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제출 기한을 4.30일까지로 본인 혼자 꿀떡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4.20일까지다. 호구에 너무 전념한 때문인가 이벤트를 주최한 측에 송구스럽고 한편으로는 약속을 어겼으니 블랙리스트에 올라 혹시 다른 서평단 모집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실 미안한 마음보다는 걱정스런 마음이 더 많다. 어쩌다 공짜를 이리도 밝히게 되었을까 세월을 한탄해 본다.
 
과학분야에 대하여는 완전 문외한이자 더 나아가 무뢰한일지도 모르는 본인이 책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일단 무조건적으로 서평단 모집에 신청을 했던 것인데, 신청과정에서 여차한 사정의 곡절이 다소 있었으나 로드무비님의 배려와 호의에 힘입어 책을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군대시절부터 선착순 순위에 든 적이 없었고 선착순 얼차려를 받을 때는 아예 순위에 드는 것을 포기하고 천천히 뛰어 다음에 또 뛰고, 그 다음에 또 뛰고 하며 세월대로 헐떡헐떡 했던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로드무비님 덕분에 용케 순위에 진입하게 되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오랜 옛날,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학점수를 간신히 20여점(55점이 만점인가?)을 획득한 - 도대체 고딩 3년동안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 본인으로서는 비록 책 읽는 것을 좋아는 하지만 과학분야로는 관심이 촉수가 뻗어 자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당연하게도 과학분야의 책은 아마도 중고딩시절의 교과서외에는 별다른 독서경력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파인만씨 농담 좀 작작하시죠(?)”는 제목이 그럴 듯 해서 읽어 본 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 책은 어떤 과학분야를 소개해주는 소개서류가 아니라 인물전기내지는 수필 비슷한 종류라 하겠다.

계속적으로 당연하게도 이 책을 통해 전혀 새롭고 재미난 사실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 편식을 하게되면 마누라한테 야단을 맞고 편독을 하게되면 균형잡히고 튼튼한 사상을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는 콩도 열심히 먹고 책도 골고루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실행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짐하는 것은 쉽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해보자.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전기라는 것에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얽히고 설켜 관계되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전혀 관심가지지 않는 분야라고 하더라도,그곳에서도 극적이고 치열한 싸움이 불꽃을 튀기며 벌어지고 있고,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세상이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제도권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수학에 딸린 페러데이가 끈질긴 실험을 통해 밝혀낸 자신의 연구성과를 고차원 방정식으로 풀어 설명해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통찰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학점수를 20점 받았다고 과학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수학실력도 중요하지만 집념과 끈기 그리고 통찰이 결국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서평 마감시간이 넘었으니 마음이 급해져 페러데이까지 읽고 서평이랄 것도 없고 변죽만 울리는 시답잖은 글을 올리니 심히 부끄럽다. 몇몇분들의 주옥같은 서평을 읽어보니 부끄러운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레이더에 관련된 이야기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뒤로 갈수록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이기(利器)가 악용된 사례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다. 과학이라는 것이 나쁜 쪽으로 이용되면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고 또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다.

원폭연구에 참여했던 학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나중에 평화주의 투사로 전향하게 되는데, 우리같이 약소국에다 원폭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살고있는 나라에서 보기에는 이 무슨 병주고 약주는 얄미운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국열강들은 지구를 수백 수천번도 넘게 날려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핵폭탄을 수천기 수만기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북한이 콩알탄만한 핵폭탄 하나 가지려 하자 무슨 큰 난리가 곧 터지는 것처럼 지랄을 떨고 지랄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고, 인생사가 그런 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나의 서평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이 책은 읽어볼 만 하다. 종이의 질도 매끌매끌 부드러운 것이 느낌도 좋더라.  찌리릭~ 전기가 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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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쓰신 것만 해도 존경스러워요.
전 뻔뻔하게 읽어보지도 않았다죠.
<사색기행>은 꼭 쓰려고요.^^

붉은돼지 2005-04-2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 덕분에 책 잘 받았습니다. 서평단 신청할 때를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솔솔한 편입니다. 한 번 읽어 보시죠...
 
