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밑그림 가지고 씨름을 했다.  놀이터에 갈 때마다 디카를 들고 나가 모래밭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 자전거 타는 아이들, 씽씽이 타는 아이들, 방방이 타는 아이들, 미끄럼 타는 아이들을 마구 찍어댔다.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도 찍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막상 흰 도화지 위에 그리려고 연필을 들면 '그게 어떻게 생겼더라?'가 되어버리는 부분이 생겨서 그리다 말고 나가서 디카로 찍어 들어와 다시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를 반복해서 완성한 밑그림이다.  밑그림을 디카로 찍어 그림에 들어갈 글과 함께 권윤덕 선생님께 보냈더니, 다행히 매우 흡족해하셨다고 해서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오늘, 도서관에서 선생님과 만났다. 
지난 여름, 권윤덕 선생님 댁으로 찾아 뵙고 나서 처음이다.
그동안의 작업을 권윤덕 선생님 앞에 펼쳐 놓으려니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다른 책고르미 엄마와 도서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림책이 어떻게 진행되어 나가야 하는지, 글에서 이상한 점은 없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봐주셨다.  우리가 부끄러워하면 좋다, 좋다,  잘 했다, 잘 했다 하시면서 칭찬만 하셨다.
얼마나 세심하고 상냥하신지, 누구 말처럼 자상한 언니같다는 생각이...
밑그림을 대고 먹선을 뜰 '순지'라는 종이와 먹과 벼루, 세필까지도 직접 챙겨들고 오셨다. 
선생님이 보시는 데서 세필 끝으로 먹선을 뜨려니 손이 부들부들... 

사실, 오늘만 봐주시면 처음 '작가 따라하기' 명목으로 부탁드렸던 두 번의 만남이 모두 이루어진 셈인데, 권윤덕 선생님은 첫번째 장 그림 다 그리고, 두 번째 장 밑그림이 완벽하게 완성되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하신다.  그럼 그 때, 채색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놀러 온다 생각하고 도서관에 오겠다시면서 3년 동안 밭을 일군다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만들어보라셨다.  선생님의 그림에서도 꼼꼼함과 치밀함이 느껴지더니, 역시 작은 것 하나라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잘 마무리 지으셔야 하는 성격이신가 보다.  약속한 두 번의 만남을 위해 시간을 내주신 것만 해도 (그것도 거의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감지덕지하겠는데 그토록 열성을 쏟아주시니 요령을 피고 대충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작가 따라하기'를 해보니까, 그림책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성과 공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나 권윤덕 선생님은 불화기법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시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지난 여름에 권윤덕 선생님이 그리신 불화들과 <일과 도구>의 원화, 그리고 <시리동동 거미동동>이 나오기 전까지 작업했던 더미북들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다 못해 기가 질리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내내 함께 갔던 사람들과 얼마나 한숨을 푹푹 내쉬었었는지. 

선생님 말씀대로 3년이 될지도 모르고, 5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다른 분들과 앉아 먹선을 뜨면서 3년동안은 가구도 바꾸지 말고 동네도 바꾸면 안된다고 농담하면서 웃었지만, 3년이든 5년이든 권윤덕 선생님이라서 가능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내년쯤 새로 출간될 그림책 작업에 신경을 쓰시느라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권윤덕 선생님.  두시간 남짓 먹선을 뜨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 그림책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내 이야기가 들어있는 공동 작업의 그림책이 생긴다는 건, 나에게도 그리고 유빈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집에 갖고 있던 <일과 도구>를 챙겨가서 선생님께 싸인을 받았다.  지지난해던가.  도서관에 오신 선생님께 부탁해서 도화지에 싸인을 받은 게 있는데,,  ^^  책에 받으니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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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인 정신이 느껴져요. 섬사이님의 그림책도 그렇게 정성을 쌓아 완성되겠죠. 소중한 시간 아름답게 보내셨어요.^^

섬사이 2009-10-22 00:44   좋아요 0 | URL
네. 힘들고 부담스럽긴 했지만, 밑그림이라도 그려놓고 보니 뿌듯했어요.
권윤덕 선생님이 지적하신 부분이 있어서
앞으로 또 얼마나 고쳐야할지 모르겠어요.
권윤덕 선생님, 작품에 대한 애정도 깊고 호흡도 긴 분인 것 같아요.
뜻깊은 경험을 했어요.

하늘바람 2009-10-2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궁금해요. 너무나.
님이 만드실 작품이요.

