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토요일, 자기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유진이가 "엄마, 샤프심이 다 떨어졌어"하며 나왔다.  그러더니 같이 샤프심 사러 가잔다.  비가 오는데 유빈이까지 데리고?

며칠 전 이마트에서 9900원에 산 치렁치렁한 비옷을 입히고, 또 얼마 전 매직펜으로 요란(?)하게 떡칠한 투명비닐 우산을 씌워서 유빈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유진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엄마, 소나 기린이나 양 같은 동물은 초식동물이잖아."
"근데?"
"근데 만약 소가 풀을 뜯어 먹는데, 그 풀에 달팽이가 있는 걸 모르고 풀이랑 같이 먹으면 소가 육식 한 거야?"
"????"
내가 대답을 못하고 어이없다는 듯 멀뚱거리고 쳐다보니까 자꾸 대답을 재촉한다.
"뭐, 어쩌다 한 마리 먹는다고 육식이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을까..."라고 얼버무렸더니
"그럼, 그 풀밭에 유난히 달팽이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어서 풀을 먹다가 백 마리도 넘게 먹어버렸다면? 메뚜기나 개미까지도 많이 먹으면? 그러면 그 소도 광우병에 걸려?"
"........  유진아, 갑자기 널 때려주고 싶어..."
(우리집에선 가끔 '모르는 거 물어보면 때린다'가 농담 반 협박 반으로 쓰인다.)

어제 저녁, 남편이 전주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랬더니 유진이가 나한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남편에게 던졌다.  울냄푠 하는 말이,
"소가 다 훑어내고 먹지.." 한다.
"그 풀밭에 달팽이가 무지 많이 살고 있어서 백 마리쯤 붙어 있어도?"
"그래도 혀로 다 훑어내고 먹지."
"메뚜기나 개미도?"
"그럼, 다 훑어내고 먹어."
"으응~~ 다 훑어내고 먹는구나...  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다 훑어내고 먹는대!!!"

울냄푠말이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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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아침부터 날씨가 구질구질하다.  아이 데리고 외출하기엔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다.  그래도 어쩐지 '꼭‘ 참석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게으름 떨었다간 내 마음 속 누군가가 “요놈~~!!!”하고 호통을 칠 것 같은 조바심으로 서둘러 준비했다.  비가 오더라도 책엄책아 바로 코앞에 있는 정류장까지 데려다줄 버스가 있으니, 괜히 날씨 핑계대지 말자고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강의 끝나고 나면 유빈이랑 같이 먹을 도시락까지 챙겼다.  그런데 전화..  우리 큰딸이었다.  “엄마, 책상 위에 과학 파일 놓고 왔는데, 그것 좀 갖다 주면 안돼?  오늘 선생님이 검사하신다고 그러셔서..”  에궁, 오늘 호나우딩유가 학교에 온다고 좀 들떠 있더니만.... 큰딸 학교까지 들렀다 가려면 책엄책아 코앞까지 가는 버스는 포기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좀 빙 돌아야 한다.  유빈이를 조금 더 재촉해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비는 오는 듯 안 오는 듯, 애매모호하게 내려주고 있었다.

학교 후문에서 첫째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고 서 있다가 파일을 전해주고 돌아서는데, 택시가 와서 선다.  오호,, 이건 하늘의 계시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유빈이랑 택시에 올라탔다.  기본요금으로 책엄책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를 하는 2층으로 올라갔는데, 어라 오늘은 책장들이 싹 치워져 있고, 앉을 의자도 없고, 가운데가 훵하니 비어 있다.  연극놀이에 관한 강의를 한다더니 역시 준비가 다르구나, 했다.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에서 나오신 김 선 선생님 작고, 마르고, 선한 눈웃음을 가진 분이셨는데 마이크도 없이 강의를 진행하셨다.  그냥 듣는 강의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강의를 하실 거라는 말씀에 무난하고 평범한 강의는 아니겠구나하는 걱정과 불안에 살짝 긴장했다.  그런데 어라? 이거 참 재미있다.  30명 가까이 되는 엄마들이 빙 둘러서서 ‘눈 맞은’ 사람끼리 자리를 바꾸는 게임으로 출발한 강의는 둘씩 짝지어 내 얼굴 앞에서 움직이는 상대방의 손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가상최면놀이(놀이제목은 내 맘대로다), 둘둘 말은 신문지를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물의 변형성을 끌어내야 하는 초간단 마임 놀이(둘둘 만 신문지 하나를 가지고 다 큰 어른들에게서 서른 개가량의 상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를 지나 동화의 두 장면을 골라 정지동작으로 표현한 다음 동화의 제목을 알아맞히는 놀이까지, 이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놀이체험에 쏙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끝 부분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로 연극놀이를 했다.  행복한 왕자 동상 제막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되어보기도 했고, 둘 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을 행복한 왕자 동상이, 다른 한 사람은 제비가 되기도 했으며, 맨 마지막엔 세 팀으로 나누어 행복한 왕자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짤막한 연극 한 편을 공연(?)하기도 했다. 

