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격적인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이다.
그러나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의 평가 기준이 좀 의문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많지 않은 졸작중의 하나라고 해야겠다.

어느 여고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희생자는 수학교수이면서 학생 생활 지도부 교원 무라하시. 흉기는 독약.
그가 살해 당한 곳은 남성 탈위실이었던데 출입문은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도록 나무막대기가 버티어 놓아 있었다. 즉 완전한 밀실 살인 사건이었다.
상황으로 보아 학교내의 사람들 즉 교원 혹은 여고 학생들이 범인이라고 추측되었다.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그 밀실 상태였던 탈위실 문제와 무라하시를 원망하던 여고생의 알리바이등이 문제 되었지만 결정적인 사건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제2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밀실의 트릭과 제2의 살인 사건의 계략은 좀 볼만하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등장인물의 인격 묘사, 인물 사이의 관계성, 배경이 매우 애매하다.
제1의 살인사건 때에 용의자로 의심되던 여고생 다카하라 요으코와 교원 마에시마의 관계는 마지막까지 애매한채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남겼다.
특히 다카하라의 인격, 그녀를 들러싼 인간 관계, 그녀의 과거의 에피소드는 소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설명 부족이어서 캐릭터가 행간에 매몰하였다.
또한 양궁부 주장인 수기타 게이코도 마찬가지.

소설 결말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마에시마가 범인한테 말한다.
"고발할 마음은 없다. 다만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이 대사에는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범인과의 관계성이 그렇다 하더라도 "고발할 마음은 없다."하는 건 너무 부자연스럽다.
자수하도록 설득한다든지 같이 울어준다든지, 따로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사건의 진범은 마지막까지 인격도 배경도 희미한 채, 동기를 안 후에도 살인을 저지를만한 절박한 고뇌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범인한테 말한 "고발할 마음은 없다."라는 부도덕적인 말을 "책임 지기 위해 마련한" 소설 마지막 장면은 소설의 주제를 무시한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은 그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삼아 읽어야 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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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나를 어떤 역할의 호칭으로 부르는 제3자를 통해서다.
또 내가 "나"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하면 그건 나의 슬픔과 기쁨,즐거움과 고통의 감정을 보전하여 새로 발생한 나의 감정이 그 추억에 공명할 때, 나는 "나"의 정체를 알게 된다.
예컨대 내가 남을 사랑한다고 의식할 때 그것은 "사랑하기에 이르는 과정"에 근거하는 나의 감정의 구현화된 상태를 뜻한다.


모든 "나"의 형용은 결국 나의 뇌에 의한 오랜 "생산"과 "축적"의 성과에 의해서 마련된 것이어서 그것은 절대적으로는 나만이 그 전모와 진상을 안다.
"나"는 가끔 철학적인 명제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내가 "나"의 기억과 감정을 의식하여 확인할 때 "나"는 거기에(여기에) 실존하였다고 확인한다.
결국 "나"를 유일하게 확인하는 주체는 나의 뇌란 말이다.
그 나의 뇌가 "나"의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나의 감정이 "나"의 추억을 배신하게 되었을 때, 과연 "나"는 무엇으로 변해 가는가?


나루세 준이치는 부동산에 침입해 온 강도로부터 머리에 총을 맞아 우뇌를 손상하여 세계최초로 성인뇌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은 성공하여 준이치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때로부터 준이치의 감정은 점차 변해간다.
원래 나약하고 소심한 성격이 공격적이고 오만한 성격으로 변하고, 화가를 꿈꾸었다는 것과 또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애인과의 소박한 행복감마저도 점차 사라진다.
남의 사소한 일에 강한 분노를 느껴 게다가 살의까지 느끼게 된 자기의 감정 변화에 준이치는 당황한다.
"이식한 뇌가 나의 감정을 지배하려고 한다."
자기자신의 감정의 붕괴를 막아 내기 위해 준이치는 이식한 뇌의 도너가 도대체 누구였던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이식한 뇌에 의한 지배"는 심화하여 절망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내가 "나"의 기억을 유지한채 다른 흉악한 "나"로 변해가는 과정은 긴박감이 이었고 또 무섭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준이치가 선택한 "해결책"은 납특할 수 있어서 오히려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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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3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싹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근데 마지막 선택은 기억나지 않아요--;
시미즈 레이코라는 작가의 만화책도 막 생각나고 그랬습니다...정말 이쁜 만화에 섬뜩하고 생각할꺼리 많은 이야기가 잔뜩이거든요~
그 만화책에선 뇌이식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만 이식한 사람들도 스스로의 의지를 잃게되는 무시무시한 과정인데..
우리편?이 그 이식당하는 장기적출자여서 이 책과는 입장이 약간 반대입니다~

ChinPei 2010-07-30 17:40   좋아요 0 | URL
마지막에 준이치는 스스로 자기 머리를 총으로 써지요. 그래서 우뇌만 죽은 식물인간으로 스스로 되고 맙니다.

