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끝에서는 정갈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내고, 일단 뱃속으로 들어가면 화끈한 기운이 오랫동안 몸을 훈훈하게 녹이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씌어진 글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아밀리아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 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직조기와 저녁 도시락, 잠자리, 그리고 다시 직조기, 이런 것들만 생각하던 방적공이 어느 일요일에 그 술을 조금 마시고는늪에 핀 백합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그 꽃을 올려놓고 황금빛의 정교한 꽃받침을 살펴볼 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고통처럼 날카로운 향수가 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눈을 들어 1월 한밤중의 하늘에서 차갑고도 신비로운 광휘를 보고는 문득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지독한 공포로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 아밀리아의 술을 마시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통을 느낄 - P22

수도,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경험들이 보여 주는 것은진실이다. 그 술을 마시면 영혼이 따뜻해지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 P23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 - P49

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반드시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젊은 남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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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6 The West
The Universal Laws of Newton and Locke
Galileo, the scientific method
Isaac Newton, the Laws of Gravity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
Western ideas, Enlightenment

Scientific Far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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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체험
제2부 상황
6장 어머니

7장 사교 생활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8장 매춘부와 고급 창녀
허무주의
에밀 졸라 <나나>

합법적 낙태에 반대하는 실제적 이유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 도덕적 이유로 말하자면, 가톨릭교의 낡은 논법으로 귀착된다. 즉, 태아에게도 영혼이 있는데 세례도 받지 않고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때에 따라서 성인 남자의 살해를 허용한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전쟁이나 사형수의 경우가 그러한데, 태아에게는 대단히 인도주의적이다. 태아는 세례를 통해 정화되지 않았다. 이교도에 대항한 성전 시대에 이교도들 역시 정화되지 않았는데, 그들을 학살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장려되었다.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은 아마도 모두 죄가 없지 않았고, 오늘날 사형당하는 범죄자들과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경우를 교회는 신의 은총에 맡긴다. 교회는 인간을자기 수중에 있는 도구로, 한 영혼의 구제를 신과 교회 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이 태아를 하늘로 맞아들이는 것을 막는 것일까?종교회의가 그것을 허용한다면, 경건한 인디언 학살의 호시절과 마찬가지로 신은 항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사람들은 도덕과는 아무 관계없는 완고하고 낡은 전통에 맞닥뜨리게 된다. - P681

"낙태 금지는 부도덕한 법이다. 그것은 날마다 시간마다 필연적으로 위반될 수밖에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P689

분만은 경우에 따라서 매우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어머니는 자기 자아의 귀중한 일부인 보물 같은 아이를 배 속에 지니고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귀찮은 것을 떨쳐내 버리기를 희망한다. 오랫동안 꿈꿔 오던 것을 두 손안에 쥐고 싶다가도, 그꿈의 실현이 만들어 낼 새로운 책임이 두렵다. 두 욕망 중 어느 하나가 이길 수 있지만, 대개 그녀는 분열되어 있다. 또 그녀가 불안한 시련에 단호하게 임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 - 어머니나 남편에게 도움받지 않고도 불안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에게 가해진 고통에 대해 세상이나 인생 혹은 측근들을 원망한다. 그리고 항의하는 의미로 수동적 태도를 보인다. 독립적 여자들 - 모성형이나 남성적여자들은 분만에 이르는 시기나 분만하는 동안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열렬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단히 유아적인 여자들은 산파나 어머니의 보살핌에 수동적으로 자기를 맡긴다. 어떤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품는다. 다른 여자들은 모든 수칙을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해산의 위기에서대체로 세상에 대한, 특히 모성에 대한 자기의 본질적 태도를 표현한다고 말할 수있다. 즉, 그녀들은 의연하든가 체념적이든 권리주장을 하든가 강압적이든가반항적이든가 무기력하든가 긴장되어 있다・・・・. - P706

예전에는 아주 빈번했던 사고를 현저하게 감소시킨 - 그리고 거의 근절시킨 것은 의학과 외과수술이라는 인간의 개입이다. "너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으리라"라고 한 성서적 확언을 부정하고 있다. - P707

그녀는 빠져나가려는 딸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데‘ 열중한다. 자기의 분신이 한 명의 타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들에게서 맛보는 쾌감, 즉 자기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 이런 쾌감을 여자는 자기 아이들, 특히 딸들을 통해서만 경험한다. - P724

