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0분.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보충수업 때문에 학교 가는 큰딸을 위해 콩나물국을 끓이고, 우엉을 조리고, 느타리 버섯을 볶고, 시금치를 무치고, 쌈다시마를 불렸다.  방학인데도 보충수업 받으랴, 숙제하랴, 공부하랴 피곤한지 입병이 났다고 해서 부드러운 흰 쌀밥을 지었다.  어제 밤에 입병이 난 자리에 꿀을 발라줬더니 따갑고 쓰리다며 눈물이 글썽해 있었는데 좀 나아졌는지.  

딸아이가 먹고난 아침 식탁을 치우다가 주방 창문을 보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또 눈이야?  어제 지리산 근처로 출장을 간 남편이 걱정된다.  체인까지 다 챙겨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위험할 텐데. 우산을 꺼내주면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니라고 잔소리까지 챙겨 큰딸을 보내고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창 밖으로 눈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좀 심난하다.  

어떤 학자들은 미니 빙하기가 온 거라고 주장한다던데, 그렇다면 저 눈은 그냥 눈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겠구나.  지난 번 한파가 몰아쳤을 때는 이 집에 이사오고 처음으로 세탁기가 얼었다.  뜨거운 물로 세탁기를 녹이면서 지켜보고 서있는 아들에게 "명보야, 엄마는 빙하기 오면 못 살 것 같어.."했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을 보고 있자니, '못 살긴 뭘 못 살어. 자업자득인데 눈이 오든 한파가 몰아치든 빙하기가 다시 오든 군소리 말고 벌 받으며 살아야지!'하는 자괴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동네 슈퍼나 큰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참치캔이 쌓여있는 걸 보면 정육코너에 놓인 고기들을 보는 것보다 끔찍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도 아닌 내가 참치캔들에 대해선 왜 유난히 으스스 몸서리가 나는 건지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다니던 참치들을 잡아 분해한 다음 조그만 통조림 속에 담아 가두어 그냥 '상품'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인 듯하다.  드넓은 자유의 공간 바다와 답답한 상품 유통의 고리에 묶인 조그만 통조림이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어 내 머리 속에 박힌 걸까.  

오늘 내리고 있는 저 눈이, 지난 번에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그 위를 덮고 있는 저 눈이, 참치캔들 만큼이나 으스스하다.  mbc '아마존의 눈물'을 보다 알게 된 조에족의 모닌과 와후에게 우리의 문명이 너무 번성해서 미안하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겠지.  

오늘도 경비아저씨들이 눈 치우시느라 힘들겠구나. 거드는 사람들이 많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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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설같은 글들이에요 그냥 일상인데 참 재미나게 쓰시네요.
엄마의 정이 느껴져요

섬사이 2010-01-18 16:2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고마워요. ^^

무스탕 2010-01-1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인데도 그렇게 일찍 학교엘 가는군요.. 암만봐도 정말 가여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에요ㅠ.ㅠ
참치캔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이후로 참치캔을 보면 다른 생각이 날것 같아요.
가끔 캔이 펄떡거리는 환영이 보일지도 모르겠구요. ㅎㅎ

섬사이 2010-01-18 16:24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은 방학도 방학이 아니더라구요. -.-;;

다락방 2010-01-1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출근하는 저 때문에 언제나 저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 밥상을 준비하시는 엄마가 생각나버리는 글이에요. 전 이렇게 나이 들었는데도 여전히 엄마랑 같이 살고 여전히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네요. 빙하기나 참치보다 5시50분에 일어난 섬사이님과 입병이 나버린 따님이 더 애틋해요.

섬사이 2010-01-18 16:25   좋아요 0 | URL
엄마가 차려주는 밥, 너무 그리워요. 예전엔 왜 그 밥이 그렇게 좋은 밥이라는 걸 몰랐을까요. 많이 많이 먹어두세요, 다락방님. ^^

꿈꾸는섬 2010-01-1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일찍 반찬을 몇가지씩~~~너무 부지런하세요.
참치캔에 대한 이야기, 공감되요. 전 참치캔은 안 사게 되더라구요.

섬사이 2010-01-18 16:26   좋아요 0 | URL
부지런한 게 아니라.. 반찬이 마땅치가 않아서 손을 댄다는 것이 그만,, 왜 그럴 때 있잖아요. '해볼까?'하고 손댔는데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일들을 연이어 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을 뿐이에요.
 

2009년이 지나고 새해가 된지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지난 한 해를 좀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1. 지난 12월, 기말고사를 열흘 정도 앞둔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갑자기 "엄마, 나 학원 다니지 말까?"하고 말문을 열었다.  평소에도 너무 학원에 시달리는 것 같아 안쓰러웠던 터라, 냉큼 "그래, 잘 생각했어.  집에서 해도 엄마 생각엔 성적이 많이 떨어질 것 같진 않아."하고는 곧바로 학원에 전화를 걸어 그만두게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맞고 나서도 아들은 계속 집에서 공부 중이다.   덕분에 사교육비로 아들의 영문법 인강 신청비 6만원만 지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세 아이가,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작은 딸 친구까지 다섯 아이가 집에서 바글바글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책을 읽는 것도, 컴 앞에 앉아 몇 자 끄적이는 것도 좀처럼 잘 되질 않는다.  그러니 지난 2009년 나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건은 "아들 녀석, 학원을 끊다"인 건가...   

