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 실익과 명분의 천 년 역사
기쿠치 요시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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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있다.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은 명실상부하지 않다. 괴테가 말했듯이, 신성하지도 않으며, 로마답지도 않고, 제국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교과서에서 신성로마제국을 배우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와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오토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았다는 언급과 나폴레옹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었다는 언급밖에 없으니, 신성로마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어떤이는 환상의 제국이라고 말한다. 환상의 제국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성로마제국이 과연 어떠한 제국이었는지 궁금하다. 신성로마제국은 과연 어떠한 왕국이었을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도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오토1세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을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관을 받은 것은 아니다. 962년 2월 21일 오토 대제는 황제 즉위 때 '황제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편 오토는 황제 대관을 교황이 아닌 오토 주도로 거행했다. 교황은 황제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독일의 왕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고 여러 나라를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제국 교회 정책'과 '이탈리아 지배'는 독일에게는 불행의 씨앗이되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오히려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독이되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근심꺼리는 너무도 많아진, 늙은 공룡의 모습이 되어갔다. 결국, 로마제국의 위용을 얻기 위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황과 일전을 벌인다. 이것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으로 표출된다. 

카노사의 굴욕은 성직자 서임권 문제를 계기로 황제가 먼저 싸움을 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는 교황에 복종'하라는 서간문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4세에게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하인리히 4세는 독일 주교를 소집하여 교황을 폐위하며 마틸다와 교황 사이의 불륜설을 터뜨린다. 그러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한다. 결국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벌어져게된다. 눈덮인 카노사 성문 앞에서 3일 동안 교황에게 빌었고, 그로인해서 교황이 황제에게 승리한 사건으로 알지만, 힘을 키운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살고 있는 로마를 공격한다. 교황은 노르만족을 끌어들여 황제를 쫓아 내지만, 노르만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자, 로마주민의 원성 때문에 교황은 살레르노로 망명해서 죽게 된다. 그렇다고, 하인리히 4세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하인리히의 두아들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두아들의 반란은 하인리히 4세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는 세상을 뜬다. 그리고 둘째 아들 하인리히5세가 보름스 협약을 맺는다. 과연 누구의 승리일까?

이러한 황제와 교황간의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신성한'이라는 형용사이다. "이는 역대 교황들이 목표로 삼았던 신권정치와의 결별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는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황과 황제간의 피튀기는 대립과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했다. 그렇다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바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신성한'이라는 형용사가 등장했을 뿐이다. 

'신성제국'이라는 명칭이 문서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57년 3월 바로바로사가 밀라노 토벌과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제후에게 보낸 소집장에서 였다. 정치의 검을 받은 황제는 종교의 검을 갖진 교황과 동등하다는 양검론을 들고 나온 바로바로사는 명실상부한 황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손안에 넣기 위해서 노력했고, 무리한 원정은 필연적으로 황제권 약화로 이어졌다. 프리드리히2세 시기에도 황제 개인의 뛰어난 역량으로 황제권은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황제'라는 위용을 보이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둘러싼 교황과의 대립은 계속된다. 결국, 많은 전비를 얻기 위해서 독일 내의 제후에게 막강한 권한을 하나 둘씩 주었다. 이러한 황제의 무리수는 황제권의 약화를 낳았다. 

저자 기쿠치 요시오는 대공위시대의 초석을 놓은 삼황조 시대(작센왕조, 잘리에르 왕조, 슈타우펜왕조)의 황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평가를 하고 있다. 


  "위대한 로마 제국 황제의 에피고넨으로서 제국을 부흥하겠다는 (중략) 그들은 이념과 행동이 여과없이 결합되어었던 유럽 중세 세계를 마음껏 헤집고 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황제다운 황제였다."-130쪽


참다운 황제라면, 자신의 행위가 미래 세대의 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예상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나, 삼황조 시대의 황제들은 로마제국의 부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리한 원정을 단행했고, 독일왕국의 내치에 신경을 쓰지 못하여 대공위시대를 낳았다. 수많은 제후가 다스리는 수많은 국가로 구성된 영방국가로 신성로마제국을 추락시켰다. 이러한 삼왕조 시대의 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있을까?

아직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제국'과 '로마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릴뿐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온전한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려면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대공위 시대였다. 독일국왕 빌렘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문서에 처음사용하면서 우리가 아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지 못하고, 제국이 영방국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역설적이게도 가장 환상적인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국이 위기에 처할 수록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에 집착하게된다. 형용모순의 명칭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다. 간판과 실질이 어긋나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본다. 내실이 없을 수록 겉치장이 화려한 사례를 보면서, 슬픈 신성로마제국을 우리는 떠올려야할 것이다. 


합수부르크 왕조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카를 5세시기 신성로마제국은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신성한 로마 제국'이라는 헛된 환상에 집착이 더욱 심해지면서 신성로마제국은 빈껍데기만 남게된다. 30년 전쟁을 통해서 이제는 관속에 들어가야할 신성로마제국은 땅속에 묻히지 못하고 빈껍데기만 앙상하게 150년 동안 내보이며 서있어야했다.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준사람은 새로운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허상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실에 충실해야함을 깨닫는다. 빈껍질을 부여잡고 매달리기 보다는 실질을 채운다음, 외모를 가꾸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빈껍질만 남은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도 황제라는 껍질에 집착하다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또다른 아이러니일 것이다.


ps. 신성로마제국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금인칙서의 내용을 첨부한다. 


-선제후는 마인츠, 트리어, 쾰른의 성직자 제후와 라인 궁중 백작, 작센, 브란덴부르크, 보헤미아의 세속 제후까지 모두 7제후로 정한다. 

-선거는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거행하며 대관식은 아헨 시에서 거행한다. 

-선거는 단순 과반수로 행한다. 선거 결과에 따르지 않는 선제후는 선제후 지위를 잃게 된다. 

-선거 결과는 교황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제후는 제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영지 내의 완전한 재판권, 광산 채굴권, 과세 징수권, 화폐 주조권, 유대인 보호권을 갖는다. 

-선제후 영지는 분할을 금하고 장자 단일 상속으로 한다. 

-선제후는 '호출에 응하지 않을 권리와 소환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선제후에 대한 반란은 대역죄로 처벌된다.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될 때 라인 궁중 백작이 슈바벤 지역과 프랑켄 법이 미치는 지역을, 작선 선제후가 작센 법이 미치는 지역을 통치한다. 

-제후 사이의 동맹, 도시의 동맹은 금지한다. 

-페대(제후 사이의 개인적인 다툼)을 금지한다. 

-선제후를 비롯한 제후의 영지 주권을 법적으로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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