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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그레이스 조의 에세이지만 주인공은 ‘군자’씨 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사라진 한반도는 곧 전쟁으로 불바다와 폐허가 되고, 반으로 잘리고, 남쪽엔 미군이 상주하게 되었다. 집성촌에서 일해서 아이 둘을 먹여 살린 여성이다.
군자(1941~2008): 한국인. 여성. 생존자. 디아스포라. 유령.
식민지에 태어나 전쟁에서 살아남고 독재를 겪고 온갖 다사다난을 겪은 조부모님들 얘기를 통해서만 참상을 전해들은 나는 폐부를 찌르는 몸의 감각도, 이산의 슬픔도, 상실의 아픔도 없이 운 좋게 살아왔다.
지구가 가열되는 것이 가장 두렵지만, 2022년 봄, 과거의 유물 같던 먼 곳의 전쟁 소식에 뇌진탕인 듯 멍하고 어지러웠다. 무지성과 폭력의 최정점에 자리한 윽박지르는 힘의 논리인 전쟁은 과거기록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대단한 이유도 대의 같은 것도 없다. 모든 전쟁은 최악이고 추악할 뿐이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전쟁의 참상이 아니라, 생명을 건 생존기이자 신성한 힘이 있다면 이럴까 싶게 가족을 꽉 붙들고 유지해온 분투기이다.
용감하고 대단했던 ‘군자’씨는 조현병에 걸리고 만다. 저자는 병을 계기로 어머니의 삶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체면이라는 겉치레가 대단히 중요했는지, 여기저기서 이중적인 잣대를 휘둘렀다. 제일 크게 떠들고 선동한 이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챙겼을 것을 생각하니 역겹기 그지없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뇌에 문신을 새기듯 확인한 것은, 전시에 여성(과 아이들)을 얼마나 함부로 이용하고 버리는가이다. 전쟁 영웅처럼 애국심을 가스라이팅해서 참전하게 하고, 물리적, 심리적 성적(性的) 고통을 가한다. 후방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여 성매매 ‘사업’을 벌인다. 일본과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획, 추진, 장려되었다.
놀랍게도 전쟁과 성매매 양상은 범국가적이고 공통적이고 유사하다. ‘군자’의 경험과 삶은 범세계적이다. 뚝뚝 떨어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체력이 한 움큼씩 쓸려간다. 독자와 저자와의 거리가 가깝고 복잡하고 뜨거운 에세이를, 체력도 기력도 부족해서 한동안 안 읽었구나 싶다.
부모의 양육 노동이 있어서 내가 성장한 것은 맞지만, 내 어머니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은 아니셨다. 그래서 죄책감 없이 가볍고 그 점이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군자’씨가 어떤 심정으로 나이와 무관하게 있는 힘껏 책임을 다하며 살아왔는지를 영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믿는다).
내 글은 내 말보다 직설적이고 과격하다. 나는 대면한 상대에게 뾰족한 말을 내뱉지 않으려고 늘 힘껏 조심한다. 어떤 삶을 사셨고, 어떤 심정으로 지금 나와 만난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고도 분투가 이어지는 삶의 고단함을 서로 짐작하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주장을 힘차게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지만,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그 외의 모든 다른 것을 이유로 모욕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이다. 비겁한 일이다. 더구나 상대가 나보다 약해 보여서, 만만해서, 내게 잘 해주는 다정한 이라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군자’씨가 살아남았다는 것, 좀 더 당차게 살 생각은 못하고 다 산 듯 구는 내 태도를 조금은 반성할 정도였다. 생명은 참 빛나는 것이다. 감동적이다. 용기란 기적과도 같다. 그러니 나 자신만 마고 주위를 둘러보기를 더 간절히 바란다. 가장 취약한 존재였지만 살아남은 영웅들, 그 세월이 너무 고단해서 병들고 아픈 이들을.
“그 단어가 더 이상 수치스러운 말이 아니었으면 해요. 그 여자, 나한테는 영웅이니까. (...) 나는 엄마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에세이라서 분량에 겁먹지 않아도 좋을 책이다. 다만 나는 펑펑 울며 정신을 놓았다가 엉엉 울며 정신을 추슬렀으니, 마음의 준비 혹은 체력 대비를 하시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