섬사이 2009-10-22 00:48   좋아요 0 | URL
아이고, 뭐, 작품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고등학교 미술시간 이후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아무리 기를 써도 엉망진창이랍니다.
권윤덕 선생님은 우리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들 그림의 엉성함이 귀여워서(?)'잘했다'고 하시는 거죠. ^^;;

세실 2009-10-2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스승님이 멋지시니 님도 분명 멋진 그림책 작가가 되실듯. 화이팅입니다^*^
습작 그림 보여주세요~~

섬사이 2009-10-22 00:53   좋아요 0 | URL
그림책 작가요? 이번에 발가락 끝만 적셔보고도 저같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어요.
권윤덕 선생님은 물론 작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나시지만요,
끈기, 열성, 치밀함, 집요함에 있어서도 단연코 금메달감이세요.
많이 만나 뵌 건 아니지만 같이 작업하는 엄마들의 공통의견이랍니다. ^^

순오기 2009-10-2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림책 도전했군요. 멋져요~~
권윤덕 선생님 그림 정말 꼼꼼해서 놀라요.

섬사이 2009-10-25 04:44   좋아요 0 | URL
권윤덕 선생님의 꼼꼼함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어요. ^^
도전을 하기는 했는데, 마무리가 잘 될지 걱정이에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만 믿고 있어요. ^^;;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에서 "작가 따라하기"라는 제목의 작업을 하면서 권윤덕 선생님을 찾아뵈었었다.   

그리고, 한 사람당 4쪽씩 '우리 마을'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려 모아서 그림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내내 밑그림 그리기만 가지고 끙끙댔다.  

아파트 단지 곳곳과 유빈이와 잘 어울려 노는 이웃 아이들, 친한 이웃 엄마들 사진을 찍어서 나름 정성을 보태어 완성한 밑그림이다.  

10월 중으로 다시 한 번 권윤덕 선생님을 뵙고 채색에 들어가려고 한다.   

채색을 하다가 망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아 밑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해두기로 했다.

그림책으로 만들어질런지는 아직 미지수. 

만들기로 결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또 미지수.  

그림책 꼴을 갖춘다 하더라도 기념으로 한 권을 묶고 말지,  

아니면 조금 더 만들어 각자 한 권씩 나눠갖게 될지, 그것도 미지수. 

조잡하지만 며칠 밤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림 그리느라 생애 처음으로 팔도 아파가며 그린  

밑그림이다.  



유빈이네 집은 아파트랍니다. 아파트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삽니다. 그래서 함께 놀 친구, 오빠, 언니, 동생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같이 자전거도 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하고,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더운 날엔 물총놀이도 합니다. 여름엔 아파트 안을 구석구석 다니며 같이 매미를 잡았습니다. 매미가 참 많았습니다.
우리는 해가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어울려 놉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다보면 배가 고파집니다. 아이들은 더 놀고 싶다고 하고, 엄마들은 들어가 밥 먹을 시간이라고 하며 옥신각신합니다.  
결국 엄마들이 놀이터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옵니다. 놀이터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집니다. 고구마, 옥수수, 주먹밥, 과일, 떡, 빵... 집에서 먹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여럿이 함께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고 즐겁습니다.
난 우리 놀이터가 참 좋습니다. 
 

첫번째 그림 속, 야쿠르트 아줌마와 비둘기 두 마리는 유진이가 협찬(?)해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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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고생하셨지만 엄청 뿌듯하실 것 같아요. 채색이 들어가면 느낌이 또 달라지겠죠? 채색 그림도 꼭 보여주세요.^^

섬사이 2009-10-17 09:09   좋아요 0 | URL
권윤덕선생님과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어요. 저희가 댁으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엄마도 있고 해서 선생님이 도서관으로 오시기로 했지요. 채색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날 다하기는 어렵고 일단 먹선을 뜨기로 했어요. 두근두근해요. ^^
 

신문에서 광화문 세종대왕상 사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게 뭐야..  하는 황당함.  90년대 초반 법주사에 갔다가 거대한 금불상 앞에서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세종대왕상 사진 위를 덮쳤다. 
그 때 법주사 거대 금불상을 보면서 손톱만큼의 경외감도 느낄 수가 없었고, 1미터가 안되는 크기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보다도 귀품이 떨어지는구나, 했었다.   
그 거대 불상은 크기에 있어서나 번쩍임에 있어서나, 그리고 비례의 불균형에 있어서나 오히려 코미디에 가까웠다.   

