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괴물들 - 불안에 맞서 피어난 인류 창조성의 역사
나탈리 로런스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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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장 두려워한 괴물()을 기억하나요? 혹은 꼼짝없이 사로잡힌 최애 괴물()이 있나요? 인간의 창조성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다종다양한 괴물들에도 드러납니다. 굳이 왜 괴물이 필요했는지, 몹시 재밌는 탐구서일 거라 기대합니다. 이른 봄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법, 형광연두색 표지로 도착해서 더욱 설렙니다.



 

괴물을 없애고 싶어 하는 만큼 괴물에 끌린다. (...) 진정으로 피할 수는 없다. (...) 자꾸만 돌아온다. 어둠 속, 침대 밑, 꿈속 세상의 통제 불가능한 여백으로부터.”

 

깔끔하게 정의할 수 없어서 더 두렵고, 인간의 세계관이 가진 스펙트럼만큼 다양한 괴물(), 인간이 외면하고자 하는 모든 추함을 갖추고 끝없이 재생된다. 인류는 때론 당대의 최고 지성으로 고안한 미로에 우리의 괴물 같은 부분들을 가둬두기도 했지만, 무엇도 완벽하고 영구적이지 못했다. 결국 문명이란, 억제된 면면으로 외형을 만들고 불가피한 상실로 채워 현실화된 상상이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 해에 걸쳐, 같은 괴물에게 쫓기고 같은 장소로 도망가서, 같은 결론으로 벗어나는 꿈을 꾸었다. 결국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그 괴물은 꿈이 익숙해질수록 두려움과 존재가 희미해졌고, 그 모든 꿈들에서 나는, 이웃과 타인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천천히 배울 수 있었다.

 

영장류의 뇌는 포식자인 뱀을 피하려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진화했다. 뱀과 함께 진화하면서 우리의 지각 체계 그리고 시각에 지배를 바든 큰 두뇌가 극도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괴물 교과서처럼 재밌는 이 책을 즐겁게 읽고 배우며, 수많은 괴물들 중 내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괴물의 유형과 자연의 형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아주 유익했다. #강추

 

어린 시절, 하늘을 날아 도망가는 결말보다, 바다로 뛰어 들어 물에 잠기는 방식이 어째서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는지도. 다른 한편, 잠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물에 잘 뜨고 물을 좋아하면서도, 문득 내려다본 어두운 바닷물 빛에 몸이 경직되어 위험에 처했던 그 순간이 무엇이었는지도.

 

물속이나 물가에서 인간의 뇌가 안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뇌 영상도 있다. 그러나 (...) 강과 바다는 풍요롭고 생산적인 동시에 거대하고 파괴적인 불가항력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괴물을 분석하고 인간의 심리를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구 최대 단일종인 인간은 야생을 거의 남겨 두지 않았고, 거의 모든 자연 - 자신의 생존 기반 -을 망가뜨리고 오염시키는 자기 파괴적인 변태적 위험 행위를 지속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길들여지고 사회화된 인간의 능력 말고, 외면하고 가두고 숨기고 부정했던 괴물 같은 측면들,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더 유의미한 제안을 들려준다고 한다. 괴물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그토록 여러 번 반복된 불필요한 박멸과 생태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인간이 다른 생물 그리고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학적 이해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 이 둘 모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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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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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Holes>는 흐려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문학 체험이었습니다. 어린 제가 읽을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늘 궁금한. 그 루이스 새커Louis Sachar 작가의 신작이라니, 기대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요약 기록이 실화인 듯 부활한 창작물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다. <구덩이>에서 드러난 매력들도 여전하고, 낯선 중세의 풍경을 블랙유머 같은 한가득 반전으로 채운 전개는 위트와 재미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무방비로 웃으며 즐겁게 읽었다.

 

화자가 왜 불로불사 상태가 된 것인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도입부터 흥미롭지만, 딱히 한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지 않아도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성장이 골고루 궁금한, 자연스럽게 영상화된 장면을 그려보게 되는 멋진 작품이다.

 

아이의 갈색 눈에는 관심과 호기심이 가득했고, 파란 눈에는 반항심이 반짝였다.”