여기서 나이 든 여자가 다 자란 아이들과 맺는 관계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들이 어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 20년 동안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두 가지 편견의 위험한 오류가 이제까지 한 서술에서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모성이라는 것이 여하한 경우라도 여자를 충족시키는 데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불행하고 실망과 불만으로 신경이날카로워진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열두 번도 더 출산한 소피아 톨스토이의 예는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일기를 쓰는 동안 내내 세계에서나 자신 속에서나 모든 것이 무용하고 공허하게 보인다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일종의 마조히즘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이상 젊지않다는 느낌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기의 젊음, 아름다움, 개인적인 생활을 단념하는 것이 그녀에게 약간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자신이 - P726

나이가 들었고, 자기 삶의 의미가 정당화되었다고 느낀다. "아이들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나에게는 커다란 행복이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남편의 우월성을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무기다. "우리들 사이에 평등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 유일한 무기는 아이들, 활력, 기쁨, 건강이다……" 그러나 권태가 갉아먹는 생활에 의미를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1875년 1월 25일, 한순간 감정이 고양된 뒤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 역시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일단 지나가 버리면, 곧 내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단지 아기를 돌보고 먹고 마시고 자고,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것이 요컨대 행복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를 슬프게 하고, 어제처럼 울고 싶게 한다.

그리고 11년 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힘차게 잘하겠다는 열렬한 욕망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아! 나는 얼마나 인내심이 없고 성마르고,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가! (……)아이들과의 이 영원한 싸움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 P727

결혼을 짓누르는 저주는 대개 두 사람이 그들의 힘이 아닌 약함 속에서 결합해 있다는 것이고, 서로 상대에게 주는 것을 싫어하고 받기만을 원했을 때라고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자기 자신이 창조할 수 없었던 충만함, 열정, 가치를 아이를 통해 얻겠다고 꿈꾸는 것은 기대에 한층 더 어긋나는 환상이다. 아이가 안겨주는 기쁨은 타인의 행복을 사심 없이 바랄 수 있는 여자만 얻을 수 있고,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기 존재를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여자만이 누릴 수 있다. 확실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여자가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이미 만들어진 정당화를 나타내지않고, 확실치 않은 이익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바람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슈테켈이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사랑의 대용품이 아니다. 그들은 망가진 인생의 목표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인생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마련된 물질도 아니다. 아이들은 책임이며 무거운 의무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랑의 가장 관대한 꽃무늬 장식이다. 부모의 장난감도 아니고, 삶에 대한 부모의 욕구 실현도 아니며, 충족되지 않은부모의 야망을 대신하는 대용품도 아니다. 아이들은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책무다. - P728

오늘날 여자를가정 밖에 오랜 시간 붙잡아 놓고 모든 힘을 빼앗는 직업과 아이의 양육을 양립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한편으로 여자의 일이 아직도 노예 노동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가정 밖에서 아이들의 보살핌, 보호, 교육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태만이다. 하늘이나 땅속 가장 깊은 곳에 기록되어 있는 법에 따라 어머니와 아이가 전적으로 서로에게만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사회적 태만을 정당화하는 것은 궤변이다. 이러한 상호간의 구속은 이중으로 해로운 억압을 구성할 뿐이다.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남자와 구체적으로 동등해진다는 주장은 하나의 기만이다. - P731

