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고1짜리 큰딸이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는 다니던 학원을 그만뒀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나이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그래서 오히려 학원이 우리딸을 더 힘들게 만드는 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K대 수학과를 나온 11살 연하의 이웃엄마가 큰딸의 수학공부를 봐주겠다고(그것도 꽁짜로!!!)  하는 바람에 믿는 구석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덕에 우리 큰딸은 방학동안 책 읽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고전에 필이 꽂혀서는 <구운몽>을 시작으로 <홍계월전>(<장국진전>이 같이 들어있는 책이다), <양반전>을 거쳐 5권짜리 <옥루몽>으로 방학을 끝냈다.  

큰딸 이 내게 적극 추천한 책은 <옥루몽>이었다.  

 '정말정말 재미있다'면서, 옥루몽에 비하면 <구운몽>은 완전 요약판처럼 시시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책 속 주인공이 자기 애첩만 예뻐하고 이야기에도 애첩 이야기만 나온다면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기에 저러나, 궁금해지기는 했지만 다섯권짜리라 선뜻 잡고 읽지를 못했다.  내년에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 기필코 읽어서 우리 큰딸과 대화가 통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 다음은 <홍계월전> 속에 들어있는 <장국진전>이다.  

학교 국어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큰딸의 말을 빌리자면 <박씨전>처럼 우리 나라의 여성영웅소설이다.  큰딸이 중학생 시절에 <박씨전>도 재밌게 읽었던 터라 <홍계월전>에 더 호기심이 생겼었나 보다. 
그런데 읽고 나더니 <장국진전>이 더 재밌다는 거다.  몇 해 전에 자살한 '장국영'을 떠올리게 하는 '장국진'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사실 지금도 <장국영전>이라고 쓸 뻔했다. '김국진'과 착각하기도 쉬울 듯..끙.)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 나는 읽지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하고 말았다.  

옥루몽을 다 읽어갈 때쯤 방학도 끝나고 있었는데, 우리 큰딸 이번엔 내게 <사씨남정기>를 빌려오란다.  빌려다 주긴 했는데 방학숙제를 마무리 하느라고 그랬는지, 아니면 <옥루몽>의 여파가 너무 강했던 것인지, <사씨남정기>는 지지부진하더니 다 못 읽고 도서관에 반납.   

추석이 빠른 탓에 중간고사도 빠르다. 개학하자마자 중간고사 준비에 들어가서는 다시 책 한 권 손에 못 쥐고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꼭 챙겨보는데, 엄마 눈치가 보이는지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칠부의 '국사'가 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면서, 드라마 선덕여왕 덕에 안외우고도 아는 게 많다며 너스레다.  눈치 준 일도 없구만.  오히려 같이 앉아서 열심히 봐주고 있구만... ㅎㅎㅎ  사실 주말엔 '패떴'에 '1박2일'에 드라마'탐라는 도다'까지 잘도 챙겨본다.   

그건 시간 여유가 있다고 책을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 읽을 짬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마음에 여유없이 책을 잡기란 어려우니까 말이다.  지금 큰딸이 딱 그렇다.
그러니 'TV 볼 시간 있으면 책을 읽으라'는 말 따위가 내 입에서 나오질 못 하고 있는 거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간 우리 큰딸 공부하다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내딸의 정신건강상 책보다 선덕여왕의 비담이 더 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큰딸이 책과 다시 멀어지고 있어도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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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9-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엄마신것같아요 지나고 보면 잔소리하던 엄마보다 묵묵히 있어주었던 순간이 더 기억나고 고마워요.

섬사이 2009-09-20 12:50   좋아요 0 | URL
멋진 엄마는요, 이젠 잔소리할 기운이 없는 거죠. ^^

2009-09-16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0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9-09-1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엄마에 멋진 딸, 찰떡 궁합이에요. 그래서 저는 방금 만화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응?)

섬사이 2009-09-20 12:56   좋아요 0 | URL
우리 큰딸은 요즘 웹툰에 빠져있어요.
인강 듣기 전에 웹툰 한 번 쫙 읽어주는 센스!를 겁도 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며 살고 있답니다.
제가 멋진 엄마라서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니구요,
이젠 제 잔소리가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딸이랑 싸울 기운도, 자신도 없어서 그래요. 이궁.. ^^;;

희망으로 2009-09-2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섬사이님의 서재에 가끔씩 마실 다니게 될 것 같네요. 옥루몽 저도 리스트에 담아둬야 겠네요.

