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9일  

그 날 남편은 새벽 2시 20분 쯤에 들어왔다. 저녁에 전화로 "나, 지금 들어가는데 아직 저녁 안 먹었어."하길래 찌개 끓이고 갈치 구워 놓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집으로 가다가 다시 나가고 있어.  좀 늦을 거야."했다.  구워놓은 갈치는 그대로 뒷베란다로 쫓겨났고 찌개는 조용히 식어갔다.  

새벽 2시 20분에 들어온 남편이 "나 배고파.  밥 있어?"한다.  음..  귀찮다거나 황당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이 시간까지 밥도 굶고 뭐 했나..'하는 뜨악함이 먼저 스쳤다.  쫓겨났던 갈치를 불러다 다시 데우고 찌개는 가스레인지 위에서 쿨럭쿨럭 거리며 몸을 덥혔다.   

"이 시간까지 밥도 못먹고 뭐했어?"
"박OO선생님이 보자고 하셔서 청담동에서 술 좀 했지."
"빈 속에?"
"그렇지, 뭐..."
"밥이랑 바꿀 만큼, 배고픔을 참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어?"
"그냥..   아, 어쩌면 나, 다음달 쯤 중국 가게 될지도 몰라."
"왜?"
"확실한 건 아닌데 일이 좀.."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식탁에 앉아 중국에 가게 될지도 몰라로 시작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 다니던 회사 돈을 횡령해서 해외로 도피했대를 지나 사업이라는 게 그렇더라구 쯤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업무용 차를 하나 마련하고 직원을 한 명 더 뽑아야 될 것 같아 라는 희망으로 마무리된 밤이었다.  

난,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사람, 싸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덩치 커다란 남편이 측은해 보였다.  살다보면 미울 때도 있고(어쩌면 미울 때가 더 많고), 이러쿵 저러쿵 구시렁구시렁 불만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고, 왜 이렇게 사나.. 할 때도 많지만.... 그 날 밤만큼은 남편은 성 밖에서 불 뿜는 100톤짜리 용과 싸우고 돌아온 기사였고, 나는 성 안에서 세상 모르고 조잘대고 투덜대며 살아가는 철없는 마누라였다.  마흔이 넘도록 세상과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게, 너 참 못났구나 하고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참 운이 좋았구나 해야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연봉 1억 받는 마누라가 있고 BMW를 몰고 다닌다는 후배를 보면서 남편이 "난 참 지지리 복도 없지!"한다고 해도(물론 그렇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부럽기는 했을 거다) 한 10%쯤 이성적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감정적 폭발에 대해선 책임을 질 수 없으며 경제적 이윤 창출 능력만을 가지고 마누라를 비교한 괘씸죄에 대해서는 90% 용서가 어려울 게 틀림없다) 

자려고 누웠는데 전인권이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가 맴돌았다.  '난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그것만이 내 세상~~'하던 노래 가사가 그날 밤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네 세상은 너무 작구나,,, 그렇지, 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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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7일  

정오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나?  유빈이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TV를 켰다.  2주전에 구청 지하에서 빌려온 장난감을 반납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중에 유빈이는 심심했나보다.  왔다갔다 하면서 흘낏 흘낏 보니 틀어놓은 게 MBC 스페셜, 다큐 프로그램이다.  인도의 어느 종교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수도승이라는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트럭이 오가는 도로를 걷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런 남사스러운 종교가 다 있어?  호기심에 아예 방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버렸다.  

나의 음흉한 호기심을 비웃듯이 남녀노소 인도인들이 벌거벗은 수도승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럽고 존경심이 가득 차 있었다.  종교의 이름은 '자이나교'인데 살생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고행을 중요시하는 종교인 것 같았다.  수도승이 아니더라도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은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수돗물과 우유도 고운 천에 걸러 마시고(혹시 섞여있을 벌레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실크 옷이나 가죽구두, 가죽가방은 쓰지 않고, 농부가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자이나교도들은 인도의 출판, 언론, 방송계에 주로 진출하여 큰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고.  