강의를 따라가다 보니 서로의 생각과 상상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은 서로에게 자극이 될 뿐 아니라 일종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 효과까지 내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난 행복한 왕자가 어떤 사람일지 잘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행복한 왕자가 생전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말에 ‘참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복한 왕자의 도움을 받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도움을 받은 후에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 역시 이 연극놀이 이전엔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놀이연극은 그런 면에서 느낌을 구체화하고 생각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큰 것 같았다.  아줌마들이 이 정도의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아이들은 더 신나고 재미있게 참여하고 거침없이 자기의 내면을 쏟아내고 다시 채우는 경지에 더 빨리 도달하지 않을까.  함께 연극에 참여하는 다른 아이들과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미덕을 배우지 않을까.  서로 다른 빛깔로 점점이 찍어 놓은 물방울무늬 같던 아이들이 한데 섞이고 어울리는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만드는 즐거움과, 여럿이 함께 가는 길에선 때론 내 주장과 의견을 스스로 꺾고 욕심을 덜어내야 할 때도 있다는 삶의 지혜를 얻지 않을까.

강의가 끝날 무렵엔 엄마들 모두 아쉬워했다.  내 아이들을 연극놀이에 참여시키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서 스멀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엄마들이 오늘 연극놀이의 맛을 알았으니 관장님을 잡고 조르지 않을까? 책엄책아의 김소희 관장님의 고민이 하나 더 늘게 될 듯...^^

집에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연극놀이가 유아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집에서 내가 유빈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연극놀이 비슷한 것이라도 뭐 좀 없을까 싶기도 하고, 첫째 유진이랑 둘째 명보는 이런 것도 모른 채 너무 자라버려서 참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 날씨도 나쁘고 가는 길에 유진이 학교에도 들러야 했고 아침에 유빈이가 짜증을 좀 부렸는데도 게으름 떨지 않고 택시를 타고서라도 도서관에 가서 착한 학생이 되어 앉아 있었던 나 자신이 참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칭찬도 해주고.. 

다음 주는 전래놀이에 대한 강의다.  무보수에 노동시간이 엄청 길고 스트레스 강도도 세지만, 엄마라는 직업(?),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나도 계속 자랄 수 있으니까.

    ***  참고도서
  유아를 위한 연극 놀이 (김 선 외 지음/ 창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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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미셀 옹프레 지음/모티브)에서 다음 글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컥했다. 
오늘 큰딸 유진이는 자기 친구 엄마가 아직도 2MB를 지지하고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단지 그가 크리스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속상해 했다.  그에게 아직도 우리를 짓밟을 권력이 남아 있다면, 아직도 우리가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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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인권선언에서 1958년 헌법까지, 프랑스 법은 거부와 반란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헌법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정부가 침해할 경우 그 어떤 형태의 저항이라도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권리 중 가장 중요한 신성불가침의 권리이자 가장 절대적인 의무다."

