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포구

 

날씨가 많이 춥지 않은 날엔 새벽기도를 마치고 바닷가로 갑니다.

저 혼자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저로서는 늘 '사진찍기'에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새벽시간에 집 근처 바닷가를 찍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요.

이 작업도 인생의 한 부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날은 한 장도 찍지 못하고 말하자면 '공치고' 옵니다.

또다른 날은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좌절하고 상처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이더라도 신은 또다른 것을 준비하고 계실 터이니까요.

제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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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0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멋져요, 중전님. 대박!!!!!

마음 편히 먹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긴 하죠. ㅋ 저도 잘 그래요.

gimssim 2012-02-07 18:56   좋아요 0 | URL
네 많이 먹고, 마음 편하게!
운동은 필수!

잘 지내십시다, 우리!

마녀고양이 2012-02-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져드는 이 사진은....
그 안에 있는거 같아요. 가슴이 쿵 하잖아요. 저는 하늘빛이 저럴때, 슬퍼져버리거든요.
왜 슬픈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아름다와서? 그런가봐요.

오늘 너무 추워요... 덜덜.

gimssim 2012-02-07 18:57   좋아요 0 | URL
내일은 더 춥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날씨가 좀 풀리면 자주 새벽 바다에 나가볼 참입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구요.
 

내 지갑의 주인은 누구인가

 

   남편의 겨울 잠바를 하나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 지난 설날 남편에게 필요한 것을 사라고 아는 분이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왔다. 좋은 남방 하나 사면 꼭 알맞을 금액이었다.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좀 괜찮은 겨울 잠바였다. 나는 머리를 굴리느라 좀 어지러웠다. 남방을 포기하고 잠바를 사려면 아마 상품권만큼의 금액을 보태어야 할 것 같았다. 오륙십 년 만의 추위라니 가능하면 안에 털이 탈린 그런 잠바를 사고 싶었다.

  남성복 매장은 오층에 있다. 백화점에 가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층으로 직행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잠시 방심한 사이 내 다리는 김유신의 말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벽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로 가는 대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가방 매장으로 갔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이 구두에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나는 자주 가방에 정신을 뺏긴다.

 

   짙은 코발트빛이 나를 매료시켰다. 게다가 딱 내 스타일로 큼지막했다. 좀 큰 카메라도, 책도, 수첩도, 물 한 병도 한꺼번에 다 들어가는 사이즈가 아닌가.

   3월엔 아들 생일도 있고, 밤에 듣는 강의료와 자동차 보험료도 내어야 하고, 시누이댁 혼사도 있다. 돈 쓸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건만 나는 지중해에 못가는 대신 지중해 물빛(지중해에 안 가봐서 지중해가 코발트색인지 모른다) 가방이라도 갖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가방을 어깨에 메어보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내가 그 가방을 가져야 할 이유를 서른 가지쯤 떠올렸다. 가방을 산지 일 년은 지났을 걸, 좀 있으면 결혼기념일이니 선물을 좀 일찍 산 셈 치지, 지난 연말 너무 힘들었으니까 내게 이정도의 보상은 무리한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스페인에도 못 가게 되었잖아, 몸이 좀 아프니 기분전환을 하면 나아질 거야, 돈에 눈이 있다잖아 그러다가 다른 데 돈 쓸 일이 생길지 몰라, 다음 달에 먹으려던 한약을 그만두고 열심히 운동하지 뭐 등등.   

 

   정신을 차려 보니 카드 결재는 이미 끝나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경고를 날린 책이 있다.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는 순진한(?) 소비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한 권은 소비자들의 심리 문제를 다룬 <쇼핑학>이 있다. 삶에서 우리의 구매 결정을 충동질하는 무의식적 상념과 감정, 그리고 욕망을 학문적으로 접근했다. 둘 다 마틴 린드스트롬이 썼다.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이 책을 미리 읽었다면 나는 좀더 현명한 구매자가 되었을까. 답은 미지수다.

  기업과 나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이다.                                                         

  

 

 

 

 

 

 

 

 

 

 

 

   

 

 

   새해 들어서 광고에 대한 몇 권의 책을 보았다. 지난 가을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과목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무의식적으로 광고 시장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고객감동' '소비자 이해'라는 말로 포장해서 기업은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화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의 소비 패턴을 연구하고, 광고라는 이름으로 쇼핑 정보를 제안하고, 소비욕구를 부추긴다.