섬사이 2009-09-26 11:24   좋아요 0 | URL
희망으로 님 덕분에 제 서재가 좀 더 따뜻해지겠네요. 언제든지 대환영이에요. 옥루몽, 언젠가 저도 마음잡고 읽어보려구요. ^^
 

그러니까,,, 사실, 난 내 자신이 사교육비를 아주 적게 들인 편이라고 자부해왔다.  
큰애들 초등학교 시절에 두 아이 합쳐서 월 18만원을 넘지 않는다가 나의 신조였고,
(무슨 근거로 18만원이라는 한도를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내가 애들한테 유난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큰아이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부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큰아이 학교 등록금이 운영회비 포함해서 445,500원이었고,
작은아이 한달 학원비가 시험특강비 포함해서 472,000원, 
학원에 다니지 않는 큰아이가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다 해서 신청한 게 350,000원, 
큰아이 급식비가 49,300원, (작은아이 급식비는 남편통장에서 나가므로 제외)
그리고 큰아이가 부반장인 탓에 학교축제때 반장엄마랑 햄버거를 준비하느라 80,000원,
(뭐, 이건 교육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암튼 교육과정에서 발생된 비용이므로 포함하자)
총 합쳐서 1,396,300원......
거기다 애들 이러저러 참고서며 문제집 산 것까지 합하면 150은 훌쩍 넘기지 싶다.
(물론 사교육비에 공교육비까지 모두 합한 거지만 말이다)  

뭐, 주변엔 5살 아이를 15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도 있고
한달에 아이 하나에 2백에서 3백씩 들여서 과외시킨다는 엄마들도 있으니,
내가 이 정도 가지고 놀라는 게 더 웃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치만,,, 뭔가 개운치 않은, 마치 어떤 음모에 걸려든 것만 같은 느낌이
찐득하게 달라붙어서 좀 씁쓸해지고 마는 것이다.  

막내가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아직 다니지 않기에 그나마 저정도지
내년에 어디라도 다니게 되면 교육비는 더 증가할 게 뻔하다.
이미 대기 신청을 해놓은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불러주면 다행이지만
사립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면 보통이 40만원에서 50만원이다.  
(큰아이들 때는 유치원비가 12만원에서 13만원 정도였다.. 물가 참 많이도 올랐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집의 교육비 지출은 잘하면(?) 200을 훌쩍 넘기게 되는 지경이다.
(이 말은 월소득 천만의 집이라도 교육비 지출이 20%를 넘어간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남편이 내게 주는 생활비는 천만원에 절대, 절대, 절대로 못미친다)

돈 얘기는 사람을 참 치사하고 쪼잔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는 돈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돈 무서워서 아이 낳아 기르지 못하겠다는 말이,
몸으로 마음으로 절절히 와닿는 말이 되어서야 어디 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나 말이다. 

뭐, 너네 집 능력이 고것밖에 안되는 걸 어디서 따지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능력 여부에 상관없이 좀 편안하게 아이랑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어디 덧나냐 말이다.
아이 가르치는 일에서 만큼은 부모가 치사하고 쪼잔해지지 않게,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해지지 않게, 그렇게 살 수 없냐 말이다.  

아이들이 부쩍부쩍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 그거 하나만으로도
참 행복할 수 있는 이 세상 부모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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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9-1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치사하고 쪼잔하지 않아요~ 나만 쪼들리는게 아니구나란 안도감마저 드는걸요. 혹시 세자녀 가정이면 정부에서 막내 어린이집비는 지원해주지 않나요? 저희 고모댁은 농어촌 가정 지원을 받아서 어린이집비가 좀 적게 나오던데... 이것도 취학 전이지, 학교 들어가면 장난 아닐 것 같아요.

언제 인사를 건넨 것 같기도 한데, 안녕하세요. 섬사이님^^

섬사이 2009-09-16 11:11   좋아요 0 | URL
막내에게 매달 10만원씩 양육비가 보조되고 있긴 해요.
그것도 만 5세까지만 된다고 들었는데,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어린이집비를 보조받게 되면 물론, 양육비 보조는 없어지구요.
셋째아이에 대한 지원이 소리만 요란했지,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위에 적지는 않았지만, 사실 막내 아이 문화센터 강좌비도 석달에 한 번씩 10만원 넘게 들어가고는 있거든요. ㅠ.ㅠ

무스탕 2009-09-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나만의 걱정이 아닌거에요, 돈 얘기는요..
특히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정말 밑빠진 독이라니까요 -_-
그렇다고 아이들 학원에 안보낼수도 없고 말이에요..

