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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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도서선정위원으로 간택받다.
; 유빈이와 자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의 도서선정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영광이다.  얼마 전 '도서선정위원회'라는 명칭이 너무 권위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우리 아이 책고르미 모임'이라고 개명한 덕분에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더욱 좋아졌다.  암튼, 매달 한 번씩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서 도서관이 책을 구입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되고, 같은 모임에 있는 분들이 모두 실력과 내공이 상당한 분들이라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올해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더 많이 읽었고, 특히 10월에는 권정생님에 대한 발표를 맡아서 오랜만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7. 11살 연하와 사귀다. 
; 얼마 전에 따로 페이퍼에 올렸던 것과 같이 11살 연하의 엄마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린데도 마음 쓰는 게 얼마나 깊고 넓은지, 오히려 내가 보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난 막내로 자라서 동생이 없는데, "언니"라고 불러주는 이쁜 동생을 둘이나 얻어서 이게 웬 복이냐 싶다.  
언니 노릇, 그것도 왕언니 노릇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주책스럽지 않게, 너무 "왕'티나지 않게, 그냥 편안한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8. 뮤지컬 명성황후와 캣츠 오리지널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리다.
; 결혼하고 유진이와 명보를 낳고 거의 만 8년만에 처음으로 보러 갔던 영화가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보러 간 거였지만, 결혼하고 8년만에 보는 영화가 "뮤츠의 역습"이라니~!!, 하며 얼마나 허탈해했었는지 모른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 상영중이었는데, 차라리 그걸 봤으면 덜 억울했을 거다.)
뮤지컬은 몇년만에 본 것일까...  결혼 전에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꿈하늘'을 봤었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신의 아그네스'나 '관객모독', '병사와 수녀' 등등의 연극도 즐겼었다.  한동안 그런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보는 낙에 빠져있었으니까... 그러니 아마 거의 만 15년만에 뮤지컬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과 아동극 공연은 봤었지만, 그건 제외시키자.) 
지금도 생각하면 황홀하다.  언제 또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쩝~! 

9. 미인도와 마주하다.
; 작년에 간송미술관으로 송시열 전을 보러 갔다가 미인도 영인본 앞에서 넋을 놓은 적이 있었다.  그 신비함이 너무 인상깊어서 '모나리자는 신윤복의 미인도 발끝도 못따라온다'며 침이 마르게 찬사를 늘어놓고는 했는데, 이번에 간송미술관 70주년 기념전으로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었다.  평일 개관시간에 맞춰 일찍 갔는데도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 틈에서 신윤복의 미인도와 마주했을 때의 전율이란..  오묘한 노리개 빛깔부터 풀어진 옷고름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유혹하는 눈빛...  난 남자도 아니건만 왜 이리 떨리고 설레는 건지..  눈물까지 찔끔 나오려는데,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버럭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다 봤으면 빨리 비켜야 다음 사람이 볼 거 아니야~!!!"
워낙 사람이 많았으니, 그 아저씨 말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억울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전시실에서 미인도랑 나랑 단 둘이 마주 앉아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천천히 소근소근 밀어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 파도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그 무서운 아저씨 앞에서 잔뜩 겁을 먹고는 미인도를 뒤에 두고 돌아섰다. 
언젠간, 소설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인기몰이가 다 사그라든 후 언젠가에는 좀 더 조용히 미인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0. 갑갑하고 막막한, 어두운 산그늘 아래 서다.
; 나처럼 소심한, 그것도 아이를 셋이나 둔 40대 주부인 내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촛불을 들었었다.  물대포 맞고 몰매 맞고 끌려다닌 사람들에 비하면 참 새발의 피만도 못한 촛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땐 이 정도로 상황이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나이 헛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쌀만큼 바보같고 순진했다.
저 오만한 산은 더욱 거대해지고, 촛불은 어두운 산그림자 아래 묻혔다.  길을 끊고 불쑥 솟아오른 저 산이 언제쯤 치워질까..  촛불을 들고 저 산을 넘어가면 거기엔 희망이 있을까.  우공이산이라는 말에 희망을 두어도 될까.  
촛불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하게 조여온다.  내가 너무 못나 보여서, 그들이 너무 눈물 겨워서, 저들이 너무 미워서. 저 흉한 산의 등장을 빼고 올해를 말할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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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러고 보니 이제 댓글 쓰기가 되네요. 언제부터 된 거죠? 저만 뒷북이었나요? 올 한 해 리스트가 근사해요. 먹먹하고 막막한 부분도 있지만요. 저도 간송미술관 꼭 가봐야겠어요. 근데 이 계절에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섬사이 2008-12-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노아님.. 어쩌죠? 댓글이 다시 사라질 거예요.
수리수리 마수리 펑~~!!! ^^
간송미술관 전시는 이미 끝났답니다. 일년에 봄 가을, 두 번 전시가 있는데,
이번 전시는 워낙 사람들 관심을 많이 받은데다가
간송미술관 전시가 무료다보니...
내년 거의 늦봄이랄지 초여름이랄지 하는 시기에 전시가 또 열리겠지만,
신윤복과 단원의 작품을 또 전시해줄지 모르겠네요.
뭐, 간송미술관 자체의 분위기도 고즈넉하니 좋은데다가
다녀오는 길 중간에 최순우 옛집까지 들렀다오면 무척 좋아요.
내년엔 꼭 가보세요. ^^
 

