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서선정위원으로 간택받다.
; 유빈이와 자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의 도서선정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영광이다. 얼마 전 '도서선정위원회'라는 명칭이 너무 권위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우리 아이 책고르미 모임'이라고 개명한 덕분에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더욱 좋아졌다. 암튼, 매달 한 번씩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서 도서관이 책을 구입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되고, 같은 모임에 있는 분들이 모두 실력과 내공이 상당한 분들이라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올해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더 많이 읽었고, 특히 10월에는 권정생님에 대한 발표를 맡아서 오랜만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7. 11살 연하와 사귀다.
; 얼마 전에 따로 페이퍼에 올렸던 것과 같이 11살 연하의 엄마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린데도 마음 쓰는 게 얼마나 깊고 넓은지, 오히려 내가 보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난 막내로 자라서 동생이 없는데, "언니"라고 불러주는 이쁜 동생을 둘이나 얻어서 이게 웬 복이냐 싶다.
언니 노릇, 그것도 왕언니 노릇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주책스럽지 않게, 너무 "왕'티나지 않게, 그냥 편안한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8. 뮤지컬 명성황후와 캣츠 오리지널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리다.
; 결혼하고 유진이와 명보를 낳고 거의 만 8년만에 처음으로 보러 갔던 영화가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보러 간 거였지만, 결혼하고 8년만에 보는 영화가 "뮤츠의 역습"이라니~!!, 하며 얼마나 허탈해했었는지 모른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 상영중이었는데, 차라리 그걸 봤으면 덜 억울했을 거다.)
뮤지컬은 몇년만에 본 것일까... 결혼 전에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꿈하늘'을 봤었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신의 아그네스'나 '관객모독', '병사와 수녀' 등등의 연극도 즐겼었다. 한동안 그런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보는 낙에 빠져있었으니까... 그러니 아마 거의 만 15년만에 뮤지컬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과 아동극 공연은 봤었지만, 그건 제외시키자.)
지금도 생각하면 황홀하다. 언제 또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쩝~!
9. 미인도와 마주하다.
; 작년에 간송미술관으로 송시열 전을 보러 갔다가 미인도 영인본 앞에서 넋을 놓은 적이 있었다. 그 신비함이 너무 인상깊어서 '모나리자는 신윤복의 미인도 발끝도 못따라온다'며 침이 마르게 찬사를 늘어놓고는 했는데, 이번에 간송미술관 70주년 기념전으로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었다. 평일 개관시간에 맞춰 일찍 갔는데도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 틈에서 신윤복의 미인도와 마주했을 때의 전율이란.. 오묘한 노리개 빛깔부터 풀어진 옷고름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유혹하는 눈빛... 난 남자도 아니건만 왜 이리 떨리고 설레는 건지.. 눈물까지 찔끔 나오려는데,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버럭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다 봤으면 빨리 비켜야 다음 사람이 볼 거 아니야~!!!"
워낙 사람이 많았으니, 그 아저씨 말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억울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전시실에서 미인도랑 나랑 단 둘이 마주 앉아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천천히 소근소근 밀어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 파도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그 무서운 아저씨 앞에서 잔뜩 겁을 먹고는 미인도를 뒤에 두고 돌아섰다.
언젠간, 소설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인기몰이가 다 사그라든 후 언젠가에는 좀 더 조용히 미인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0. 갑갑하고 막막한, 어두운 산그늘 아래 서다.
; 나처럼 소심한, 그것도 아이를 셋이나 둔 40대 주부인 내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촛불을 들었었다. 물대포 맞고 몰매 맞고 끌려다닌 사람들에 비하면 참 새발의 피만도 못한 촛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땐 이 정도로 상황이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나이 헛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쌀만큼 바보같고 순진했다.
저 오만한 산은 더욱 거대해지고, 촛불은 어두운 산그림자 아래 묻혔다. 길을 끊고 불쑥 솟아오른 저 산이 언제쯤 치워질까.. 촛불을 들고 저 산을 넘어가면 거기엔 희망이 있을까. 우공이산이라는 말에 희망을 두어도 될까.
촛불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하게 조여온다. 내가 너무 못나 보여서, 그들이 너무 눈물 겨워서, 저들이 너무 미워서. 저 흉한 산의 등장을 빼고 올해를 말할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