수도승들은 40도가 넘는 인도의 찜통더위 속에서 맨발로 하루에 20Km씩 걷는단다.  걷다가 해가 지면 길바닥에 천 하나를 깔고 잠을 잔다.  얇은 천조각 하나도 덮지 않은 수도승들의 맨몸으로 모기들이 달려들어도 수도승들은 참고 견딘다.  모기 한 마리도 죽여선 안되기에.  여자 수도승도 있는데 이들은 8m짜리 하얀 천으로 몸을 두르고 맨발로 걷는다.  갈라진 발바닥 틈으로 흙이 파고들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픈데도 묵묵히 참고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돌아오자 그 때서야 신도 중 하나에게 발바닥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신도가 발바닥의 갈라진 틈을 보고 바늘로 흙을 빼주고서 바늘을 가지고 다니라고 주니까, "바늘도 가져선 안되는데.."하며 망설이다 소지품 주머니에 꽂아 놓는다.   물도 소중히, 함부로 써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샤워나 목욕은 꿈도 꾸지 못한다.  몸을 씻는데 두 컵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수도승들은 식사를 하다가 이물질이 나오면 그 즉시 식사를 중단한다.  한 끼의 식사마저 포기하고 뙤약볕 아래 길을 나서야 한다. 병이 들어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서서히 곡기를 끊으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3, 4개월에 한 번씩 수도승들이 이발을 하는 장면이었다.  한 여자 수도승의 이발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머리를 밀거나 자르는 게 아니라 뽑는 거였다.  3Cm 정도 자랐을까 싶은 여자 수도승의 머리를 대여섯 명의 다른 여자 수도승들이 노래를 부르며 뽑아주고 있었다.  한 올씩 뽑는 것도 아니고 뭉텅뭉텅..  저걸 어떻게 참고 있지?  

21세기 도시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내 눈에는 자이나교의 모습 중에 엽기적으로 비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자이나교 수도승의 말과 그들의 삶의 방식 중에는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자이나교에 대해 뒤지다가 이런 글을 읽었다. 
"자이나교는 세상 만물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무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타종교와 경쟁 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도 열렬하지 않다."
"인간의 제일의 의무는 자신과 다른 생물들의 명아를 발현시키고 완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아힝사, 즉 어떠한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된다. 자이나교도는 늙고 병든 동물을 위해 피난처와 쉴 집을 마련하여 이곳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돌보아준다." 

난 '공식적'으로는 카톨릭 신자다.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내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딱히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짝퉁 날나리 사기성 신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내팽개친지 오래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람들이 '종교'보다는 '철학'에 우선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종교'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나중에 유진이와 명보에게 자이나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들은 한끼만 굶어도 눈이 뒤집힐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 채식을 해볼까?'했더니 자기들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단다.  자이나교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개망나니가 없을 것이다.  

명보까지 데리고 늦게 마트를 다녀왔다.  다녀오는 버스에서 유빈이가 묻는다.
"엄마, 하늘에 저게 뭐야?"
하얀 낮달이 떠있었다. 
"달이 나왔네.  낮에 나온 하얀 달이야."
"왜 낮에 달이 나왔어?  햇님이랑 놀고 싶어서 나왔나?"
아이다운 생각이다.  이 아이다운 천진한 생각에 주책맞은 이 엄마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달님이 햇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못참고 나왔나 보다.  저렇게 하얗게 창백해지도록 너무너무 보고 싶었나봐."
그러자 우리 아들 옆에서 듣고 있다가 또 한 마디 거든다.
"그런데 햇님은 못됐다.  지는 한 번도 달님보러 밤에 안 나오잖아."
유빈이는 고개를 갸우뚱~~ 근데 엄마는,
"해는 야망을 채우려고 변심한 남잔가봐...... 하하하하하 유빈이의 천진스런 말 한마디 가지고 엄마는 왜 삼류 드라마를 쓰고 있냐.  하하하하하 역시 엄마는 속물이야.  흐흐흐흐흐.." 