1. <창비 어린이>에 글이 실리다.  
; 쑥스러워서 밝히진 못했지만 <창비어린이> 가을호에 그림책 <쨍아>와 <별이 되고 싶어>에 대한 글이 실렸다.  나에겐 어마어마한 행운이었고, 내 허접한 글들을 눈여겨 읽어준 분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도 모를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순오기님이 신기하게도 단박에 나라는 걸 눈치채고는 순오기님 서재 페이퍼에 올려주셨다.  너무 쑥스러워서 "저 맞아요."하고 순오기님한테만 살짝 속삭이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식으로 원고청탁서를 받아봤고,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아봤다.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  죽을 때까지 간직하려고 가을호 <창비어린이>와 함께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다시 한 번 내게 이런 행운을 안겨준, 사랑스러운 그 분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2. 남편 사무실을 이전하다.
; 지방대 교수로 있다가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지 만5년이 되었다.  5년 전, 살림하는 나로서는 못내 불안했었지만 여러가지로 교수직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남편은 결국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교수였다는 경력은 사업하는 데 여러 잇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올해 5년만에 신사동 귀퉁이 구석에 있던 사무실을 가로수길로 옮겼다. 
여전히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이제 좀 번듯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마당에 우리 같은 서민에게야 살얼음판 아닌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 위기를 잘 넘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업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보험도 깨먹고 애들 돌반지 모아두었던 것도 다 팔고, 얼마 안 되는 패물도 다 팔아먹었었다. 
그래도 이제는 저축까지는 못하더라도 이 달 관리비는 낼 수 있을까, 카드는 막을 수 있을까, 애들 학원비는 될까, 고민하지는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또 불안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3. 유진이 유럽에 다녀오다.  
; 작년부터 보낸다 해놓고 못보냈었는데, 드디어 올해 보냈다.  항공료도 오르고 환율도 올라서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예산을 훨씬 초과했지만, 유진이에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유진이 유럽 여행자금을 대느라 남편은 사업을 하면서도 몇몇 대학에 강의를 맡기도 했고, 특강을 하기도 했었다. (불쌍한 남편...)
내년엔 명보를 보내보자고 했었는데, 상황이 더욱 안좋아져서 아무래도 내년에 명보를 보내긴 어려울 것 같다.  명보에게 "어쩌니, 너무 상황이 안 좋아서 내년에 너 못 보내줄 것 같은데..."했더니 우리 착한 명보, "괜찮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갈게."한다.  기특한 녀석! 