2. 큰아이들 둘이 모두 학원을 안다니다 보니 가장 걱정되는 게 수학.  "엄마, 이 문제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하고 가져오면 중학교 수학까지는 '정답 및 해설'을 봐가며 어떻게 대충 무마가 되기도 하는데 큰딸 고딩수학은 바로 주눅이 들고 만다.  (나 고등학교 졸업한지 20년도 더 됐거든! 하며 넘어가려해도 소용이 없다. 원래 수학을 못했던 사람이니..) 그런데 참으로 고맙게도 옆라인에 사는 유빈이 친구 신이 엄마가 수학을 봐주기로 했다.  큰딸은 여름 무렵부터 봐주기 시작했고, 명보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12월부터 일주일에 두세번씩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돈도 안받고, 우리 애들 봐주는 동안 그 집 4살, 3살짜리 연년생 남매를 데려와 우리 막내와 놀게 해주면 되는 거였다.  K대 수학과를 졸업한 그 엄마는 자기도 나중에 임용고시라도 보려면 어차피 공부를 해야한다며, 애들한테 시달리는 것보다 우리 큰녀석들 수학 봐주는 게 더 낫다며 내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걱정해주는데, 오히려 그게 더 미안하다.   

3. 작년에도 창비어린이에 서평이 실렸다.  내게는 너무 과분한 일인 동시에 행복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한 일을 만들어주고 도와준 분께 늘 감사하다.  책을 더 잘 읽고('많이'가 아니라 '잘'), 허접한 글이라도 '즐겁게' 써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아마 올해엔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니까, 봄만 되어도 좀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4. 쓸개없는 인간, 우리 남편.  지난 해 여름, 남편이 여의도 건강검진센터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특별히 무슨 이상이 있어서는 아니고, 남편의 대학동기의 매제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학동기가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본인의 건강검진을 신청하면서 남편에게 '너도 같이 받자'고 청한 게 동기였다.  그 건강검진에서 담낭에 결석이 발견되었다.  10월 5일 쯤, 서울 아산병원에서 담낭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수알만한 것에서 오징어땅콩 과자만한 것까지 예닐곱개의 결석이 나왔다.  사람 몸 속에서 어떻게 그런 돌멩이가 생길 수 있는 건지.  병실에서 '쓸개도 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남편을 놀리곤 했지만, 처음 만났던 열다섯 소년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자꾸 시려오기도 했다.   

5. 남편이 그렇게 담낭없이 누워있던 병실에서였다.  알라딘 4기 서평단으로 뽑혔다는 문자를 받은 건.  올해 서평을 별로 많이 쓰질 않았기 때문에 신청하면서 뽑힐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남편이 수술을 하네 마네 하던 때라 정신이 없어서 신청해놓고도 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문자를 받고는 "헉!"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10월엔 마무리 지을 일들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10월 말엔 어린이도서관 행사가 있었고, 11월 중에 책고르미에 필요한 네 꼭지의 글을 써야 했고, 책고르미에서 추천도서목록을 뽑아야 했다.  '할 수 있을까?',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을 마무리하면서 서평단 활동도 끝났다.  5기 서평단은 신청하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6.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얘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책고르미 모임은 그렇게 일이 많은 모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난히 지난 해엔 일이 많았는데, 권윤덕 선생님과의 그림책 만들기 작업은 무엇보다도 부담인 동시에 뿌듯했던 일이다.  그림은 스케치를 어느 정도 마쳤지만 아직도 먹선뜨는 일을 제대로 완성시키질 못했다.  권윤덕 선생님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다들 자극받고 긴장하면서도 애 키우고 살림만 하던 주부에게는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일이 어렵고 어렵고 다시 어렵고 또 어렵다.  우리의 작업은 아직도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지만 지난 한 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7. 그러자고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매년 한 편씩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지난해엔 명성황후를, 지난해엔 뮤지컬 캣츠를, 그리고 올해엔 뮤지컬 일 삐노끼오를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해엔 난 못 보고 남편과 큰딸, 아들이 봤다.  명성황후 때에도 캣츠 때에도 남편이 막내를 보느라 공연을 보지 못했다.  늘 미안했더래서 올해만큼은 내가 막내를 볼테니 당신이 공연을 보고 오라고 억지로 등을 떠밀었던 것.  그런데 일삐노끼오를 보고 온 큰딸과 아들녀석이 캣츠보다도 더 멋졌다는 거다!!!!  무대도 어지간히 화려했던 듯..  이런, 어쩐지 좀 배가 아파지고, 쿨하고 멋진 척 남편에게 양보했던 게 좀 후회되기도 하고... ^^;;  지난 해 가장 아쉬웠던 일 중 하나. 