아이는 왁스칠한 마룻바닥의 적이다. - P732

여자가 정당하게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승리와 함께 멋 부리는 행위에는 - 가사 돌봄과 같이 - 시간과의 싸움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 역시 세월이 좀먹는 하나의 물체이기 때문이다. 콜레트 오드리는 가정주부가 집에서 먼지와 다투는 싸움과 맞먹는 이 투쟁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더 이상 젊은 시절의 탄탄한 몸이 아니었다. 그녀의 팔과 넓적다리를 따라서 근육이 약간 늘어진 피부와 지방층 아래로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불안해진 그녀는 다시 한번 일과를 뒤엎어 버렸다. 그리하여 하루는 반 시간의 체조로 시작될 것이고, 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분간 마사지를 할 것이다. 허리둘레를 관리하기 위하여 의학서나 유행잡지를 참조하기 시작했다. 과일주스를 준비하고, 이따금 설사제를 복용했으며, 설거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했다. 그녀의 두 가지 근심은 결국하나로 귀결되었다. 즉, 열심히 몸을 젊게 하고, 열심히 집을 닦다가 결국 언젠가는일종의 휴식기, 일종의 죽음과 같은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 그때 세상은 노쇠와 소모를 잊은 듯 멈추고 중단될 것이다. (・・・) 지금 그녀는 스타일을 개선하기 위하여 제대로 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미용잡지들은 무한정 새로워진 처방으로 그녀를 숨 가쁘게 했다. 진저 로저스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아침마다머리를 백 번씩 브러시로 빗어요. 정확히 2분 30초가 걸려요. 그래서 비단결 같은머릿결을 가지고 있답니다………" 발목을 예쁘게 다듬는 법은 매일 발뒤꿈치를 바닥에 대지 않고 발끝으로 삼십 번씩 일어서는 것이다. 이런 운동은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1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때는 발가락을 향유에 담근다. 손에는 레몬을 넣은 밀가루팩을 하고, 뺨에는 딸기를 짓이겨 바른다. - P742

여자들 간에 형성되고 유지되는 우정은 여자에게 귀중하다. 여자들의 우정은남자들이 경험하는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남자들은 자기들의사적인 생각이나 계획을 개인 자격으로 자기들끼리 소통한다. 여자들은 여자의운명이라는 일반성 속에 갇혀 있어서 일종의 내재적 공모의식으로 결합해 있다. 우선 여자들이 저마다 다른 여자에게서 찾는 것은 자기에게 공통된 세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의견을 두고 토론하지 않는다. 자기의 속내와 대처 방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여자들은 일종의 반세계世界를 창조하기 위해결속한다. 그 반세계의 가치는 남자들의 가치를 날려 보낸다. 이렇게 결합한 여자들은 자기들이 받는 억압을 뒤흔들어 버릴 힘을 발견한다. - P750

여자들의 관계는 저마다의 유일성에 근거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여자라는 일반성 속에서 직접적으로 경험된 것이다. 그래서 적의라는 요소가 곧 개입된다. - P754

경제적 관점에서 매춘부의 상황은 결혼한 여자의 상황과 대칭을 이룬다. "매춘으로 자기를 파는 여자들과 결혼으로 자기를 파는 여자들 간의 유일한 차이는계약의 금액과 기간에 있다"라고 마로Marro는 말한다.143 양쪽 모두에게 성행위는 하나의 서비스다. 후자는 한 남자와 종신계약하는 것이고, 전자는 돈을 지불하는 여러 명의 고객이 있는 것이다. 후자는 한 남자를 통해 다른 모든 남자로부터 보호되고, 전자는 모든 남자를 통해 각 남자의 배타적 횡포에 대해 방어된다. 아무튼 그녀들이 자기 육체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경쟁을 통해 제한된다. 남편은 자기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계약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부의 의무’의 이행은 은혜가 아니라 계약의 실행이다. 매춘에서 남자의 욕망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종種의 본능이므로, 그 어떤 육체에 대해서나 만족할 수 있다. 아내나 창녀는 둘 다 남자에게 독특한 영향력이 없으면 남자를 활용하는 데성공하지 못한다. 양자 간의 차이라면 합법적인 아내가 결혼한 여자로서 억압당하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존중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중은 실제로 억압을 저지하기 시작한다. 한편 창녀는 한 인격체의 권리를 갖지 못하며, 그녀 속에여성 노예제의 모든 양상이 동시에 요약되어 있다. - P769

오히려 아직도 많은 여자에게 이 직업이 그다지 혐오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회를 단죄한다. 그녀에게 왜 그것을 택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차라리 그녀가 왜 그런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 P770

매춘부들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도덕적·심리적 상황이 아니다. 대부분 그 물질적 조건이 비참한 처지에 있다. 기둥서방이나 포주에게 착취당하는 그녀들은 불안 속에서 살고 있고, 그중 4분의 3은 돈이 한 푼도 없다. 그 일을 하고 5년이 지나면, 약 75퍼센트가 매독에 걸린다고 비자르 박사는 말한다. 그는 다수의 매춘부를 치료해 왔다. 특히 그 가운데 경험이 없는 미성년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감염된다. 임질 합병증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경우가 25퍼센트 가까이 된다. 스무 명 가운데 한 명은 결핵을 앓고 있으며, 60퍼센트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중독자가 된다. 40퍼센트는 마흔 살 이전에 죽는다.
여기서 덧붙여야 할 것은 신중을 기하는데도 이따금 임신하는 여자들이 생기고, 일반적으로 악조건에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 P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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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5 A New World in Conflict
War Against the Colonies: King Philip’s War

