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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제 5부 <카이사르> 중 1권을
읽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올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남은 부분 다 읽기로 했잖아. 제 5 부 <카이사르>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무래도 전체 시리즈의 주인공인 카이사르니까 말이야. 그의 대활약상이 기대되는 5부
<카이사르>. 이미 여러 책들에서 카이사르를 만나보았지만, 또 색다른 재미가 있었구나. 공화정의 많은 원로원 의원들의 카이사르에
대한 열등감이 없었다면, 로마는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자, 그러면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는 기원전 54년 1월부터 기원전 52년 4월까지의 이야기란다.
1.
<카이사르> 1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속주로서 갈리아
지역을 평정하고 로마 최초로 바다 건너 오늘의 영국 땅인 브리타니아 원정 중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단다. 당시
브리타니아는 갈리아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족들이 있었어. 그 중에 트리노반테스족의 왕 만두브라키우스는
카이사르의 협조를 선택하게 된단다. 그 나름대로 자신과 자신의 부족에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카이사르는 열심히 브리타니아 정벌에 힘을 썼고, 멀리 로마의 소식은
폼페이우스가 보내주는 편지로 받아보고 있었단다.
폼페이우스. 나이는
카이사르보다 많지만, 카이사르의 어린 딸과 결혼해서 지금은 카이사르의 사위잖아. 지난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했었지. 그만큼 폼페이우스는 親 카이사르파였어.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자의 80, 타의 20의 현 로마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로마의 소식은 그리 좋은 소식은 별로 없었어. 反 카이사르파의 대표주자인
카토 법무관이 법의 잣대를 너무 타이트하게 들어대며 원로원 의원들을 괴롭힌다는 소식, 시인 카툴루스의
사망 소식. 크라수스가 시리아 속주가 떠난 소식 등… 그리고
카이사르가 궁금해하는 식구들 소식들도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받은 폼페이우스의 편지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편지로 읽기 전부터 불길했단다.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 자신의
사랑하는 딸 율리아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거야. 이제 스무 살도 안 된 딸의 죽음… 아버지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하지만, 현재는 자신의 임무로 그 먼 로마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단다. 그
슬픔을 참고, 지금의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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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
하지만 율리아를 잃은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와 달랐다. 돈은
카이사르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엄을 드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정무관 직의 사다리를 오르며 끊임없이 빚에 시달렸던 끔찍한 몇 년 동안 카이사르가 배운 교훈은 어느 일에서나
무형의 자산인 존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그의 존엄을 드높이는 것은 전부 그의 죽은 딸의 존엄을
드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카이사르는 위안을 느꼈다. 카이사르의
노력 덕분에, 그리고 타고난 본능에 따라 세상에 사랑을 불어넣은 율리아 자신의 선행 덕분에 세상은 율리아를
기억하게 되리라. 율리아가 카이사르의 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아내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로 돌아갈 때 원로원이 율리아에게
허락해주지 않은 장례 경기대회를 직접 개최하리라. 앞서 다른 이유로 원로원에서 당당히 단언했듯이, 카이사르는 그네들의 고환을 군홧발로 전부 밟아 으깨버려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뜻을 관철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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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 원정을 마치고 군단들을 데리고 다시 장발의
갈리아 지역에 도착했단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면서 정비하기로 했고, 자신들의
부하들을 갈리아 지역 각 영지로 보냈어. 카이사르의 주요 부하를 소개해 보면,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크라수스,
파비우스, 퀸투스 키케로 등이었어. 퀸투스 키케로는
그 유명한 키케로의 동생인데, 처음에는 카이사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서로 신뢰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단다. 카이사르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신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다 보니, 그들의 부하들은 카이사르를 저절로 잘 따르게 되었단다.
갈리아 지역에서 많은 승리로 전리품을 많이 얻어서 그와 그의
부하들은 부자가 되었고,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단다.
反 카이사르파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지. 자신들의 나라의 번성보다 카이사르가 잘 되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인간들이니까 말이야. 그런 이들이 의외로 많았단다.