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아픔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8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본인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많은 걸 알게 되고 배우게 된다.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재삼 삼삼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미 읽어보신 독자제위들께옵서는 당근지사로 아시겠지만 문국진 박사는 1925년생으로 올해로 꼭 만80세이다. 그 연세에 아직까지 글을 쓰신다니 존경스럽고,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취미나 개인적 관심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로 전문가 못지 않은 일가를 이루었으며 여러권의 저서를 내고 하다니 실로 본인이 본 받아 따르고자 하는 바 사표 비슷하다. 사표는 그저 사표일 뿐이지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표를 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다. 사표 이야기를 하다보니 뜬금없이 사표가 쓰고 싶어진다. 사표 던지고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며 책이나 읽고 잠오면 자고 그러고 살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어디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던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런 이야기 되겠다.

신체 추형장애라는 것이 있단다.(요즘같이 복잡 다단한 어지러운 세상에 뭔들 없겠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들의 동경이나 원망을 모르는 바 아니니 그런 정신장애가 생긴다고 별 이상할 것은 없다. 누구나 조금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고(본인은 돌출형 구강구조 - 튀어나온 입 - 로 수년간 남몰래 고민해 왔고, 유년에는 놀림도 당하고 했던 것이니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그 고민에서 벗어났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남들에게 좀 더 예쁘게 보일려고 노력한다. 미에 대한 선망은 인지상정을 떠나 인간의 본능이다는 생각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무엇이든지 도를 넘어서는 것이 문제다. 물론 콤플렉스가 자기개발의 동력이 되는 수도 있겠지만, 근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선풍기 아줌마나 마이클 잭슨의 예에서 보듯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수도 있다. 불현 듯 어느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로부터 발생한 에너지가 자기발전의 동력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자기파괴의 마력으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리라. 이름하여 주화입마!!!

대학교 땐가 언젠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성형수술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100분 토론 비슷한 난상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술자리 토론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이 시끄럽기는 엄청 시끄러워 호떡집에 불난듯이 와자지끌 소란하지만 대개는 결론없이 흐지부지 지리멸렬, 잘하면 싸우기 일쑤고 나중에는 술에 취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누가 떵을 싸 발랐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고...... 한마디로 한심하게 그리 되는 그런 것인데....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날의 성형수술에 대한 토론에서는 아마도 ‘신체발부 수지부모형’의 보수주의자들이 득세하였던 것 같고, (물론 기형에 대한 성형에는 모두 찬성이었다) 미용내지는 외모 컴플렉스의 극복방안으로서의 성형수술을 지지하는 일부 성형옹호론자들의 반론도 만만하지는 않았던 것인데 나름대로 일리도 있고 나아가 삼사도 있을 법 했던 것이다. 성형을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적극적이고 보람찬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우리 근본주의자들의 생각은 올바른 가치관과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외모의 변화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행정진을 통한 정신의 고양에서 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본인의 이러한 생각은 과거 단발령에 반발하여 상투를 붙잡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내 목을 쳐라 의연히 외치던 구한말 양반들의 고루한 사상과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왠지 그 먼지먹은 외침에 자꾸만 애정이 간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램브란트의 ‘눈먼 삼손(p200)’을 꼽겠다. 사랑과 배신(이 두 단어는 서로 이웃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어울리는 면도 있다. 사랑과 야망, 사랑과 영혼 등도 자주 쓰이고는 있지만 사랑이란 단어는 배신과 이웃할 때 극적인 효과를 내는 것 같다.)으로 점철된 성서속 영웅의 비극적 말로를 그린 그림은 그 치명적인 배신의 정신적 고통이 눈알이 뽑히는 육체적 고통으로 표현된 듯 하기도 하다. 눈알이 찔리며 고통에 몸을 뒤틀고 얼굴을 오만상 찡그리고 있는 삼손의 얼굴을 보며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해봤다. 연이나 마음의 상처 어쩌고 하면서 센티하게 주절거리고 있지만 여하튼 눈알이 찔리는 고통은 정말 엄청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저자의 말처럼 쇼크사를 일으킬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알이 안 찔릴려면 여자를 사귈 때 조심해야 한다. 데릴라 같은 나쁜 여자를 사귀게 되면 인생이 비극적으로 된다.