8. 시댁이 이사를 했다.  28년만의 이사였다.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은 우리가 분가하기 전까지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시동생, 그리고 그 때는 아기였던 우리 큰딸까지 4대 아홉 식구가 복닥복닥 모여살던 2층집이었는데, 할아버님,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시동생마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자 시부모님 두 분만 커다란 2층집에서 지내시는 모습이 좀 썰렁하고 허전해보였었다.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자식된 입장에서는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사하시던 날 가서 청소며 짐정리를 도와드리면서 내가 덩달이 신이 났었다.  특히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단독주택에 그대로 계셨으면 눈 치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서 그런지 거실이며 방들을 확장했는데도 전에 살던 단독주택처럼 우풍도 없고 춥지도 않고 참 좋다.  세간살이들도 싹 새로 바꾸셔서 마치 신혼집 같다.  우리는 안방에 붙박이장을 해드렸고, 시누이네는 거실장과 식탁을 해드렸는데 가서 볼 때마다 뿌듯하다. 16층인 시댁 거실에서는 소래 바다도 보인다.  ......  참 좋은데,,, 참 잘된 일인데,,, 가끔 문득문득 오래된 2층 단독주택 그 집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9.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내리거나 너무 춥거나 하는 날들은 어쩔 수 없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 날이 꽤 된다.  어제는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는데도 중무장(?)을 하고 아침에 자전거로 출근했다.  특별히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굳이 왜?냐고 따진다면, 담낭제거수술을 받은 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연배 높은 지인께서 선물해주신 자전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에서 남편의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까지 20km정도가 된다는데 좀 두툼한 파커를 입고 자전거를 탄 날이면 안에 입은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서 들어오기도 한다.  아무튼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자전거 타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고맙다.  문제는 나다.  나도 운동을 좀 해야할 텐데.  

10. 무엇보다 행복했던 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 인연을 흠내지 않고 잘 이은 일이다.  앞에서 얘기한 신이엄마도 그렇지만 유빈이 덕분에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괜찮은 친구들인지 모른다.  다들 마음씀이 어찌나 넓고 부드러운지 나이 많은 내가 놀라고 부끄러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고르미 일을 하며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그렇다.  서울살이가 각박하다고 했던가.  서울로 이사온 지 만 5년이 되어가는데 난 내 삶이 오히려 풍요로워진 걸 느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심지어 자기가 가진 재능을 나눠주기도 한다.  신이엄마는 수학지식을 우리 큰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지만 새해부터 OO이 엄마는 자기 아이와 함께 어울려 노는 유빈이를 포함한 아홉명의 꼬마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오랜 외국생활로 이 엄마의 영어실력이 원어민 수준이다) 물론 이 또한 무상교육이다.  내 십대의 사춘기 시절 이후 최고의 인복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새해에도 이렇게 맺은 인연이 슬프고 아픈 일까지도 나눌 수 있는 더 깊은 인연으로 자리잡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새해엔 '좀 더 즐겁게' 살고 싶다.  책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무거운 리뷰를 내려놓고 수다떨듯 즐겁게 떠벌여 볼 생각이다.  물론 읽는 일도 '즐겁게'다.  마음이 가는대로 읽고 싶은 책을 무작정 잘 읽고 싶다.    

'운동하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처음엔 요가를 할까, 헬스를 다닐까 고민을 했다. 헬스는 답답할 것 같고, 요가는 어쩐지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지금은 '하염없이 걷기' 쪽으로 마음이 끌리고 있다.  막내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운 후, 그냥 말 그대로 하염없이 걸어보는 거다.  처음엔 내가 아는 길로만 뱅뱅 돌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모험심이 발동하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로 걸음을 내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길눈이 어두운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아무튼, 내 살들을 덜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실이다.

큰아이들이 새학년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될지, 그건 모르겠다.  특히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좀 불안하기도 한가 보다.  하지만 인강에 의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학원은 되도록 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익혀 다지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에서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창비에서 나온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라는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난 후, 직접 옛이야기 그림책들을 찾아보고 비교,분석해보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너무 어려운 일을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되기도 하지만 분명히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해나가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제대로 된 '밥'을 지어내지 못한다면 멀건 '죽'이라도 쑤게 되겠지. 새까맣게 태운다고 해도 별 수 없고!!!   

새해 중요 사건이 될 것 중에 하나는 유빈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 게 아닐까.  무려 2년6개월을 기다려 입학하게 되었다.  출산장려를 한다면서 구립어린이집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뭐, 가장 맘에 들고 엄마들 사이에 인기도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려니까 더 오래 기다리게 된 거지만)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 탈 유빈이 모습을 상상하면 뿌듯하다.  늦둥이로 막내를 낳고 '언제 다 키우나...'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섯 살.  힘들기도 했지만 기쁘고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  요 꼬맹이가 없었으면 집안이 얼마나 적막하고 따분했을까 싶을만큼 유빈이 덕분에 집안이 활기차고 밝게 유지되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 유빈이가 너무 고맙고 예뻐서 "유빈아, 넌 어느 별에서 왔니?"하고 물으면 꼭 "별똥별!"이라고 대답한다.  유빈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별똥별을 타고 왔다'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아이를 놀리고 싶어서 '똥별'에서 왔구나, 하면서 코를 감싸쥔다.  똥별에서 왔다고 해도 좋다.  이만큼 건강하게 탈없이 자라준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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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1-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반가워요.
지난해 좋은일들 많았네요. 올해도 내내 행복하고 즐거운 일
많이 이어가시기 바래요. 무엇보다 좋은인연에 흠집 안 나게
잘 이어나가셨다는 글귀가 참 좋아요. 그게 제일이지요.^^