   아마 그에 대한 경계가 나로 하여금 그런 책들을 읽게 했다. 광고쟁이나 광고고수들이 어떤 전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뒤흔들고 지갑을 넘보는가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마르쿠제는 계몽사상의 이성이 도구화 되었다는 측면에서 기술적 이성의 개념으로 산업사회의 기술지배를 설명하고자 했다. 기술적 이성은 고도생산을 성취하기 위해 생산력을 조직하고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전면 관리하게 되는데, 마르쿠제는 이것을 합리화라 부르며, 결과적으로 합리화는 효율성을 위해 인간을 물화시킴으로써 이성의 비이성화, 이성의 도구화 현상을 제시하려고 했다.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이해> p.27

 

현대의 소비는 생산의 과잉성을 필요한 생산으로 바꾸고 더 큰 과잉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의사생산이며 필요소비가 아닌 과잉소비만이 진정한 소비가 된다. 이러한 의사소비를 위한 전략이 욕구와 욕망을 조직해 나가는 소비사회의 자본전략으로 등장하게 된다.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이해> p.42

 

   아무튼 나는 거금을 들여서 가방을 샀다. 옷방 벽에 걸려있는 십여 개의 가방 옆에 또 하나의 가방이 걸리는 것이다. 명백한 과잉소비이다.

   백화점에는 시계가 없다. 고객들이 최대한 시간을 오래 보내게 하기 위한 기업의 자상한 배려이다. 음악도 다소 느리고 고상한 클래식을 틀어준다. 누구나 이곳에서는 고상하고 수준 높은 고객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객이라면 마땅히 적당히 비싼 가방도 들어줘야 격을 갖추는 것이다.

 

1990년대의 소비자는 물건 자체가 갖는 물리적 효용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건의 모습을 바깥으로 들어내보여주는 디자인(외형, 외관, 모습), 물건에 붙은 라벨과 브랜드네임, 물건을 쓸 때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건이 보내는 신호와 자신과 물건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 개인이 욕망을 함께 소비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 개인의 욕망이 함께 연소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소비사회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상품자체가 아니라 의미, 기호, 상징, 이미지,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이해> p. 47

 

   결국 나는 백화점에서 상품권의 금액만큼 더 보탠 금액으로 남편의 겨울 잠바를 사고, 지중해 빛깔(끝까지 지중해 빛깔이라고 고집할거다.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명분이 되니까)의 가방을 사서 집으로 왔다.

   청구서가 날아올 다음 달부터 석 달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요즘의 독감처럼 멀리하며 지내야 한다.

 

내가 사고 친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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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0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린 계열의 가방을 갖고 싶어 안달이라죠,,^^;;
지난 번 백화점에 갔다가 가방 코너를 둘러보다가
맘에 맞는 컬러와 사이즈가 없어 그냥 돌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라는,,ㅎㅎㅎ

그런데 사진이 어두워서 지중해빛깔의 가방에 밤이 내린 듯 해요,,^^;;
그래도 가방은 아주 야무져 보여요~.^^

gimssim 2012-02-06 10:41   좋아요 0 | URL
컴퓨터를 새로 사서 아직 사진 수정하는 법을 몰라 그냥 올렸더니 밤의 지중해가 되었지요?
다시 찍어서 올렸답니다.
이제 한낮의, 사물이 빛에 숨을 죽이는 지중해가 되었군요.
아무튼 좀 오래 사랑해야 할텐데...클클클

숲노래 2012-02-0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마음을 넉넉히 채워 주는 물건을 마련하셨다면
카드값이야...
얼마든지 즐기시면 되지요~

gimssim 2012-02-07 18: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요.
큰 위로가 됩니다.

근데 지출을 줄일 일은 생각해 봐야해요.
남편에게 어디 검은 돈(?)이 없냐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호호호.

하양물감 2012-02-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전에 받은 상품권 한장을 그 금액만큼 더 보태도 원하는 걸 살수 없기에 묵혀두었지요. 6개월전에 똑같은 금액의 상품권이 하나 더 들어왔어요. 조금 더 보태면 내가 사고 싶은 가방 하나 살수 있겠다싶어서 넣어두었는데.... 그게 어느새 남편 구두로 바뀌어 집으로 들어왔어요. 제 가방이요? 결혼 한 지 8년째인데 한개도 못샀어요. 이럴땐 억울하기까지 하네요.