광화문에서 법주사 거대불상에 이은 또하나의 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세종대왕님도 어이없어하시지나 않을지.  그렇게 세종대왕을 기리는 방법이 고작 저거라니.
세종대왕상의 크기가 10.4m에 이르고 동전 3200만개 분량이라는데, 그게 뭐 어쨌다고 떠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커서 뒷 배경의 산허리를 잘라먹고 그 뒤의 경복궁이 개집처럼 보이는 것만 빼면, 그나마  법주사 거대불상처럼 비례가 맞지 않아 불상이 큰바위 얼굴같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에고... 그래도 유명한 홍익대 교수의 작품이다.  아줌마에 지나지 않은 내가 뭐라고 한다고   어느 동네 개가 짖나..겠지만, 어쩐지 광화문이 싫어지려고 한다.  자꾸 광화문이 망가져가는 건 아닌지, 집구석에 앉아 공연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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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10-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서 보면 더 흉물스럽습니다. 거대한 똥덩어리에요. ㅠ.ㅠ

섬사이 2009-10-13 13:40   좋아요 0 | URL
허걱, 정말요? 이런 낭패가.... ㅠ.ㅠ

네꼬 2009-10-1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백 번. ㅠㅠ 그러니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ㅠㅠ

섬사이 2009-10-14 19: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렇다니까요..ㅠㅠ

qualia 2009-10-1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세종대왕님께 정말 죄송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동상이나 기념적 건축물에서 우리가 경외감, 숭고함, 아름다움, 자랑스러움 따위를 느끼는 것은 그 크기/규모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역사적 배경, 공간적 배경, 심리적 배경, 미학적 구조 등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그 조형물들을 세운다면, 그 크기/규모가 크든 작든 얼마든지 우리의 미적 감각이나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화문 세종대왕상은 (섬사이 님 말씀처럼) 역사적/공간적/심리적 배경들과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특히 미학적 구조의 설계/디자인 측면에서 세종대왕상을 안치한 기단은 너무나 조악한 수준입니다. 세종대왕상과 그 기단 사이의 부조화, 그 이물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군요. 미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머리에서 어떻게 저런 조야한 디자인이 나왔는지, 참으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 기단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기단 내부와 외벽을 어떤 재료로 처리했는지, 즉 내부는 콘크리트로 하고 외벽은 대리석 판재로 마감한 것인지 궁금하군요. 제가 판단하기에 저런 설계와 디자인과 재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종대왕상에 걸맞지 않게 품격도 없고 싸구려이고 내구성도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세종대왕님의 위엄을 크게 해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세종대왕님께 불경스런 짓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2009. 10. 13. 화요일. 낮 3시 18분. 구름.)

섬사이 2009-10-14 19: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기단, 정말 흉해요. 그리고 왜 세종대왕은 한손에 책들고 저렇게 교무실에 앉아 있는 선생님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지.. 어떻게 보면 체육시간에 애들 줄넘기 시켜놓고 점수 매기는 선생님같기도 하구요..
아아아아 좀 더 창의적일 수 없냐구요,,
그나저나 qualia님은 전문가이신듯.. 전문가 입장에선 일반인보다 더 속상할 수도 있겠네요...

쿠키별 2009-10-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색깔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단만이라도 좀 어떻게 하면...

섬사이 2009-10-14 19:5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볼수록 속만 상합니다.

비로그인 2009-10-1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상합니다. 확 쓸어버리고 싶을 만큼 이상해요.

섬사이 2009-10-15 22:29   좋아요 0 | URL
예, 볼수록 이상하고 괴기스러워요.
 




이번에 유빈이와 중앙박물관에 다녀온 것이 세 번째이다.  첫번째는 큰딸 유진이의 방학숙제 때문에 갔었다.  직업탐색에 관한 숙제였는데, 마침 박물관 큐레이터 한 분과 연결이 되어서 인터뷰를 하러 가는데 쫓아가서 놀다온 것.  물론, 인터뷰는 큰딸 혼자 하라고 두고 같이간 신이네랑 아이 셋을 끌고 신라금관이며 볼 때마다 '저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너무 무거워서 귀볼이 길게 늘어나지 않을까?'싶은 누런 금귀걸이들이며 깜찍하고 정감있는 토우들을 보며 박물관을 자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었던 것이다.  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많았고, 어린이 박물관은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구경도 못하고 밖에서 어정쩡거리긴 했지만.

