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체험
제2부 상황
5장 결혼한 여자

소피아 톨스토이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도로시 파커 <너무 나쁘다!>
샤리에르 부인

결혼의 양상은 항상 남자와 여자에게 철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남녀 양성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런 필요성이 그들에게 상호성을 가져다준 적은 없다. 여자들은 남성 계급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환과 계약을 성립시키는 하나의 계급을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남자는 자율적이고완전한 한 개인이다. 그는 무엇보다 생산자로 생각되며, 그의 존재는 그가 집단에 제공하는 노동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여자에게는 그녀가 갇혀 있는 생식과 가사의 역할이 어떤 이유로 동등한 존엄성을 부여해 주지 않는지 앞에서 이미 보았다. 확실히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한다. 어떤 원시 부족들의 경우에 혼자서 자기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독신 남자는 일종의 천민이 되는 수가 있다. 농촌에서농부에게는 여자 협력자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대다수 남자는 어떤 힘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배우자에게 떠넘긴다. 개인은 안정적인 성생활과 자손을 욕망하며, 사회는 개인이 사회를 영속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사회가 구성원 각자에게 남편이자아버지로서 자기를 실현하도록 허용한다.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지배하는 가족 집단에 노예나 가신으로서 통합된 여자는 언제나 결혼을 통해 한 남자 집단에서 다른 남자 집단에게 주어졌다. 원시 시대에 부족이나 부계의 씨족은 여자를거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처분했다. - P580

사실 모든 인간 존재는 초월인 동시에 내재다. 자기를 초월하기 위해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합시켜야만 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기 내부에서 자기자신을 확인해야만 한다. - P583

그러므로 결혼은 일반적으로 사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남편은 말하자면 사랑하는 남자의 대용품이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분리는 조금도 우연이 아니며, 결혼제도의 성격에 내포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경제적이고 성적인 결합은 집단 이익을 향해 초월하는 게관건이지 그들의 개인적 행복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족장 체제 안에서는 어떤 회교도 집단에서는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 부모의 권위에 의해서 선택된 약혼자들이 결혼 당일까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회적 측면에서 고려해 볼 때개개인이 감정이나 성적 자의에 기초해 자기의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현명한 거래에서 욕망은 그렇게 쾌활하지 않다. 그것은 침울하고 한결 무디다. 사랑은 자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자기를 붙잡아두는 것을 증오한다. 그리고 예컨대결혼과 같은 사랑이외의 다른 명목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관계에는 친족관계나 재산 따위가 우아함이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시된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자손이나 가족을 자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생각해서 결혼한다. - P590

여자는 개별성 속에서 선택된 남편과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 속에서 여성적 기능의 행사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여자는 개별화된 형태가 아니라 오로지 종의 형태하에서만 쾌락을 알아야 한다. 이로부터 여자의 에로틱한 운명에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결과가 나온다. 우선, 여자는 결혼 이외의 성적활동에 어떤 권리도 없다. 부부에게 육체적 거래는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욕망과 쾌락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 그러나 노동자와 시민으로서 보편적인 것을 향해 초월하는 남자는 결혼 전에도, 부부생활 밖에서도 우연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운다. 반면에 여자가 본질적으로 암컷으로 규정된 세계에서 여자는 어디까지나 온전히 암컷으로서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한편, 이미 보았듯이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가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 P591

피신처, 은신처, 동굴, 태내로서의 가정은 외부의 위험을 막아준다. 비현실적으로 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외재성이다. 특히 저녁에 덧문이 닫히면 여자는 여왕처럼 느낀다. 정오에 온 세상에 퍼진 햇빛은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밤이 되면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은 모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등갓 아래서 오로지 자기 집만을 밝히며 빛나는 자기의 불빛을 본다. 자기집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V. 울프의 한 텍스트는 외부 공간이 붕괴되는 동안 집안에 집중한 현실을 보여 준다.

