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정오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나? 유빈이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TV를 켰다. 2주전에 구청 지하에서 빌려온 장난감을 반납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중에 유빈이는 심심했나보다. 왔다갔다 하면서 흘낏 흘낏 보니 틀어놓은 게 MBC 스페셜, 다큐 프로그램이다. 인도의 어느 종교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수도승이라는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트럭이 오가는 도로를 걷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런 남사스러운 종교가 다 있어? 호기심에 아예 방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버렸다.
나의 음흉한 호기심을 비웃듯이 남녀노소 인도인들이 벌거벗은 수도승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럽고 존경심이 가득 차 있었다. 종교의 이름은 '자이나교'인데 살생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고행을 중요시하는 종교인 것 같았다. 수도승이 아니더라도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은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수돗물과 우유도 고운 천에 걸러 마시고(혹시 섞여있을 벌레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실크 옷이나 가죽구두, 가죽가방은 쓰지 않고, 농부가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자이나교도들은 인도의 출판, 언론, 방송계에 주로 진출하여 큰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고.
수도승들은 40도가 넘는 인도의 찜통더위 속에서 맨발로 하루에 20Km씩 걷는단다. 걷다가 해가 지면 길바닥에 천 하나를 깔고 잠을 잔다. 얇은 천조각 하나도 덮지 않은 수도승들의 맨몸으로 모기들이 달려들어도 수도승들은 참고 견딘다. 모기 한 마리도 죽여선 안되기에. 여자 수도승도 있는데 이들은 8m짜리 하얀 천으로 몸을 두르고 맨발로 걷는다. 갈라진 발바닥 틈으로 흙이 파고들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픈데도 묵묵히 참고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돌아오자 그 때서야 신도 중 하나에게 발바닥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신도가 발바닥의 갈라진 틈을 보고 바늘로 흙을 빼주고서 바늘을 가지고 다니라고 주니까, "바늘도 가져선 안되는데.."하며 망설이다 소지품 주머니에 꽂아 놓는다. 물도 소중히, 함부로 써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샤워나 목욕은 꿈도 꾸지 못한다. 몸을 씻는데 두 컵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수도승들은 식사를 하다가 이물질이 나오면 그 즉시 식사를 중단한다. 한 끼의 식사마저 포기하고 뙤약볕 아래 길을 나서야 한다. 병이 들어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서서히 곡기를 끊으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3, 4개월에 한 번씩 수도승들이 이발을 하는 장면이었다. 한 여자 수도승의 이발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머리를 밀거나 자르는 게 아니라 뽑는 거였다. 3Cm 정도 자랐을까 싶은 여자 수도승의 머리를 대여섯 명의 다른 여자 수도승들이 노래를 부르며 뽑아주고 있었다. 한 올씩 뽑는 것도 아니고 뭉텅뭉텅.. 저걸 어떻게 참고 있지?
21세기 도시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내 눈에는 자이나교의 모습 중에 엽기적으로 비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자이나교 수도승의 말과 그들의 삶의 방식 중에는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자이나교에 대해 뒤지다가 이런 글을 읽었다.
"자이나교는 세상 만물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무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타종교와 경쟁 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도 열렬하지 않다."
"인간의 제일의 의무는 자신과 다른 생물들의 명아를 발현시키고 완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아힝사, 즉 어떠한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된다. 자이나교도는 늙고 병든 동물을 위해 피난처와 쉴 집을 마련하여 이곳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돌보아준다."
난 '공식적'으로는 카톨릭 신자다.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내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딱히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짝퉁 날나리 사기성 신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내팽개친지 오래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람들이 '종교'보다는 '철학'에 우선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종교'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나중에 유진이와 명보에게 자이나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들은 한끼만 굶어도 눈이 뒤집힐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 채식을 해볼까?'했더니 자기들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단다. 자이나교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개망나니가 없을 것이다.
명보까지 데리고 늦게 마트를 다녀왔다. 다녀오는 버스에서 유빈이가 묻는다.
"엄마, 하늘에 저게 뭐야?"
하얀 낮달이 떠있었다.
"달이 나왔네. 낮에 나온 하얀 달이야."
"왜 낮에 달이 나왔어? 햇님이랑 놀고 싶어서 나왔나?"
아이다운 생각이다. 이 아이다운 천진한 생각에 주책맞은 이 엄마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달님이 햇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못참고 나왔나 보다. 저렇게 하얗게 창백해지도록 너무너무 보고 싶었나봐."
그러자 우리 아들 옆에서 듣고 있다가 또 한 마디 거든다.
"그런데 햇님은 못됐다. 지는 한 번도 달님보러 밤에 안 나오잖아."
유빈이는 고개를 갸우뚱~~ 근데 엄마는,
"해는 야망을 채우려고 변심한 남잔가봐...... 하하하하하 유빈이의 천진스런 말 한마디 가지고 엄마는 왜 삼류 드라마를 쓰고 있냐. 하하하하하 역시 엄마는 속물이야. 흐흐흐흐흐.."
자이나교 수도승만큼은 꿈도 꾸지 않고, 그냥 쪼끔만 덜 속물이게 살고 싶다.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