로마 원로원이 오래되다 보니 로마를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았단다. 어찌
정치하는 이들이 義가 아니고 利를 생각하는가. (문득 얼마 전 읽은 맹자가 생각나는구나.^^)
…
카이사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어. 율리아의 죽음 이후 과연 폼페이우스와 계속 친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친분의 팔 할은 율리아에 의한 것이었거든. 카이사르도 그걸 처음부터 노리고 자신의 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킨 것이고 말이야. 폼페이우스가 로마에서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그의 그릇은 밥그릇 수준이라고 할까? 아주 작았어.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
슬픈 소식은 율리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단다. 카이사르의 한 평생 큰 버팀목이자 후원자였던 엄마 아우렐리아마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단다. 율리아가 그렇게 죽고 난 이루 아우렐리아는 삶의 의미를 잃고, 괴로워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어. 이번에도 로마로 곧바로 돌아올 수 없었단다.
2.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은 침략이 아니었단다. 그들을 로마化하여 로마를 넓혀가는 정책이었던 거야. 카이사르는 그것이
로마와 갈리아 양 진영의 평화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갈리아 지역에는 여러
부족들이 있는데, 그들은 서로 간에도 적대적이어서 이를 잘 활용하면 쉽게 로마색을 칠할 수 있었단다. 때론 전쟁으로 차지하고 했지만, 때로는 전쟁 없이 차지하기도 했단다. 그런 이야기를 카이사르는 모두 글로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로마에서 책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는구나. 그 책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우리도 볼 수 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구나.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야.
…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에 대해 자부심이 무척 사람이었단다. 그런 공화정 체제로 인해 로마가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이어졌다고 생각했어.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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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75)
“리안논, 로마는 왕을 세우지
않소! 나 역시 로마에 왕이 서는 걸 동의하지 않고! 로마는
공화국이고 그 역사가 500년에 이르오! 나는 로마의 일인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로마의 왕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오.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오. 심지어 당신네 갈리아인들도 깨닫고 있는 사실 아니오. 나라는 선거
제도를 통해 바뀌는 사람들이 운영해야 더욱 번영하는 거요.” 그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인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선거요. 때로는
최악의 인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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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
“아니.” 카이사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오. 로마라는
거대한 행렬의 한 부분일 뿐이오.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훗날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부분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전체의 일부일 뿐이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었을 때 마케도니아는 죽었소. 그의 나라는 그와 함께 사라졌소. 그는 스스로를 왕으로 생각했기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제국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겼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나라가 위대했던
것은 오르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때문이었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소. 그는 왕이었으니까, 베르킹게토릭스! 그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착각했소. 그 목적이 결실을 거두려면
그는 영원히 살아야 했을 거요. 반면 나는 내 나라의 종복이오. 로마는
로마가 낳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위대하오. 내각 죽더라도 로마는 계속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낳을 것이오. 내가 떠날 때 로마는 내가 오기 전보다 더 세고 더 부유하고 더 강력해져 있을 것이오. 내 뒤에 올 자들은 내가 남김 업적을 활용하고 향상시킬 것이오. 민주주의에서는
바보와 현자가 늘 공전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가의 계보보다는 낫소. 위대한
왕이 하나 나오려면 보잘것없는 왕을 열 명은 거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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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아빠도 인정한단다.
간혹 민주주의 공화정보다 어떤 똑똑한 사람에 의한 엘리트 정치가 나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똑똑한 사람이 죽고 나면 나라가 쫄딱 망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그보다는 그나마 시스템으로
받쳐주는 민주주의 공화정이 낫다고 말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원로원 분들은 마음에 썩 안 드는구나. 미래에 어떤 것이 중요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오직 권력 투쟁만 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안타깝구나.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빠졌는데, 다시 이야기를 할게…
…
갈리아 여러 영지로 부하들을 보냈다고 했잖아. 모든 부하들이 똑똑할 수는 없어. 13군단 퀸투스 사비누스는 갈리아의
한 부족의 계략에 넘어가 전멸하고 말았단다. 갈리아 부족을 로마化하고 있지만, 아직 저항하는 부족들도 많단다. 13군단을 속임수를 써서 전멸시킨
이는 암비오릭스라는 사람인데, 그는 퀸투스 키케로에게도 같은 작전을 썼어. 하지만, 퀸투스는 안 넘어갔어. 그래서
암비오릭스는 수만 갈리아 군대를 이끌고 공격했어. 퀸투스 키케로가 관리하고 있던 영지는 고립되어 위기에
빠졌단다. 카이사르에게 전령을 보내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했고, 네
번째 만에 성공을 해서 카이사르가 지원에 나섰단다. 그로 인해 퀸투스를 공격하는 갈리아 군대를 쫓아낼
수 있었단다.