밤은 이제 유리창 너머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유리창은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보여 주는 대신에 질서, 안정, 견고한 지면이 집안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게끔 이상한 방식으로 외부 세계를 뒤틀어 버리고 있었다. 반대로 밖에는 유동성이 된사물이 흔들리고 사라지고 하는 단 하나의 반사가 있을 뿐이었다. - P615

다수의 여자가 이처럼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에서 무한히 다시 시작되는 피로밖에는 제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없다. 더 특권적인 혜택을 누릴 때도 승리는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 주부의 일만큼 시지프스의 형벌을 닮은 것도 별로 없다. 날이면 날마다 그릇을 씻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속옷을 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은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지고 먼지가 앉을 것이며헤져 버릴 것이다. 주부는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느라 지쳐 버린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를 영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긍정적인선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해 끝없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싸움이다. 주인의 장화를 닦는 것을 우울하게 거부한 하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닦아서 뭐합니까? 내일 또 닦아야 하는데요"라고 하인은 말했다. - P618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비질하고 어두운 장롱 아래 숨어 있는 먼지를 찾아내는일은 삶을 거부하면서 죽음을 막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단번의 동작으로창조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주부는 거기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포착한다. 그녀의 태도는 마니교도의 태도다. 마니교의 특성은 선과 악의 두 원리를 인정하는것만이 아니다. 선이 긍정적 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의 소멸을 통해 도달되는것을 상정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악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별로 마니교적이지 않다. 신에게 자기를 바침으로써 악마와 가장 잘 싸우는 것이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서 악마에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월과 자유의 모든 교리는 악의 패배를 선을 향한 진보에 종속시킨다. 그러나 여자는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초대받지 못했다. 집, 방, 더러운 속옷, 마루는 응결된 사물이다. 여자는 거기에 스며드는 나쁜 원리를 끝없이 쫓아내는 일만 할 수밖에없다. 그녀는 먼지, 얼룩, 찌꺼기, 때를 공격한다. 여자는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운다. 긍정적 목표를 향하는 대신에 적을 쉴 새 없이 격퇴해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운명이다. 흔히 주부는 그 운명을 격렬한 분노 속에서 참아 낸다. 바슐라르는그에 대해서 ‘심술‘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이 단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에게 주부의 편집증은 사도마조히즘의 한 형태다. 편집증과 악행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원하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소극성·불결함·악이 자기 몫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편집증적인 주부는 자기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세를 투덜대고 외쳐 대면서 맹렬한 기세로 먼지에 달려든다. 팽창하는 온갖 생명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를 공격하면서 그녀는 인생 자체를공격한다. 살아 있는 존재가 그녀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는 즉시 그녀의 눈에서는험상궂은 불꽃이 튄다. "신발을 닦아. 어지르지 마라. 그것에 손대지 마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숨도 못 쉬게 한다. 가장 작은 숨결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건 지금까지의 노동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아이들의 난장판은 회복시켜야 할 오점이다. - P620

그러나 가사노동은 현상유지를 확보하는 데만 이바지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남편의 눈에 무질서와 태만은 쉽게드러나지만 질서와 청결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 P629

많은 아내가 어린애 같은 것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상 아주 젊기 때문이다. - P640

그녀들이 제대로 추론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P646

만약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거나 히스테리를 부리고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등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너무 잦은 싸움과 비난은 남편을 가정 밖으로 내몰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매혹할 필요가 있는 가장 긴급한 때에 자기를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영웅적인 미소, 공갈 협박과 애교를 능란하게 조합해야 할 것이다.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계략을 쓸 것, 침묵 속에서 증오하고 두려워할 것, 한 남자의 허영심과 약점에 기댈 것, 남자의 허를 찌르고 남자를 속이고 조종할 줄 알 것, 이런 것들은 아주 서글픈 지식이다. 여자의 커다란 변명은결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도록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즉, 여자는 직업도 능력도 개인적 인맥도 없으며, 자기 이름조차 더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남편의 ‘절반‘이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이 버리면, 대개 그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떤 구원의 손길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 P655

부부 사이에 성실함과 우정이 존재하려면 서로에 대해 자유롭고 구체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남자만이 경제적 자주성과 남성성이 부여하는 특권을-법과 풍습을통해 - 쥐고 있는 한 당연히 그는 폭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이는 여자에게 반항하고 책략을 꾸미도록 부추긴다. - P656