 

호랑이가 어떤 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까 계속 궁금했는데, 마치 <모비딕>처럼 기대한 사건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놓치지 않는 능숙한 직조공인 작가는,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에 호랑이 소재를 시원하게 활용한다.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체증이 내려가는 듯 통쾌했다.

 

영화 한편보다는 2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재탄생해주기를 급 바라게 되는 작품이다. 400년 동안 인간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를, 조금은 뭉클하게 증언하는 감동도 전하면서, 갑갑한 심정으로 현 시절을 견디는 독자들에게도 어떤 위안과 힘을 건넨다. 실컷 웃으며 도착한 마지막 페이지를 쉽게 덮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한 희망을 계속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피토와 툴리아가 미국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풍요롭게 잘 살았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매해 연말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아담스 패밀리, 판의 미로 등 판타지 작품들을 하루 종일 본다. 현실로부터의 행복한 도피이자 휴식이다. 언젠가 루이스 새커의 작품도 이 목록에 추가되기를 바란다.

 

* 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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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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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인생에 제법 기대가 컸더랬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점검해볼 마지막 기회였다.”

 

독서가 가진 힘은 다양하고 그 중에는 분명 처방”*의 효과도 있다. 아주 오래 독서가 직업 자체였고, 독서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은 인간의 수명에 문득 서글퍼지는 내 경우에도 그렇다. 특히 코로나 시절에는 여러모로 미칠 듯한 일상을 견디는 힘을, 북클럽과 독서에서 나눠 받았다. * 원제 remedy

 

이런 고백(?)은 많이 들었지만, 독서가 삶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처방이 되었는지를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미처 듣지 못한 내 할머니나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애틋하고 반갑게 만났고, 유쾌하고 재밌게 읽었다. 또한 영국 유학 시절 비로소 읽게 되어, 작품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까지 모두 섭렵한 제인 오스틴 팬으로서 읽기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이 일흔에 시작한 오스틴 다시 읽기가 나를 위로하다 못해 나를 인생의 화양연화로 이끌 줄이야.”

 

여성으로 태어난 것뿐인데, 그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한번 꿈꿔보지도 마음껏 살아보지도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목소리에 중첩되어 들린다. 여성의 수명이 긴 것은 늦더라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라는 기회가 아닐까 싶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가는 개인사와 공동의 역사가 귀하다.

 

계기가 무엇이든 - 저자의 경우 재활 치료 - 작품의 세계관에 비추어 자기 삶을 탐색하는 열중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읽어야 하거나 읽고 싶은 책들만 일던 시절에도, 재미와 휴식을 위한 시간에도, 경계를 넓히기 위한 강제(?) 독서에도, 내게는 없던 태도라서 부럽다.

 

과거의 재미를 되새김하되 다른 가능성에도 마음을 열고, 내 감정과 생각과 인생 경험을 남김없이 끌어모아 읽는 행위와 읽는 기술에 쏟아부으리라.”

 

모두 행복해지고 오해가 풀리는 동화 같은 면이 있어서 좋은,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고심에 빠진 독자의 손을 살짝 잡아주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유의 성장과 태도의 변화를 선명하게 가이드해주는 힘이 제인 오스틴 문학에 있다고 공감한다.

 

주류 미디어든 어디든 남성 창작자과 생산자들이 넘치는 세계에서, 그게 너무 지겨운 시청자이자 소비자로서, 이 작품은 오랜만에 취향이 맞는 친구와 함께 하는 북클럽 활동 같았다. 여러 이유로 강퍅해지는 정신을 편하게 쉬게 해주는 해독제룰 얻은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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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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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토록 용감한데, 실화의 내용은 더 용감할 텐데, 읽는 것도 두려운 겁쟁이 독자입니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용기의 기록을, 오랜 취재의 소중한 고발과 상세 내용을 꼭 읽고, 그 참상을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이 촉발한 혼란에 제대로 맞서지도, 상황을 해결하지도 못했다. (...) 멕시코에서는 종종 법치가 유명무실했고, 부패한 정부와 범죄 조직의 만연한 유착관계는 (...) 한 세기 넘게 이어졌다.”