흔히 빛과 영혼의 화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램브란트의 그림을 볼 때 마다 느끼지만 그의 그림속에는 빛이 있다. 눈이 부신 그런 환한 빛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하며 은은한 빛. 영화 <퐁네프의 연인>에서 줄리에트 비노쉬(실명의 위기에 처한 인생 막가는 처녀화가로 나온다. 물론 아시겠지만)가 그렇게도 램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멋대로 짐작해 본다. 자신의 실명이 램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회복될 수도 있다는 희망과 소원을 가져본 것이리라. 삼손의 고통스런 얼굴과 대조적으로 데릴라는 한 손에는 커다란 엿장수 가위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삼손의 머리에서 짜른 머리터레기를 휘날리며 비웃는지 조금 바보스런 얼굴로 동굴을 빠져나가고 있다.(자고로 여자 때문에 망한 영웅호걸들이 수다하거니와 큰일을 할려면 김유신처럼 말목아지를 단칼에 베어야만 하겠지만, 독자나 관객은 김유신보다는 사랑의 배신으로 피 흘리며 쓰러지는 영웅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 슬픈이야기에서 독자나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그런 말이다..) 삼손의 팔을 잡고 있는 병사나 창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겁먹은 듯한 표정도 재미있다. 독자제위들의 집중적인 감상을 권하는 바이 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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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7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로 뽑히신 거군요.
축하드립니다.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붉은돼지 2005-04-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 보니 "ㄴ"운운한 것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도 찜찜합니다.

본원향 2015-01-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1. 일단 그림이 커서 마음에 든다. 얼마전 예경에서 나온 <천년의 그림여행>의 경우 일부 독자들로부터 소개된 그림의 도판이 너무 작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작은 그림을 좀 자세히 볼려고 책에 코를 박고 눈알이 빠져라 보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작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림이 너무 커서 양페이지에 걸쳐 있을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양페이지에 걸쳐 인쇄된 그림의 가운데 부분을 자세히 볼려고 책을 무리하게 펼치다 보면 책이 무슨 수박도 아니고, 모세의 홍해바다도 아닌것이 양쪽으로 똑 따갈라지면서 설상가상 밥상위에 엎어지는 격으로 책이 두권으로 세포분열하는 그러한 난감한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 생각에는 큰 그림도 좋지만 될 수 있으면 한 페이지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2. 그림관련 책일 경우 문제가 되는 중요한 것은 그림크기와 아울러 도판의 선명도 내지는 인쇄상태가 될 것이다. 학고재에서 출간된 소위 기념비적 저작이자 전세계적 기획 출판물인 "중국회화사 삼천년"의 경우 판권 소유자인 예일대학 출판부가 한국어판을 기획하면서 한국의 인쇄술이 못미더워 전량 홍콩에서 인쇄하는 조건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본 바 있지만 거금을 들여 이 책을 구입한 본인이 목도한 이 책의 인쇄상태란 것이 생각하는 그림들에 나오는 그림의 인쇄상태나 별 반 차이가 없더라나.

