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 Philos 시리즈 36
앤드루 페티그리.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 배동근.장은수 옮김, 장은수 해제 / arte(아르테)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공공도서관이었다."라는 빌 게이츠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우리집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책으로 집벽을 장식한 방통을 부러워했다. 어린시절, 나에게 책은 언제나 부족한 존재였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을 둘러보며 가슴이 설래였던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책속의 지식이 나의 머릿속에 담겨지는 듯했다. 지금도 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도서관의 역사'를 읽게된 것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책의 원제는 'The LIBRARY A Fragile History"이다. 도서관 서적들의 파괴의 역사를 담았다. 도서관 서적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혹은 전쟁에 의해서 파괴될 수있다. 그러나, 전쟁과 정치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은 파괴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을 때만이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다.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은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보다 장서 자체를 더 중요시했다. 


  "역저기 널린 무수한 제약은 대학이 도서관은 학생을 위한 필수 자료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학생을 장서를 훼손할지도 모르는 근거로 보았던 것 같다." -216쪽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돈을 만들었으나, 돈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기도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간을 지식을 키위기 위해서 책을 한곳에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으나, 그 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학생의 접근을 싫어한 도서관측의 모습은 주객이 전도된 슬픈 우리 주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책을 읽다가, 도서관 업무를 했던 기억이 슬며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기적으로 도서를 폐기해야할때, 자식을 버리는 듯한 쓰라림을 느꼈다. 어떤 책을 버리고, 어떤 책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과거 도서관 사서들도 했던 고민이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과거의 기록으로 물려주어야할 것인가. 아니면 새책을 들여놓기 위해 처분해야할 것인가?"- 38쪽


  파괴와 생성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육이 미세 균열이 되어야 이를 회복하면서 근육이 성장하듯이, 도서관의 의미없는 책들을 폐기해야, 새책을 도서관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책 없이도 독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을 빌려주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사라질 것이다. 1473년 베네치아 총독에게 필경사인 자신은 "외양간의 짐승 처럼 살고"있다며 인쇄업을 금지해달라는 청원한 것 처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서관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 사서들은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정작 도서관에는 책이 없을 수도 있다. 책이 없는 도서관을 도서관이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종이책이 가지는 물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점토판에서 파피루스, 양피지로 종이의 물성이 바뀌었듯이, 책의 물성을 바뀔 수 있다. 인간이 책을 읽지 않고, 인공지능이 학습을 위해서 모든 기록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읽으려하고 있다. 인간은 책을 읽으려하지 않는데 인공지능은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인간의 파멸을 뜻할까? 문자 매체가 아닌, 영상매체를 읽기의 대체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찬란한 멸종 (빙하 에디션)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년에 한권 이상은 과학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역사와 국제 정세를 중심으로 한 나의 독서 편식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나의 몸부림이다. 

  '찬란한 멸종'은 다른 과학 서적과는 달리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인공지능에서 부터 시작하여 4만년전 네안데르탈인을 거쳐서 5억 4천만년전 삼엽충을 거쳐서 눈이 생겨나고 섹스가 시작되고, 바다와 지구의 대화로 책은 마무리된다.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과거로의 역진행이라는 구성과, 이정모 관장이 각 시대의 멸종직전의 생명체가 되어 인류에게 경고를 하는 구성이 독특했다. 마무리는 달과 바다의 대화라는 희곡적 서술은 참으로 참신했다. 이정모 관장의 입담으로 어려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다보니 책을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지금이라도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인류가 일어서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다가 공룡처럼 생겼다고 모두가 공룡은 아니라는 상식을 알았다. 2억 5천 맥만년전 디메트로돈이 있었는데, 신경배돌기가 있는 공룡처럼 생겼다. 그런데, 디메트로돈은 단궁류로 파충류보다는 포유류에 가깝단다. 책을 읽으며 과학 상식을 늘릴 수 있는 기쁨도 켰다. 

