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사는 꼴을 좀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를 느낀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어제 내가 뭘 했는지, 내가 아침은 먹었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정말 이대로 살다간 내가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만 같으니까. 일단, 주요사항을 정리하고 넘어가봐야겠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고르미로 활동한 지 1년이 넘었다. 처음엔 도서선정위원회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모임이었는데 어감이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이라고 '우리아이 책고르미'라고 이름을 고쳤다. 작년만 해도 한 달에 한 두번 모여서 도서관에서 구입할 책들을 선정하고 한달에 한 번 한 명씩 돌아가며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비교적 한가한 모임이었는데...
올해는 좀 바빴다. 외부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 아이 좋은 책 목록 고르기'였다. 영유아에서 초등학생이 볼만한 그림책으로 한정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각자 선정해온 책들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이제 200여권의 책들을 모아 놓았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고르기위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출판사 계수나무 위정현 대표님, 그림책 작가 허은미 선생님, 번역가 이시면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를 쓰신 서남희 선생님, 인터넷에서 책마녀라는 닉넴으로 통하는 김영욱 선생님(<그림책,음악을 만나다>의 저자)을 초대해 강의를 듣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지난 번에 권윤덕 선생님 댁을 찾아가 그림책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한 수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책고르미 덕분이었다.
10월 쯤, 100쪽 분량의 도서목록이 완성될 예정이다. 4명의 책고르미 모임 회원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세 아이 엄마이고, 한 명이 셋째 아이를 다른 또 한명이 둘째를 임신 중이다. 그래서 모임을 정상적(?)으로 해나가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의 양과 다양성이 확보되는 장점도 있다. 더구나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또는 아예 모르고 있던 책들을 소개받는 건 무지 큰 기쁨이 된다. 어제는 도서관 선생님이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들렌카>, <티베트> 등으로 유명한 피터시스와 어린이 <진짜 얼마만 해요>, <동물 아빠들> 등등을 펴낸 스티브 젠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그림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좀 재밌다. 일반적인 추천도서목록에서는 빠져있을 법한 책들이 꽤 섞여있고(이건 순전히 엄마들의 경험에 의한 책선정의 결과다), 앤서니 브라운이라든가 존 버닝햄 같은 유명작가의 책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어제 중간점검 겸, 책들을 연령별, 주제별로 분류해보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얼마 있으면 책고르미 대장 엄마는 둘째를 출산하게 되는데, 큰일이다. 아직 손보고 다듬을 일이 태산이라..
8월 말이나 9월 초쯤엔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 주시기로 한 권윤덕 선생님께 각자 그린 스케치를 들고 찾아뵐 예정이다. 권윤덕 선생님 앞에 내가 그린 그림을 펼쳐 놓아야 한다니... 정말 생각만해도 등짝에 식은 땀이 흐를 지경이다. 그나마 7월 24일 쯤 찾아뵈려고 했는데 애들 방학과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내지 못해 연기되어 얼마나 한시름 놓았는지..
하지만 사실 가장 체력소모가 큰 일은 유빈이와 노는 일이다. 아침 9시 30분쯤 부터 늦으면 저녁 일곱 여덟시까지 밖에서 살려고 드는 유빈이 덕에 해지고 나면 내 몸은 흐물흐물해지고 정신은 해롱해롱해지고 만다. 덕분에 책은 멀어지고 서평은 더더욱 멀어졌지만, 다섯 살 유빈이에게는 노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사업(?)이라 무시할 수가 없다. 인생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고민없이 놀 수 있는 황금같은 시기는 바로 이 때라는 생각에 열심히 거들어주려고 노력 중이다.
냄푠은 '지구를 인터뷰하다' 전이 끝나고 광화문 광장 전시 일로 요즘 무척 바쁘다. 휴가를 내기 어려워서, 그러니까 8월 중순이 지나서야 겨우 시간을 낼 수가 있어서(그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주 가까운 곳으로 아주 잠깐만 놀러 갔다 오기로 했다. 아직 장소도 날짜도 미정이지만 계곡에 발만 담그고 올 수 있어도 참 좋겠다.
유진이는 지난 기말고사 기간에 갑자기 <구운몽>을 꺼내 읽더니, 그 이후로 <홍계월전>에 이어 <옥루몽>을 독파 중이다. 고전소설이 너무 재미있다나? 특히 <옥루몽>은 '끝내준다'며 나중에 엄마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그린비에서 나온 다섯권짜리 <옥루몽>, 유빈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야 잡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명보는 키가 쑥쑥 크고 있고, 그런데 정신연령은 별로 높아지지 않은 것 같고, 만화책 원피스에 빠져있고, 수토일요일에는 게임을 하고, 그만 다녀도 되지 않겠냐는 학원을 제 고집으로 계속 다니고 있고,,,, 그러니까 별 일없이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아, 얼마전에 한살림에서 청소년 일손돕기로 강원도 홍천에 가서 감자를 캐고 왔다. 땅강아지도 보고 재미있었다며 다음에 또 보내달란다. 도끼모양 감자를 득템했다며 냉장고에 애지중지 보관중이다. ^^
내일은 딸과 '일러스트 거장전'에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작은 딸 때문에 아쿠아리움에 들를 위험(?)도 없지 않다. 뭐, 정신은 없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