잘 사셨어요!!!!!!

gimssim 2012-02-07 18:47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저도 그런 시절을 지나왔어요.
늘 저는 서열 4위였어요. 다시 산대도 또 그렇게 살겠지요.
잘못 살아온 건 아니지만 잘 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올해로 결혼 삼십주 년이 됩니다.
이 나이가 되면 눈에 뵈는 것 없이 '용감'해집니다.
나를 다독이는 것-나'만'이 아니라-이 가족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기회-명분-를 만들어서 하양물감님 가방도 사세요.

어제 보름 달맞이를 갔었는데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는데 새벽기도 가다보니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습디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12-02-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페이퍼 쓰셨군요. 가방, 예쁘네요.ㅋ
저도 금강 티켓 2십만원의 상품권 갖고 있는데, 게을러서 아직 못 가 봤다는 것이죠.
막상 가면 돈 더 보태서 살지도 모르고 간 김에 하나 더 장만할지도 몰라요.ㅋㅋ
사고 싶은 건, 못 참죠. 잘 하셨어요. 그래서 요런 좋은 글도 쓰시고... 일석이조네요. ㅋ

gimssim 2012-02-07 18:49   좋아요 0 | URL
pek0501님 반가와요.
새로 산 가방을 열심히 잘 들고 다닙니다.
좀 오래 써야할텐데 말이지요.
글도 열심히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올 한해도 가벼운 발걸음 되시기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2-02-0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언니,
저도 가방 너무 좋아해요. 저는 예전에 명동의 유명 수제 가방(저렴하답니다)하다가
그 가게 넘기고 인터넷 사이트로 옮긴 가방 사이트에만 들어가면 정신을 못 차려요.
아주 독특하고, 이쁘거든요....

그런데, 가방, 코발트 지중해빛 맞는걸요. 아주 우아하고 심플하고, 좋아요!

gimssim 2012-02-07 18:51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가방 좋아하는 동지가 있어서 반가와요.
저도 이 가방 무척 마음에 듭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착한(?) 생각도 해 봅니다.호호!

진주 2012-02-0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읽고나니 왠지 속이 후련해지네요~~
저도 저런 가방 하나 있었음 좋겠어요. 튼실하고 단순한게 딱 내 취향!
색깔은 진짜로 지중해 바닷색 맞구요 ㅎㅎ
갑자기 박상민의 지중해가 생각나네요~

떠나자 지중해로~ 잠든 너의 꿈을 모두 깨워봐~~나와함께 가는거야 늦지는 않았어~~
가보자 지중해로~늦었으면 어때 내 손을 잡아봐~후회없이 우리 다시 사는거야~~~ㅋㅋ

gimssim 2012-02-07 18:52   좋아요 0 | URL
언젠가 지중해 연안으로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이 가방을 꼭 들고 가려고 합니다.
사실 멀리 갈것도 없이 태양이 눈부신 날, 감포나 구룡포에만 가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가서 사진 한 번 찍어 올려볼께요.

2012-02-08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0 0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8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이랑 1박2일로 거제, 통영에 다녀왔다. 친구들이라 하지만 좀 색다른 구성원들이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기 부인들이다. 이십여 년전 부터 부부 동반으로 착실히 모였었는데 사오 년 전 남편들쪽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부인들끼리 따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가는 세월을 생각해보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좀 진한 곳으로 진도를 나가고자 해도 옆에 붙어있는 부인들 땜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열 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우리집 '바른생활'은 열외이다.

 

부인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찼다. 그래도 옆에 붙어있는 것이 행복인줄 모르고...... 우리들은 쿨하게 갈라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씩씩하게 두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보고 있다. 작년 겨울엔 3박 4일로 제주도 여행을 했었다.

큰소리 치던 남자들의 모임은 정작 부인들이 빠지자 시들해지는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재작년부턴 다시 합치자고 성화를 댔다. 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 됐거든!"

 

열한 명의 회원 중에 한 명만 빠지고 열 명이 출발했다. 처음에는 외씨버선길을 걷자고 했지만 겨울이라 아무래도 따뜻한 남쪽나라가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이 모임이 참 마음에 든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친구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아니고, 아이들의 학부형도 아닌 특이한 모임이다. 남편들이 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고 모두들 배운만큼 배운터라 대화도 잘 통했다. 남편의 친구 부인들이니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하고 있다. 의견이 통일 되지 않는 적도 잘 없다. 나는 이 모임에서 '소통'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고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소통'의 문제를 많이 고민해 왔다. 너무 '일방통행'적인 삶을 살아와서 작년엔 기어이 상처가 터지고 말았다.

