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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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투항하듯 힘을 빼고 다만 존재해 있음을 연습합니다.”

 

2000년대 뉴에이지 열풍은 내게는 재난 같았다. 사상이든 이념이든 뭐가 되었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식의 언어와 대화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유럽인들이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대상화된 면면이 내게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일이 귀찮고 난감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살며 영국을 방문한 틱낫한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강의 주제에 큰 관심을 없었다. 그래서 각자 시끄러운 마음으로 조용한 방에 모여서 눈을 감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따지듯 질문했다. 그리고 내게 딱 맞는 평생 할 수 있는 걷기 명상을 배웠다. 생각지도 못한 명상 스승이 생겼다.

 

명상의 목적은 음악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음악은 침묵을 향해 흐릅니다.”

 

음악을 만드는 저자의 명상 이야기는 음악이 더해진 만큼 다채롭다. 음악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문장들에 가만가만 위로 받으며 감사히 읽는다. 다만, 군사 용어들 - 투항, 항복 등 - 이 눈에 띄어서, 명상은 평화를 지향하는 실천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로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저자가 생각에 잡아 먹혀 곧 그 생각이 나라는 오해로 더 괴로워지는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주는 내용이나, 명상이 나를 잘 알기 위한 수행이라고 해서, 내 욕망 목록을 정리하는 일은 아니라는 내용 등은 환기가 필요하고 유용한 지적이라서 반가웠다.

 

죽음을 명상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명상하지도 못하고 애도도 충분히 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상실과 부재에 휘둘리고, 죽음에 가까워진 분들에게 별 위안과 의지도 되지 못하는 처지라서, 이런 시기에 명상 이야기를 다시 만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호흡도 고르고 걷기 명상을 좀 더 명상답게 해보았다. 올 해는 진짜 봄을 못 만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걷다가 내려다본 땅 위에도 올려다본 하늘에도 멀리 내다본 풍경에도 꽃이 만개해 있어서 뭉클하고 반가웠다. 한반도 전역에 시차 없이 피었다는 소식이 좀 서글프긴 했지만.



 

바빠서 숨 가쁜 모든 분들이 잠깐만 멈춰서, 이 계절의 꽃과 풍경을 보고 가시기를. 그런 순간이 가장 좋은 그날의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고마운 명상 동료인 저자의 음악도 찾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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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토
빅터 D. O. 산토스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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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제때가 있잖아. 그렇지?”

 

표지를 보고 한참 상념에 빠졌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순차적으로 들고 나는 시간은 얼마나 더 오래 가는 걸까. 기억은 계속 재구성되니,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처럼 항상적이지 않다. 다행인 것은 더 아름답게 - 기억하기 덜 고통스럽게 - 바뀐다는 점이다. 재현이 생생할수록 그 끝이 더 슬펐는데, 이제 어떤 장면들은 분량도 색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전시회에 혼자 가서 가만히 오래 보는 것처럼 그림책을 넘겨보았다. 문자를 따라 빨리 삼키는 방식이 아닌 독서가 주는 위안과 즐거움이 오랜만이라서 더 크다. 다정한 대화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 했다. 생각도 감정도 호흡도 차분해져서 그만큼 수명이 늘어난 기분.

 

마지막 숨을 다 쓰고 나면 삶은 끝에 이르는 거야. 피니토.”

 

그림책 덕분에 잠자리에서 심호흡과 이완 명상을 했다. 근육과 장기가 이때다 싶게 통증을 호소하더니, 호흡을 계속 하니 점차 편안해졌다. 하루종일 앉거나 서서 살아서, 움츠리거나 웅크리고 살아서, 긴장과 수축된 몸을 훌륭히 자가 치료한 기분이 들었다. 통증이 사라지니 무언가 달콤한 감각이 채워진다. 그리고 긴 꿈을 꾸었다.

 

이런 현실이면 좋겠다 싶은, 깨기 싫은, 매일 다시 꾸고 싶어진 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도, 상대를 잘 알아볼 수 있는 다른 감각이 따스한 꿈. 언제 이렇게 들썩이게 즐거웠을까 까마득한... 참 좋은 휴식 같은 한낮의 꿈, 좁아진 시야가 확 밝아지고 시원하게 넓어져서 온갖 마법 같은 자연을 알아볼 수 있는 꿈.


어쩌면 그 생각 하나로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가장 아끼는 기억 하나마저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 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그렇게 기억이 헝클어지는 아끼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기억하는 그분들의 젊은 시간, 크게 웃던 순간을 자꾸 되감아 본다


생명 있는 개별 존재들은 아무리 간절해도 필멸하고 말지만, 생명의 순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않고 이어진다. 형태를 달리해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을 경험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고맙게도 슬픔이 옅어진다. 기억하지 못해도... 또 만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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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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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수업료를 충분히 냈다. 그것도 너무 비싸고 많이 아프게. 그러고서도 배운 게 없으면 정말 슬픈 일이다.”

