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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줄거리를 읽었을 때 스티븐 킹의 ‘미스트’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책 도입부에 쓰여 있는 ‘이 책은 엄마를 위해 썼다’는 작가의 말에 조금 더 기대.
"그것들은 무한대와 같아요.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우리의 머리는 천장 같은 한계가 있어요, 멜로리. 이것들은 그 한계 너머에 존재해요.
천장보다 더 높은 곳.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도저히.'
책을 읽으며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유의 소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원래의 의존적인 성격대로 믿을만한
누군가를 따르던지, 반쯤 미쳐 모든 것을 포기한 체 자폭(!)하던지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미친 상황에선 미친 사람이 제일 맘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서워질 뿐이었다. 침묵이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모르기 때문에 더 두렵다 했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혹은 볼 수 없어서),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졌다.
맬로리는 임신을 했었고 출산을 했고, 다른 사람의 아이까지 떠안게 된다.
여자는 약할지 몰라도 엄마는 강하다했다.
하지만 강한 사람도 슬프고, 힘들고, 벅차다.
'톰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할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라고 할 거야.
톰이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믿을 거야.’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맬로리는 아이들의 시력을 빼앗을 것인지 고민한다.
아이들의 생존이 우선일까, 아니면 나아질 미래를 위해 기회를 줘야하는 것일까.
나아가 이런 세상에 살게 한 것부터가 잘못은 아니었을지.
‘나는 좋은 엄마일까?’
나 역시 맬로리처럼 자신이 없었을 것 같다. 수없이 고민했을테고, 그 책임의 무게에 힘겨웠겠지.
아이들을 홀로 4년을 키우며 생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드디어 길을 떠나는 맬로리.
"……실링엄 273번지…… 내 이름은 톰입니다……. 귀하의 자동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길 수 있어서 얼마나 위안과 안도감을 느꼈는지 귀하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뜬 자신과 함께 노를 젓는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 거리를 서성이며 그들이 강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개리로부터, 자신과 아이들이 몸을 숨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오늘 아침의 맬로리
말이다. 그녀는 늑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의 자신과 함께 노를 젓는다.
보트의 남자가 미쳐갔을 때와 새들이 미쳐갔을 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인 크리
처가 그녀에게 유일한 보호 장비인 안대로 장난질을 했을 때의 자신과도 함께 노를 젓는다.'
그녀를 이끌어주었던 건 늘 톰이었다.
톰을 잃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들과 준비 덕분에 두 아이를 얻었고 그들이 안심하고 쉴만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그곳이 종착역일지 확신할 수 없고 ,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그녀는 해냈고, 혼자가 아니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정작 죽음을 목전에 두면 두렵고 너무나 살고 싶다고 한다.
보이는 것만 믿을 수도 있고, 보고도 못 본 척하면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더 쉽겠지만,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수도 있다.
삶은 항상 나에게 선택하라하고, 더욱 용감해지고 인내하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앞에 종말이 닥친 것도 아니건만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건 미친 짓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각자 지켜야할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희망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