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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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한 권이 혹은 영화 한 편이 인생을 어떻게 요렇게 조렇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 만만한 것이 아닐뿐더러 책이나 영화에 그만한 권능이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결국 책이나 영화라는 것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고,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를 사귐, 여행, 책, 영화, 우연한 사고, 병마의 시달림, 사랑의 기쁨과 아픔, 결혼과 자식이 생김.........등등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것들이 서로 오묘하게 상호작용하여 우리 인생을 요리조리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말인즉슨 “나는 이런이런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 혹은 이런저런 영화가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는 식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돈오돈수보다 돈오점수. (맞나 모르겠다) 깨닳음이라는 것이 어느날 장마비 속에 갑자기 천둥번개 치듯이 그렇게 불현듯 오는 것이 아닐진대, 불행히도 만에 하나둘 그렇다고 한다면 오랜 세월 피땀으로 용맹정진 약진발진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수행자의 노고는 무엇으로 보답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연이나 어느 더운 여름날 땀 삐질삐질 흘리며 된똥을 누다가 문득 득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십년을 내리 쌩똥 피똥을 싸흘려도 결국 깨닳음을 얻지 못하고 미망속에서 장파열로 죽은 인사도 있을 것이니, 인생이란 것이 그런 것임을 또 우리가 안다. 무슨 소린지 횡설수설중.


어쨋거나 읽는 내내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왁자지껄한 술집에 들어온 듯하다. 한편 한편이 짧아 이미 읽은 한 편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다음 편으로 책장이 넘어가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회의 각 방면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거나 이루어가고 계시는 모모하신 분들의 글 중에 많은 부분이 다소 성의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더라도 조금은 가볍다는 느낌. (물론 아시겠지만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못난놈이 칭찬에 인색한 법이니 적당히 양해하시길...)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법 심각한 제하에 걸맞지 않게 약간은 농담식 장난식으로 쓰여졌다는 생각.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에는 필진의 연배가 대체로 젊어서 일까? 아마도 시오노 나나미쯤은 삭아야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정도는 쓸 수있다는 말인지...뭐 오래 살았다고 인생을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추신 1. 책의 사이즈가 요렇게 아담한 줄은 미처 몰랐다. 무슨 재생용지 같은 것을 사용했는지 책이 가볍고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데 크기에 비해 책 값이 다소 비싼 것 같다.

 

추신 2. 유력하신 분들의 인생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던 영화 <대부>, <욕망>, <이웃집 토토로>, <사운드 오브 뮤직>, <백투더 퓨처>, <바그다드 카페>, <거미여인의 키스>, <뜨거운 것이 좋아>, <자전거 도둑>, <영웅본색>은 디비디 혹은 비디오테이프로 내가 가지고 있다. 쭉 적어놓고 자랑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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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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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일것인데, 말하자면 본론도 시작하기 전에 삼천포행. 본인의 오래된 기억에, 옛날에는 ‘고흐’라고 발음하지 않고 ‘고호’라고 발음했었다. 외래어 표기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날 문득 ‘아멜리 노통’이 ‘아멜리 노통브’가 된 것은 영 이상하여 꼭 똑똑한 사람이 바보가 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고호’가 ‘고흐’로 된 것은 더 멋있어 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호’라는 똑 떨어지는 발음보다는 입 안쪽에서 바람을 불어내어야 하는 ‘흐’발음이 고달픈 풍찬노숙의 삶을 살아온 고흐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별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든다는 그런 생각이 또 든다.


아시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로 말씀드리자면, 그분은 이제 - 아니 이미 오래전에 - 전설의 문지방을 무슨 계집아이들 줄넘기 타넘듯이 쉽게 훌쩍 뛰어넘어 불현 듯 신화의 땅에 진입하여 휘황찬란한 기라성같은 제신의 반열에 엄숙하게 좌정하고 계신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이 그야말로 지랄같았던 (고흐의 병이 흔히 지랄병이라고들 하는 간질 비슷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일종의 정신질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큼 대중으로부터 조금 과분한 찬사와 숭배를 받는다고 해서 뭐 잘못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빈센트의 삶을 일별해 보자면 이렇다. 가슴아픈 실패로 끝나버린 몇 번의 연애사건, 엄격하고 보수적인 칼뱅파 목사였던 아버지와의 불화. 길지않은 일생이었지만 평생에 일순간조차도 벗어나지 못했던 경제적 궁핍의 늪. 죽기 수년전부터 시달렸던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 혹은 정신질환. 그리고 38살의, 한 사람의 남자로서나 한 명의 화가로서도 한창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함.