섬사이 2010-01-15 08:1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구요.
사람 사이에 흠집 나는 게,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어이없이 생기기도 하는 거라 더 조심스럽고 돌아서서 뒤늦게 후회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것 같아요. 인연도 하늘이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



하늘바람 2010-01-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다섯 소년이요? 우아
정말 일찍 만나셨네요
올해 님 댁에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섬사이 2010-01-15 08:18   좋아요 0 | URL
열다섯 시절엔 그냥 알고 지내는 성당 친구였더래서 '만났다'는 말을 붙일만큼 그렇게 의미가 있지는 않았어요. ^^
하늘바람 님도 올 한 해 기쁘고 행복한 일들로만 꽉꽉 채워지길 빌어요.

hnine 2010-01-1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세자녀 돌보시면서 자신의 일과 계획도 쉼없이 추진해나가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배우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새해가 시작된지 이제 보름밖에 안되었네요. 저는 훨씬 더 지난 줄 알았어요 ^^

섬사이 2010-01-15 08:21   좋아요 0 | URL
아이구, 이런, 제가 사는 꼴을 직접 보셔야 하는데!!! 계획하고 추진하고, 뭐 그런거 없어요. 그냥 억지로 마지못해 굴러가는 꼴인 거예요. -.-;;


마노아 2010-01-1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1년을 같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인복이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인복이 되어주고 있다는 증거일 거예요. 서울살이 각박한 게 아니라 이렇게 훈훈하고 덕도 된다는 걸 보여주셔서 또 참 좋아요. 유빈이가 벌써 이리 컸네요. 이제 3월이 되면 섬사이님도 기지개 켜시고 가끔은 게으름도 부리시고 여유도 한껏 부리셔요.^^

섬사이 2010-01-15 08:23   좋아요 0 | URL
더이상 게으름을 부렸다간 큰일이게요.^^;; 누군가의 인복이 되어주는 사람이, 정말 되어야 할 텐데... 안그랬다가는 지난 해 들어온 인복들이 모두 달아날까봐 겁이 나요.
이집트 여행 준비는 잘하고 계시죠?

순오기 2010-01-1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에 이어 2009년을 돌아보는 페이퍼에 님의 마음이 다 들어있네요.
저는 재작년에 이어 말로만 꼽아보고 페이퍼는 또 못 쓰고 말았네요.ㅜㅜ

섬사이 2010-01-18 16: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저처럼 간단하게 정리되질 않을 것 같아요.
활기가 넘치고 부지런한 순오기님은 저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순오기님은 분기별로 나누어 정리하셔야 할 듯.. ^^

꿈꾸는섬 2010-01-17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좀 더 즐겁게,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섬사이 2010-01-18 16:21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이 즐겁고 가볍게 살아요~~^^
 

어제 신이네서 놀고 있는 유빈이를 저녁 6시경에 데리고 오는 길이었다.  해는 기울어 벌써 어둑했고 바람이 몹시 찼다.  종종걸음으로 아이 손을 꼭 잡고 오는 데 저만치서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뛰어가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자주 만났던 그 고양이 같았다.  유빈이에게 "고양이닷!"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고는 "이야~~오옹~~"하고 고양이 소리를 몇 번 냈다. 
 
그런데 겁을 먹고 후다다닥 도망갈 줄 알았던 이 고양이가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우리 쪽을 보면서 "야옹~~야아~~오옹~~미야아오옹~~야~옹~~~"하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 계속 울어대는 거다.  동 입구에서 선뜻 들어서질 못하고 그 고양이의 수다(?)를 한 동안 듣다가 어쩐지 맞장구 내지는 호응을 해줘야 할 것만 같아서 "야아오옹~~야옹"하고 유빈이랑 몇 마디 대답해줬더니만 어라?  이 고양이 가던 길 계속 갈 생각은 안하고 "야옹, 야옹" 한참을 울어댔다.  어떡하지?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말 하던 중간에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고 그랬다간 고양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해. 우리는 집에 들어가야 해.  나중에 다시 보자'하는 마음을 담아 "야옹,야옹"하고는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그 고양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혹시 "너무 추워요. 당신 집에서 오늘 밤 좀 쉬어가면 안될까요?"하는 게 아니었을까.  정말 그랬다면 냉정하게 집으로 쏙 들어와버린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고양이는 추위에 약하다는데 지난 밤 얼어죽은 건 아닌지 오늘 아침에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단 한 쪽에 담요 깔은 스티로폼 박스라도 내어주는 건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다.  어제 저녁 만난 그 까만 고양이가 마음 속을 떠다닌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책을 주문했다.  <옛이야기와 어린이 책>,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우아한 거짓말>. 세 권이다. 모두 창비에서 나온 책이다.  창비어린이 구독자가 디지털 창비에서 책을 구입할 경우 40%할인을 해준다기에 처음으로 주문해봤다.   