자이나교 수도승만큼은 꿈도 꾸지 않고, 그냥 쪼끔만 덜 속물이게 살고 싶다.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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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6일   

남편은 8시에, 명보는 9시 반에, 유진이는 11시 반에 집을 나선다.  명보랑 유진이가 좀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한 번에 끝내주면 좋을텐데, 이 녀석들이 방학이라고 늦잠의 여유를 누리고 싶으시단다.. 에효..  덕분에 내 아침 시간은 엉망진창이다.  조각조각 나눠지고 잘라져서 오후를 맞고 나면 허무해진다고나 할까?  그래도 학생 시절 방학 때가 아니면 언제 늦잠을 마음껏 자보겠냐 싶어서 그냥 내버려둔다.   

오후엔 유빈이 데리고 미장원에 갔다.  유빈이 앞머리가 길어서 눈을 찌르기 일보직전이고 뒷머리도 지저분해서, 좀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유빈인 미장원을 좋아한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 꼼짝도 않고 거울만 응시하며 있어서 아줌마들과 헤어디자이너들의 칭찬을 받는다.  그런데 난 그게 공주병 증세 중 하나라는 걸 알기에 누가 칭찬을 해줘도 엄마인 나는 좀 심드렁하고 있다.  드라이까지 하고 나니 유빈이도 꽤 기분이 좋은 듯.  파카 모자도 안 쓰겠단다.  머리가 망가진다나..  누구를 닮아 저러는 건지.  (나는 절대 아니다!!) 

미장원에서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흔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빈이를 반겨준다. 지흔이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엄마에게 빨리 도서관 가자고, 유빈이 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며 졸랐나보다.  점심까지 다 챙겨먹고, 미장원까지 들러서 한껏 여유부리다 온 게 미안해졌다.   

오후 네시 경이 되자 도서관 마더구스 모임 엄마가 아이들에게 영어그림책을 읽어줬다.  읽어준 그림책은 <Sunshine on My Shoulder> 존 덴버의 올드팝송이 그림책과 CD로 나온 거였다.  그 엄마가 한차례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나서 CD를 틀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존 덴버의 노래를 듣는 거였다.  순간 도서관에 모든 소음이 사라졌었다.  아이들조차도 잠잠해졌다.  엄마들은 지난 날 기억 속 어딘가 쯤으로 휘리릭 날아가버리고,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샘물처럼 흘러나와 가슴을 촉촉치 적시는 걸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으로 기우는 창밖을 내다보며, 들고 있던 커피잔의 따스함에 새삼 고마워하며, 그 먼 시간을 건너 여기에 서 있는 내 자신을 기특하다 쓰다듬으며, 지난 날 따뜻했던 누군가와 기억 속에서 해후하며..  나도 그렇게 존 덴버의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어그림책 읽기가 끝나고 나서 엄마들이 그 그림책 주변으로 모였다.  그림은 왜 저렇게 예쁜 거야..   

영어그림책 읽기가 끝나고 나니 도서관의 꿈나무 모임 엄마들이 '만화경 만들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주었다.  지흔이 엄마도 꿈나무 모임의 일원이라 유빈이와 지흔이를 비롯한 유아들 지도를 맡아줬다.  아이들의 서툰 손으로 만든 만화경이지만 불빛을 향하고 들여다보면 제법 참 예쁘다.  지난 해 11월 '나랑 같이 놀자'라는 도서관 행사에서도 유빈이는 이 만화경을 만들었었는데, 가끔 우울할 때 커피 한 잔 타서 마시면서 만화경 속 예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좀 위로가 되었었다.  이제 만화경이 두 개가 되었으니 두 배의 위로를 받게 될 듯.. ^^ 

오늘도 어둑해져서야 책 세권을 빌려서 도서관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밥하고 순두부 찌개도 끓이고 있는데, 명보가 돌아왔다.  오늘 영어단어 시험에서 68문제 중 3개밖에 안틀렸다며 자랑이다.  명보는 영어와 국어 쪽이 약하다.  과학이랑 수학은 그나마 흥미있어 하는 편인데 영어는 명보에게 완전 독이다.  그러니 단어 시험에서 3개밖에 안틀렸다는 건 최고의 결과를 얻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내 키를 살짝 넘어선 아들을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려줬다.  우리집 세 남매 중 만약 제도권 공교육에서 탈피시켜야 할 아이를 꼽으라면 그건 명보다.  끌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강해서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하는 학교 시스템이 명보에게는 좀 버겁고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직접 만져보고 실험해보고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학교와는 맞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학교 쪽도 살짝 기웃거려봤었고, 좀 더 자유롭게 홈스쿨링을 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명보에게 살짝 운을 떼어봤더니 싫다고 하고, 목표로 하고 있는 고등학교도 있으니 좀 기다려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겁쟁이인지라 꿈만 꾸고 상상만 하고 있다.

