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부신 인연
나은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6월
평점 :
<더 깊고 더 아픈 사랑> <어느 날 누구에게나 찾아온 행복> 그리고 이번 시집. 나은숙 시인께서는 일 년에 한 권씩 꾸준히 출간하시는군요. 반갑고 멋진 일입니다. 시인의 시선에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기대하며 펼칩니다.
어느새 8월입니다. 겨울, 봄이 지나고 한 여름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짧은 시간 같기도 하지만, 세세한 기억들은 찾아보지 않으면 가볍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시집 속에 계절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나둘 생각이 납니다.
힘들고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점점 더 작은 세계로 움츠러듭니다.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 방어와 생존에 쓰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 해 봄은 더구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봄 얼른 지나가버리라고 자주 생각했던 듯.
시인이 “따스한 숨결에/만물이 요동치고 있다/ 그런 봄기운이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해서 내가 놓친 봄을 이제야 아까워해 봅니다. 전 세계 하천과 강이 카페인 범벅이라고 해서 끊었던 커피를 가끔 사마십니다.
알게 뭐야, 커피 한 잔도 고민스런 삶을 산다고 기후붕괴를 내가 어쩔 거야, 싶은 못나고 뾰족한 마음이 듭니다. 잔을 받아 마주하면, 묵직한 현실이 체증처럼 먼저 옵니다. 그렇다고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보이는 것보다/보이지 않는 곳에서/그 속에 감춰진 얼룩들로 가득하다”는 구절을 오래 봅니다.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이 좋은 나는 여름의 모든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힘이 듭니다. 더위 자체도 힘들지만, 창을 모두 열고 자야하는 밤은 불면이 잦은 시간입니다. 여름밤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로 소란스럽습니다. 공기마저 수군거리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무더위와 각자의 지침과 각자의 삶의 굴레가 다르겠지요. 내 힘겨움의 강도가 휴식 같은 이들도 있겠지요. 택배 배송을 삼가는 날들이지만 무언가가 현관 앞에 도착하는 날도 있습니다. “남모를 열기를 견뎌 낸 이들”의 충분한 휴식을 바랍니다.
산책길에 만나는 청단풍을 책 속에서 만나 반갑고 “한여름 밤의 꿈을 꾸듯 빛나는 별빛”이란 사랑스러운 소개에 기쁩니다. 나무 밑에서 길고 깊은 호흡을 하며 나무와 호흡을 교환합니다. 가을이 오면 나는 그저 늙고 나무는 다채롭게 빛나며 다음 생을 준비하겠지요.
겨울에만 머물러서 겨울 풍경 밖에 모르는 부다페스트의 사진을 꺼내봅니다.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던 가득했던 눈이, 펄펄 날리며 내게 달라붙던 커다란 눈송이들이 그립습니다. 폭염도 태풍도 지나고 비켜가고 고요한 계절들을 만나보고 싶은 8월의 첫 주입니다. “서리꽃 녹아내려 얼음꽃이 피어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