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이랑 1박2일로 거제, 통영에 다녀왔다. 친구들이라 하지만 좀 색다른 구성원들이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기 부인들이다. 이십여 년전 부터 부부 동반으로 착실히 모였었는데 사오 년 전 남편들쪽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부인들끼리 따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가는 세월을 생각해보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좀 진한 곳으로 진도를 나가고자 해도 옆에 붙어있는 부인들 땜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열 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우리집 '바른생활'은 열외이다.

 

부인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찼다. 그래도 옆에 붙어있는 것이 행복인줄 모르고...... 우리들은 쿨하게 갈라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씩씩하게 두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보고 있다. 작년 겨울엔 3박 4일로 제주도 여행을 했었다.

큰소리 치던 남자들의 모임은 정작 부인들이 빠지자 시들해지는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재작년부턴 다시 합치자고 성화를 댔다. 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 됐거든!"

 

열한 명의 회원 중에 한 명만 빠지고 열 명이 출발했다. 처음에는 외씨버선길을 걷자고 했지만 겨울이라 아무래도 따뜻한 남쪽나라가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이 모임이 참 마음에 든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친구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아니고, 아이들의 학부형도 아닌 특이한 모임이다. 남편들이 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고 모두들 배운만큼 배운터라 대화도 잘 통했다. 남편의 친구 부인들이니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하고 있다. 의견이 통일 되지 않는 적도 잘 없다. 나는 이 모임에서 '소통'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고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소통'의 문제를 많이 고민해 왔다. 너무 '일방통행'적인 삶을 살아와서 작년엔 기어이 상처가 터지고 말았다.

 

우리 모임에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12인승 승합차를 렌트해 갔었다. 물론 그 절차를 완벽하게 해내는 부인이 있다. 두 명은 번갈아 운전을 한다. 삽십 분쯤 일찍 일어나 전복죽이나 누룽지를 끓여서 모두에게 아침을 굶지 않게 하는 부인도 있고, 전국의 맛집을 훤히 꿰고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주는 부인도 있다. 거제도에 가서는 멍게 비빔밥을, 통영에 가서는 장어를 먹었다. 모임이 이곳 하나 밖에 없어서 완벽하게 일을 하는 총무도 있다.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부인도 있으니 가벼운 투통이나 체한데도 별 문제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

 

그런데 모든 일에 '완벽'은 없는 법이다. 남편과 나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1박 2일 여행을 하곤한다. 미리 안내지도와 책자를 구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떠난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둘러봐야 할 코스와 잠자리, 비용,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등등 빈틈없이 계획해서 집을 나선다. 수년 동안 그렇게 여행을 해온 터라 나도 모르게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우리 모임은 그저 목적지만 정하고 잠자리만 예약을 해놓고 떠났다. 그러니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떤 코스로 갈 것인가 미리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한나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많이 답답했다. 머릿속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려져야 하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냥 길을 따라 가다가 여기에서 설까? 이것 보고 갈까? 하면 그 자리에서 모두 내려서 그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나절을 말없이 일행과 다니다 보니 문득 깨달음이 왔다. 지금까지의 삶이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걸어가는 방법이었다면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때로 괜찮을 것 같았다. 여행을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나는 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여행을 해오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내 방식만 고집하고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나와 다르면 늘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그러니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머릿속에서 그렇게 정리가 되니 그 다음부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깨달음은 이렇듯 어느 순간에나, 무슨일을 통해서나 다가 온다. 내가 해야할 일은 다만 마음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자유로운 갈매기

 

바람의 언덕

 

아줌마 본능... 남편들의 밥상에는 아마 홍합밥이 오를 것 같습니다

 

 동피랑 마을에서 본 통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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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0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고 사진도 좋습니다.
홍합을 파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저 할머니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혼자 또 상상의 날개를 펴보기도 하고요.
다 읽고 태그에서 통영꿀빵을 발견한 이 빵순이! 이상하다, 내용중에 통영꿀빵이 있었나? 위에서부터 다시 읽어보았답니다 ^^

gimssim 2012-02-04 21:32   좋아요 0 | URL
몇 년 전부터 한시간 남짓 대구에 다녀와도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라도 사서 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 퇴근길에 우리 사남매 먹을 것을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를 닮아가나 봅니다.
열개들이 통영꿀빵을 사왔는데 남편이 여덟 개, 제가 두 개를 먹었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개를 제가 마저 먹고 나자 사진을 찍어둘 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정말 나이가 한 살 더 먹긴 했나봐요.
굴도 조금 사왔드랬는데...

