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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53호 - 2017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7년 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 녹색평론 153호의 책제목을
“시민주권시대를 향하여”라고 했단다. 아무래도
시의성을 띤 제목인 것 같구나. 요즘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와 국가와 정치에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구나. 늘 정치판을 욕하기만 하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다가 많은 시민들이 한데 모여 촛불을 들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모순덩어리 정치판을
갈아엎었으니 말이야. 아빠도 일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단다. 그런 촛불혁명으로 부르는 신선한 정치 혁명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낯선 계절에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단다. 촛불 혁명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대통령 한 명 바뀌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단다. 촛불 혁명을 통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모순덩어리
세상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거야. 시민이 주권을 갖는 그런 시대 말이야. 헌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많은 시스템은 모순 덩어리로 마치 모래로 쌓은 성과 같단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이번 장미대선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 시민의 의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야. 이 책에서도 그런 시민혁명의 영구성(永久性)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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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은 그 내면에
영구혁명적 동력을 품어야 가능해진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적
정세에 규정당하는, 생명력이 짧은 운명에 처하고 만다. 그런
영구혁명적 의지와 함께 그 시야가 자연과 세계 그리고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의식의 진화가 요구된다. 우리는
근대시민혁명의 역사를 거쳐 초근대적 시대를 향해 진입해야 하는 인류에 속해 있다. 근대적 과제의 해결
못지않게, 그걸 뛰어넘는 세계로 가는 길을 열 때 한국의 시민혁명은 문명사적 가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이해만 관심의 중심에 놓이는 혁명은 언제든 본래의 이상을 배반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애라는 프랑스혁명의 구호는 근대를 넘는다.
그것은 아직도 결코 낡지 않았다.(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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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
이것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안이 있을 때마다
주말마다 촛불을 들 수 있을 수는 없잖아. 촛불 혁명. 결국
시민이 결정권을 갖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는 촛불혁명의 연장선은 추첨제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당장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시민의회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그 시민의회는 배심원제처럼 시민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뽑아야 하는 거야. 배심원처럼 적은 수가 아닌 최소 수백 명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 민의가 충분히 반영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의 역할은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것. 이런
제도는 지도자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이런 추첨 민주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란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런 추첨제를 통해서 공직자도 뽑고 시민의 대표도 뽑았다고 하는구나.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하는 그 고대 그리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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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들은 정치적 평등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에 민주주의와 정치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근원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민주주의체제
속의 시민에게는 나라를 운영할 특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필요성은 없었다. 그 대신에 그에게는 최소한의
불편을 치르고 정치에 참여할 풍부한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선거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정교한 추첨제를 활용하여 공직자들을 뽑았다.
고대의 민주주의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힘의 균형을 유지했다.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정책 결정력은 집단 속에 있었다.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국가에서만 민중이 권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디슨이 주장하려 했듯이, 이것은 결코
혼돈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시민적 책임의 구조화된 이행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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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격적인 선거철이란다. 녹색평론에서는 그동안 오랫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단다. 처음에는 이것은 이상세계에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부분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지자체도 있고, 대통령 공약으로도 나오고 있단다. 그리고 4차 산업의 시대가 온다고 한단다. AI의 등장과 함께 앞으로 더욱
일자리는 줄어들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어. 하지만 생산량은 늘어나겠지.
일자리를 잃은 소비자들은 소비 심리는 점점 위축이 될 거야. 과잉 생산과 적은 소비.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뿐이라고
하는데 아빠도 이 말에 무척 공감이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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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그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차별 없이) 돈을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이슨은 그렇게 묻고 대답한다.
“우리에게는 기술을 아주
빠르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의 연구에 제시된 대로 앞으로 선진국에서 자동화
때문에 모든 직업의 47%가 공급과잉이 된다면 신자유주의체제 아래서 벌어질 일은 프레카리아크(precarious(불안정한)와
proletariat(프롤레타이라계급)를 합성한 조어)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밖에 없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세금으로
지불하는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비시장경제 안에서 입지를 마련할 기회를 준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하거나,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위키피디아’ 편집에 참여하거나, 3D 디자인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배울 기회를
준다. 아니면 그냥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노동을 하다가 쉬어갈 시간을 준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더 늦게 진입하거나 일찍 빠져나올
수 있고, 스트레스가 높은 고강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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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녹색평론은 어떤 예술가의 글을 통해 기본소득이 있으면 좋아지는 점을 이야기했단다. 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본업인 예술 활동보다 생계 유지를 위한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있고, 그로 인해 창작활동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기본소득이
있다면 그들이 더욱 많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야. 그렇게 양질의 작품들이 창작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것은 비단 예술가의 사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단다. 그리고 도전을 두려워 하는 것도 결국 도전의 실패 뒤에 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란다. 기본 소득이 있다면, 꿈으로만 접어두었던 많은 도전들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지 않을까 생각된단다. 그리고 그 도전 중에서는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거나,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을 거라고 아빠는 생각해. 여러모로
좋은 점이 참 많은 제도란다. 당장에 현실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이제
대통령 선거 공약에도 등장을 했으니,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는구나.
