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2019~2022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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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죽음을 대면할 때 숙연해진다. 아무리 커다른 권력을 가진자라도, 아무리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시대의 지성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왔던 이어령도 죽음을 대면하며 한들자 한글자 메모를 남겼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던가!(Life is C between B and D) 즉, 인생이란 '삶,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선택(Choice)'이라는 뜻이다. 삶과 죽음의 선택 속에서 이어령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며 죽음을 묵묵히 대면하는 길을 선택했다. 암과 싸우기 보다는 암을 친구로 대하기로 선택한 그의 마지막을 드려다보자.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 제목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어령은 제목을 '눈물 한 방울'이라 정한 이유를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을 위한 눈물이 아닌, 이웃을 위해서 흘릴 수 있는 사랑의 눈물이 필요한 시기임을 이어령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함에 동의하지만, 이어령이 '눈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을 자신의 마지막 노트의 제목으로 정한 것은 지난날의 회한과 대면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닐까? 

 이어령은 다양한 사물을 통해서 사유를 하고 이를 기록했다. 이책의 초반부에는 '늙다와 낡다'라는 글이 있다. "늙은이여! 쫄지마.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도 손톱 발톱이 부서져도 두 손만 있으면 만세를 부를 수 있으면 천세 만세 살 수 있다."라며 늙은 자신에게 '천세 만세 살 수 있다.'며 희망의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글은 늙고 병들었기에 천천히 죽음에 다가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위로의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밤길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뒤쫓아 온다."-33쪽


  이어령은 '밤'과 '검은 그림자'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승 사자가 찾아올 듯한 '밤길'과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의 '검은 그림자'가 두려웠던 것 같다. 심지어는 불을 켜 놓고 잠을 자기까지 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의연히 맞서려 몸부림치는 이어령의 내면이 읽혀진다. 


  "죽음은 무지개인가 보다.  ..... 하늘로 들어가는 문 찬란한 오색 무지개"-39쪽


  무지개를 보며 어떤이는 희망을 본다. 또 어떤이는 현실에 뿌리 두지 못한 허황된 생각을 본다. 그런데, 이어령은 '하늘로 들어가는 찬란한 문'을 본다. 누구나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이라는 길을 보면서 어떠한 길에 들어설지 두려움이 밀려온다. 죽음에 들어가는 문이 찬란한 오색 무지개라 말한 이어령은 죽음에 임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이 책의 곳곳에 죽음에 관한 말들이 흩어져 있다. 바람 한점 없는 날에도 저자의 마음은 흔들린다. 살고 싶어서..... 그러면서 신에게 일말의 시간을 달라며 애원한다.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169쪽


  책을 꺼낼 힘도 없어 전자 책으로 글을 읽는 이어령! 조금 늦게 신의 곁에 가더라도 용서해 달라는 그의 글에서 책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향기가 난다.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새책을 주문한다. 그리고 다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새롭게 읽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도 사랑하는 책과 이별해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책들과도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되어서 최고 사령관이 부대의 사열을 하듯 서가의 구석구석을 돌았다."-195쪽


  즉음을 맞이하는 2022년! 그는 "여기에 남은 여백 만큼만 살게하소서"라며 절대자에게 부탁했다. 이제는 여백이 남지 않았는지 절대자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지. 책을 사열하며 이별을 고한다. 그에게는 읽어야할 책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기 위해서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절대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몸무게는 쭉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23일 밤에 마지막 글을 남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라는 글을 남기고 펜을 내려 놓는다. 죽음에 앞서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었던 이어령은 그렇게 쓰러져갔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2022년 2월 26일 절대자의 곁으로 간다.


 깊은 사유의 내공을 가진 그의 지혜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서글프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직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마지막까지 책을 사랑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일평생 독서를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어령 선생 처럼 길을 떠나야한다. 그 길을 담담하면서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을 통해서 확인했다. 이어령 선생이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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