그런데, 옥의 티도 있다. 1만년 전 구석기인이 고백하는 자신의 멸종 편을 읽을때는데, 신석기인 마을을 관찰하고 나서는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어요.", "많이 먹는 사람이 있고 조금 먹는 사람이 있어요."(129쪽)라는 대화가 나온다. 이는 계급의 출현과 빈부격차를 표현한 문장이다. 그런데, 계급과 빈부격차이는 청동기시대에 나타난다. 구석기와 신석기는 생산력이 낮아서 잉여생산물이 축적되지 않는 사회이다. 누군가가 타인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는다면, 먹을 것을 빼앗긴 사람은 굶어 죽는다. 그러하기에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는 원시공산사회라 할 수 있다. 이 정모 관장이 이부분은 옥의 티이니 만큼 반드시 수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10대부터 30대의 젊은 남성들이 혐중을 하는 그 근저에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한때 중국의 경제력은 우리보다 낮았다. 지금 중국의 경제력은 한국을 추월해서 당당한 G2로서의 위용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말을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동차, 스마트폰, 우주 항공 분야는 세계적 수준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뒤로하고 중국에 대해서 바로 알고 싶었다. '중국 딜레마'를 읽기 시작한 것은 중국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1부 안과 밖과 2부 설계자들은 중국을 이끄는 핵심 두뇌와 시진핑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단순히 해당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중심으로해서 중국 정치 전반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을 움직이는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다. 

  3부 중화의 꿈아래서, 4부 변혁의 불씨, 5부 영합과 저항은 1부, 2부와는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변혁을 꿈꾸는 인물들을 조명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느꼇고, 다른 반편으로는 중국은 과연 공산주의를 포기하자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분열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장 지역의 투르크계 이슬람교도에 대한 재교육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크로드 수용소에서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행해지고 있으며, 위그르 전통문화 수호자에 대한 투옥과 감시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들겠다는 중국의 집념은 중국내의 50여개 소수민족에게 한족문화를 강요하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고 이다. 최첨단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빅브라더 사회를 완성한 중국은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드는데 걸림돌이될 세력을 집요하면서도 정교하게 제거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두렵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재교육이 이민족에게 행하는 폭력이라면, 중국내 민주화 운동은 같은 한족에 대하는 폭력이다. 강력한 중화민족국가를 만들려면 다원성은 용납할 수 없다. 결국, 톈안면 사건과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한둥팡은 1989년 톈안먼 사건에 참가한 노동자이다.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2019년 홍콩 시위에 그가 나타났다. "중국 노동자들의 5분의 1만이라도 스스로 대표를 뽑고 단체협상을 하도록 이끌어 낸다면 그때서야 '빈주적인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중국은 고사하고 민주주의 모범국이었던 미국마져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둥팡의 신념과 믿음은 깊은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위대한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만이 독립을 주장할 수록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더욱 커진다. 독립이냐, 중국 본토 회복이냐를 두고 외성인과 내성인이 의견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저자 박민희는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사회의 도도한 변화를 중국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듯보인다."라고 지적한다. 글쎄, 대만의 독립을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트럼프가 미국 언론에서 '대만문제는 중국이 알아서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마두르 대통령을 잡아왔듯이, 중국이 같은 일을 대만에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트럼프는 '그것은 중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중국을 무력으로 점령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중국은 대만내에 친중파 국회의원을 지원하고 스스로 붕괴는 방식으로 흡수통일할 수도 있다. 중국이 두려운 또하나의 이유이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한 중국의 모습은 국가 존립을 위한 전략이기에 이해가간다. 물론,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없다. 

  첫째, 중국은 노동자와 농민을 탄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 속에서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농민공의 삶을 개선하는데 중국정부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너무도 폭력적이다. 

  2019년 광둥성 노동관련 엔지오 활동가들이 잇따라 체포되었다. 그들은 국가정권전복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관련된 인물 중에서 선명위와 웨신등은 행방불명상태이다. 마르크스 사상과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 학생이 노동운동을 전개하자,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좌파학생조직과 노동운동조직을 뿌리뽑는데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2010년 폭스콘공장에서 10대와 20대 초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이러한 비극을 중국 공산당 정권은 외면했다. 중국 노동자들이 '전태일 평전'과 '한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으며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으려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 될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노동운동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로버트와 인공지능이 그들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된 직장을 얻기 힘들며, 직장을 얻어도 노동착취를 당하는 현실에서 중국 젊은이들이 선택한 것은 탕핑이다. 구직과 노동을 포기하고 바닥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국 젊은이들을 탕핑족이라한다. 또한, 선전의 싼허인력시장 주변에는 "싼허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하루벌어 3일을 먹고, 때로는 노숙생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착취당하고 떼먹히고 차별당하기 싫어서 일하지 않는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권이라는 명분으로 탄생한 중국 공산당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보다는 자본가를 위한 빅브라더로써의 역할을하자, 중국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의 방법은 탕핑과 싼허청년이다. 중국 공산당은 스스로를 부정한 것이다. , 


