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유빈이와 중앙박물관에 다녀온 것이 세 번째이다. 첫번째는 큰딸 유진이의 방학숙제 때문에 갔었다. 직업탐색에 관한 숙제였는데, 마침 박물관 큐레이터 한 분과 연결이 되어서 인터뷰를 하러 가는데 쫓아가서 놀다온 것. 물론, 인터뷰는 큰딸 혼자 하라고 두고 같이간 신이네랑 아이 셋을 끌고 신라금관이며 볼 때마다 '저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너무 무거워서 귀볼이 길게 늘어나지 않을까?'싶은 누런 금귀걸이들이며 깜찍하고 정감있는 토우들을 보며 박물관을 자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었던 것이다. 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많았고, 어린이 박물관은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구경도 못하고 밖에서 어정쩡거리긴 했지만.
두번째는 인터넷으로 중앙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걸 알고 신청했었다. '책 읽어주는 박물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것도 인터넷으로 미리 참가신청을 해야만 했다. 암튼, 시간에 맞춰 어린이 박물관 로비에 모여 있다가 담당 선생님의 인솔을 받고 어린이 박물관 내의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 한 켠에 호랑이 병풍이 서 있고, 아이들은 앞쪽에서 활동하고 어른들은 뒤쪽 의자에 앉아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흥 호랑이, 깍깍 까치>라는 책으로 우리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호랑이 모양으로 자른 가면을 나눠주면 아이들이 가면을 크레파스와 접착식 펠트조각으로 칠하고 꾸며보는 것. 그런데 시간이 너무 모자르다. 유빈이의 경우 호랑이 코부분만 좀 칠했는데, 시간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아쉬울데가!!!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난 후, 어린이 박물관에서 좀 놀다가(유빈인 옛날 부엌과 현대 부엌을 비교해 놓은 곳에서 소꿉놀이에 열중) 3층 미술전시실로 올라가서는 유빈이랑 '호랑이 찾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 <까치와 호랑이>민화도 발견. ^^
어제, 세번째로 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이번엔 'HELLO, 박물관. 갈갈이 콩'이라는 프로그램. 물론 이것도 사전에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큰딸이 시험기간이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공지영씨의 <즐거운 나의 집>인데 거기에 누차 반복되는 메시지가 '어차피 니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난 내 인생을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 였더래서 미안함을 참고(?) 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그것도,, 시험 끝나고 돌아오는 딸, 기다렸다가 점심밥도 안주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딸과 대면. '시험 잘 봤냐? 엄마 간다~~' 라는 말만 남기고 마침 정류장에 들어선 버스에 허겁지겁 올라탄 것.
박물관에 도착해보니 마당에서 책에 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는 중. 행사 제목이 '책책BOOK북'. 문화체육관광부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가을독서문화축제라는데, 축제치고는 너무 썰렁한데다 '억지로 짜내기'식 이벤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온김에 슬슬 둘러보는데, 우리의 유빈씨가 갑자기 내 손을 끌고 달리더니 예림당 부스에 전시된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예림당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거다.
<프린세스 코디 인형놀이>라니... 늘 엄마와 딸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는 이런 책의 출판을 이제 좀 자중해주셨으면.. <WHY>시리즈로 빌딩을 세우셨다는 전설의 출판사이시니 이젠 좀.. 뭐, 아이야 행복해하지만, 난 소중한 나무를 희생시켜서 만든 아까운 종이를 왜 하필이면 저런 책을 만드는 데 쓰나, 하는 생각에 속상해지는 거다. 아니, 고상한 이야기 집어치우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책 사는데 쓴 내 돈이 아까워서 속상한거다. 얄미웠던 건, 저런 류의 책을 부스 안에 전시하지 않고 사람들 지나다니는 통로에 잘 보이도록 진열식 책꽂이에 꽂아서 놓아두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아이들을 미끼로 한 상술이 돋보이는 예림당. 마음에 안드는데 억지로 사주는 나한테 미안했는지 스티커 하나를 서비스로 주더라.. 그래도 니가 싫~다..
비교하면 그렇지만, <살아남기>나 <보물찾기>시리즈 만화로 성공한 아이세움 출판사 같은 경우는 그래도 좋은 책 출판에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여 나름 이쁘게 봐주고 있건만.. 하긴 그들이 내가 이쁘게 봐주고 안봐주고가 뭐가 중요하랴.