신성불가침의 권리이자 절대적인 의무.  이 말이 가지는 무게는 매우 묵직하며, 법과 제도 위에 이를 지키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범죄와 살인, 멸시, 비열함과 시민의식을 부정하는 것들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헌법 조문은 저항과 반란,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세부적인 사항은 모호하게 해놓고, 우리가 도무지 인정할 수도, 존경할 수 없는 권력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형태의 저항방식도 인정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은 쌍방에 모두 적용되어야 하는 게 원칙인데, 둘 중 한쪽이 계약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나선다.  이때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개인을 억압하고, 개인은 정부에 대해 폭동으로 응수한다. 사람들은 법은 먼저 도덕을 따라야 하고, 법을 지키기로 한 개인들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에 대한 저항권은 어떻게 행사하는 것이 좋을까?  법의 힘을 더 이상 인정하지 말고 그것이 도덕에 부합하기를 바라야 한다. 권력이라는 것은 그 힘의 범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동의로부터 효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떤 권력이든 마찬가지다.  그 권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하찮게 여긴다면 그냥 스러져버릴 것이다.  더 이상 지지하지 않으면 폭력이나 게릴라 전술을 쓰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시위하다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행동을 강요하는 논리에 대한 개인적인 반항도 좋은 방법이다.  지지하기를 거절함으로써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권력은 더 이상 신임받지 못할 때 스스로 무너진다.  바보 같은 법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그로부터 빚어질 엄청난 결과를 막을 수 있다. 독재정치는 독재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동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이 자연법에 비추어 형평성보다는 독단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한다면 순순히 따르지 말고 양심에 따라 저항하라. 법과 규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 인간성에 어긋나는 명령이라면 힘을 보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라.  여러분은 법적으로 그럴 권리가, 도덕적으로 그럴 의무가 있다.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법은 사람을 강제할 수도, 강제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런 법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동의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또 협력해서 그런 것이다.  법과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 반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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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섬기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정하라"

그대들을 지배하는 자는 눈도 두 개요, 손도 두 개요, 몸도 하나일 뿐, 그대들을 파괴하라고 그대들 자신이 그에게 쥐어준 특권 외에는 우리들 마을에 수없이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대들이 주지 않았다면, 그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눈을 가져와서 그대들을 감시하겠는가?  그대들이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그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손을 가져와서 그대들을 때리겠는가?  그대들의 도시를 짓이기는 발들, 그대들 것이 아니면 그가 어디서 그것을 가져왔겠는가?  그대들에 의해서가 아니면 그가 그대들 위에서 어떻게 권력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과 내통하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감히 그대들에게 덤벼들었겠는가? 그대들이 그대들을 약탈하는 강도를 숨겨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을 죽이는 암살자의 공범이 아니라면, 그대들 자신의 배신자가 아니라면, 그가 감히 어떻게 그대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

.... 중략....

굳이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 없이, 해방되길 바라는 것만이라도 시도해 본다면, 그대들은 해방될 수 있다.  더 이상 섬기지 않게다고 단호히 결정하라.  그러면 그대들은 자유로워진다.

나는 그대들이 그를 밀쳐내거나 위태롭게 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를 더는 지지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들은 그가 마치 기반이 무너진 거대한 동상처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밑에서부터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자발적 노예상태에 대한 담론>, 에티엔 드 라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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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그가 가망이 없어 보여.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가슴이 철렁.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들도 연행하고, 국회의원도 잡아가고, 열두 살 먹은 아이도 끌고 갔다지.   바보인 것 같기도 하고 사기꾼 같기도 한 게, 너무 가증스러워서 소름이 돋더라.

5공 시절엔 살려면, 살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서기엔 걸리는 게 너무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나 주부들, 또는 소심한 사람들은 입 닫고 가만 엎드려 있으면 됐어. 그러면 최루탄 매운 연기도 피할 수 있었고, 끌려가 고문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러다 죽을 일도 피할 수 있었거든.  민주화가 절실하긴 했지만,  먹고 살기 바쁜 대다수의 서민들에겐 '살아남는 일'이 더 중요했지. 박종철이나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항쟁에 불을 당긴 것은, 그래서였을 거야.  그 전까지 답답하도록 냉정했던 시민들은 젊은 청년의 죽음을 통해서 당시의 불의를 몸으로 확인하고 느낄 수 있었고, 그 위기감이 절실하게 다가왔던 거 아닐까?

그런데, 촛불이 5공시절 화염병 시위보다 더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니?  촛불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 마음 안에는 처음부터 '가만히 있다가는,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내 가족 중 하나가 죽거나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어.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지리라는 걸 알아챘던 거지.  광우병에 걸려 죽거나, 재수없게 지독한 병에 걸렸을 때 치료 제대로 못 받아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거나, 아니면 무한경쟁의 폭력적인 교육정책에 휘둘리다 착한 내 아이 인성 망가지고 불행해지거나, 수도세 전기세 몽땅 올라서 살림이 더 팍팍해져 어려워지거나... 