ChinPei 2010-07-30 17:47   좋아요 0 | URL
그 만화 제목도 "변신"이라고 해요? 나도 봐 볼까...

pjy 2010-08-02 12:39   좋아요 0 | URL
저도 소장본이 아니라 만화제목이 가물가물..아마도 한쿡에선 월광천녀로 번역된듯 싶은데요^^

ChinPei 2010-08-02 14:38   좋아요 0 | URL
내가 볼 적에 조사해 볼게요. ^^

루체오페르 2010-07-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를 꽤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나=뇌=영혼 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습니다.

ChinPei 2010-07-30 17:54   좋아요 0 | URL
저도 경험해 보고 싶어요. 흉악하게 변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없던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는 방향으로요. ^^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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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쿄에서 혼자 사는 이즈미 소노코가 자기 애인 준이치와 친구 가노코에 배신당하였다.
즉 애인 준이치를 친구 가노코에 소개하여 몰래 준이치와 가노코는 사귀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노코는 오빠 야스마사에 전화를 하여 "오빠 외는 아무도 믿지 못한다"고 하면서 "일요일에는 나고야에 돌아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노코는 오지 않았다.
야스마사는 월요일 아침 소노코가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다.
급히 도쿄까지 달려간 야스마사는 동생의 방에서 시신이 된 소노코를 발견한다.
그러나 소노코의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동생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하였다는 걸 알게된다.
자신이 경찰관(단 교통경찰)인 야스마사는 소노코의 방에서 범인의 증거물로 여겨지는 것을 찾아내여 경찰에 감춘 채 스스로 범인을 찾아낼 것을 마음다진다. 즉 복수를 위해서.

여러가지 증거물이 상실되었다는 걸 모르면서도 현장을 수사한 가가형사 역시 방안에 남은 것들을 통하여 소노코가 살해 당하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또한 야스마사가 증거를 인멸한 결과를 통해서 야스마사가 복수를 위해서 많은 증거물을 은폐,은닉하였다는 것도 알아차린다.

얽히는 둘의 수사, 특히 야스마사보다 가가 쪽이 살인사건 수사에선 프로페셔널이라는 걸 확인할 수있는 표현이, 당연하지만 재밌었다.

(1) 이 증거물에 관한 수사과정에 별 네개.



야스마사는 은닉한 증거물을 통하여 중요 용의자로써 준이치와 가노코를 추궁해 간다.
가가는, 야스마사가 복수를 위해서 스스로 범인을 찾아 내려고 한다는 걸 의심하면서도 다른 관점에서 역시 준이치와 가노코를 수사한다.
우수한 관찰력을 가진 가가의 조언(?)도 있어 야스마사는 진범인을 알게 된다.

끝.




???


문제는 여기다.
진범을 알았던 사람은 야스마사와 가가만이다.
가장 중요한 읽은이는 알지 못한다. 즉 소설에서 진범이 준이치, 가노코 어느 쪽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얄밉다!!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진범을 논리적으로 해설하는 블로그도 수많이 등장하였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기도한 건 그런 사회 정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던가?
소설중의 증거물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면 곧 답이 나온다고 들었지만, 결국 나는 "해설 블로구"를 확인하였다.   T^T.

(2) 히가시노 게이고의 얄미움에 별 하나 감점.


아쉬운 점도 많다.
부모는 이미 떠나 오빠, 동생 둘뿐인 야스마사가 동생의 시신을 발견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통곡은 물론이고.
스스로 "아무에게도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번역:ChinPei)"라고 말하면서도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또 복수를 위해서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야스마사의 모습에서도 그의 범인에 대한 증오심, 미친 듯한 신념을 느끼지 못하였다.
또한 야스마사가 복수를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가는 그를 말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라 중요한 수사정보를 제공하기까지 한다(제공하였다고 읽은이의 눈에는 보인다). 소설의 전개상 필요한 일이기는 하나 부자연스럽다.

(3) 인물의 인격,감정 묘사가 덜 되었다는 아쉬움에 별 하나 감점.


도합 별 두개... 라고 말하고 싶지만.
(2)는 읽은이에 따라서는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그래서 좀 의심스럽지만 별 세개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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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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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얄미운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읽은이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와 반대로 이런 '장치'를 준비해 놓는 거다"라는 읽은이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려는 속셈이 행간에 나타난다.
대부분 읽은이는 그 속셈에 속아넘어가여 작품 절정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물론 대부분 추리소설의 목적이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방법이 몹시 교활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재밌다".

