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유럽에서 여러 해 살다가 귀국하니 정보를 통제당한 사회에 사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국내 언론에서 생산하는 단타 기사는 의미 없고, 미국 중심인 정보들이 지겨웠다. 르몽드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있다는 소식에 구독을 시작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부하듯 읽었는데, 월간지를 완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정책과 외교와 관련 없는 직업에 점점 익숙해지고, 생활반경보다 사고반경이 더 빨리 줄어들었다. 그 르몽드를 다시 만나는 일은 매번 뭉클하다.
불안과 불만이 식욕을 소멸시키는 지금은 어떤 시절이며, 호흡을 몰아 쉬어야하는 갑갑함 속에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할지, 여러모로 저널리즘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른 국가들 어떻게 사는지 9월호는 좀 더 복잡한 기분으로 읽었다.
국제사회의 협의체가 변하고, 외교의 룰이 바뀌고 - BRICS 외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공동 이해를 만나니, 기분은 더 답답해진다. 한국사회는 주저 없이 퇴행 중이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망해가는 중이고, 얼마나 더 견디고 언젠가 회복할 지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안들 중에서도 소위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안들이 있는데, 과학기술과 환경이 그렇다. 이 두 분야에 대한 현정부의 인식은 참혹(지나칠 정도로 한심)하다.
그래서 한국의 영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착착 진행되는 약탈 준비와 영토와 영해를 지킬 능력도 의지도 전혀 없는 정부를 둔 국민으로서 동해(한국해)/일본해(병기 표기)에 대한 이슈와 독도에 대한 문제 제기(주강현)가 반가웠다.
이 문제는 망가진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를 핵종 제거가 아닌 ‘희석’으로 투기하겠다는 공공연한 사기 발언과 이에 찬성하고 자국 세금으로 뒤처리까지 해준다는 듣기도 믿기도 괴로운 현 정부의 행태로 이어진다.
어떻게 지구의 바다에 이런 짓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그동안 몰래 버리고 감춘 노력이 가상해질 지경이다.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환절기 탓인지, 비가 와서인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손가락 통증이 데인 듯 뜨겁다.
피에르 막 오를랑(Pierre Mac Orlan, 1882~1970)의 색과 메시지가 번진 9월호 표지에 울 것 같은 기분을 위로 받는다. 거대한 고통과 비극으로 수렴될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든 대가, 노래할 사회의 환상은 무엇.
무능과 무지와 독선이 결합된 한국의 정치와 외교가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사의 풍경으로부터 독자인 나를 한없이 소외시킨다. 남 일처럼 구경하는 것도 한심하고, 엉뚱하게 휘말리지나 말았으면 하는 초라한 기대가 서글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