순오기 2012-02-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가 가고 싶어 몸살 앓는 통영!!
어제도 우리 애들한테 일욜에 통영 갈까~ 했다가 딱지 맞고,
그럼 전주 갈까~ 했더니, 왜 자꾸 어딜 가자고 하냐고 한소리 들었어요.
모처럼 막내도 기숙사에서 나와 며칠 쉬는데 머리들이 컸다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요.ㅜㅜ
난 씩씩한 아줌마, 언제든 혼자 고속버스 타고 떠날 수 있는데도 왜 그게 안 되는지...
남편 친구 부인들과 정기적으로 여행한다니 부러서워 주절주절~ ^^

gimssim 2012-02-04 21:36   좋아요 0 | URL
남쪽 나라는 겨울에 여행할만 해요.
우리 아이들도 집에만 오면 좀처럼 움직일려구 하지 않아요.
우린 모처럼 왔으니 바람쐬고, 외식하자고 채근하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여행단짝 친구를 만드는 것이에요.
사월쯤 청산도 가자고 친구를 꼬셔볼 참이에요.
남편은 뒀다가 휴가때 가자고 하지만, 청산도는 아무래도 사월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러면 그동안 열심히 살아야 되는데(숙제!)...

라로 2012-02-05 23:34   좋아요 0 | URL
아~ 내가 가고 싶어 몸살 앓는 통영!!2
언니 그럼 저하고 통영갈까요!!!^^;

저는 남편이 친구가 없어서 이런 여행은 꿈도 못 꿔요,,,ㅎㅎㅎ
그러니 알라딘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 여행을 꿈꿔봅니다.
맨 위의 사진,,낮게 날으는 갈매기 사진 진짜 멋진걸요!!>.<

프레이야 2012-02-0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님, 홍합밥 맛나게 해 드셨어요?
통영 겨울나들이 참 좋아보입니다.^^

gimssim 2012-02-07 07:03   좋아요 0 | URL
전 사진 찍느라 홍합 못사고 시장에 가서 굴을 샀었지요.
굴밥에 굴전, 굴무침 해 먹었지요.

나들이는 다 좋아요. 역마살인감?

세번째 사진, 홍합 사는 아줌마는 우리 중 제일 젊은데 남편이 재작년 폐암으로 다른 나라에 갔어요. 열심히 총무일을 하는 친구이지요. 군대간 아들, 고삼 딸이 있어요.

진주 2012-02-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역활 중에
제 눈엔 사진 찍는 분이 제일 멋있어 보입니다^^
나중에 남는 건 역시 사진이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사진의 피사체 되는 게 너무 쑥스러워
지금까지 사진이 별로 없어요. 중전님과 친하게 지내면
이쁜 사진 많이 찍어주시나요? ㅎㅎ

gimssim 2012-02-04 21:52   좋아요 0 | URL
의외로 사진찍히는 데 거부감 있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제 친구 말이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니까 빨리 찍어.'
맞는 말이죠?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저는 뻘쭘 서는 '단체 사진'보다 순간포착 '스냅 사진'을 좋아해요.

라로 2012-02-05 23:39   좋아요 0 | URL
여기서 진주님과 또 같은 생각!!^^;;
사진 찍는 분을 둔 그분들 복이 많으신 것 같아요,,ㅎㅎㅎ

숲노래 2012-0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씨들하고 아줌마들이 함께 마실하면
아줌마들은 온갖 시중을 드느라 바쁠 테니
힘들지요.

아저씨들은 저희끼리 다니면
비로소 시중하는 심부름꾼 없어
얼마나 몸이 고단한가를 깨닫고는
심부름꾼을 부르고 싶겠지요.. -_-;;;

아저씨들은 홀로서기를 빨리빨리
배워서 즐거이 마실을 누릴 수 있어야 해요~

gimssim 2012-02-06 00:32   좋아요 0 | URL
실제로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여행 가서 많이들 싸우신다고 하네요.
집에서 하던 그대로 남편이 사탕까서 혼자 먹고 빈껍데기를 처리하라고 부인에게 준다네요.
그래서 가이드들이 효도관광팀은 별로 반기지 않는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