War Against the Colonies: Louis XIV Saves New France

William Penn’s Holy 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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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체험
제2부 상황
5장 결혼한 여자

소피아 톨스토이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도로시 파커 <너무 나쁘다!>
샤리에르 부인

결혼의 양상은 항상 남자와 여자에게 철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남녀 양성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런 필요성이 그들에게 상호성을 가져다준 적은 없다. 여자들은 남성 계급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환과 계약을 성립시키는 하나의 계급을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남자는 자율적이고완전한 한 개인이다. 그는 무엇보다 생산자로 생각되며, 그의 존재는 그가 집단에 제공하는 노동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여자에게는 그녀가 갇혀 있는 생식과 가사의 역할이 어떤 이유로 동등한 존엄성을 부여해 주지 않는지 앞에서 이미 보았다. 확실히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한다. 어떤 원시 부족들의 경우에 혼자서 자기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독신 남자는 일종의 천민이 되는 수가 있다. 농촌에서농부에게는 여자 협력자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대다수 남자는 어떤 힘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배우자에게 떠넘긴다. 개인은 안정적인 성생활과 자손을 욕망하며, 사회는 개인이 사회를 영속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사회가 구성원 각자에게 남편이자아버지로서 자기를 실현하도록 허용한다.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지배하는 가족 집단에 노예나 가신으로서 통합된 여자는 언제나 결혼을 통해 한 남자 집단에서 다른 남자 집단에게 주어졌다. 원시 시대에 부족이나 부계의 씨족은 여자를거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처분했다. - P580

사실 모든 인간 존재는 초월인 동시에 내재다. 자기를 초월하기 위해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합시켜야만 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기 내부에서 자기자신을 확인해야만 한다. - P583

그러므로 결혼은 일반적으로 사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남편은 말하자면 사랑하는 남자의 대용품이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분리는 조금도 우연이 아니며, 결혼제도의 성격에 내포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경제적이고 성적인 결합은 집단 이익을 향해 초월하는 게관건이지 그들의 개인적 행복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족장 체제 안에서는 어떤 회교도 집단에서는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 부모의 권위에 의해서 선택된 약혼자들이 결혼 당일까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회적 측면에서 고려해 볼 때개개인이 감정이나 성적 자의에 기초해 자기의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현명한 거래에서 욕망은 그렇게 쾌활하지 않다. 그것은 침울하고 한결 무디다. 사랑은 자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자기를 붙잡아두는 것을 증오한다. 그리고 예컨대결혼과 같은 사랑이외의 다른 명목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관계에는 친족관계나 재산 따위가 우아함이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시된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자손이나 가족을 자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생각해서 결혼한다. - P590

여자는 개별성 속에서 선택된 남편과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 속에서 여성적 기능의 행사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여자는 개별화된 형태가 아니라 오로지 종의 형태하에서만 쾌락을 알아야 한다. 이로부터 여자의 에로틱한 운명에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결과가 나온다. 우선, 여자는 결혼 이외의 성적활동에 어떤 권리도 없다. 부부에게 육체적 거래는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욕망과 쾌락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 그러나 노동자와 시민으로서 보편적인 것을 향해 초월하는 남자는 결혼 전에도, 부부생활 밖에서도 우연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운다. 반면에 여자가 본질적으로 암컷으로 규정된 세계에서 여자는 어디까지나 온전히 암컷으로서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한편, 이미 보았듯이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가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 P591

피신처, 은신처, 동굴, 태내로서의 가정은 외부의 위험을 막아준다. 비현실적으로 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외재성이다. 특히 저녁에 덧문이 닫히면 여자는 여왕처럼 느낀다. 정오에 온 세상에 퍼진 햇빛은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밤이 되면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은 모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등갓 아래서 오로지 자기 집만을 밝히며 빛나는 자기의 불빛을 본다. 자기집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V. 울프의 한 텍스트는 외부 공간이 붕괴되는 동안 집안에 집중한 현실을 보여 준다.