어쨌든 그렇게 툴툴거리고 있는데, 이럴거면 큰딸 점심이나 챙겨 먹이고 올걸, 하면서 후회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동화구연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 개구리 왕자 등을 공연하는데, 와~~ 하시는 분들의 열정이 참 대단하다. 겨우 아이 셋을 앞에 두고 9월이지만 아직 더운 날씨였는데 부직포로 만든 모자와 의상을 걸치고는 참 열심히도 해주셨다. 그래서 화가 좀 풀리고, 설문조사 해줬을 뿐인데 선물을 세 가지나 줘서 또 좀 풀리고... 근데 참 돈도 많지. 설문조사를 해주면 선물을 준다기에(공짜선물엔 맥없이 약해지는 아줌마라서.. ) 급하게 해줬는데, 세 개 중에 하나만 줄줄 알았는데 세 가지를 전부 다 줬다. 티셔츠, 가방, 개구리 인형.
저 로고들을 좀 작게 한 귀퉁이 구석으로 몰아서 디자인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티셔츠는 울아들 잘 때 입고 자라고 주고, 가방은 도서관 가방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개구리 인형(이름이 책뽀라고 하더만..)은 유빈이 가방에 매달아 줬더니 좋아한다. 행사는 9월 27일 일요일, 그러니까 내일까지고 손택수, 정호승, 방현석,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이라든가 윤제균, 강형철 영화감독과의 시간등 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된 것 같으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주말을 이용해 가볍게 나들이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노닥거리다가 프로그램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 어린이 박물관 앞으로 갔더니 예약을 확인하고는 앞치마를 나눠줬다. 앞에 기념품 매장 같은 곳에 들어가 2천원을 주고 준비물을 구입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담당선생님을 따라 강의실로 들어갔다. 지난 번 '책 읽어주는 박물관' 때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강의실이었다.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이라 유빈이에겐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강사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 앞에 놓인 멧돌이며 절구를 빨리 만져보고 싶은 유빈이는 아마 대단한 참을성을 발휘해야 했을 듯.
농경문화가 막 시작될 시기, 그러니까 신석기 시대쯤이 되려나? 그 시대의 자료화면도 보여주고 그 때 쓰였던 갖가지 농기구들도 살펴본 뒤 강의 듣기 전 미리 구입한 재료(볶은 콩)을 가지고 다식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핵심은 콩을 가는 방법. 책상 위에 준비된 맷돌, 절구, 갈판과 갈돌을 모두 이용해서 콩을 가는데 유빈이에겐 무척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콩을 다 간 후에 꿀을 섞어 다식판에 찍는데, 겨우 세 개를 만들 분량밖에 안되었다. 강의실 안엔 고소한 콩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엄마의 도움을 거부하고 혼자 다식을 만든 유빈이는, 내가 빈 그릇을 헹구러 다녀온 사이에 다식 세 개를 몽땅 자기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그...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지만, 그래도 엄마 입에 하나 넣어주지도 않다니. 나중에 박물관을 나오면서 엄마는 하나도 안 주고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냐고 따지니까 "엄마,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다 먹었어"하며 씨익 웃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린이박물관에서 좀 놀았는데, 지난 번엔 부엌 코너에서 소꿉장난에 열을 올리더니 이번엔 여러가지 악기들을 두들겨보기도 하고 움집에도 들어가보았다. 신라금관을 머리에 써보기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유빈이는 버스를 타자마자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12시부터 6시까지의 박물관 여행이 유빈이에겐 무척 고단했을 터였다.
웃기는 건, 집에 돌아와 잠에서 깬 다음 하는 말이
"엄마, 난 박물관이 너무 좋아. 맨날맨날 갔으면 좋겠어." 한다.
다섯 살 딸 아이가 박물관이 너무 좋다는 말에 나는 내심 아이가 박물관에서 옛날 물건들과 그림을 보는 데 재미를 느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확인 차, "왜~???" 하고 물었더니 우리 딸이 천진한 얼굴로 하는 대답이
"맛있는 거 먹잖아. 어린이 세트랑, 구슬 아이스크림이랑.. "
으이구,,, 내가 못살아. 그러니까 유빈이가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