3. 책에서 시종 사용되고 있는 경어체 문장(작가소개까지 경어체로 되어 있더라)은 마치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소 부담스러웠고, 또 그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도덕적이고 원론적인 것 같아 지루한 느낌이었다. 188페이지의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부그로, 밀레, 보갱, 르누아르, 샤르뎅, 마티스 등은 두 번씩 언급되었으며, 윤석남은 생각하는 그림 오늘에도 소개되었던 화가이다. 얇은 책에 한 화가의 그림을 두 번씩 소개하는 것보다는 다른 화가를 한 명 더 소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화가인명사전이 뒤에 붙어 있어 - 처음에는 화가 소개가 없는 줄 알고 투덜거리다가 나중에야 뒤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책을 읽다가 보면 한 페이지 읽고 뒤에 가서 찾아보고 다시 두페이지 읽고 또 뒤쪽을 뒤적여야 하니 오뉴월 개보다 게으른 본인에게는 고역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다소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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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1. 아마도 이 책을 받고 수일 후에 월전 장우성 화백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 같다. 몇몇 출판사에서 우리나라 화가들을 소개한 책들이 출판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월전같은 원로대가들이나(시공사 20인의 한국현대미술가 시리즈 같은), 과거의 화가들(유홍준의 화인열전 같은)에 대한 책이 다수였고, 현대 화가에 대한 소개는 드물었다는 생각이다. 거의 모두가 생소한 면면들이지만 우리나라 현대화가들을 많이 소개받고 보니 반갑다. 미술 소개서 내지 안내서가 대부분 서양미술 - 특히 인상주의 - 중심인 작금의 풍토에서, 물론 적지 않은 부분 이주헌의 명성에 기대고 있겠지만 어쨌든 판매실적에 무심할 수 없는 출판사로서는 나름대로 용기있는 기획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았다 한다. 미술에 관심있는 일반독자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2. 등장 화가를 모두 세어보니 39명이다. 39명의 작가들 면면을 꼼꼼히 보다가 문득 심심해서 출신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홍익대와 서울대 출신(대학원 포함하여)이 31명으로 8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8명중 5명은 유학파(이중섭과 김종영도 유학파로 친다면 말이다), 2명은 이화여대 출신, 단 1명이 지방대(전남대)출신인데 누구인고 하니 운동권출신으로 다소 과격하고 파격적인 그림을 - 거실이나 침실에 걸어 놓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 그리는 홍성담 되겠다. 이른바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고언이 있듯이 권력이나 돈이나 뭐나 집중되고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흔히 안배라는 말도 쓰이고는 있지만 지방에 살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지방출신 화가가 너무 적은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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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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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연초부터 시작해서 근 2개월에 걸쳐 장정일 삼국지를 완독하고 나니 실로 감개가 무량~할 것 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해내었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조금 뿌듯하고 또 뻐근하다. 그러나 저러나 옛날에는 책을 한 권 띠게 되면 책걸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던 것인데, 본인으로 말하자면 한 권이 아니라 열권을 읽었으니 떡을 만들어 동네방네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마누라와 소주라도 한잔 던져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감상문이라도 하나 써야할 것만 같은 그런 의무감이 또 든다. 물론 당근스럽게도 고인들의 책걸이란 아마도 기본적으로는 그 책 한 권을 두눈 감고 니라~니라~ 달달달 암송해낼 수도 있다는 것이겠고 모름지기 더 나아가서는 그 책에 담긴 사상과 정신을 실천궁행하겠따는 굳은 다짐을 더욱 굳히는 의식일 것인데..거기에 비하야, 본인이 삼국지 10권을 읽은 과정을 돌이켜 보자면 실로 통탄스럽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책의 대부분을 읽었고(따라서 자연 자는 듯 조는 듯 읽은 부분이 많음),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책의 많은 부분을 읽었으니 문장이 눈에 잘 들어올질 않고 책장만 넘어가기 일쑤고, 똥을 누면서 또 일부를 읽기도 하고, 책 읽은 페이지를 표시해놓지 않아서 몇장 건너뛰어 읽기도 하고 했던 것이니 고인들의 독서에 견주어 볼 때 참으로 송구스럽고 부끄럽다. 암기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고 또 지당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연이나 암송하고 있는 시가 한 두편 정도 있다면 그것도 멋있는 일일테고 구십구단은 아니더라도 구구단은 외워야 수학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소시적부터 흠모해 마지 않았던 장정일 선생께옵서 삼국지를 새롭게 쓰셨다고 하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년전에 - 아마도 장정일 사부께옵서 불란서로 망명하시기 전이지 싶으다 - 본인의 친구 한 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정일이 너무 성문제에 집착 하다가 이제 바닥을 쳤으니 그에게서 더 이상 나올 게 뭐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넘의 전망에 본인도 어느정도 공감을 했던 것이고, 어쨌든 그 후 장선생께옵서는 불란서로 훌쩍 떠나셨고, 절치부심 장고 끝에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신 것 같다. <중국에서 온 편지>가 장정일의 포르노소설들과 금번 삼국지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실망스러울 것도 없이 그동안에 숱한 삼국지가 나왔으니 장정일이 ›㎢鳴灼漫 살 찌르는 송곳같은 그런 뾰족한 수가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문에서 장정일이 매우 호기롭게도 자신이 무슨 대단히 새로운 삼국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다른 것은 별로 없다. 기존의 촉한정통론에 대한 반론과 이론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들이고, 중화사상에 대한 비판, 동탁이나 여포, 맹획 등 권력투쟁에서 실패한 인사들이나 소위 변방의 오랑캐들에 대한 동정의 눈길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은 것이다. 삼국지 중간 중간에 나오던 한 사건에 대한 평을 곁들인 시문들이 많이 없어져서 오히려 재미와 삼국지 자체가 갖는 어떤 품격이 감해 졌다는 생각이고, 그 시문이 고루한 유교사상과 후안무치의 중화주의를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그 행간을 읽어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라야 할 것이다. 작가가 나서서 이거는 이렇다 저거는 저렇다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닐까? 중간중간 등장하는 삽화도 본인의 기호와는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림에 붙은 설명에는 나름대로 새로운 것들이 있기도 했더라. 장사부께옵서는 뭘하자고 어쩌자고 시류에 편승해 삼국지에 손을 대었단 말인가.  포르노 소설이나 쓸것이지..오호 통재 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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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2-2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셨네요. 한참 웃다 갑니다.^^

붉은돼지 2005-02-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rky님.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깊이 민망스럽습니다. 멀리 계시는군요. 항상 건승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