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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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부분이 그것에 묻혀 있었다. 펼쳐지지 못한 충동들과 구원받지 못한 청춘 시절 꿈들은 이 얼마나 충만한가!”

 

만듦새가 아름답고 시집 한 권 정도의 무게라서 사랑스러운 책이다.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헤세의 산문은 산문시처럼 읽혀서, 소리 내어 짧은 한편 한편을 천천히 읽고 싶어진다.

 

더위에 취약해서, 가을 겨울이 되면 상대적으로 정신이 좀 더 맑고, 문득 행복해지는 기분도 들고, 깊은 잠도 때론 자고, 어릴 적부터 반복해서 꾸는 광대한 꿈을 다시 꾸기도 한다.

 

고요한 슬픔 밤이 나를 위로하고 잠재우며 내 위에 궁륭처럼 떠 있다. (...) 잠과 꿈이 내게로 찾아와 죽을 것만 같은 무게를 내 어깨에서 여행 보따리처럼 내려주었다.”

 

헤세는 자신의 뮤즈가, 스스로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욕망과 사랑과 떨림과 의혹과 맞닥뜨린 모든 한계점들을 담은 자신의 글에 한숨을 짓는다고 하지만, 창백한 죽음과 같은 시간이야말로 이해되지 않은 불가능한 세계여서 경이롭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는 조악한 낮의 현실, 그 막막함도 어둑해지는 저녁 귀가 시간이 되면 호흡을 찾게 허락한다. 달라진 공기의 질감을 느끼며 연습을 무용하게 만드는 이별로 상실한 이들을 살이 저미듯 그리워한다.

 

모든 낮의 삶에는 부족함이 배어 있어요. 모든 어둑해지는 저녁은 귀향이, 열리는 문이, 모든 영원의 소리가 들림이 아닌가요?”

 

어둠은 가장 진실해지는 공간이고, 밤은 가장 절친한 영혼이다. 누구에게도 그 내밀한 진짜 나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헤세는 그 어려운 일을 문학의 형식으로 창작의 방식으로 언어화시키니 이 산문집이 참 소중하다.

 

손가락 두 개로 들어도 무게가 감당되는 인간의 깊은 밤 풍경들, 한동안 기꺼이 가방 속에 쏙 넣어 다니려한다. 어둑함의 표지의 빛을 닮은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다시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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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바이러스 - 우리는 왜 적대적 인간이 되는가, 카를 융이 묻고 43명의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저널리스트가 답하다
코니 츠웨이그.제러마이아 에이브럼스 지음, 김현철 옮김 / 용감한까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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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의식할 수 없다. (...) 주목과 집중은 어떤 것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를, 어둠에 머무르기를 요구한다.”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

 

심리학을 전공한 숙부 덕분에, 전공과는 꽤 거리가 있던 융 심리학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유학 간 영국에서, 분석심리학파인 제임스 힐먼의 특강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우연들로, 내가 이해하는 심리학은 약간의 융의 이론뿐이다.

 

제임스 힐먼은 여러 해 전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고, 내 책장엔 읽었으나 이해가 부족한 그의 책이 여러 권 있다. 2025년에 반갑게 만난 이 책에서, 융 심리학과 제임스 힐먼을 다시 만나, 추억을 담은 앨범처럼 재밌게 읽고 새롭게 배웠다.



 

자아ego와 자기self의 변별, ‘그림자가 무엇을 뜻하는 지 재정리하고, 내 자신이 이고 지고 끌고 다니는 그림자를 생각한다. 각자의 그림자가 선택한 행위로 인해 드리운 전 세계적인 그림자가, 어떤 생명체보다 더 빨리, “거대한 미디어의 메시지 파도 속에서혐오스러운 집단 그림자의 무대를 형성하는 재난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이성의 세계 아래 또 다른 것들이 묻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를 인정하기 전까지 인류가 과연 어떤 일을 더 겪을지 알 수 없다.” Carl Gustav Jung

 

자유는 확대되고 개인성과 자율성은 확장 될 거란 오랜 기대와 달리, 세계는 전체주의방식들을 선택 강화하는 듯하다. 개별 악행들의 종합적인 결과는 개인적인 특징만 가지는 게 아니라서, 무기력과 죄책감은 거대해진다.