밤은 이제 유리창 너머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유리창은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보여 주는 대신에 질서, 안정, 견고한 지면이 집안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게끔 이상한 방식으로 외부 세계를 뒤틀어 버리고 있었다. 반대로 밖에는 유동성이 된사물이 흔들리고 사라지고 하는 단 하나의 반사가 있을 뿐이었다. - P615

다수의 여자가 이처럼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에서 무한히 다시 시작되는 피로밖에는 제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없다. 더 특권적인 혜택을 누릴 때도 승리는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 주부의 일만큼 시지프스의 형벌을 닮은 것도 별로 없다. 날이면 날마다 그릇을 씻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속옷을 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은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지고 먼지가 앉을 것이며헤져 버릴 것이다. 주부는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느라 지쳐 버린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를 영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긍정적인선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해 끝없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싸움이다. 주인의 장화를 닦는 것을 우울하게 거부한 하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닦아서 뭐합니까? 내일 또 닦아야 하는데요"라고 하인은 말했다. - P618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비질하고 어두운 장롱 아래 숨어 있는 먼지를 찾아내는일은 삶을 거부하면서 죽음을 막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단번의 동작으로창조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주부는 거기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포착한다. 그녀의 태도는 마니교도의 태도다. 마니교의 특성은 선과 악의 두 원리를 인정하는것만이 아니다. 선이 긍정적 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의 소멸을 통해 도달되는것을 상정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악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별로 마니교적이지 않다. 신에게 자기를 바침으로써 악마와 가장 잘 싸우는 것이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서 악마에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월과 자유의 모든 교리는 악의 패배를 선을 향한 진보에 종속시킨다. 그러나 여자는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초대받지 못했다. 집, 방, 더러운 속옷, 마루는 응결된 사물이다. 여자는 거기에 스며드는 나쁜 원리를 끝없이 쫓아내는 일만 할 수밖에없다. 그녀는 먼지, 얼룩, 찌꺼기, 때를 공격한다. 여자는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운다. 긍정적 목표를 향하는 대신에 적을 쉴 새 없이 격퇴해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운명이다. 흔히 주부는 그 운명을 격렬한 분노 속에서 참아 낸다. 바슐라르는그에 대해서 ‘심술‘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이 단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에게 주부의 편집증은 사도마조히즘의 한 형태다. 편집증과 악행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원하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소극성·불결함·악이 자기 몫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편집증적인 주부는 자기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세를 투덜대고 외쳐 대면서 맹렬한 기세로 먼지에 달려든다. 팽창하는 온갖 생명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를 공격하면서 그녀는 인생 자체를공격한다. 살아 있는 존재가 그녀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는 즉시 그녀의 눈에서는험상궂은 불꽃이 튄다. "신발을 닦아. 어지르지 마라. 그것에 손대지 마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숨도 못 쉬게 한다. 가장 작은 숨결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건 지금까지의 노동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아이들의 난장판은 회복시켜야 할 오점이다. - P620

그러나 가사노동은 현상유지를 확보하는 데만 이바지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남편의 눈에 무질서와 태만은 쉽게드러나지만 질서와 청결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 P629

많은 아내가 어린애 같은 것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상 아주 젊기 때문이다. - P640

그녀들이 제대로 추론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P646

만약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거나 히스테리를 부리고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등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너무 잦은 싸움과 비난은 남편을 가정 밖으로 내몰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매혹할 필요가 있는 가장 긴급한 때에 자기를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영웅적인 미소, 공갈 협박과 애교를 능란하게 조합해야 할 것이다.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계략을 쓸 것, 침묵 속에서 증오하고 두려워할 것, 한 남자의 허영심과 약점에 기댈 것, 남자의 허를 찌르고 남자를 속이고 조종할 줄 알 것, 이런 것들은 아주 서글픈 지식이다. 여자의 커다란 변명은결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도록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즉, 여자는 직업도 능력도 개인적 인맥도 없으며, 자기 이름조차 더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남편의 ‘절반‘이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이 버리면, 대개 그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떤 구원의 손길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 P655