 

우리 모임에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12인승 승합차를 렌트해 갔었다. 물론 그 절차를 완벽하게 해내는 부인이 있다. 두 명은 번갈아 운전을 한다. 삽십 분쯤 일찍 일어나 전복죽이나 누룽지를 끓여서 모두에게 아침을 굶지 않게 하는 부인도 있고, 전국의 맛집을 훤히 꿰고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주는 부인도 있다. 거제도에 가서는 멍게 비빔밥을, 통영에 가서는 장어를 먹었다. 모임이 이곳 하나 밖에 없어서 완벽하게 일을 하는 총무도 있다.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부인도 있으니 가벼운 투통이나 체한데도 별 문제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

 

그런데 모든 일에 '완벽'은 없는 법이다. 남편과 나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1박 2일 여행을 하곤한다. 미리 안내지도와 책자를 구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떠난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둘러봐야 할 코스와 잠자리, 비용,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등등 빈틈없이 계획해서 집을 나선다. 수년 동안 그렇게 여행을 해온 터라 나도 모르게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우리 모임은 그저 목적지만 정하고 잠자리만 예약을 해놓고 떠났다. 그러니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떤 코스로 갈 것인가 미리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한나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많이 답답했다. 머릿속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려져야 하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냥 길을 따라 가다가 여기에서 설까? 이것 보고 갈까? 하면 그 자리에서 모두 내려서 그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나절을 말없이 일행과 다니다 보니 문득 깨달음이 왔다. 지금까지의 삶이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걸어가는 방법이었다면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때로 괜찮을 것 같았다. 여행을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나는 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여행을 해오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내 방식만 고집하고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나와 다르면 늘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그러니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머릿속에서 그렇게 정리가 되니 그 다음부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깨달음은 이렇듯 어느 순간에나, 무슨일을 통해서나 다가 온다. 내가 해야할 일은 다만 마음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자유로운 갈매기

 

바람의 언덕

 

아줌마 본능... 남편들의 밥상에는 아마 홍합밥이 오를 것 같습니다

 

 동피랑 마을에서 본 통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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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0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고 사진도 좋습니다.
홍합을 파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저 할머니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혼자 또 상상의 날개를 펴보기도 하고요.
다 읽고 태그에서 통영꿀빵을 발견한 이 빵순이! 이상하다, 내용중에 통영꿀빵이 있었나? 위에서부터 다시 읽어보았답니다 ^^

gimssim 2012-02-04 21:32   좋아요 0 | URL
몇 년 전부터 한시간 남짓 대구에 다녀와도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라도 사서 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 퇴근길에 우리 사남매 먹을 것을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를 닮아가나 봅니다.
열개들이 통영꿀빵을 사왔는데 남편이 여덟 개, 제가 두 개를 먹었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개를 제가 마저 먹고 나자 사진을 찍어둘 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정말 나이가 한 살 더 먹긴 했나봐요.
굴도 조금 사왔드랬는데...

순오기 2012-02-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가 가고 싶어 몸살 앓는 통영!!
어제도 우리 애들한테 일욜에 통영 갈까~ 했다가 딱지 맞고,
그럼 전주 갈까~ 했더니, 왜 자꾸 어딜 가자고 하냐고 한소리 들었어요.
모처럼 막내도 기숙사에서 나와 며칠 쉬는데 머리들이 컸다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요.ㅜㅜ
난 씩씩한 아줌마, 언제든 혼자 고속버스 타고 떠날 수 있는데도 왜 그게 안 되는지...
남편 친구 부인들과 정기적으로 여행한다니 부러서워 주절주절~ ^^

gimssim 2012-02-04 21:36   좋아요 0 | URL
남쪽 나라는 겨울에 여행할만 해요.
우리 아이들도 집에만 오면 좀처럼 움직일려구 하지 않아요.
우린 모처럼 왔으니 바람쐬고, 외식하자고 채근하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여행단짝 친구를 만드는 것이에요.
사월쯤 청산도 가자고 친구를 꼬셔볼 참이에요.
남편은 뒀다가 휴가때 가자고 하지만, 청산도는 아무래도 사월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러면 그동안 열심히 살아야 되는데(숙제!)...