 요즘 나는 옛이야기 그림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림책이 우리 옛이야기를 어떻게  훼손시키고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계속 호기심이 일었는데, 결국은 호기심이 내 자제력을 이긴 것이다.   배송되어 온다고 해도 곧장 읽기는 힘들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번 주에도 읽어야 할 알라딘 서평단 책이 세 권이다.  신간을 받아 그 내용을 확인하기는 서평단 활동이 유용하긴 한데, 지나치면 서평단 일 때문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뒤로 밀리는 단점이 있다.  좀 있으면 서평단 활동이 끝나니까 그러고 나면 여유를 가지고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싶다.  서평은 쓰고 싶으면 쓰고..  아니면 관두고.. ^^ 

목요일이면 시험이 끝나는 명보를 위해 주문한 책이다.  아마 시험이 끝나자마자 컴퓨터부터 켜서 밀려있는 웹툰을 보고 게임하기에 바쁘겠지만 당장에 못 읽으면 방학 때라도 읽겠지, 싶다.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서 내가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명보가 안 읽으면 내가 읽으면 되는 거니까. ^^  사실은 이 칙칙한 겨울에 밝고 따뜻한 지중해의 태양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은근 기대가 된다.

 
슬프다고 해서, 눈물이 난다고 해서, 읽으면 안되겠다 했던 책인데 모두들 너무 좋다고 해서 까짓거, 읽고 오랜만에 확 울어버리지, 뭐, 하는 용기로 주문했다.  김려령 작가는 <완득이> 로 처음 만나서 꽤 밝고 유쾌한 글을 쓰는구나 했는데 그 후에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읽어보고는 <완득이>랑 분위기가 달라서 깜짝 놀랐었다.  <요란요란 푸른 아파트>는 내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진 않았는데 네 번째로 만나는 김려령 작가의 책, <우아한 거짓말>. 이 책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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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2-16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날씨가 추워져서 집주변 길고양이들이 맘에 걸려요. 밥이라도 좀 줄까 들고 나가서 내 놓았는데, 누가 먹어줄지 ... 꼬리가 멋진 줄무늬인 꼬질한 하얀 고양이 한마리가 아침에 야옹거리길래 말로 사료좀 들고 나갔는데, 결국 못 찾고 근처에 사료만 놓고 왔어요.

사료도 사료지만, 길고양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큰 요인인 '물' 때문에 더 걱정. 영하로 떨어지면 물이 얼어서 가뜩이나 물구하기 힘든데, 더 고달프겠죠. 날이 좀 풀려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근데, 고양이따라 좀 틀린가봐요. 말로는 추위에 강하더라구요. 컴퓨터나 프린터기 위에 널부러진 고양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한 겨울에도 창문가나 화장실 바닥에 가서 앉아 있지 뭐에요; ^^

아, 저는 하루에 사람말 반 고양이말 반 이렇게 하는듯합니다. ㅎ 그 길고양이 말도 받아주고 신기하네요. 근처에 그 고양이 돌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에 익숙한걸까요?

섬사이 2009-12-17 10:42   좋아요 0 | URL
그 녀석을 음식물 쓰레기장에서 만날 땐 늘 후다닥 도망갔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뭔가를 한참 얘기하듯 하더라구요.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어요. 하이드님이 옆에 계셨으면 정확한 통역을 해주셨을 것 같은데.. ^^
그 녀석, 무사할까요.. ???

마노아 2009-12-1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이야기네요. 고양이와 주고 받는 말을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남다른 마음가짐이에요. 고양이가 추위에 약하군요. 내일은 더 춥다는데 걱정스럽네요. ㅡㅜ

섬사이 2009-12-17 10: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 고양이를 만난 다음부터는 집 없는 짐승들이 마음에 걸리긴 하네요. 겨울은 사람도 힘들지만 그런 동물들에게도 참 가혹한 계절일 것 같아요. MBC던가.. 멧돼지 잡는 프로그램이 있던데 그거 보면서도 기분이 참 안좋더라구요. 물론 농사짓는 분들도 속이 상하시겠지만.

무스탕 2009-12-1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동네 고양이들중 몇 마리는 제 목소리를 알고 있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때 고양이 먹을만한걸 따로 갖고 나가서 야옹~ 하고 부르면 몇 마리가 뛰어 나올때가 많아요 ^^
그러다 먹이 없이 무심코 야옹~ 하면 그 녀석들이 달려와서 절 빤~히 쳐다보며 야옹거려요.
어우.. 그땐 얼마나 미안한지...
'밥 줄거 아님 부르지 마. 뛰어 오느라 힘들어!' 그러는거 같아서요..;;

섬사이 2009-12-17 10:5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동네 고양이들의 대모셨군요!!!
무스탕님 주변으로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야옹거리며 몸을 비비는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네요.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만나면 얼른 줄 수 있는 고양이 먹잇감이 없을까요? 멍멍이라면 소시지라도 갖고 있다가 줄 텐데.. 고양이도 소시지 먹을 줄 아나 모르겠네요. 마트에 고양이 사료 통조림도 팔던데 소시지보다 그게 낫겠죠? 아파트 경비아저씨나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싫어하시겠지만..