두번째는  인터넷으로 중앙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걸 알고 신청했었다.  '책 읽어주는 박물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것도 인터넷으로 미리 참가신청을 해야만 했다.  암튼, 시간에 맞춰 어린이 박물관 로비에 모여 있다가 담당 선생님의 인솔을 받고 어린이 박물관 내의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 한 켠에 호랑이 병풍이 서 있고, 아이들은 앞쪽에서 활동하고 어른들은 뒤쪽 의자에 앉아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흥 호랑이, 깍깍 까치>라는 책으로 우리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호랑이 모양으로 자른 가면을 나눠주면 아이들이 가면을 크레파스와 접착식 펠트조각으로 칠하고 꾸며보는 것.  그런데 시간이 너무 모자르다.  유빈이의 경우 호랑이 코부분만 좀 칠했는데, 시간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아쉬울데가!!!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난 후, 어린이 박물관에서 좀 놀다가(유빈인 옛날 부엌과 현대 부엌을 비교해 놓은 곳에서 소꿉놀이에 열중) 3층 미술전시실로 올라가서는 유빈이랑 '호랑이 찾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 <까치와 호랑이>민화도 발견.  ^^ 












 

 

어제, 세번째로 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이번엔 'HELLO, 박물관. 갈갈이 콩'이라는 프로그램.  물론 이것도 사전에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큰딸이 시험기간이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공지영씨의 <즐거운 나의 집>인데 거기에 누차 반복되는 메시지가 '어차피 니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난 내 인생을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 였더래서 미안함을 참고(?) 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그것도,, 시험 끝나고 돌아오는 딸, 기다렸다가 점심밥도 안주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딸과 대면.  '시험 잘 봤냐?  엄마 간다~~' 라는 말만 남기고 마침 정류장에 들어선 버스에 허겁지겁 올라탄 것. 
박물관에 도착해보니 마당에서 책에 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는 중.  행사 제목이 '책책BOOK북'.  문화체육관광부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가을독서문화축제라는데, 축제치고는 너무 썰렁한데다 '억지로 짜내기'식 이벤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온김에 슬슬 둘러보는데, 우리의 유빈씨가 갑자기 내 손을 끌고 달리더니 예림당 부스에 전시된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예림당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거다.   


<프린세스 코디 인형놀이>라니...  늘 엄마와 딸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는 이런 책의 출판을 이제 좀 자중해주셨으면..  <WHY>시리즈로 빌딩을 세우셨다는 전설의 출판사이시니 이젠 좀..  뭐, 아이야 행복해하지만, 난 소중한 나무를 희생시켜서 만든 아까운 종이를 왜 하필이면 저런 책을 만드는 데 쓰나, 하는 생각에 속상해지는 거다.  아니, 고상한 이야기 집어치우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책 사는데 쓴 내 돈이 아까워서 속상한거다.  얄미웠던 건, 저런 류의 책을 부스 안에 전시하지 않고 사람들 지나다니는 통로에 잘 보이도록 진열식 책꽂이에 꽂아서 놓아두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아이들을 미끼로 한 상술이 돋보이는 예림당.  마음에 안드는데 억지로 사주는 나한테 미안했는지 스티커 하나를 서비스로 주더라.. 그래도 니가 싫~다..
비교하면 그렇지만, <살아남기>나 <보물찾기>시리즈 만화로 성공한 아이세움 출판사 같은 경우는 그래도 좋은 책 출판에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여 나름 이쁘게 봐주고 있건만..  하긴 그들이 내가 이쁘게 봐주고 안봐주고가 뭐가 중요하랴.  

어쨌든 그렇게 툴툴거리고 있는데, 이럴거면 큰딸 점심이나 챙겨 먹이고 올걸, 하면서 후회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동화구연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 개구리 왕자 등을 공연하는데, 와~~ 하시는 분들의 열정이 참 대단하다.  겨우 아이 셋을 앞에 두고 9월이지만 아직 더운 날씨였는데 부직포로 만든 모자와 의상을 걸치고는 참 열심히도 해주셨다.  그래서 화가 좀 풀리고, 설문조사 해줬을 뿐인데 선물을 세 가지나 줘서 또 좀 풀리고...  근데 참 돈도 많지.  설문조사를 해주면 선물을 준다기에(공짜선물엔 맥없이 약해지는 아줌마라서.. ) 급하게 해줬는데, 세 개 중에 하나만 줄줄 알았는데 세 가지를 전부 다 줬다.   티셔츠, 가방, 개구리 인형.

