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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
크리스 얀들 지음, 최지영 옮김 / 이야기장수 / 2026년 5월
평점 :
에세이는 매번 약간의 두려움을 주지만, 상관이 별로 없을 거란 짐작과 다른 접점들은 신기하게도 늘 존재한다. 특이 이번 에세이는 어른으로서도 양육자로서도 서글플 정도로 부족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독자(나)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 다른 사회 환경이고 아버지도 아니고 도시락도 편지도 매일 준비하지 않지만.
“저는 왜 딸에게 도시락 편지를 쓸까요? 왜 지금이어야 했을까요?”
어떤 우위도 오래 점유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나의 부족함을 낱낱이 절감하는 경험이다. 어른들이 척척박사가 아니란 사실을 아이들은 알아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보다는 더 이상은 겸허해질 수조차 없이 양육과 제 일상에 허덕이고 탈진한 어른 독자에게 더 위로가 되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편지는 아름답지만, 초등학교 이후로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더는 건네지 못한 기도처럼 들린다. 끝까지 네 편이겠지만, 다른 집단과 세대에 속해 살아가고 살아갈 아이에게는 그게 실질적인 힘이 될까 확신할 수 없어 그만 둔 소원 빌기 같은 말들...
“아무도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 (...) 그러나 당연하게도 소통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편지는 생각할수록 두려운 “욕만 하는” “증오로 범벅이 된”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로 읽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SNS 나이제한을 하지 못해서? 더 오래 되고 누적된 오류? 결과 혹은 부작용 따위는 나중 일로 제쳐둔 계산 빠른 어른들의 수익 창출 때문에? 원인을 안다 해도 변화를 위한 행동이 부족할 익숙한 세상 탓?
문제는 복잡하고 다 같이 망할 듯한 흐름은 거센데, 떠오르는 방법은 생각할수록 단순하고 고전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생각도 다른 이들의 말도 차분히 듣고, 천천히 다 듣고, 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찬찬히 곱씹고, 대화와 소통을 끊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려면.
“옳은 일을 위해 나서라. 선의를 위해 부디 당신의 목소리를 내라.”
도시락 편지답게 편지들은 대개 짧고 해석도 길지 않다. 대개 그렇듯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고 행동으로 따르기에는 어려운 일들이라서, 금방 다 읽은 책을 옆에 두고 따끔따끔한 내용들은 자꾸 다시 읽어 보았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숏츠나 릴스로 제공되지 않으면, 10대-20대 - 다양한 국가에서 - 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기도 말하기도 쓰기도 아닌, SNS의 짧은 콘텐츠들로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처럼 무서운 면이 있다. 극우의 부상과 확장도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알 것 같은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모르겠다. 무엇도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는 조급증에 자주 목이 마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할까. 옳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말하는 대신 좋은 본보기가 되자. (...) 타인의 의견에 침묵하기는 쉬워도 행동을 외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