  중국공산당은 커다른 고민이 있다. 그 고민들은 땅과 인구가 너무 크고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싶은 중국의 야망은 안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소수민족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고, 밖으로 대만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늑대전사(전랑)'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과 측은함이 느껴진다. 중국민중에 대한 측은함과 폭주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이웃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이용해야할까?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버 내란 - 댓글 전쟁 - 민주주의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황희두 지음 / 시월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3 내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났다. 2명의 남학생이 12.3 내란에 대해서 발표하겠다고 지원했다. 분명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이기에 12.3 내란에 대해서 비판적인 발표가 주를 이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너무도 다른 발표가 이어졌다. 남학생반에서 이루어진 주제 탐구 발표시간에서 교사 1인과 남학생 전체와의 난상 토론형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12.3 내란은 '내란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생! '내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토론을 이어가며, 남학생들의 극우화가 이렇게 심각할줄은 몰랐다. 12.3내란의 이유가 야당 때문이라는 주장을 남학생들은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설명이다.명태균 게이트에 대한 언급은 전혀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버 내란'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황희두는 사이버 내란의 시작을 이명박 정권시기에 국정원과 일베에서 부터 찾았다.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대통령을 보면서, 그들은 위기의식을 가졌다. 인터넷의 힘으로 당선된 그를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하자, 육신의 죽음을 넘어서 사이버상에서 다시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국, 노무현은 희화화와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고, 이명박과 그 잔당들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이버 내란은 종류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뿌려진 씨앗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다. 윤석렬의 당선과 이재명의 악마화에 사이버 내란이 일조했다고 황희두 작가는 보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치권은 사이버내란을 외면하면서, 한줌론, 먹이 금지론, 자정작용론을 내세운다. 일베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에 대한 대중의 질문에 대해서, 유시민작가는 '일베가 일베 사이트 안에서 그들의 말들을 배설하게 놓아두되, 그들이 밖으로 나올때 강력하게 단죄해야한다.'라는 내용의 답변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옳은 대처라고 나도 믿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아닐한 생각이었다. 일베들은 자정작용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가증식을 반복했다. 디씨, 펨코를 비롯한 수많은 일베와 비슷한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타인을 조롱하며, 각종 밈들을 만들어 냈다. 인스타를 비롯한 sns를 혐오 밈들이 점령했다. 그리고 사이버 내란은 교육현장까지 침투했다. 박근혜가 역사교사과 국정화를 하려했다가 실패했다면, 윤석렬정권 시기에는 리박스쿨이 돌봄 시스템의 헛점을 파고들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을 오염시켰다거나 댓글을 좀 조작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향후 100년을 극우 세계관으로 재설계하려한 시도였다." -87쪽


  황희두의 지적에 10000% 공감한다. 유시민이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한다는 공자님 같은 말을 아닐하게 떠드는 사이, 그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10대들을 극우로 만들고 있었다. 


- 한국사 수업시간에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띄워놓고 설명을하려했더니, 비웃으며 조롱하는 남학생의 모습..., 

-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의 친일파였고 독재를 했다고 말하자, 그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며 자신은 독재를 좋아한다고 반문하는 남학생의 당당한 모습, 

- '선생님도 1찍이죠?'라며 격멸하는 표정을 지은 남학생의 모습, 

- '보수 정권이 들어섰을때 경제 성장율이 높았잔아요. 1찍들 때문에 경제가 망하겠어요.'라며 한탄하는 남학생들...

- 특정당이 국회를 과반수 이상 장악하는게 말이되냐, 검사들 탄핵을 왜그렇게 많이했냐, 그러니 계엄령을 안내리고 배기냐, 계엄령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아직 법정에서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왜 '내란'이라고 말하냐! 라며 극우들의 말을 배설해내는 남학생들...


  유시민과 민주화 세대들은 우리의 남학생들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걸까? 남학생 4개반 수업을 하고 나면 지친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가르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학생들을 보면서 뿌듯해했던 시절은 아득한 먼옛날의 일이다. 이제는 정색하며 달려드는 남학생들과 부딪혀야만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제 젊은 역사교사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하는 시기가 되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되묻곤한다.