꿈꾸는섬 2009-12-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도 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 주변을 어슬렁 거려요. 날도 추운데 배도 고픈가봐요. 근데 우리동네 고양이 쏜살같이 도망가더라구요.

섬사이 2009-12-24 06:32   좋아요 0 | URL
우리동네 고양이들도 잽싸게 도망가기 바빠요.
그런데 저 날 저 고양이는 도망갈 생각은 안 하고 야옹거리더라구요.
그래서 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동화를 너무 많이 읽은 걸까요..?^^

세실 2009-12-1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다. 제가 분명히 댓글을 단 것 같은데.....ㅎ
고양이의 수다를 들어주었다는 님의 글에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 왜 고양이와 개가 싫을까요. 아이들이 키우자고 하면 일거리 늘어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감정이 메마른걸까요. ㅠ

섬사이 2009-12-24 06:3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들이 집에서 동물을 키우자고 하면 싫다고 해요. 세 아이 키우기도 벅차서요... ^^;;
 

며칠 전의 일.  몇 달 전부터 유빈이가 사달라고 조른 장난감이 있다.  '미미 인어공주 보석함'이라는 장난감인데 EBS어린이 방송에서 광고를 보고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런 류의 장난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사달라고 조른다고 그 때마다 다 사줄 수도 없고 해서 크리스마스 때 사준다고 미뤄두었는데, 요 녀석이 아빠에게 뽀뽀하고 애교 떨고 하더니 어느 날 울 냄푠이 작은 딸 아양에 넘어가서는 인터넷으로 홀딱 주문해주고 말았다.   

주문한 '인어공주 보석함'이 도착한 날.  서둘러 상자를 뜯었는데 보석함에 끼워야 할 건전지가 없었다.  나중에 마트 나갈 때 사오마 했는데도 굳이 지금 당장 끼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AA건전지는 많은데 보석함에 낄 건전지는 AAA. 때는 저녁이고 나가기 귀찮았지만, 그래, 새 장난감이 왔는데 소리나는 게 얼마나 궁금할까, 싶어서 사다가 끼워줬다.   

그런데 보석함을 열고 그 안의 작은 단추를 누를 때마다 '또로로롱~~' 소리 나는 걸 몇 번이나 계속 하던 유빈이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거다.  

"엄마, 이거 고장났나봐." 
"어? 소리 잘 나는데 왜? 어디가 고장났는데? " 
"이 단추를 누르면 소리가 나면서 변신이 돼야 하는데, 변신이 안돼." 
?????? 

오오오오, 이런, 이런..  유빈이는 TV광고에 속은 거였다.  광고에서는 단추를 누르면 "띠리리리링~"소리가 나면서 모델로 나온 아이가 샤샤샥 예쁘게 변신했던 모양이다.  허걱, 그래서, 그렇게 자기도 변신이 될 줄 알고 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오랫동안 조른 거였구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유진이랑 명보가 깔깔대며 웃었다.  역시 애들은 순진해~~ 하면서.  나도 물론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유빈아, 광고에서는 그냥 보석함 안에 예쁜 귀걸이랑 반지 같은 게 들어있어서 그걸 하면 예뻐 보인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렇게 꾸민 거야.  광고를 보이는대로 믿으면 안돼..에고, 불쌍한 우리 작은 딸.."  난 위로한답시고 유빈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은 말을 주절거리며 꼭 안아줬다.

그 다음부터 우리 유빈이, 그 장난감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장난감을 사면 늘 이게 문제다.  아이들은 환상을 품고 장난감을 원하는데 정작 장난감은 아이들의 환상을 길게 지속시켜주질 않는다.  하긴, 아이들의 환상을 이뤄준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불가능하니까 판타지겠지. 그러니까 판타지가 상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거겠지.   그래서 어른이 되면 점점 판타지와 멀어지는 거겠지.

작은딸이 보여준 조그만 판타지가 두고두고 자꾸만 나를 웃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빈이에게 상상의 세계를 보여줬다가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그 장난감이 야속하기도 하다.  정말 변신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딸의 깨져버린 상상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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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1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에피소드네요. 속상해진 유빈이가 안타깝지만 그 순진함을 잊어버린 우리들은 덕분에 하하 웃었어요. ^^

섬사이 2009-12-14 18:28   좋아요 0 | URL
이런 일들을 겪고 실망해가면서 세상을 배워가는 거겠지요?
그냥 더 크지 말고 지금 이대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

조선인 2009-12-1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궁, 귀여워라.

섬사이 2009-12-14 18:30   좋아요 0 | URL
해람이랑 유빈이랑 만나면 꿍짝이 잘 맞을 거예요.
'공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다락방 2009-12-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칫..저는 정말 야속한데요! 변신 시켜준다고 광고했으면 변신을 시켜줘야 되는거 아녜욧!!! 왜 애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냐구요, 거짓말을!!!! 저도 유빈이의 깨져버린 상상이 안쓰러워요. 에잇, 그 장난감 욕해주고 싶어요. 이 빵꾸똥꾸야! 라고 말이죠. 칫칫.