 

서양의 오랜 주류 사고방식이던 이분법을 거부하는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와의 갈등은 자아 각성self-awareness에 꼭 필요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스스로가 그러한 갈등을 각성의 계기로 삼기도 하고, 서로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힘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호모 호스틸리스는 교정할 수 없는 이원론적 사고를 지닌 도덕주의적인 마니교 신자와 같다.”

 

불특정 다수를 혐오하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행태를 이해할 여유와 힘이 내게는 참 부족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결국 사회에 적응한 비양심적 사이코패스가 패권을 잡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역사는 여전한 희망이다.

 

그림자가 없앨 수 없는, 존재하는 모두가 가진 구성요소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그림자, - 나의 사이코패스적 측면을 찾아내는 동시에, 사회적 권력을 취하려고 부상하는 사이코패스를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을 거듭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책이 주는 경고와 가르침이 엄정하고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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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트 -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
제레미 모로 지음, 박재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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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시인과 루리 작가가 추천하는 그래픽노블이 출간되었습니다. “알리트풀리지 않는 매듭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크고 묵직한 양감이 주말을 든든히 채웁니다. 표지 첫 대면에 많이 설렙니다.



 

제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고, 용감하지 못하고, 저항하지 못해서 생긴 일들 같아요. 모든 것이 정말 버거워요.”

 

이 작품은 인간의 언어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관점이 아닌 방식으로 우주의 풍경과 삶의 본질을 보고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그래픽의 색감이 인간의 시력에 익숙한 빛과 색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시선의 높이와 매질 또한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참 멋진 문학적 체험입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모두 새로운 형태의 실바라는 것을.”

 

반백년을 살아도 사람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정의 내릴 순 없습니다. 원자들의 결합과 분해로 이해하는 무정한 우주의 기계적 운동이 이토록 간명한대로 그렇습니다. 지각과 감정을 느끼는sentient* 존재로 인간과 다른 많은 생명체들이 진화해서이기도 할 것이며, 제 존재의 의미와 세계의 실체를 인지하는 의식이 창발한emerging conciousness 존재여서도 그런 듯합니다.

 

그렇게 인간 독자로서 복잡한 감정의 맛을 느끼며, 천천히 봅니다. 로드킬과 무자비한 멸종 유발에 집중한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서, 개체로서의 생명을 넘어선, 생명계 전체의 순환 원리를 충격적인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예술작품이라서, 몇 번이나 흔들리고 휘청대며 감상합니다.

 

나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 우리의 생명은 언젠가 멈추지만 그 메아리는 세상 어딘가에서 반드시 울려 퍼진다.”

 

질투가 날 정도로 (인간)종중심주의를 벗어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더 잘 전달되는 메시지의 매력을 절감합니다. 루리 작가와 유진목 시인의 추천이 더없이 어울리는 사유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설명보다는 우리가 살아 있다, 다른 살아 있는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러니... 요란하고 소란한 경쟁과 지배 대신, “함께 엮이고 얽혀 살아가는 연대의 삶을 아름답게 제안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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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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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의 노랑노랑이 기억 속에서도 아직 이렇게 선명한데, 벌써 5년 전이라니... 예술은 사라지지 않아도, 내 수명은 호다닥 확실하게 사라지는 중니다. 읽기 전에 사진과 컬러 도판 130개를 넘겨보는데, 읽는 책의 형태를 한 소장각 예술품 같다.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시간을 기억하면서 삶의 흐름을 나의 방식대로, 속도대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입니다. 맹렬히 지나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숨 막힐 정도로 무수한 사건 속에서 나 자신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술의 명성이나 자본을 신화화하지 않으려는 분투이기도 합니다.”