너무나도 유명한 고흐의 엽기적인 귀 절단 사건. 이 사건으로 고귀한 야만인인 고갱께옵서는 놀라자빠져 그 노란집에서 나와 여관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로 바로 파리로 줄행랑을 놓았던 것인데....고흐는 왜 그랬을까. 만약 내 친구중에 누군가가 면도칼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거나, 한밤중에 문득 깨어보면 친구가 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거나, 어느날 문득 자기 귀를 잘라 창녀에게 건네주고 하는 이런 행동을 한다면 정말 놀래자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흐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여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점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안에 지저분한 발로 드나들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내가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1883년 12월 15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네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해도 체념하지 말아라. 물론 너는 행운아니 그런일은 없으리라 믿는다.”(1881년 11월 3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무엇하나 번듯한 것 없는 참으로 눈물나는 인생이었지만, 다만 그림을 그릴때에만은 행복했다는 고흐 자신의 진술과 668통이나 된다는 편지를 통해서 보여진 동생 테오와의 형제애만이 그 고달픈 삶의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고호를 만든 반쯤의 힘은 테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아를이나 생래미 혹은 오베르까지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불쌍한 고흐가 죽고 근백여년이 지난 1987년 3월 30일 오후 7시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빈센트의 <해바라기>가 3,629만달러에 팔렸고, 같은 해 11월 런던의 소더비에서는 <붓꽃>이 5,390만달러에, 1990년 5월 15일 오후 7시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가셰박사의 초상>이 8,250만달러에 팔렸다. 일본 기업인들이 투기목적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점도 없지 않지만 여하튼 간에 고흐의 작품 세 점의 가격이 무려 17,269만 달러!! 환율 1000원을 적용하여 원화로 환산하면 1730억원...벌어진 입에서 억소리가 난다..억!! 물감 살 돈이 없고 모델 구할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동생에게 기대어 평생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고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그림을 그렸던 화가는 자살로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이제 그가 남긴 그림은 수천억원에 팔리고 있으니, 죽은 뒤에 찾아온 영광이 과연 살아 생전의 고달픈 삶을 보상해 줄 수 있을른지. 이제 편안히 누워있는 그에게 수천억의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남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처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돈 부탁을 해야 할 입장이다.”(1885년 7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네가 보내준 돈을 받았을 때는 어떤 음식도 소화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다.”(1985년 12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편지와 돈 고맙게 받았다. 설령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림을 그리는데 든 돈을 고스란히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우울해 진다.”(1887년 여름,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편지와 50프랑 고맙게 받았다...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1988년 10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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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의 편지들 좋아합니다.^^

아이리스 2015-07-16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이 마음에 박히네요. 닥터 후 시리즈의 고흐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참 좋아요. 그렇게라도 위로하고픈 마음이랄까 ^^;
 
엄마와 딸의 조금은 특별한 여행
최승은.김보희 지음 / 예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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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구입한 넥서스북스에서 나온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지 40]를 보니 베스트 포티 중 제일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앙코르 와트” 였다. 작가가 어떤 기준을 세워 무슨 의도로 앙코르 와트를 그 기라성같은 여행지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로 내세웠는지는 스스로 밝히고 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또 앙코르 와트를 만나게 되니 반갑다. ‘앙코르 와트’와 ‘캄보디아’ 하면 생각나는 영화 두편. “툼레이더”와 “킬링필드” 하나는 캄보디아의 처절하고 비극적인 학살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앙코르 유적 중 거대한 뿌리의 공룡나무들과 돌궁전이 뒤엉킨, 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오는 장엄한 장면만이 기억에 오래 남은 영화다. 


