈새... 책을 처음 펼친 날은 비 오는 날이었는데 산책이 가고 싶었다. 공간 사이를, 시간의 틈을, 혼몽하게 오래, 고요하게 깊게.

 

뇌졸증이 찾아온 그 밤을 도살장의 한낮처럼 환하게 기억한다. (...) 네발짐승처럼 기어서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집의 창자를 절반 이상 파먹은 뒤였다.”

 

뇌졸증은 두려운 질환이지만, 뇌졸중으로 주인공처럼 뇌가 두 쪽이 나지 않아도, 분리와 단절과 파편화는 매일 진행 중이다. 내가 경험한 과거의 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는 얼마를 영원히 잃고 사는 낯선 존재인지. 얼마나 짧은 순간, ‘존재라고 믿는 결합체는 분해되고 마는 것인지.

 

내게 시공간은 물리학이 정의한 세계였다. 시간의 일방향성부터 배웠고, 이해하지 못한 해밀토니안Hamiltonian 방식의 우주는 시제 없음의 시제와 수축과 확장만이 존재하는 막막 공간이었다.

 

사회 속에서 나이 먹어가며 살다보니, 현실 사회 여기저기 뚫린 시공간의 여백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 여백을 떠도는 말들이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그 여백을 채워야한다는 강박으로 살았고, 누군가는 비어있는상태를 죄나 적처럼 무찔러야 한다고 믿었다.

 

한꺼번에 죽이지 않고 조금씩 죽이고 있는 이유는 죽음의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인데, 그걸 굳이 알고 싶진 않다.”

 

작가를 모르고 읽은 첫 작품에 나는 얕은 감탄사를 계속 내뱉었다. 이렇게 우울감의 타격이 심한 날에도, 깜빡이며 녹아 흐르는 촛불처럼 가슴 한가운데 기쁨이 명멸하곤 했다. 어둡고 건조하고 무거운 범죄 같은 분위기가 다 그만 두고 싶은 어두운 내 기분에 쿵쿵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불가능한 미션을, 신탁을 받은 것이라 믿는 이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것들을 뛰어넘으라고’. 불가능은 오직 노력 부족, 용기 부족, 실천 부족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믿고 퍼트렸다.

 

지금보다 더 끔찍한 인생을 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혀를 깊게 삼켰으며 숨을 오래 참았다. 하지만 짓누를수록 침묵은 더욱 유려해졌다.”

 

자연의 시공간과 같아야하지만, 다른 인간 사회의 수많은 간격과 단절은 인간을 집어 삼키기도 했다. 뇌를 가른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인간적인 것들과, 하천과 그 주변에 응축되고 굳어진 역사와 모순들은, 때론 이야기로 흐르다 넘치기도 하고 한 자리에 고여 썩기도 했다.

 

내게서 가장 먼저 사라진 부위가 사랑을 주관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것들은 증오의 찌꺼기라고 굳게 믿겠다. (...) 마음이 이미 도달해 있는 곳에 몸이 미처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다.”

 

행간이라는 시공간을 걷는 일은, 한 개인의 내면과 삶에 죽죽 그어진, 소통을 그만 둔 조각난 파편들을 주워 모으는 일 같기도 했다. 어리석고 미숙한 실수들로 이어지고 채워진 삶의 궤적, 현재를 만들었기에 제거 불가능한 과거에 결국 잡히고만 여생. 후회가 된다면 변화가 있을까.

 

괴로운 밥벌이에 몰입하느라 너와 나는 육체의 영혼 어느 쪽도 단련하지 못한 채 늙었다. (...)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인생에서 기억과 망상을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삶은 정말 이야기일까, 완결 없이 중단되는 결말이 더 많을 지라도. 들키느니 파괴해버리자는 그 금고 속에, 내가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뿐히 건너뛸 수 있으며 싫증이 날 때쯤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에 몇 개나 있었나, 있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