권정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있다.  지난 가을 도서관에서 권정생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권정생님 책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 책만 못 읽었다.  오늘 아침 짜투리 시간에 읽다보니 64쪽에 엄마 까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책 <엄마 까투리>는 이 때부터 준비된 이야기였나 보다.   권정생 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단 사실이 또 새삼 안타깝다.  그러나 살아계셔서 지금의 이 세상을 보신다면 무척 괴로워하셨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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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5일  

오랜만에, 거의 한 달만에 유빈이랑 책엄책아 도서관에 갔다.  12월, 유진이 외고 시험 치룬다고 법석을 떨고 나서 내 몸살을 시작으로 식구들 돌아가며 앓고 명보 기말고사랑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또 내일은 가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추위가 심술을 부려 못 가기도 했다.
유빈이는 하도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이 설레기도 하고, 선생님들 뵙기가 좀 수줍기도 했었나보다.  유빈이답지 않게 얌전을 빼고 앉아 있더니 친한 여섯 살짜리 오빠 지흔이가 오고 나서야 노는 데 활기를 띄었다.    

게다가 유빈이는 도서관 책통장에 개구리 도장 다섯개를 채웠다고 상으로 그림책 <따뜻한 그림백과 책>를 받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통장에 적은 게 다섯 번 모이면 개구리 도장 하나를 받으니까 스물 다섯 번 가서 책을 읽고 통장에 적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유빈이는 통장을 만든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온 날도 많았으니 이제야 처음 받게 되었다.  그래도 도서관 선생님 말씀으로는 최연소 개구리상 수상자라고 하신다.  하하하하 

 

1학년 언니들이 색종이 접기 하는 데 껴서 거들며 놀더니만 엄마 선물이라며 하얀 꽃무늬가 자잘하게 들어있는 분홍 앞치마를 접어왔다.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겠지만!)  그러더니 또 조금 있다가 언니들이 '말 잘 듣고 종이접기 잘 했다'며 상으로 줬다고 색종이 꽃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유빈이 상복이 터진 날이다. ^^   한참을 종이접기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시장을 벌였다.  색종이로 접은 꽃, 앞치마, 티셔츠와 치마 등등을 모아놓고 도서관에 온 엄마들과 선생님들께 장당 100원에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엄마들과 선생님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고, 녀석들은 판매수익금으로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다가 저희들끼리 과자파티를 열었다.   

유빈이가 책엄책아 도서관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저희들끼리 모여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일을 벌이는 기쁨 같은 거.  누가 이거 해라 하는 사람도 없고, 뭔가 해놓으면 잔뜩 칭찬하고 감탄해주는 사람들만 수두룩하니 아이들은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은 도서관에서 아이들 데리고 '만화경 만들기'를 하신단다.  토요일엔 '못된 괴물과 세 마리 아기 염소' 이야기로 그림자극을 보여주신다고 하고.  유빈이는 지흔이 오빠랑 내일도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꼭꼭 약속을 했다.   