저 로고들을 좀 작게 한 귀퉁이 구석으로 몰아서 디자인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티셔츠는 울아들 잘 때 입고 자라고 주고, 가방은 도서관 가방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개구리 인형(이름이 책뽀라고 하더만..)은 유빈이 가방에 매달아 줬더니 좋아한다.  행사는 9월 27일 일요일, 그러니까 내일까지고 손택수, 정호승, 방현석,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이라든가 윤제균, 강형철 영화감독과의 시간등 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된 것 같으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주말을 이용해 가볍게 나들이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노닥거리다가 프로그램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 어린이 박물관 앞으로 갔더니 예약을 확인하고는 앞치마를 나눠줬다.  앞에 기념품 매장 같은 곳에 들어가 2천원을 주고 준비물을 구입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담당선생님을 따라 강의실로 들어갔다.  지난 번 '책 읽어주는 박물관' 때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강의실이었다.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이라 유빈이에겐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강사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 앞에 놓인 멧돌이며 절구를 빨리 만져보고 싶은 유빈이는 아마 대단한 참을성을 발휘해야 했을 듯. 
농경문화가 막 시작될 시기, 그러니까 신석기 시대쯤이 되려나?  그 시대의 자료화면도 보여주고 그 때 쓰였던 갖가지 농기구들도 살펴본 뒤 강의 듣기 전 미리 구입한 재료(볶은 콩)을 가지고 다식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핵심은 콩을 가는 방법.  책상 위에 준비된 맷돌, 절구, 갈판과 갈돌을  모두 이용해서 콩을 가는데 유빈이에겐 무척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콩을 다 간 후에 꿀을 섞어 다식판에 찍는데, 겨우 세 개를 만들 분량밖에 안되었다.  강의실 안엔 고소한 콩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엄마의 도움을 거부하고 혼자 다식을 만든 유빈이는, 내가 빈 그릇을 헹구러 다녀온 사이에 다식 세 개를 몽땅 자기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그...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지만, 그래도 엄마 입에 하나 넣어주지도 않다니.  나중에 박물관을 나오면서 엄마는 하나도 안 주고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냐고 따지니까 "엄마,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다 먹었어"하며 씨익 웃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린이박물관에서 좀 놀았는데, 지난 번엔 부엌 코너에서 소꿉장난에 열을 올리더니 이번엔 여러가지 악기들을 두들겨보기도 하고 움집에도 들어가보았다.  신라금관을 머리에 써보기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유빈이는 버스를 타자마자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12시부터 6시까지의 박물관 여행이 유빈이에겐 무척 고단했을 터였다. 
 

 

 

 

 

 

웃기는 건, 집에 돌아와 잠에서 깬 다음 하는 말이
"엄마, 난 박물관이 너무 좋아.  맨날맨날 갔으면 좋겠어." 한다.
다섯 살 딸 아이가 박물관이 너무 좋다는 말에 나는 내심 아이가 박물관에서 옛날 물건들과 그림을 보는 데 재미를 느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확인 차, "왜~???" 하고 물었더니 우리 딸이 천진한 얼굴로 하는 대답이
"맛있는 거 먹잖아. 어린이 세트랑, 구슬 아이스크림이랑.. "
으이구,,, 내가 못살아.  그러니까 유빈이가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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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2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꾸밈없는 천진함이 최고예요. 유빈이 예뻐요~~
손택수 시인~~ 벌써 지났군요.ㅜㅜ

섬사이 2009-10-01 03:27   좋아요 0 | URL
'꾸밈없는 천진함'에 늘 한 방 먹고 살죠. ^^
 

아직도 남아 있던 걸까. 
주책이지, 하면서도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
어쩌자고 아직도 그런 장면들에서 내 가슴이 조여오는 건지,
내 몸 어딘가에 지독한 얼룩으로 남아있나봐.   
도대체 어디에?
그 만큼의 시간을 들여 완벽한 표백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럴 때 갑자기 떠오르냐구.
아득하고 희미해진 그 기억이
이젠 보이지도 않아,  
그런 거에 휘둘릴만큼 난 이제 순수하지 않아,
얼마나 때묻고 찌들었는지 그런 것쯤은 끄떡없어, 
강하고 세지고 뻔뻔해졌다고, 
그렇게 자부했는데 말이야.
그런 거 참 철없이 웃긴 거였다고, 
비아냥거리며 놀려줄 수 있었다구. 
내 생애 단 한 번,
딱 그걸로 족했다고, 
다시는 그런 거 없을 거라 했거든.
단 한 번이었기 때문에  
더 오래 남아 있는 걸까.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마음까지도 서늘해져서.
그래서 조금 약해진거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걸. 
다시는 되풀이 되지 못할 그 기억.
어딘가에 새겨져 징징 울어대는, 
어쩌지도 못할,
망할,
마흔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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