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근대 법철학의 세계관을 넘어서 - <자연의 권리> 데이비드 보이드

여행지로 출발할 때부터 백인과 인디언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납니다. 당신과 당신의 일행인 에드워드 호어는 식량과 생필품으로 가득 채운 배낭을 메고 있었고, 식기와 우비 등을 넣은 천연고무 방수 가방까지 카누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짐이 많았지요. 반면, 인디언 조 폴리스의 짐은 도끼와 총, 담요 한 장이 전부였죠. 나머지는 자연에서 그때그때 얻을수 있으니까요. 《소로의 메인 숲》에서 당신은 그 장면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소위 문명인이란 얼마나 많은 걸 소유하고 거추장스럽게 갖고 다녀야 안심이 되는 존재들인지 스스로 되묻습니다. - P200

미국의 지명이나 강과 산의 이름에는 지금도 인디언 문화나 언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코네티컷(Connecticut)‘은 모히칸 인디언 말로 ‘큰 강변이 있는 냇가‘를 뜻하는 ‘퀸네툭컷(Quinnehtukquti)‘이 변용된 것이고, 맨해튼(Manhattan)‘은 ‘언덕이 많은 섬‘이라는 뜻의 인디언 말인 ‘만나하타(Mannahatta)‘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화려한 대도시의 풍경앞에서 멀고도 먼 인디언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P203

그런 점에서 당신은 비평가 조안 버빅의 표현처럼 ‘문명화되지 않은 역사가(uncivil historian)‘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명과 야생의 첨예한 경계 지점에 서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독특한 전망을 당신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래 응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 P204

"환경법 위반이 다투어지는 사건에서 자연 자체는 주요 법적 당사자로 응당 취급되어야 한다" - P235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생태적 상호의존성과 인간 -자연 간의 상호관계성을 간과하고, 자연을 객체화 또는 대상화하는 데서 가장 두드러진다며, 이러한 환경법의 결함을 극복하려면 단지 더 많은 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 P237

우리 각자는 인식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자연의 내재적 가치와 주체성을 인정하는 사회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서구 근대 법철학의 대안적 법철학으로 논의되는 지구법(Earth Law 내지 Earth-centred Law)의 핵심 주장이기도 하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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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인터넷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접하고 성소수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커밍아웃은 평생 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커밍아웃이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라고 뻥 터뜨리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한방에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새로 만날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세계적인 유명인일지라도 많은 단계를 거쳐서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깨닫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P196

성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듯이 부모와 가족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성소수자들처럼 성소수자의 가족들에게도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지지자가 필요하다는 것, 부모도 상처받는 존재이고 완전하지 않다는 것. 이런 걸 생각하게 되니 가족들을 이해하기가 좀 쉬워졌다. - P221

그럼에도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할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커밍아웃에 대한 욕구는 크다.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지만 때는 올 것이다. 다가오는 때에 그 고통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성공한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 P246

커밍아웃을 준비하다 보면 마치 심문장에 끌려가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커밍아웃하려는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말하기 전까진 모르니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온갖 질문과 대답을 상상해 본다. 그중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질문이다. - P249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은 적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 이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이 뼈저리게 공감되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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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로 사는 것이 선택 가능한 일이라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환경에서 누가 그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타고났습니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로 사는 거지요.
(…) 어머님께서도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에는 그냥 안아주세요. 힘들어도 그냥 안아주세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님이 자신을 괴물처럼 여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이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하는데 말이죠.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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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처절하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그 지긋지긋한 가족에게,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을까.

폭발로 인해 아버지는 설교자에서 관찰자로 변신했다. 끊임없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이 화상을 입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관찰했고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날마다 그렇게 누워서 입을 다문 채 주변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몇 주 사이에 아버지는 내가 듣는 강의, 내 남자 친구, 내가 여름에 하는 아르바이트 일에 관해 잘 알게 됐다. 몇 년 전에는 내 나이를 다섯 살이나 틀리게 알고 있던 아버지가 말이다. 내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버지의 붕대를 갈면서 오드리 언니와 내가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는 그것들을 기억했다.
여름이 거의 끝나 갈 즈음 아버지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듣는 강의에 대해 좀 더 듣고 싶구나. 재미있게 들리더라.]
그것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 P352

돌이켜 보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 가지 행동, 더 나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행동을 했다. 그것은 폭발 사고가 난 후 내가 닉을 처음 다시 본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다, 화상을 집에서만든 연고와 동종 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무서있다, 아니 무서운 것 이상이었다, 살아 있는 한 불에 탄 살 냄새를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등등을 털어놓는 행동 말이다.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내 마음을 짓눌러 온 짐을 함께 나눠지고 함께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나는 그 짐을 모두 혼자 지겠다고 결정했고, 이미 빈혈과 영양실조에 더해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한 닉과의 관계는 점점 더 약해져 갔다. - P355

나는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잠깐 생각을 해야만 했다.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 P371

케리 박사에게 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케임브리지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올 생각을 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봇물터지듯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케리 박사에게 할 수는 없었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거의 잊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재의 것들에 스며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서는 그 대비가 너무 컸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 장엄했다. 차라리 내 기억들이 돌로 쌓아올린 첨탑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믿기 쉬웠다. - P380

내가 가난했고, 무지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한 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나는 숀 오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어떻게 오빠를 잃게 됐고, 어떻게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잃게 됐는지. 그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냥 내려놓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영원히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내가 고칠 수 있어.]
[네가 이렇게 많이 변한 것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변했는데도 열일곱살 때랑 하는 말이 똑같은 것도 재미있다.] 찰스가 말했다. - P462

자신의 현실 — 나와 언니가 함께 알고 있던 현실 — 을 아버지의 현실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언니가 느꼈을 안도감 말이다. 그렇게 적은 대가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언니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가 한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1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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