집에 돌아와 청국장 찌개를 끓여 밥을 먹었다.  어쩐일로 남편도 일찍 들어왔다.  연말연시 정신이 없었는데, 조금 시간이 났나보다.  이제 좀 한가해진 거냐고 했더니만, 사진을 9천장이나 인화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단다.  일이 끊기지 않는 건 다행인데, 너무 바쁠 때면 또 걱정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번 겨울엔 여행도 접자고 했다.  남편이야 바쁜 와중에도 양쪽 사무실 직원들이랑 용평이니 강화도니 양평이니.. 단합대회 겸 야유회겸 해서 다녀왔고, 학회 때문에도 다녀왔는데 가족들이 또 어디 가자고 하면 고단할 게 틀림없다.  유진이랑 명보 핑계 대고 그냥 이번 겨울은 조용히 넘어가자고,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시간 날 때 맛있는 거나 한 번 사라고 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TV에서 2MB가 비상경제대책회의라나 뭐라나를 '지하벙커'에서 가질 예정이란다.  웬 지하벙커?  경제위기 같은 거 없다고 하더니, 자기 같으면 이럴 때 주식을 사겠다고 그러더니, 이젠 지하벙커에 가서 대책회의를 하겠단다.  나, 우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2MB가 개그를 좀 안다고, 개콘보다 훨씬 더 웃긴다고, 서민들 괴로운 거 알고 웃겨나 주자고 생각했나보다고, 낄낄낄 거리다 갑자기 힘빠지고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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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해 전부터 유기농 싸이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주로 채소류나 아이들 과자를 구입했었고 작년부터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계란도 자주 사먹었다.   

작년 가을에는 자주 이용하던 유기농 싸이트를 한살림으로 바꾸었다.  출자금과 가입비를 내고, 거기다 특별한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한살림으로 바꾼 이유는 그 쪽이 우리 농민들과 더 가깝다는 생각때문이기도 했다.     

몇차례 이용해보니 구비된 제품이 더 다양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겨울로 들어서니 서너종류의 호빵이 생겼고, 흑미가래떡이라든가 우리밀빵도 아이들 간식거리로 좋았다.  배송상자나 계란상자까지 모조리 수거해다가 재사용하는 모습도 신뢰를 더했고, 케찹이나 조청 같은 것까지도 유리병에 담아 나중에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할 수 있게 한 것까지도 참 세심하다 싶었다.  

주로 먹거리를 위주로 구입했던 나는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주문 때마다 4만원을 넘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었다.  그러다 생활용품 쪽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 때 발견한 것이 "다목적 미생물"이라는 것이었다.   

제품설명을 읽어보니 쌀뜨물에 흑설탕을 넣고 이 "다목적 미생물"을 섞어 며칠을 놔두었다가 빨래나 청소에 이용한다는 것인데 올라온 후기들이 평이 괜찮았다.  그렇지 않아도 몇년전 남편이 세탁기를 새로 장만해주면서 트롬으로 바꿔주었는데, 헹굼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이 들려서 찜찜하던 차였다.  한 번 써보자, 하는 마음에 주문을 했고, 1.8리터짜리 우유통에 만들어 놓은 것을 반쯤 써봤다.  

결과는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다.  빨래를 할 때 이 미생물 액체만 넣는 게 아니라 세제를 함께 넣어주기는 하는데, 세제는 그야말로 쥐오줌만큼 아주 조금만 넣어준다.  그런데도 빨래는 정말 깨끗하다.  1리터짜리 한 병에 4.900원, 그런데 1.8리터짜리 세제 한 병 만드는데 20cc가 들어가니 일반세제를 쓰는 것과 비교하면 완전 땡잡은 거다. 게다가 빨래 후 남는 세제찌꺼기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수질환경면에서도 훨씬 낫지 않을까?    

며칠 전엔 아산,당진쌀 예약판매 신청도 해버렸다.  일반 시중에 파는 쌀보다는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그 쪽 지역 농부들이 시름에 잠겼다기에 딴데 덜 쓰지,하는 마음으로 저질러 버렸다.  한살림에서 판매하는 "오분도미"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고.    

유기농 먹거리들이 좀 비싼 건 사실이지만, 외식비와 군것질비가 많이 줄었고 남아서 버리거나 하는 음식도 많이 줄었다.  큰아이들 학원에 갈 때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주고 있으니, 그것도 유기농을 이용해서 얻는 이득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식비 총액으로 볼 때엔 별 차이가 없었다.  

이번엔 우유팩을 재활용한 두루마리 휴지를 써볼 차례다.  형광물질이나 표백제가 들어가 있지 않다니 우리 가족 엉덩이가 행복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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