  문제의 남학생들의 입에서 자주 나온는 말은 "표현의 자유"이다. 말그대로 "자유"를 좋아한다. 심지어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데 왜? 공부를 강요해요."라며 불손한 말도 서슴치않는다. 이들에게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저자 황희두의 말대로, "민주 진영은 어차피 봐준잖아. 표현의 자유라고 하고 그냥 넘어가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해야돼"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극우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심리와 요즘 10대 남자들의 심리는 절망적이다. 그들을 용서하고 크게 품어주면 그들이 진심으로 감동하여 자신의 죄를 뉘우칠 것이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자신의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그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는 반대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들이 지키려한다. 그들에게는 '보편적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혐오할 자유만 필요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주권자가 자신을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자신은 이를 감내할 수 있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노무현 대통령의 인품에 감탄할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노무현을 비하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밈과 노래를 부르는 남학생은 "그래요. 그럼 마음껏 욕하자"라며 노무현 대통령 비하 노래를 불렀다. 그들에게 무슨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로 혐오 표현과 죽은자를 비하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듣고는 이를 조롱하는 그들에게 무슨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아마도 "전직 대통령 풍자 못하냐", "표현의 자유이고 해학과 풍자다"라고 변명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의 적들을 위한 특별 허가증이 아니다."라는 독일 연방헌법 수호청장의 말처럼, 10대 남학생들에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책임 없는 자유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한다. 혐오 표현을 사용하고 자식잃은 부모에게 폭식투쟁과 조롱을 하는 그들을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EU의 디지털 서비스법 처럼 표현의 자유에 책임을 묻는 법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선한 '자유'를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10대 남성들을 바르게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역사쿠데타'를 하려했다면, 윤석열 정권 시기에는 리박스쿨이 학교현장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아이들의 역사관을 왜곡하려했다. 이명박 정권 시기 국정원을 동원해서 노무현을 희화화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씨앗이 지금의 10대~30대 남성에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중학교에서는 근현대사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학생을 고등학교에서 바로잡으려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중학교에서도 독립운동사와 민주화운동 중심의 근현대사를 교육해야한다.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이는 이루어져야한다. 아울러, 저자 황희두가 바라는 '사이버 내란 대응 TF 신설 및 사이버 내란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져야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타인을 조롱하고 모독하는 자유에는 반드시 댓가가 뒤따름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한다. 알량한 용서는 그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빼앗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실을 민주화세대는 깨달아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에서 바라보는 유럽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이토 마사노리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강대한 유럽의 힘에 의해서 세계에 퍼졌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맹주가 되어 세계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을 떠올리면서 지금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이슬람에서 바라보는 유럽'이라는 책은 지금의 유럽을 고민하게하는 책이다. 


  유럽은 이슬람 포비아를 앓고 있다. 니캅, 부르카로 대표되는 이슬람의 덮개를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제정한 나라가 많다. 유럽에 반이슬람 포비아가 퍼진 계기는 9.11 테러 이후이다. 쌍둥이 빌딩을 비행기가 들이받는 모습은 유럽인들에게 이슬람인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선입견을 심어 놓았다. 그들에게 관심없었던 유럽인들에게 반이슬람 정서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슬로베니아의 경우, 난민들이 자국영토를 통과했는데도 이들에 대한 공포가 높아졌다. 2018년 총선에서는 반난민당이 1당이 되기도했다. 

 유럽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자, 그동안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심도있는 관심이 있지는 않았던 젊은 유럽내 이슬람 청년들이 IS에 가담하거나, 테러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태어날때부터 유럽에서 살았음에도 토착유럽인들은 그들을 자신과 같은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결국, 무슬림이라는 자각을 통해서 더 극단적인 행동에 가담한다. 

  유럽인들을 보면,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관찰된다. 루스 포비아를 비롯해서 이슬람 포비아에 젖어 타인을 적으로 생각한다. 루스 포비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러시아는 믿을 수 없고, 러시아가 유럽을 처들어 올것이라는 공포심은,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와 휴전하기 보다는 맞서 싸울 것을 종용했다. 우크라이나가 밝혔듯이, 영국총리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줄테니 전쟁을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슬람 포비아는 유럽내 무슬림을 적으로 만들었다. 그뿐아니다. 튀르키예를 친구로 끌어 안지 못했다. 즉, 튀르키예는 유럽연합 가맹 교섭을 중단했다. 유럽이 튀르키예의 유럽가맹을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유럽의 친구가 되고 싶었던 튀르키예는 유럽이 자신들을 친구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슬람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들지 못하는 유럽의 옹졸함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유럽이 러시아와 이슬람을 친구로 만들지 못한다면,유럽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쪼그라들 것이다. 유럽이 그렇게 믿었던 미국은 국가안보보고서에서 유럽은 사라질 문명이라고 진단했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그들이 다시한번 각성한다면, 현실은 바뀔 수도 있다. 러시아와 이슬람을 우애로 대하며 그들을 친구로 만든다면 유럽의 내일은 더 밝아질 것이다. 


  책장을 덮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았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슬라 난민이 들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분명, 펨코를 중심으로 활발한 반대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니캅과 부르카에 대한 혐오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을 수도 있다. 반중감정을 일으켜서 장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유럽의 모습이 어버랩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