항상 진실은 진실 그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을 누구나 쉽게 알수있도록 밝게 밝히는 작업이 실로 지난하고 험난하다는 것은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이해가 상충되고 이른바 역사를 보는 눈이 서로 틀린 까닭일 것이다. 흔히 킬링필드라는 것은 캄보디아의 잔혹한 공산정권 크메르 루즈가 200만명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제분쟁전문 전선기자 정문태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다.(이 책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서 인터넷 여러곳에 돌아다녀봤다) 서방 학자들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붉은 크메르가 캄보디아 정권을 잡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친미정권 부역자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학살한 인민의 수는 대략 대략 10~30만 정도이고, 그 기간동안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수가 70~80만 정도이며, (이는 미국 등 국제기구가 공산 캄보디아 정권에 경제적 원조를 중단한 데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것은, 크메르 루즈의 공산혁명이 성공하기 이전의 내란시기인 1969~1973년 사이 미국의 캄보디아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사망한 양민이 40~80만에 이른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총 10여년간에 걸친 실로 유혈낭자한 처절한 질곡의 역사속에서 100만에서 150만의 캄보디아 양민이 사망했다는 것이 킬링필드의 전모이자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롤랑조페 감독의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킬링필드>는 결국 미국의 캄보디아 양민학살을 은폐하자는 수작이고,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킬링필드 전범재판은 짜고 치는 사기 고스톱판이라는 것이다.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가 존재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메리카가 자행한 킬링필드도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인생의 어떤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여 무언가 의미있는 결정을 해야하거나 지나온 세월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혹은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어떤 전환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흔히 여행을 생각한다. 사랑을 잃었을 때나 사랑이 필요할 때, 삶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숨막히고 답답할 때, 인생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 대개 여행을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없고 돈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연이나, 며칠 멀리 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세상이 문득 아름답고 살기좋은 곳으로 바뀌거나, 내 영혼의 키가 갑자기 훌쩍 커버리는 그런 일은 없다. 하지만 가슴속 어디에선가 둥둥 북소리라도 들려올라치면 가슴이 벌렁벌렁 대책없이 뛰고, 이런 종류의 여행기라도 읽게되면 궁뎅이가 절로 들썩들썩거리는 건 우리가 뭐 역마살 낀 떠도는 방랑객 여행애호가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휴가철이다. 마누라나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물론 더 재미있겠지만 부모님이나 가족들과의 의미있는 여행도 계획해 봄 직하다.  


추신 : 엄마 이야기 부분이 딸 이야기부분보다 양적으로 배는 많은 것 같고, 어머니로서 딸에 대한 애정의 감정이 과잉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녀인 딸의 경우로 말하자면 보다 진솔한 내용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인데 보여주기 위해 쓴 일기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아쉽다. 다소 정형적이라는 느낌. 又, 견문 일천한 자의 무식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앙코르 와트가 앙코르 유적지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이 경주라고 한다면 앙코르와트는 불국사에 해당된다는 편집자 분의 설명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앙코르 유적지 전체를 개괄적으로 볼 수 있는 지도 같은 것이 첨부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부록에 나온 관람 일정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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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8-0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문태 기자의 책을 보고, 저 대단한 킬링필드 라는 영화가...크메르루즈를 쳐 죽일 놈으로 만들고...양민 학살의 진실을 은폐한 미국의 졸렬한 영화였단 걸 알았지요... 아... 리뷰, 재밌게 읽구 갑니다~