섬사이 2009-12-15 15:57   좋아요 0 | URL
아, 그래야겠어요.
그 장난감을 잡고 "빵꾸똥꾸야"라고 욕이라도 실컷 해줄래요. ^^
 

유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공주풍 드레스를 골랐다.  처음엔 백설공주 드레스를 골라서 산타 할아버지께 "하버지, 백설공주 드레스 주세요~"했다.  그런데 어제 백설공주 드레스보다 훨씬 저렴한 황금빛 드레스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찾아 보여줬더니 그걸로 바꾸고 싶단다.  오~ 땡큐.   무려 2만원 이상 싸다.   

요즘 장난감이 너무 비싸고, 비싼데도 막상 뜯어보면 부실하고, 아이는 금세 싫증을 내기 마련이어서 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 즈음이 되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번에 좀 허접하긴 하지만 유빈이의 공주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드레스를 주문하고 나니까 장난감보다는 마음이 개운하다.  앞으로 때마다 주욱 드레스를 선물할까, 하는 생각도...  정리하기 좋고, 장남감보다 오래 갖고 놀 것 같고, 가격도 장난감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고..  특히 이번에 주문한 드레스는 2만원이 살짝 안 되는 착한 가격이다.  공주병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드레스 구매를 쭈욱 이어갈까..^^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재채기 폭발!  비염 발작이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약을 3일 정도 안 먹었더니 코가 미,쳤,다.  눈도 가렵고 귓속도 가렵고, 재채기 연발에 콧물은...  아침부터 휴지를 끌어안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어제 끓여둔 사골국에 김치 하나 내놓고 아침식사를 겨우 해결하고 약을 먹고 나니 좀 나아졌다. 비염은 고칠 수가 없다지만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주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면서 중간중간 코 풀고 손 씻고... 귀찮고 짜증난다.

명보는 아침에 요리학교로 요리 배우러 다녀왔다.  오늘의 메뉴는 우동과 돌솥알밥.  집에 돌아와서는 돌솥과 재료만 있으면 자기가 돌솥알밥을 만들어 주겠단다.  돌솥 안을 참기름으로 골고루 발라준 다음 밥을 넣고 단무지, 오이, 김치, 당근을 다져넣고 위에 날치알과 김가루, 무순을 올린다음 약한 불로 2분만 데워주면 끝이라나?  돌솥알밥이 그렇게 쉬운 요리였단 말이야?  알고 보니 시시하구나. 조리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돌솥의 분위기와 알록달록 빛깔 고운 고명들에 눈이 멀어 돌솥알밥을 적당히 괜찮은 요리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족이 즐겨 찾는 삼성동의 '고운님'이라는 음식점은 용서해주기로 했다.  나오는 반찬이 깔끔하고 정갈한 데다가 사장님도 무척 친절하시고, 돌솥밥도 '영양'돌솥밥으로 맛이 아주 좋다. (갑자기 웬 음식점 홍보??) 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들한테 돌솥알밥 해달라고 하자고 냄푠이랑 굳게 약속했다.  명보는 다음 놀토엔 마들렌을 만든다며 유진에게 같이 가자고 꼬시는 중이다.  아마도 마들렌을 만들 땐 집에 좀 싸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예전에 머핀을 만든 적이 있는데, 무려 20개도 넘게 싸와서 이웃들과도 나눠 먹었던 즐거운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제발, 마들렌도 잔뜩 싸오기를!  

도서관 책고르미 엄마들이 올 한 해동안 했던 작업들이 작은 책으로 꾸려졌다. '책'이라기 보다는 '문집'(문집도 책은 책이지만)에 가깝다.  내 글로는 페이퍼에도 올렸었던 '공주'를 주제로 한 책들과 '아빠'에 관한 책들, 명보가 보았던 만화책들, 그리고 내가 반한 그림책들로 네 편이 실렸다. 막상 '책'의 모양을 갖추고 나온 것을 보니 좀 더 잘 할걸,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아쉬움이 짙다.  아직 내공을 갖추지도 못했는데 게다가 경험도 없었으니 이 만큼 나온 것만도 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도서관 관장님과 선생님들이 열심히 밀고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못했을 거다.  내년엔 또 어떤 작업을 이어가게 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좀 해보자는데...겁이 좀 난다.    

12월 23일, 조니 뎁, 히스 레저, 주드 로가 나오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라는 영화가 개봉된다.  (캐스팅이 장난이 아니구나..)  큰딸과 나는 '저 영화 꼭 보러가자'고 굳게 맹세했다.  <스위니 토드>는 큰딸이 볼 나이가 안돼서 냄푠과 갔었는데, 이번엔 같이 갈 수 있을까?  (큰딸과 나는 조니뎁을 같이 좋아한다) 시험도 끝나고 방학도 다가오는 시기이니만큼 아마 친구들과 보러 갈 확률이 99%. 그럼 난 냄푠과 보러가야지.   