부부 사이에 성실함과 우정이 존재하려면 서로에 대해 자유롭고 구체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남자만이 경제적 자주성과 남성성이 부여하는 특권을-법과 풍습을통해 - 쥐고 있는 한 당연히 그는 폭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이는 여자에게 반항하고 책략을 꾸미도록 부추긴다. - P656

물론 톨스토이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순조롭게 잘 되어 가는’ 가정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 가정에서는 부부가 타협에 도달해 서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거나속이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도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는 불운이 하나 있다. 바로 권태다.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메아리로 만드는 데 성공하든가, 각자가 자기 세계 속에 피신해 있다 하더라도,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그들은 더 이상 서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게 된다. 부부란 구성원이 자기의 고독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각자의 자율성을 상실한 공동체다. 그들은 상대와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지탱하는 대신에, 정지상태로 서로에게 동화된다. 그 때문에 정신적인 영역에서나 에로틱한 영역에서나 서로에게 무엇 하나 줄 수 없고, 교환할 것이 없다. - P658

얼마나 많은 여자가 결혼생활에 매몰되어 스탕달의 말처럼 ‘인류를 위해 사라졌던가!‘ 사람들은 결혼이 남자를 작아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혼은 여자를 거의 대부분 소멸시킨다. - P671

결혼의 비극은 약속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 행복에 관해서는 보장이란 것이 없다 - 여자를 불구로 만든다는 것이다. 결혼은 여자를 반복과 매너리즘에 빠뜨려 버린다. 여자 인생의 최초 20년은 실로 대단히 풍요롭다. 여자는 월경, 섹슈얼리티, 결혼, 모성이라는 경험을 통과한다. 여자는 세계와자기의 운명을 발견한다. 그러나 스무 살에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 평생 한 남자에 매이고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녀의 삶은 그것으로 영원히 끝난다. 진정한 행동, 진정한 일은 남자의 전유물이다. 여자에게는 종종 몹시 지치게 할 뿐 마음을결코 채워 주지 못하는 일거리만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녀에게 체념과 헌신의 미덕을 찬양했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까지 부부 두 사람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자기를 바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대단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장 고약한 것은 여자의 헌신이 성가신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의 헌신이 압제로 바뀌어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헌신의 태도를 최고의 유일한 정당성으로서 아내에게 강요한 것은 남편이다. 그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도록 강제한다. - P673

남편은 아내가 침대에서 뜨거운 동시에 쌀쌀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완전히 바치되 그 무게로 짓누르지 말기를 주장한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을 지상에 안착시키되 자유롭게 놓아둘 것을, 그날그날 단조로운 반복을 거듭하면서도자신을 무료하게 하지 말 것을, 언제나 옆에 있되 결코 성가시게 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는 그녀를 전적으로 소유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그녀의 소유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부부로 살면서 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처럼 그는 그녀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그녀를 기만하고 있다. 그녀는 이 배신의 범위를 가늠하는것으로 인생을 보낸다. - P674

그러나 부부의 경제적 책임을 남자가 유지하는 한,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P675

남녀 간의 커다란 차이는 여자에게 의존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자유를 가지고 행동할 때조차 여자는 노예이다. 반면에 남자는 본질적으로 자율적이고 구속을 외부로부터 받는다. 남자가 희생자는 자기 쪽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견뎌 내는 부담이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생충처럼 남자가 먹여 살린다. 그러나 기생충은 자신감넘치는 주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은 결코 상대의 희생물이 아니라 다 같이 종種의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부 역시 본인들이 만들지 않은 제도의 억압을 함께 견디고 있다. 누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고말하면 남편은 분개한다. 억압받는 쪽은 자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억압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남성적 민법, 즉 남성에 의해 남성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가 오늘날 남녀 모두에게 고통의 원천이 되는 형태로 여성의 조건을 규정해 버린 것이다.
남녀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결혼이 여자에게 하나의 ‘직업‘이 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들은 ‘여자는 이미 충분히 넌더리 나는 존재다‘라는 구실로 당치않은 이론을 늘어놓고 있다. 결혼은 여자를 ‘사마귀 암컷‘으로, ‘거머리‘로, ‘독’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결혼의 형태를 바꾸고 여성의 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상이여자의 자립을 금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이 된다. 여자를 해방함으로써, 다시 말해 여자에게 이 세계에서 할 일을 부여함으로써 남자는 해방될 것이다. - P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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