붉은돼지 2005-08-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정문태 기자의 글을 몇 편 보다가 흥미가 생겨 저도 <전선기자 정문태> 한 번 읽어 볼 작정중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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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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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의 재발견 -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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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경상도에서는 사투리로 흔히 ‘궁디’라고 하며, 궁뎅이, 엉뎅이, 방탱이 등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 내가 한참 어렸을 때, 그러니까 5~6세 정도때 엄마 엉덩이를 베개삼아 베고 누워 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 엄마의 엉덩이는 정말 폭신폭신하고 몰랑몰랑해서 그야말로 물침대는 저리 멀리 가라였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물침대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후로 커서 보게되는 젊은 여성의 엉덩이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 하기사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 본인을 알아보시는 분은 없겠지만 -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닌 관계로 남성의 엉덩이에는 당근하게도 관심이 없다.) 자연 관능적인 상상으로 끈적하게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엉덩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통통한 엉덩이 속에서 숨겨진 구멍에 대한 호기심과 그 구멍을 채워야겠다는 자연적이고 본능적 의무감에 실행 가능성이 전무한 온갖 공상으로 허기진 욕구를 달래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도 나오듯이 샤르트르에 의하면 모든 구멍들은 채워지기를 은밀히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겨레의 늘름한 아들로 태어난 남성 독자제위 여러분들께옵서는 이 말을 유명한 서양 철학자의 말이라고 글자 그대로 찰떡같이 믿고 아무 구멍이나 채울려고 달려들다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들이밀기전에는 반드시 깊이 숙고심사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물론 무모한 용기가 큰 성과를 이루어낼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한심한 몸뚱이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떨어져 나려 끝내는 닭똥같은 눈물을 철철흘리게 되는 것이다. )

이 책은 엉덩이의 A~Z까지를 다루고 있다고 할 만하고 부제에 명시된 대로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라고도 할 만하다. 제목에서 당연하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책의 내용은 대부분 성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것이다. 엉덩이에 대하여 이렇게 관심이 많고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참 할일도 억수로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책 쓴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로 무식하고 한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러한 생각도 든다. 인류의 역사을 돌이켜보건대, 경제적으로 삐까번쩍할 때 문화도 아름답게 꽃펴서 창달했던 것이니, 우리도 이제는 먹고 살만 해져 방귀도 제법 뀌고 하니 남의 엉덩이에 관심을 조금 가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시답잖은 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눈 밝으신 장정일 선생께옵서는 우리가 아직 먹고 싸고 살기에 바쁜 90년대 초에 이미 엉덩이가 예쁜 여자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그에 부응하여 돼지코의 모모한 변태 감독이 엉덩이보다는 얼굴이 예뻤던 여우 정선경을 발탁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포르노 영화를 찍기도 했던 것이니 선생의 그 선경지명에 감탄식을 금할 길이 없기는 하나, 목하 작금에 이르러 선생께옵서 모방송의 독서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본인은 깜짝 놀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독야청청하신던 선생께서 와저카시지?....

각설하고, 엉덩이의 재발견이라고 하니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어떤 귀중한 물건이 엉덩이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엉덩이는 냄새나는 똥구멍을 숨기고 있고 성기와 연결되어 있을 뿐 뭐 별나라에서나 나는 무슨 보물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거시기와 머시기를 보물로 여긴다면 그건 별문제이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이 동성애(특히 남성들간의 항문성교)라든지, 엉덩이가 어떻게 욕망을 자극하는지, 터부시 되고 금기시 되는 것들에 대한 은밀하고도 관능적인 이야기들, 가학적이고 피학적이고 엽기적이기도 한 이야기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봤고 또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기도 했던 그런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르주 바타이유나 또 이런 문제에서는 결코 빠지지 않은 프로이트가 중간중간에 등장하고 또 유명한 그림들이 상호협조하여 형이하학적인 주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변환시키기도 하고 그렇다.

프로이트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프로이트가 모나리자의 미소에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을 볼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대목을 읽다가 문득 프로이트라는 사람은 참 기발하고도 기괴해괴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아들들이 아버지를 연적으로 생각하여 아버지를 찔러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고자하는 욕망을 무의식속에 갈무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지 무슨 자기 눈알을 찔러 파먹는 소린지 모르겠다. 서양 코쟁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털 수북실한 짐승 비슷한 넘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서양 코쟁이들은 코가 커서 그런지 성에 있어서도 참 관대하구나(코 큰거 하고 그거하고 무슨 상관인고?)....이 책의 작가가 법국넘이어서 역시나 틀리구나...똘레랑스하구나 하는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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