 

30대까지는, 숙제처럼 전시회를 다녔다. 양질전환을 바라며 폭식하듯 가능한 경험을 늘렸다. 한두 시간이면 국경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유럽에 사는 동안에는, 낯선 도시의 다른 풍경보다 미술관과 박물관에만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런데, 바라던 양질전환은 고사하고, 어느 순간 나는 식체한 듯 내 시선으로 예술을 보는 일이 지겨워졌다. 동시에 예술을 보는 내 시선이 지겨웠다. 체기가 병이 되었는지, 한동안은 작품들이 예쁜 쓰레기 같기도 했다.

 

미술계가 세상보다 더 넓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스타 작가만을 좇는 근시안적 행태를 겸허히 반성하게 하는 존재들이 바크만의 집 도처에 놓여 있었다.”

 

하는 예술도, 보는 예술도, 아닌, 그래서 읽는 예술로 체험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바뀐 듯하다. 선물로 받은 이 책은 그 묵은 체증을 내려주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아름답고 치열하게 사람들과 세상에 고요한 외침을 들려주고 있는 지를 새롭게 알려준다.

 

함께 하는 삶의 일부로 존재하나 자기 자리를 고집하지 않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보는지를 도구적 허구로 가르쳐주는, 이 모든 불확정성과 취약성을 현실로 나 자신으로 인정할 용기를 내어주는 그런 작가들을 만난다.

 

예술은 하는Doing Art 게 아니라, 그냥 인생을 사는Doing Life 겁니다.”

 

공동체가 없다면, 서로가 없다면 예술도 없다. 내게는 그것만이 자명하다. “몸과 정신, 공동체와 땅의 오랜 기억을 자각하고 공유하며 창조한자신만의 내러티브로 진실을 그리는 작가도 만난다.

 

덕분에 관람과 애호의 입장이 아닌 나를 고민해본다. 예술이 이토록 풍성한 지구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왜 기세등등한지를 애통해한다. 너무 빠른 판단을 내려할 때에도 이 일이 아름다운가란 질문을 잊지 않기로 한다.

 

만약 어떤 인생이 숭고하다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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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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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객관적 조건만으로 행복을 지속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행복의 부재가 곧 고통이냐고 물으면, 오래 생각해봐야할 문제이지만.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삶을 살아도 고통을 늘 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심장이 아파오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의 나의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의 대답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을 보고 오해한 철학책이다. 사회적 문제로서의 생명 부정과 자살의 문제, ‘그럼에도살아가야할 이유 등을 담은 내용인가 했는데, 동서고금 문명사 전체를 살펴보며, 인류가 교류한 생명에 관한 철학을 소개한다.

 

문해력이 약해서 살짝 두려웠으나, 체감상 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철학 사상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그야말로 보편 경험이고, 사유하는 생명체로서 이보다 더 궁금한 소재도 없다.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배후에는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 그렇지만 (...) 해결되면 동시에 해소되는 탄식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한계 또한 인식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우주에서 물질화된 모든 것이 재활용 - 재생 - 되는 방식의 윤회는 분명하니, ‘애초에 무엇이 윤회하는가라는 불교의 논쟁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개체로서의 내 존재 - 또한 사랑하는 이들 - 의 소멸은, 어찌되었든 근본적으로 서러운 일이라서, 수행자가 모든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진다는 불교의 열반이라는 종착점이, 우매한 내게는 큰 평안이자 여전한 통증이다.

 

제목 같은 생각이 든 적이 있는 이들도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요즘도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동안 겪는 삶의 모든 면면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기에 견딜 만하기도 하다.

 

운명애란 단순히 운명이라는 필연성을 긍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필연성의 내용이 무엇이건 그것을 긍정하고 수용하겠다는 결의를 내포한 개념입니다.”

 

이제는 정말 흐릿한 전생의 꿈같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철학도 배웠다. 대단한 통찰이나 성취는 없었지만, 철학서를 읽는 훈련은 지치도록 받았다. 덕분에 그때는 몰랐던, 생명철학을 읽는 지금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니 순응이 아닌 결의로 삶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내지 못하도록 하는 불의한 것들을 또 다른 결의들로 함께 바꿔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인간이라서 외롭고 괴로운 운명이라는 필연성이 조금 더 견딜만해 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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