섬사이님 말씀대로 아이들 건겅하게 자라주는 모습으로 위로 삼고 있어요..

섬사이 2009-09-16 11:13   좋아요 0 | URL
다들 걱정이죠, 뭐..
학원에 안 보낼 수 있으면 안 보내는 게 가장 좋죠.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잖아요.
우리 둘째는 제가 학원 그만 두라고 하면
'엄마, 난 내가 잘 알아. 난 학원에 다녀야 해'라고 하는 통에
끊지도 못해요.

세실 2009-09-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애 플룻, 작은애 피아노 치던거 요즘 싫다고 하길래 가차없이 끊었습니다. 억지로 시키는 건 의미가 없기도 하고, 학원비 지출을 줄이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학원비가 정말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초, 중, 고...끝도 없어요. ㅠ

섬사이 2009-09-16 11:15   좋아요 0 | URL
저희 집 큰애는 피아노 바이엘도 다 못떼고 그만뒀구요,
작은애는 아예 음악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
밑 빠진 독이 안되도록 엄마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아요.
사실 거품이 많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매지 2009-09-1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정말 장난이 아니군요.
이러니까 점점 출산율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당장 저라도 돈 생각하면 애는 많이 못 낳을 것 같아요. 쩝.

섬사이 2009-09-16 11: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하고 다녀요.
대한민국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려면
모두 세 자녀 이상은 낳아야 한다구..
가끔씩, 아주 갑자기, '교육'이란 게 대체 뭔데? 하는 반항이 들기도 한답니다.

꿈꾸는섬 2009-09-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얘기 같지가 않아요. 지금 저흰 큰애 하나 유치원 보내놓고 허덕이는데 크면 클수록 걱정이 태산이 되는군요.ㅠ.ㅠ 정말 어떤 음모에 걸려 있는 것만 같아요.

섬사이 2009-09-16 11:21   좋아요 0 | URL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우리 나라에 불고 있는 영어열풍이 고위 부유층에서 만들어 낸 음모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 계층이 돈은 있겠다, 자녀들 영어 가르치러 해외 보내기도 수월하겠다, 겸사겸사 자연스럽게 영어교육에 공을 좀 들였더니 온국민이 앞다퉈 나도, 나도를 외치며 스스로 영어교육에 미쳐가더란 뜻이었죠.
설마... 하면서도 소름이 쫙 끼치던 순간이었어요. ^^;;

순오기 2009-09-16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래서 세 아이 모두 사교육 못시키고 안 시켰어요.
부득이 단기과외 두달씩 하긴 했지만요.
정말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 고등학교 가면 정말 장난 아니지요.ㅜㅜ

섬사이 2009-09-16 11: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전에 어떤 분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들어가는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고 하더니, 요즘 그 분 말씀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해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이지만,
역시 부모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한결 낫지, 싶어요.
순오기님처럼요~~
예쁘고 착하게 자란 순오기님 댁 아이들, 너무 부러워요.
지난 번 대학생 딸아이가 보약해줬다는 순오기님 페이퍼 읽고는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

순오기 2009-09-29 18:52   좋아요 0 | URL
보약해 준 우리딸이 요즘 과외도 떨어져서 생활비 보내줬어요.
모레부터 3주간 동맹휴업이라 집에 데려와 맛난 거 해 먹여야지요.
섬사이님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어 글로만 봐도 예뻐요.^^

다락방 2009-09-1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섬사이님. 무서워요. 정말 무서워요. 어휴..
저는 결혼도 안했는데도 잔뜩 겁이 나네요..

섬사이 2009-09-16 11:32   좋아요 0 | URL
앗, 예쁜 미스님들 겁주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제목에 '미혼남녀는 읽지 마시오'라는 경고를 붙일 걸 그랬나봐요. ^^
그래도 다행인 건,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거에요.
홈스쿨링, 대안학교도 있고, 공교육 안에서도 점점 올바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아빠들이 더더욱 고민하면서 올바른 방법을 찾아가다보면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도 오겠지요.
다락방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서 교육제도 안으로 발을 집어넣을 즈음에
세상이 좀더 좋게 바뀌어 있을 거예요. ^^

하늘바람 2009-09-1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아직 아이한에 들어가는 돈 거의 없는 전 넘 무섭네요.
인터넷 강의가 그리 비싼가요?
걱정입니다.