3.
잠시 로마로 시선을 돌려서 로마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줄게. 로마 원로원은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단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공직들을 뽑지 못하고 있었어.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집정관 대리 역할인 섭정관을 하고 있었어. 아무튼 혼란의 로마원로원이었어.
율리아가 죽고 폼페이우스는 다시 혼자가 되었잖아. 보니 파(대표적인 反 카이사르 파의 모임, 기억나지?)의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폼페이우스를 찾아왔어. 다른 것을 논의하려고 온 척 했지만, 그의 속셈은 자신의 딸을 폼페이우스에게
소개시켜주려는 것이었어. 카이사르가 그랬던 것처럼 폼페이우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말이야. 속 좁은 폼페이우스는 쉽게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단다. 이런 움직임을
모르는 카이사르도 폼페이우스를 다시 자신과 혈연 관계를 만들려고 했어. 그래서 폼페이우스에게 편지를
썼단다. 이번에는 카이사르 자신이 폼페이우스의 사위가 되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폼페이우스의 딸도 이혼을 해야 하고, 카이사르 자신도 이혼을 해야 했어. 그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의 먼 친척 딸이 폼페이우스와 결혼하면 좋겠다고 했어.
이미 스키피오의 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이 편지를 받고 격노했단다. 자신을
비천한 가문의 딸과 결혼시키려고 한다고… 쯧쯧..
…
별난 행동을 좀 많이 하는 클로디우스라는 사람이 있어. (그의 이전 이야기는 <카이사르와 여자들>의 독서편지를 참고하렴.) 아내가 로마 최고의 부자 중에 한
명인 풀비아였고 말이야. 원로원이 된 그는 원로원에서 좀 별난 정책들을 내놓았단다. 별나다고 해서 그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다른 원로원들과 다른 정책들이었어. 좀
개혁 진보적인 정책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해방노예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자고 했어. 하지만 그에게는 속셈이 있었지. 해방
노예에게 권리를 더 주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호민관 10명을
모두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어서 결국 로마를 지배하려는 야심이 있었어. 그의 이런 정책을 반대하는 보수파
원로원들이 많았어. 그 중에 말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말로와 클로디우스가 마주쳤단다. 클로디우스에게 화가 잔뜩 나 있던 말로는 시비가 붙고 클로디우스를
죽였단다.
이후 말로는 범행 사실을 부정했단다. 나중에 말로는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키케로가 그의 변호를
맡게 되었단다. 폼페이우스가 사전에 키케로를 찾아와 협박을 했더니, 유능하지만
겁쟁이인 키케로는 재판에서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로는 유죄 판결을 받고 추방을 당하게 되었단다.
….
폼페이우스는 권력욕이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反 카이사르 파인 보니 파는 이걸 이용했어. 폼페이우스에게 독재관을
제안해보니 그건 거절을 했어. 폼페이우스가 권력욕이 있지만, 독재관은
아니다 싶었거든. 독재관이었던 술라의 끝이 어땠는지 알고 있거든… 그래서
보니 파는 폼페이우스에게 동료 없는 집정관을 제안했어. 이건 합법적이면서, 권력을 최대한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폼페이우스는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결국 스키피오의 딸과 결혼했단다. 뻔히 카이사르와 보니 파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 보니 파의 유혹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진짜 그의 그릇은 밥그릇도
아니고 간장 종기 수준이구나. 권력욕이 심했던 폼페이우스는 로마에서 인기가 점점 올라가는 카이사르를
점점 미워하는 마음도 커졌을 거야. 다른 원로원 의원들처럼 카이사르에 대한 열등감이 점점 커져만 갔던
거지….
….
여기까지가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란다. 밀린 독서 편지 만회하려고 짧고 굵게 이야기하려는데, 그것도 능력인 것 같구나. 짧으면서 전체 핵심을 잘 전달하는 것
말이야.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쓰긴 했는데, 앞뒤 안 맞는
부분도 있고... 너희들이 잘 이해하면서 읽었으리라 믿는다.^^
PS:
책의 첫 문장: 카이사르가 주요 부대들을 이끌고 브리타니아에 가 있는 동안에는 꼭 긴급한 전갈만 그리로 보내라는 명령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친애하는 키케로, 당신이 이대로 연설할 만큼 강심장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실리아의 수염숭어를 즐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