2.
얼마 전 세월호 사건 3주기가 지났단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세월호가 드디어 바다에서 나와서 육지로 올라왔단다.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이유 없이 죽어간 아이들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단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잊지 못할 일.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한단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인 거야. 지난 정부는 이런 일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미적미적했지만, 다음달에
새로 출범될 정부는 단호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사실 이 사건은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거라고 생각한단다.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다시 한번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이번에는 특별히 세월호 사건을 다른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이때 소개된 문학작품들 중에서 아빠도 몇 권은 읽은 책들이었단다.
조정래 선생님은 예전에 모 TV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작가는 그 시대의
산소라고 하시면서, 아픈 역사, 아픈 시대를 글로 써야 한다는
했어.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한 젊은 작가들. 그들의 글들을
통해 같이 호흡하고 공감했던 독자들… 그들 또한 세월호를 잊지 않고 지금이라도 땅 위로 올릴 수 있는데
힘을 보태지 않았을까 생각한단다. 이제 세월호를 끌어올렸으니, 아직
바닷속에 잠겨 있는 진실만 끌어올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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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한국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재난의 잠재적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용기로 이어졌고, 구조적 모순이 기인한 사회적 재난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열망이 망각에 반대하는 절박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희망의 언어는 낭만적 열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인식을 통한 실천을 통해 생성될 수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용기와 망각에 대한 저항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뜨거운 삶의 열기가 생겨난다. 그 열기는
어둠을 이겨내고 내일 아침을 맞이하는 힘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할 온기에 대한 ‘뜨거운 언어, 핍진한
이야기’일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로 인해
한국의 동시대인들은 ‘살아가는 인가’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아 있는 인간’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됨의 조건이다. 한국문학이 ‘상상을 통한 생각의 확장’을 향해 있고, 그 지평을 넓힘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는 길에 접어들 수 있기를 염원한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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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건져냈다고 생각한단다. 남의
나라 걱정할 필요 뭐가 있냐고 할 수 있으나, 그 나라가 미국이라면 사정이 다르단다. 워낙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치는 나라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말이야. 그래서 미국 대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최악이 차악을 이겨버리는 결과가 나왔단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많은 분석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야. 그래서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외친 정치인을 뽑은 게 아니고, 어디서 망나니 같은 정치 초보자를 뽑은 거거든. 미국 민주주의 위기에
관한 글은 이 책에서 발췌한 몇몇 글로 대신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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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연구자들은, 평균적인 시민들이 부유층과 정부로부터 같은 정책을 원할 때는, 그들에게도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주목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의견이 불일치할 때는, 부유층이 거의 언제나 승리한다. 이 연구는 미국을 과두정치제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경제적 엘리트가
지배하는’ 시스템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
트럼프는 워싱턴의 정치기관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공화당에 대해서도 아웃사이더인 자신의 위치를 트럼프는 유리하게 활용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승리를 거둔 가장 큰 까닭은 바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대중의 신뢰를 잃은 데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힐러리를 찍기 위해서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투표장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투표를 했겠는가? 클린턴은 월스트리트가 원한 후보였고,
미국의 금융 및 은행계의 엘리트들로부터 막대한 선거운동 자금을 기부받았다.
(118)
트럼프의 승리는 기성
정치권력층에 대해서 날로 깊어가는 불신과 갈수록 커가는 양당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을 나타내는 명백한 신호였다.
데이터들은 많은 백인 노동자들과 중산층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가 워싱턴의 주류 정치권에 대해서 진정한 아웃사이더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많은 인종적 소수파는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123)
트럼프의 제안은 오바마가
화석연료에 대하여 취했던 접근방식을 더 진전시키려는 것이다. 즉, 무제한적으로
화석연료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에너지 고갈과 경제적 붕괴로 가는 길을 가속화할 것이다. 트럼프는, 문명의 차(車)를 경제 절벽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의 지지기반 이외의 모든 타자들-인종적 소수자들, 무슬림, 여성,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등등 – 을
비난함으로써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지지자들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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