 

최종 추출되거나 고공 관찰된 개념적 고민을 하다가, 구체적 사건들이 담긴 기록을 읽자니, 정신이 착지하는 기분이다. 분노하고 충격을 받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느새 잊거나 흐려진 쪼개진 시간을 다시 모아 반추하고 반성한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파시즘적 열광의 뿌리”, “바람직한 정치 윤리”, “연대는 평등환 관계에서”, “신중한 책임감”,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

 

멈춰 생각할 수 있어서 울화로 들끓던 순간들로부터 잠시 쉼이 된 질문들이 많고 여전히 유의미해서 좋다. 소확행에 밀려난 이념적 고집도, 트렌드에 밀려난 존엄과 자기 인식도, “사람들의 결심과 행동이 정치라는 인간관계의 또 하나의 본질로 다뤄주는 통찰이 베프를 만난 듯 반갑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다. 두려워하지도, 비장해지지도 않으면서 발랄하게 할 말을, 할 일을 다 했다.”

 

고단하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임을 상기하고 기분을 추스를 수 있어서 고맙고, 불평의 모든 순간에 내 대신 보이지도 않는 노동을 해준 이들이 아주 많았다는 걸 기억하게 도와줘서 많이 부끄럽다. “잡일로 호명되는 이 수많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었는데, 변화는 느리고 나는 빨리도 늙는다.

 

미래를 향해서라면 단일 대오는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 우리에겐 돌아갈 정상 상태가 없다. 이제 새로 길을 내며 나아가자.”

 

못마땅해도 매일이 이렇게 살만하게 굴러가려면, 수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작은 호의들이 틈을 메워야 겨우 가능하다는 것을 못 본 척하지 말자고, 그 잡일을 내가 감당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순간마다, 내 삶 자체를 고민하자고, “그날 이후 기억하겠다란 말은” “범박한 일상에 젖어가는 부끄러운 나를 깨우치는 다짐의 말이 됐다는 걸 다시 기억하자고.

 

그렇게... 엄연하고 강고한 거시 세계의 폭력과 광기에 지지 말고, 내 작은 삶의 의미, 작은 실천들,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멈추지 말자고, 그렇게 도착할 수는 없지만 다가갈 수는 있는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자고 혼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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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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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고 정신이나 일상에 여유가 더 생기진 않는다. 마주해야할 큰 문제들이 산적할 뿐. 명상이 필요하다면 이 시기...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 같아 이 책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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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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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살기로 읽어야 한다고 해서 죽기 살기로 읽어볼 결심을 하고 펼쳤다. 제목과 띠지만 읽어도 고통스럽지만,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 이미 만만치 않아서 기운이 없지만, 이렇게 내밀한 타인의 이야기를 읽어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주저할 모든 이유가 읽고 싶은 모든 이유도 되었다.

 

끝없는 혼잣말이었던 소리가 언제부터 노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시력은 더 약해졌는데 어쩐지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눈치가 없고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헤아림이 부족하던 나도 살아온 시간이 능력치가 되어 상대가 말하지 않은 생각과 기분을 짐작하게 만든다. 알려진 대로 이 초능력(?)은 대개 해당 소유자를 더 힘들고 불편하게 한다.

 

의식적으로 깊은 호흡을 해야 할 만큼 힘든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2, 3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혼탁하다. 여전히 나는 안전하고 삶을 위협받지도 않지만, 돌봄 노동은 감정이든 아무리 결심해도 체력, 감정, 인내심을 순식간에 소진시킨다. 그래서 여러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문장이 오래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주일만 쉬라고 했는데, 왜인지 언니는 영원한 쉼을 선택했다.”

 

평생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독자여서, 엄마와 자매의 이야기라면, 심장부터 덜컥거리지만, 일상이 힘드니 오히려 꼭꼭 씹어 넘길만하다. 도무지 의젓해지지 못한 미()어른 중년 독자로서, 체력도 감정도 최약체인 지금 이 이야기를 만나 참 다행이다.

 

멀쩡히 상례는 치렀지만, 그날로부터 아직 몇 걸음 멀어지지도 못한 채 다시 선친의 2주기를 맞아야 한다. 작가가 전하듯 어떤 이별은 영원히 소화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는 일이 그러한 사별이 체증처럼 계속 쌓여갈 일이기도 해서 자꾸 정신이 아득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 사라지는 이 간절한 이야기가 예방주사처럼 아프고 의지가 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왜 한국에서는 출간하지 않으려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디서든 읽혀야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많이 읽혀야한다. 당장 내 주위에도 이 책을 곱게 싸서 손에 꼭 쥐어주고 싶은 친구들이 적지 않다. 출간되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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