이 작품 "악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동기"를 추리하는 소설이다.
"동기 해명"이 주제로 된 소설은 그야말로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극히 특이하다.

수사과정은 히가시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카가형사답게 매우 세밀하고, 범인이 무심코 한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증거도 발견하면서 사건 동기를 해명해 나간다.
그 과정은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읽은이는 점차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적어도 나는 빠졌다).
소설의 페이지수를 약 3분의 1 남긴 상태에서 범죄의 동기가 "완전히 해명"되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이처럼 "평범한 내용"일 수가 없는데.
이 남은 페이지수는 도대체 뭔가?
다른 작가의 방대한 감상문이 실려 있는 것일까?

사실은 여기서부터 이 작품의 진짜 주제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앞부분 약 3분의 2는 기나긴 프롤로그라고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범인(≒히가시노 게이고)과 카가형사(≒읽은이)의 심리 게임이 벌어진다.

이 소설 마지막 "해명"의 장에서 카가형사가 말한다(단,요약은 ChinPei).
"소설 평가의 하나의 표현으로써 '인물 묘사'라는 말이 있다.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가를 읽은이에 전하는 방법은 설명문이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동작, 대사등을 통하여 읽은이 스스로 인물을 이미지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인물 묘사'다."
즉 이 작품의 주제다.
이 마지막 "해명"에서, 이 소설의 서술방법으로써 범인의 수기, 카가형사의 독백, 기록과 같은 형식을 선택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활한 참뜻을 알게 된다.
넘 교활해서 오히려 후륭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중 최고급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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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렇군요. 친페이님 이렇게 써 놓으시니 읽고 싶은 생각이 확 드네요.
도대체 얼마나 교활하길래...?^^

ChinPei 2010-07-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건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알 수있는 것, 라 하면 말도 안되고....
적어도 이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읽은이를 Mind Control 할려고 하였다, 라고 하면 좀 알만해요? 표현이 어렵네요. -_-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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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을 처음 읽은지 거의 2년이 지났다.
다 읽고나서 나는 “이 소설은 두번 다시 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무리 소년의 마음의 성장을 표현한다 해도 온갖 고통을 어린 소년에게 들씌운다는 건, 나에겐 못했다.
소설 읽는 독자에 지나지 않는 내가 뭣을 “안한다”, “못한다” 해도 그 내용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매우 어리석은 말이다.
하지만 그래야만 내 마음속에 스며든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그런 착각에 거의 사로잡혔다.

그런데 며칠전, 문득 그게 아니다는 느낌이 떠올랐다.
주인공 한동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매우 사랑하였다.
아직 어려서 어떻게 하면 가족이 모두 편안할까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여 고생하였다.
자신도 “난독증”이라는 일종의 병이면서도, 그를 극복하느라 고생하면서도.
엄마를 사랑하였고, 여동생을 사랑하였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도 사랑하였고, 가족불화의 원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할머니도 사랑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마지막 결단을 더 따뜻이 봐 주어야 하지 않았던가.
이 소설은 주인공 한동구를 통해서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뭔가를 상징하고 있는게 아닐까.

2년만에 읽었다.
오랜만에 읽어 보니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한동구는 이 나라와 이 나라의 국민을 상징하였다는 느낌.
언제나 소란스로운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로 인해 “난독증”이 되었던 소년.
그건 마치 70년대 80년대의 우리 나라 국민이 놓인 상황을 상기하게 한다.

한동구는 3학년이 되어서 겨우 박영은 선생님이라는 선녀같은 분을 만나 “난독증”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고통은 그걸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어린 소년이 손댈 수없는 어른들의 다툼은 마음의 성장의 길 앞에 가로 놓인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돌이킬 수없이 크고 아프고 도저히 일어 설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오히려 그 절망속에서 성장한다.
소년은 어른들이 이루어내지 못했던 해결책을 제시한다.
소년과 어른들이아픔을 고루 나누는 방법으로.
그리하여 소년은 그의 “아름다운 정원”과 헤어질 각오를 하게 된다.
그 “아름다운 정원”과의 작별은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책임질 이 나라 국민의 각오를 상기한다.

2년만에 읽어보니,이 소년의 절망감이 다시 내 마음속에 스며들어 나의 눈물을 짜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의 그 참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표현의 의도를 좀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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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6-2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씨는 저의 전작주의 작가에요. 그의 작품을 사랑하며 함께 나이먹어갈 수 있는 동갑내기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

ChinPei 2010-06-22 12:08   좋아요 0 | URL
좋은 작품이라는 건 틀림 없는데, 영주가 넘 불쌍해서,영주 잃은 동구가 넘 불쌍해서, 가끔 이 작가를 원망했어요.
그 원망 땜에 별 하나 깎았지요.
그래도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 봐야 된다고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