물론 톨스토이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순조롭게 잘 되어 가는’ 가정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 가정에서는 부부가 타협에 도달해 서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거나속이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도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는 불운이 하나 있다. 바로 권태다.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메아리로 만드는 데 성공하든가, 각자가 자기 세계 속에 피신해 있다 하더라도,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그들은 더 이상 서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게 된다. 부부란 구성원이 자기의 고독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각자의 자율성을 상실한 공동체다. 그들은 상대와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지탱하는 대신에, 정지상태로 서로에게 동화된다. 그 때문에 정신적인 영역에서나 에로틱한 영역에서나 서로에게 무엇 하나 줄 수 없고, 교환할 것이 없다. - P658

얼마나 많은 여자가 결혼생활에 매몰되어 스탕달의 말처럼 ‘인류를 위해 사라졌던가!‘ 사람들은 결혼이 남자를 작아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혼은 여자를 거의 대부분 소멸시킨다. - P671

결혼의 비극은 약속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 행복에 관해서는 보장이란 것이 없다 - 여자를 불구로 만든다는 것이다. 결혼은 여자를 반복과 매너리즘에 빠뜨려 버린다. 여자 인생의 최초 20년은 실로 대단히 풍요롭다. 여자는 월경, 섹슈얼리티, 결혼, 모성이라는 경험을 통과한다. 여자는 세계와자기의 운명을 발견한다. 그러나 스무 살에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 평생 한 남자에 매이고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녀의 삶은 그것으로 영원히 끝난다. 진정한 행동, 진정한 일은 남자의 전유물이다. 여자에게는 종종 몹시 지치게 할 뿐 마음을결코 채워 주지 못하는 일거리만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녀에게 체념과 헌신의 미덕을 찬양했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까지 부부 두 사람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자기를 바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대단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장 고약한 것은 여자의 헌신이 성가신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의 헌신이 압제로 바뀌어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헌신의 태도를 최고의 유일한 정당성으로서 아내에게 강요한 것은 남편이다. 그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도록 강제한다. - P673

남편은 아내가 침대에서 뜨거운 동시에 쌀쌀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완전히 바치되 그 무게로 짓누르지 말기를 주장한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을 지상에 안착시키되 자유롭게 놓아둘 것을, 그날그날 단조로운 반복을 거듭하면서도자신을 무료하게 하지 말 것을, 언제나 옆에 있되 결코 성가시게 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는 그녀를 전적으로 소유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그녀의 소유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부부로 살면서 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처럼 그는 그녀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그녀를 기만하고 있다. 그녀는 이 배신의 범위를 가늠하는것으로 인생을 보낸다. - P674

그러나 부부의 경제적 책임을 남자가 유지하는 한,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P675

남녀 간의 커다란 차이는 여자에게 의존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자유를 가지고 행동할 때조차 여자는 노예이다. 반면에 남자는 본질적으로 자율적이고 구속을 외부로부터 받는다. 남자가 희생자는 자기 쪽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견뎌 내는 부담이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생충처럼 남자가 먹여 살린다. 그러나 기생충은 자신감넘치는 주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은 결코 상대의 희생물이 아니라 다 같이 종種의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부 역시 본인들이 만들지 않은 제도의 억압을 함께 견디고 있다. 누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고말하면 남편은 분개한다. 억압받는 쪽은 자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억압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남성적 민법, 즉 남성에 의해 남성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가 오늘날 남녀 모두에게 고통의 원천이 되는 형태로 여성의 조건을 규정해 버린 것이다.
남녀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결혼이 여자에게 하나의 ‘직업‘이 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들은 ‘여자는 이미 충분히 넌더리 나는 존재다‘라는 구실로 당치않은 이론을 늘어놓고 있다. 결혼은 여자를 ‘사마귀 암컷‘으로, ‘거머리‘로, ‘독’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결혼의 형태를 바꾸고 여성의 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상이여자의 자립을 금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이 된다. 여자를 해방함으로써, 다시 말해 여자에게 이 세계에서 할 일을 부여함으로써 남자는 해방될 것이다. - P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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