포스터

  

주말엔 아이들 교복, 셔츠, 체육복 등등을 빨래하는 게 일이다.  교복자켓은 홈드라이를 하고, 스커트와 바지, 조끼는 울빨래를 하고, 셔츠는 솔로 깃과 소매끝을 빡빡 문질러서 손빨래를 한다.  체육복은 세탁기에 돌리고...  그나마 큰딸 학교가 실내화를 쓰지 않고, 아들 학교는 삼선슬리퍼로 실내화를 대신하니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실내화까지 빨아대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거나 교복을 빨아 다리거나 할 때 엄마 생각이 난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두 개씩 싸야했고, 교복은 물론 운동화와 실내화도 빨아야 했다.   그 때는 세탁기도 전자동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한쪽엔 세탁기가 다른 한쪽엔 탈수기가 따로 있었던 '백조 세탁기'였다.  결혼해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마음 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주말에 아이들 교복을 빨 때마다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 오늘 점심 설거지는 명보가, 저녁 설거지는 유진이가 해줬다.  남편은 커피를 타줬다.  아침에 비염만 빼면 흔치 않은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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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날에윤슬 2009-12-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쑥 죄송한데요, 저 공주옷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요? 우리 딸들도 저런 옷 무척 좋아해서요.

섬사이 2009-12-12 23:01   좋아요 0 | URL
죄송하긴요. 2001아울렛 인터넷 쇼핑몰이 있어요.
www.2001outlet.com 이요.
회원가입하니까 3만원 이상 구매시 2000원 할인 쿠폰을 줘서 요긴하게 잘 썼답니다. (4만원 이상 주문해야 배송료가 없어요.)
저 드레스도 정가는 39900원으로 되어있는데 할인해서 19900원을 하더라구요.

다락방 2009-12-1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섬사이님. 격하게 공감해요. 비염에 한해서 말이죠. 저는 늘상 달고사는 건 아닌데 환절기엔 거의 죽음이에요. 눈도 팅팅 붓고 눈물 콧물 다 나오죠. 이비인후과 가서 약 받아와 먹으면 좀 나아지던데 이게 약 먹고 나아지니깐 그것도 무서운거에요. 대체 이 약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좀 나아지는거지? 완전 독한거 아닌가? 사람이 먹어도 되는걸까? 하는 쓸데없는 의심이 들어서 말이지요. 비염은 윽-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괴로움을 주죠.

신문이나 잡지 같은데에 끊임없이 비염에 좋다는 약이나 치료법이나 병원이 실리는 걸 보면 정말 완치할 수 없는 증상임에는 틀림없나봐요. 완치 되는거였다면 끊임없이 광고할 리가 없겠죠. 아, 저 정말 그 괴로움 너무 잘 알아요, 섬사이님. ㅜㅡ

섬사이 2009-12-13 22:55   좋아요 0 | URL
에고고고, 다락방님도 비염이군요.
이 지독한 비염 좀 말끔히 떼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끈질기게도 안 떨어지네요. 이비인후과에서도 그러던 걸요. 완치는 어렵고 증상이 심해지면 약을 먹는 수밖에 없다구요. 그냥 놔두면 코 속에 혹이 생길 수도 있고 코가 비뚤어질 수도 있대요. 정말 못된 비염이에욧!!!
면역력이 약해지면 더 심해질 수 있다네요.
그러니까 우리, 강하게 살아가기로 해요. 그까짓, 비염따위!!!하면서..

꿈꾸는섬 2009-12-1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레스 정말 예쁘네요.^^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어요.
비염은 정말 완치가 안되는건가요? 저흰 현준이가 알러지성 비염이라는데 약을 먹어도 효과가 거의 없이 1년내내 콧물을 달고 살아요.ㅠ.ㅠ

섬사이 2009-12-13 22:59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속상하시겠어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6살짜리 꼬마도 알러지성 비염이라고 하는데 한약을 꾸준히 먹더라구요. 6개월 이상 꾸준히 먹더니 많이 나아졌다고 하던데,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치료가 가능한 거 아닐까요?
어린 나이에 비염에 걸린 아이들이 평생 비염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건 너무 가혹해요. 분명히 현준이는 자라면서 코가 튼튼하고 건강해져서 꼭 나을 거예요. 꼭!!!

세실 2009-12-1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도서관 있을땐 비염 달고 살았는데 책이랑 멀어지니 비염도 잠잠해 집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비염 뚝입니다. 헤헤~~~
드레스 가격 참 좋으네요. ㅎ

섬사이 2009-12-13 23:01   좋아요 0 | URL
그럼.. 혹시 저도 집에 있는 책들을 처분하면..
비염 뚝, 할 수 있을까요....
설마.. 아니겠죠? 끙...

세실 2009-12-19 10:10   좋아요 0 | URL
아이들 방에 책을 치우시는 것도 좋을듯.
책먼지가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큰애 아토피땜에 병원갔더니 의사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아토피, 비염, 천식이 다 알러지로 인한 원인.
그래서 전 큰방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아이들 방엔 침대와 옷장만 두었습니다.

섬사이 2009-12-24 06:38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엔 옷장 정리를 한다든가 하면 심해지더라구요. 문짝이 달린 책장이면 좋은데, 요즘 문짝 달린 책장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있다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기도 하구요.
책을 아주 없애기는 힘들고, 더 늘어나지는 않게 잘 관리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