5공 시절 거리 시위보다 2008년 촛불 시위가 더 무거운 게 바로 그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계속 나올 거야.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안됐지만, 그가 우리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꼴통짓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 같다.  그게 그 하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이자 수치로 남는다는 게 너무 가슴 아퍼.  아마 그도 이대로 있다간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발악을 하는 거겠지.  국민들도 등을 돌리고, 믿고 매달렸던 미국에겐 조롱거리가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니까. 갈수록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를 재보며 아등바등 촐싹이는 그가 눈에 보이는 듯해.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찍을 사람 더럽게 없다고 투덜대면서 투표하러 나섰던 날이 생각나.  길게 늘어선 줄에 끼여 서 있었는데, 어떤 아줌마 하나가 깔깔 웃어대며 큰소리로 떠들어대더라.  "노무현 때문에 망한 나라, 차라리 정동영 뽑아서 완전히 죽사발 만들어라,고 울냄편이 그러더라구요, 호호호호" 
그 아줌마는 여전히 잘 살고 있을까?  그 때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불쌍한 아줌마란 생각이 들어.  그녀는 기호 2번 후보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을 테니까.

얼만큼의 촛불을 더 보태야 할까?  얼만큼의 목소리를 더 더해야 할까? 얼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신문을 읽으면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침이 우울해.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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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학교에 가야 하는 수요일이면 일찍 일어나주는 유빈이.  부지런히 밥 먹이고, 감기약도 챙겨 먹이고, 볶음밥에 오이지무침, 부침개를 곁들여 도시락을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장마철이라는데 요 며칠간 날씨가 참 좋다.  아이 데리고 움직이는데 날씨 좋다는 건 이만저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뚜벅이인 나로서는 더더욱.

책엄책아 도서관에 들어서니 벌써 엄마들 몇몇이 와 계시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 히~~ 오늘은 선물까지 안겨 온다.  도서관 정기간행물 코너나 서점에서 눈인사만 주고 받았던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 과월호다.  이 잡지가 '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잡지 속을 휘리릭 훑어보니 일단 심각하고 진지하지 않은 게 마음에 든다.  만화조차도 '지식과 정보 학습'이라는 교육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요즘 세상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일부러 빙 에둘러가는 여유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담긴 이 잡지가 참 신선해 보였다. 

오늘 강의를 들을 주제가 '마주 이야기'다.  글쎄... 유진이나 명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해보지 못했던 거다.  그 때는 '언어전달장'이라는 건 있었지만, '마주 이야기'는 못 해 본 것 같다.  오늘의 강사 박문희 님은 '못 생기고, 공부 못 하고, 느려터졌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놓으셨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모인 엄마들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고, 그렇게 '못 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느려터졌던' 박문희 님의 오늘 모습에서 '외모지상주의에 1등을 위한 경쟁을 강요하고, 빨리빨리 과제를 해치우기를 독촉하는' 요즈음의 맹목적인 교육열의 헛점을 발견했다.
'똥을 푸든지, 거지가 되든지' 상관말라는 악담(?)을 듣고 자란 분치고는 너무나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1등이 아니면 불행하다는 식의 살벌한 삶의 공식을 몸소 시원하게 뒤엎으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신 삶으로 증명해 보이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문희 님은 강조하셨다.  우리가 하고 있는 '열심히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육'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막고 무조건 '들으라'고만 하는 교육이라며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말로 쏟아낼 수 있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말 속엔 아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들어 있으며 그 '문제'를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주는 데서 아이들의 자신감이 싹트고 새로운 교육이 출발할 수 있다고.  아이들의 말대꾸는 버릇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워낙 편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하셔서 중간중간 눈물이 쏙 빠지게 웃으며 들었지만, 한글 떼기나 영어교육방법 등등에 밀려서 놓쳐버리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의였다.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아이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 넣어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겨서 정작 아이의 정서와 감정을 살피고 돌보고 풍부하게 가꿔주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그건 네 살 배기 유빈이에게 뿐만 아니라 중학생 두 큰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박문희 님은 맨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청소해 주는 것이다."
엄마는 쓸고 닦아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다.

 

 

 

 

참고 도서 ;  1.<침 튀기지 마세요> (박문희/고슴도치)
                 2. <튀겨질 뻔 했어요> (박문희 엮음, 이오덕/고슴도치)
                 3. <들어주자 들어주자> (박문희 지음/ 지식산업사)
                 4.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백창우 작곡/아람유치원 어린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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