섬사이 2009-09-16 11:35   좋아요 0 | URL
인터넷 강의는 강의마다 돈을 내야하는데, 어떤 건 10만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큰아이는 3개월동안 자유수강을 할 수 있는 걸로 신청해서 35만원 정도가 든 거에요. 그게 오히려 싼 것 같아요.
다른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 맘에 드는 강좌가 있어서 따로 신청해 듣는 강의도 있긴 해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떤 분이 충고해주시더라구요.
애들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돈을 저축해놓으라구요.
그 이후엔 저축하기 힘들다고...
에휴,, 그 말씀이 천금같은 충고였어요. -.-;;

비로그인 2009-09-1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 낳기 전에 열심히 돈모아라, 라고 주위에서 충고하시던 내용이 `초등학교 가기 전에 열심히 돈모아라'로 바뀌더군요. 이러한 셈하기는 아무리 해보아도 버라이어티 합니다.그런데, 터울 많이 나는 제 남동생과 비교해 보니 정말 적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전 요즘 대학들마다 책정한 원서값에 거품 무는 중이어요)

섬사이 2009-09-16 13:39   좋아요 0 | URL
저에겐 서스펜스에 호러인걸요. ^^
교육비야 집집마다 천차만별일 거에요.
원서값 이야기 하시니까 미대 졸업한 친정오빠들 생각이 나요.
당시 원서값도 장난이 아니어서 아마 그 때,
우리 엄마 허리가 좀 휘고 잔주름도 몇 개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 내가 사는 꼴을 좀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를 느낀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어제 내가 뭘 했는지, 내가 아침은 먹었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정말 이대로 살다간 내가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만 같으니까.  일단, 주요사항을 정리하고 넘어가봐야겠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고르미로 활동한 지 1년이 넘었다.   처음엔 도서선정위원회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모임이었는데 어감이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이라고 '우리아이 책고르미'라고 이름을 고쳤다.  작년만 해도 한 달에 한 두번 모여서 도서관에서 구입할 책들을 선정하고 한달에 한 번  한 명씩 돌아가며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비교적 한가한 모임이었는데... 

올해는 좀 바빴다.  외부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 아이 좋은 책 목록 고르기'였다.  영유아에서 초등학생이 볼만한 그림책으로 한정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각자 선정해온 책들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이제 200여권의 책들을 모아 놓았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고르기위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출판사 계수나무 위정현 대표님,  그림책 작가 허은미 선생님,  번역가 이시면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를 쓰신 서남희 선생님, 인터넷에서 책마녀라는 닉넴으로 통하는 김영욱 선생님(<그림책,음악을 만나다>의 저자)을 초대해 강의를 듣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지난 번에 권윤덕 선생님 댁을 찾아가 그림책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한 수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책고르미 덕분이었다.  

10월 쯤, 100쪽 분량의 도서목록이 완성될 예정이다.  4명의 책고르미 모임 회원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세 아이 엄마이고, 한 명이 셋째 아이를 다른 또 한명이 둘째를 임신 중이다.  그래서 모임을 정상적(?)으로 해나가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의 양과 다양성이 확보되는 장점도 있다.   더구나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또는 아예 모르고 있던 책들을 소개받는 건 무지 큰 기쁨이 된다.  어제는 도서관 선생님이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들렌카>, <티베트> 등으로 유명한 피터시스와 어린이 <진짜 얼마만 해요>, <동물 아빠들> 등등을 펴낸 스티브 젠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그림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좀 재밌다.  일반적인 추천도서목록에서는 빠져있을 법한 책들이 꽤 섞여있고(이건 순전히 엄마들의 경험에 의한 책선정의 결과다), 앤서니 브라운이라든가 존 버닝햄 같은 유명작가의 책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어제 중간점검 겸, 책들을 연령별, 주제별로 분류해보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얼마 있으면 책고르미 대장 엄마는 둘째를 출산하게 되는데, 큰일이다.  아직 손보고 다듬을 일이 태산이라.. 

8월 말이나 9월 초쯤엔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 주시기로 한 권윤덕 선생님께 각자 그린 스케치를 들고 찾아뵐 예정이다.  권윤덕 선생님 앞에 내가 그린 그림을 펼쳐 놓아야 한다니...  정말 생각만해도 등짝에 식은 땀이 흐를 지경이다.  그나마 7월 24일 쯤 찾아뵈려고 했는데 애들 방학과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내지 못해 연기되어 얼마나 한시름 놓았는지..