라로 2012-02-05 23:34   좋아요 0 | URL
아~ 내가 가고 싶어 몸살 앓는 통영!!2
언니 그럼 저하고 통영갈까요!!!^^;

저는 남편이 친구가 없어서 이런 여행은 꿈도 못 꿔요,,,ㅎㅎㅎ
그러니 알라딘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 여행을 꿈꿔봅니다.
맨 위의 사진,,낮게 날으는 갈매기 사진 진짜 멋진걸요!!>.<

프레이야 2012-02-0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님, 홍합밥 맛나게 해 드셨어요?
통영 겨울나들이 참 좋아보입니다.^^

gimssim 2012-02-07 07:03   좋아요 0 | URL
전 사진 찍느라 홍합 못사고 시장에 가서 굴을 샀었지요.
굴밥에 굴전, 굴무침 해 먹었지요.

나들이는 다 좋아요. 역마살인감?

세번째 사진, 홍합 사는 아줌마는 우리 중 제일 젊은데 남편이 재작년 폐암으로 다른 나라에 갔어요. 열심히 총무일을 하는 친구이지요. 군대간 아들, 고삼 딸이 있어요.

진주 2012-02-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역활 중에
제 눈엔 사진 찍는 분이 제일 멋있어 보입니다^^
나중에 남는 건 역시 사진이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사진의 피사체 되는 게 너무 쑥스러워
지금까지 사진이 별로 없어요. 중전님과 친하게 지내면
이쁜 사진 많이 찍어주시나요? ㅎㅎ

gimssim 2012-02-04 21:52   좋아요 0 | URL
의외로 사진찍히는 데 거부감 있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제 친구 말이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니까 빨리 찍어.'
맞는 말이죠?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저는 뻘쭘 서는 '단체 사진'보다 순간포착 '스냅 사진'을 좋아해요.

라로 2012-02-05 23:39   좋아요 0 | URL
여기서 진주님과 또 같은 생각!!^^;;
사진 찍는 분을 둔 그분들 복이 많으신 것 같아요,,ㅎㅎㅎ

숲노래 2012-0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씨들하고 아줌마들이 함께 마실하면
아줌마들은 온갖 시중을 드느라 바쁠 테니
힘들지요.

아저씨들은 저희끼리 다니면
비로소 시중하는 심부름꾼 없어
얼마나 몸이 고단한가를 깨닫고는
심부름꾼을 부르고 싶겠지요.. -_-;;;

아저씨들은 홀로서기를 빨리빨리
배워서 즐거이 마실을 누릴 수 있어야 해요~

gimssim 2012-02-06 00:32   좋아요 0 | URL
실제로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여행 가서 많이들 싸우신다고 하네요.
집에서 하던 그대로 남편이 사탕까서 혼자 먹고 빈껍데기를 처리하라고 부인에게 준다네요.
그래서 가이드들이 효도관광팀은 별로 반기지 않는다고 해요.
 
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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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15쪽

어쩌란 말이냐
복사꽃잎
빈집에 하루 내내 날아든다-49쪽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50쪽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52쪽

저쪽 언덕에서
소가 비 맞고 서 있다

이쪽 처마 밑에서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둘은 한참 뒤 서로 눈길을 피하였다-55쪽

고군산 선유도 낮은 수평선
해가 풍덩 진다

함부로 슬퍼하지 말아야겠다-73쪽

겨울바다에는
헤어진 사람이
가거라
지금 뜨겨운 사랑보다
지난날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가거라 -73쪽

저 어마어마한 회장님 댁
거지에게는 절망이고
도둑에게는 희망이다-74쪽

비 맞는 풀 춤추고
비 맞는 돌 잠잔다-86쪽

낙숫물 소리
나도
거미도 한나절 말이 없다-91쪽

겸허함이여
항구에 돌아오는 배
오만함이여
항구를 떠나는 배-101쪽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101쪽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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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은 시인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연둣빛 싱그러운 봄산은 참 좋아합니다^^

gimssim 2012-02-02 21:22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접해 본 작가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 글들은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이 많군요.
저도 흘러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단어들을 생각해 봅니다.
 
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열정과 치열함으로 예술의 바다를 건너온 작가의 개인사이다.

드문드문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살아온 이력만큼이나 글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몸과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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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0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참 좋아해요,,,가끔 중전님 말씀처럼 무기력에 빠졌을 때
한꼭지씩 들춰봐요,,,특히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 좋아요,,

gimssim 2012-02-04 07:15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 이이는 인생도 쉬지 않고 살아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숨가쁨이 좀 쳐져 있는 제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