 

멕시코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어서, 소재의 참담함에 더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쓰린 속을 달래가며 읽어야했다. ‘르포르타주방식의 기록의 가치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방식이 있을까 싶게 감탄스러운 책이다.

 

읽기 전에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공감하며 범죄 조직에 대한 분노로 읽게 될 거란 짐작을 했다. 하지만, 다각도로 총체적으로 문제를 살펴보는 탐방 기사, 진짜 저널리스트의 시선은, 왜 조직범죄가 어떤 공존도 불가능한 형태가 되었는지, 가담 조직원들은 어떻게 거대 범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러니 결국, 이 모든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은 국가적 실패. 70년 동안 대통령만 바꾸었지, 불평등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희망이 너무 없는 사회에는 범죄 조직들만 번성을 거듭했다.

 

멕시코정부 인사들은 범죄 조직의 협박에 순응하며, 진실을 은폐 왜곡하는 것을 주동했고, 살인 가해자들은 대부분 처벌 받지 않는 지경이 이르렀다. 멕시코의 조직범죄 세력은 이렇게 국가에서 주는 살인 면허를 받아 운영되었다.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것은 두렵고 끔찍했지만 (...) 멈출 수 없었다. 심연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적을 늘려가며, 모든 현실적 위협을 감수하며, “살해당한 딸을 가진 어머니가 추적을 계속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의 죽음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려고, 거대 기업에 맞서 수년간 싸운 한국사회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무리 간절해도 목숨을 걸어도 희망, , 이상은 원형대로 구현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었더라도, 이전과 다른 모든 변화가 가장 빛나는 성취고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관성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처럼 막막하고 힘든 일이니까. 가장 현실적인 성공과 희망의 이야기를 많이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정의가 전혀 구현되지 않는 것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구현되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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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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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던 보드게임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이번엔 얼마나 더 기발한 게임규칙들이 긴장과 재미와 감탄을 줄까요. 2권을 주문 해두고 설레며 1권 읽기 시작.




 

의식은 여러분의 뇌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의식의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지 않아요.”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진짜고, 사실 그대로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작가의 호언장담이 첫 페이지에 기록된 것이 반갑다. 진위와 무관하게 크게 웃으며 더 흥미롭게 읽게 된다.

 

기호학은 여전히 재밌고, 노에틱은 어떤 학문인지 모르지만, 등장하는 소재들이 길게는 30년 전에 내가 관심이 가졌던 것 - 새들은 어떻게 부딪치지 않고 군무를 출 수 있을까* - 도 있고, 내 비밀번호를 구성하는 Pi가 등장해서 잠시 등골이 서늘했다. 덕분에 몇 년 만에 중요한 비번 몇 개 변경 완료. * 행동 동기화

 

“‘프라하문지방이라는 뜻이었다. (...) 수 세기에 걸쳐 이 마법의 도시에는 신비주의, 유령, 정령이 들어찼다.”

 

그 외에도 인간의 감각이 사물을 실체 그대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인간의 뇌가 얼마나 착각, 편향, 오류 기억이 쉬운지를 보여주는 점이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모든 것이 진짜라는 장담에 설득력을 더한다.

 

더구나 현재의 과학기술들과 전 세계인이 소셜 미디어에 의심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정보들이 전 세계인 누구라도 감시, 사생활 침해, 더 나아가 범죄 가능하도록 활용되는 전개는 허구가 아니라서 소름이 끼친다.

 

우리는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사실 우리는 완전한 전체에 통합된 존재인데 말이죠. 개별성은 우리 모두의 착각일 뿐이에요.”

 

주요 캐릭터들은 아주 매력적이고 특징적이다. 역시 영화화하기에도 최적인 설정이라 느낀다. 물론 그저 편히 읽게 두지는 않는다. 크고 작은 반전들은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지 전에도 계속 이어진다.

 

좀 더 오래 산 덕분일까, 저자의 전작들을 재밌게 읽으며 기호학 훈련이 된 덕분일까. 이번에는 암호의 힌트들이 비교적 쉽고 빠르게 보였다. 이제 캐릭터들의 배경과 서사는 거의 나온 듯하다. 이어질 2권의 내용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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