하지만 사실 가장 체력소모가 큰 일은 유빈이와 노는 일이다.  아침 9시 30분쯤 부터 늦으면 저녁 일곱 여덟시까지 밖에서 살려고 드는 유빈이 덕에 해지고 나면 내 몸은 흐물흐물해지고 정신은  해롱해롱해지고 만다.  덕분에 책은 멀어지고 서평은 더더욱 멀어졌지만, 다섯 살 유빈이에게는 노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사업(?)이라 무시할 수가 없다.  인생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고민없이 놀 수 있는 황금같은 시기는 바로 이 때라는 생각에 열심히 거들어주려고 노력 중이다.  

냄푠은 '지구를 인터뷰하다' 전이 끝나고 광화문 광장 전시 일로 요즘 무척 바쁘다.  휴가를 내기 어려워서, 그러니까 8월 중순이 지나서야 겨우 시간을 낼 수가 있어서(그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주 가까운 곳으로 아주 잠깐만 놀러 갔다 오기로 했다.  아직 장소도 날짜도 미정이지만 계곡에 발만 담그고 올 수 있어도 참 좋겠다.   

유진이는 지난 기말고사 기간에 갑자기 <구운몽>을 꺼내 읽더니, 그 이후로 <홍계월전>에 이어 <옥루몽>을 독파 중이다.  고전소설이 너무 재미있다나?   특히 <옥루몽>은 '끝내준다'며 나중에 엄마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그린비에서 나온 다섯권짜리 <옥루몽>, 유빈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야 잡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명보는 키가 쑥쑥 크고 있고, 그런데 정신연령은 별로 높아지지 않은 것 같고, 만화책 원피스에 빠져있고, 수토일요일에는 게임을 하고, 그만 다녀도 되지 않겠냐는 학원을 제 고집으로 계속 다니고 있고,,,,  그러니까 별 일없이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아, 얼마전에 한살림에서 청소년 일손돕기로 강원도 홍천에 가서 감자를 캐고 왔다.  땅강아지도 보고 재미있었다며 다음에 또 보내달란다.  도끼모양 감자를 득템했다며 냉장고에 애지중지 보관중이다. ^^

내일은 딸과 '일러스트 거장전'에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작은 딸 때문에 아쿠아리움에 들를 위험(?)도 없지 않다.  뭐, 정신은 없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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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09-09-2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그림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데...어느 동네인지 몰라도 멀지 않으면 참여하고 싶네요. 부럽네요^^

섬사이 2009-09-26 11:29   좋아요 0 | URL
책엄책아 도서관은 왕십리에서 한양대 쪽으로 가는 큰 길가에 있어요.
한 번 방문해보세요.
www.littlelibro.org 가 누리집 주소예요.
10월 13일과 20일에 어린이 전문서점 동화나라를 운영하시고 파주 어린이책 예술센터 책임연구원으로 계신 정병규 선생님의 강의가 무료로 있을 예정이니까 관심있으시면 참석하세요.
 

모르겠다.  

2MB가 고대스러운 건지, 

아니면 고대가 명박스러운 건지.   

그래도 일류대라든가 명문대라든가 하는  

명함이 붙은 대학인데, 

그런 똥통같은 짓을 하다니.  

아무리 대학들이 동네 사설학원스러워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는 지성은 남아있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 대학에 들어가려고 기를 써야 한다니, 그것도 기막히다.  

반칙투성이 세상이구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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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언으로 무슨 말을 남기게 될까, 가끔씩 생각을 하곤 했다.  

허무하게 "꼴까닥"하고 코미디같은 단발의 의성어를 남기는 건 너무 우습고, 

"내가 남긴 책들은 모두 너희 셋이 알맞게 나눠 갖도록 해라.."식의 재산분배 유언은 너무 분위기가 없다.  

뭔가, 세상을 살면서 내가 터득한 지혜를, 한 마디의 의미있는 경구를, 아니면 유머러스한 한 마디로 죽음을 가볍게 승화시키고 남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그런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득 문득 생각하곤 했다.  

드디어,,,  유언으로 남길 말을 두 개를 생각해냈다.  

"한나라당 계통의 사람들과는 어울리지도 말고, 찍지도 말아라." 
"금덩이를 삼태기로 퍼준다고 해도 절대 조중동은 보지 마라." 

그러나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이런 유언들을 남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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