4. 명보, 중딩이 되고, 변성기가 오고, 내 키를 넘다.
; 명보는 아주 작은 아이였다.  언제나 키번호 1번이었고, 반바지를 입혀놓으면 가느다란 다리가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아이였다.  사람들은 제나이보다 2,3살 어리게 명보를 보았고, 학교 신체검사표에는 저체중이라고 적히는...  신발 주머니를 들면 바닥이 땅바닥에 질질 끌려서 금세 닳아버리는  그런 아이.  그런 명보가 언젠가부터 부쩍부쩍 크기 시작하더니 이제 엄마인 나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내가 158Cm의 작은 키라서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내년쯤엔 유진이의 키를 따라잡을 것 같다. 
그리고 지난 여름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명보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아파트 단지를 웅웅 울리면서 밖에서 날아들어오는 아들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변성기가 시작된 거다.  이제는 코밑도 시커매지기 시작했고 다리의 털도 짙어지고 무성해졌다. 
아들이 남자가 되어간다.  길을 나설 때, 남편이랑 같이 걸을 때보다 아들과 함께 걸을 때가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5. 섬사이, 핸드폰이 생기다.
;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아직까지 핸드폰 없는 사람이 어딨냐? 공짜폰도 많은데, 하나 장만하지!"하며 핀잔했었다.  그래도 내가 핸드폰 없어서 불편하지 않으니까, 일하는 여자도 아니고 집에서 살림만하는 주부가 핸드폰이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핸드폰 없이 버텼다.  아니, 버텼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그냥 핸드폰 없는 게 자연스러웠다.  운전면허도 없고 핸드폰도 없는 아날로그형 인간으로서의 은근한 자부심(?)도 느꼈었다. 
그런데 유진이랑 명보가 성화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 중에는 회원가입시에 핸드폰 번호를 꼭 기입해야만 하는 곳이 많다.  그 때마다 주로 유진이 번호를 남발했는데, 자기 핸드폰으로 쓸데없는 문자가 너무 많이 온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몇 번은 학교 수업 중에도 문자가 오기도 했다고, 엄마 핸드폰 좀 사라고... 
결국 아이들의 민원이 받아들여져서 지난 11월 핸드폰을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핸드폰 장만 소식에 애들은 물론이고 친구들이랑, 이웃 엄마들이 기뻐해줬다.  그런데 난 아직도 "저거, 저거, 없어도 되는데..."하며 눈을 흘길 때가 많다.  아직 핸드폰에 정을 못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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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직접 구운 초콜릿 케이크가 우리집에 왔다.  
그녀가 보낸 거다.
자주 그런다.  직접 구운 쿠키와 빵과 케이크를 선물해준다.  
그녀는 나보다 11살 어리다.  

또다른 그녀가 있다.
그녀도 11살 어리다. 금요일이면 자주 저녁 초대를 한다.  
소박한 저녁을 우리는 함께 나눈다.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한 그녀라서 그런지 이웃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을
그리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금요일 저녁 초대를 받는 일은 내게 신선한 즐거움이다.  

11살 연하와 사귀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공감대도 없고 세대차이가 나서 말도 안 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더구나 너무 잘난 그녀들이라면 더욱더.  

신기한 건, 그녀들이 나를 무척 편하게 대해준다는 거다.
지난 여름부터 어디를 가든 그녀들은 나와 함께 움직여줬다.
새로운 정보들을 알려줬고,
그녀들 나름의 삶의 경험들을 이야기해주었고,
기꺼이 자신을 오픈해 주었다. 
유빈이를 집에 불러서 함께 놀아주고
K대 수학과 출신이라고 유진이 시험 때 수학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유학파 출신인 다른 그녀는 유빈이에게 영어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털털하고 후줄근한 나에겐 과분할 정도로 세련된 그녀들이다.

11살이나 더 먹은 내가 어린 그녀들을 챙겨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더 나를 챙겨준 것 같아
한 해를 보내며 좀 쑥스러워진다.  

나에겐 11살 연하의 그녀가 둘이나 있다.
유빈이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그녀들이지만
올해 만난 좋은 인연임에 틀림이 없다.   

난 그녀들을 나의 원더우먼이라고 부르고, 
난 내가 그녀들 삶의 조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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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보가 일제고사를 봤다.
오늘 아침까지 결석을 시킬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소심한 인간이 명보를 학교에 보내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에게 기껏 한단 소리가 겨우,
"백지내도 괜찮은 시험이니까 대충 그냥 엎어져 자다가 와." 

차라리 싸우라고 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맞서라고 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저항하라고 했어야 했는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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