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 British Invasion

The Great Game

- Afghanistan
- Dost Mohammad Khan
- Russia vs British
- The Russian and British strategies to get control of Afghanistan became known as the Great Game.
- In 1855, thirteen years after the British disaster in Afghanistan, Dost Mohammad signed a treaty with Britain. This treaty promised that he would not attack the British, and that the British would stay out of Afshanistan.


Wandering Through Africa

- David Livingstone
- In 1857, Living-stone wrote a book about his explorations called Missionary Travels.
- In 1858, the government of Great Britain gave David Livingstone the official job of finding trade routes into Africa for British traders.
- David Livingstone had hoped to make Africa stronger. But his maps of Africa would make it easier, years later, for England and other European countries to come into Africa and to treat it just as India had been treated: like a land to be aptured, conquered, and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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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엔슬러 <아버지의 사과편지>
<분노와 애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에 해를 입힌 사람에게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막 썼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일찍이 1978년에 낸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앓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죠. 특정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 낙인찍는 은유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라 질병일 뿐이라는 것,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질병 관련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게되겠지요. - P171

동시에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써야 해요. 쉬운 듯 어려워요. 어떤상황을 세세하게 쓰려면 기억을 복기해 찬찬히 상황을 되짚어보고 무슨 사건을 쓸지 고민하고, 왜 좋고 나빴는지 감정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상당한 노동이 들거든요. 힘도 들고 시간도 듭니다. 또 낱낱이 쓰려니 무언가 부끄럽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뭉뚱그려서 추상적인 글을 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의 글이 관념적이고 모호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게으름’도 한몫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188

글쓰기는 이제 끝내야 하나 계속 써야 하나 영원히 헤매는일 같습니다. 저는 주로 기권하는 심정으로 글을 마쳐요. 이만하면 됐다는 확신보다는 더는 못 하겠다는 몸의 신호를 따르죠.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너무 아프거나, 똑같은 글을 너무여러 번 봐서 토가 나올 것 같을 때 "더는 못 고쳐."하면서 그냥 누워버립니다. 하하.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붙들고있을 수 없고요. 이렇게 물리적 한계 상황까지 끈질기게 내 글을 붙들어보는 것. 과연 완성한 것인지,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 - P204

답하는 이 외롭고 불확실한 과정을 견디는 것. 이것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완벽함은 집착만으로 안 돼. 놓을 줄도알아야 돼. 너를 가로막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누군가의 표현대로 완벽함은 안 주시고 완벽주의만 주신 신을 원망하며 끝나지 않는 글쓰기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P205

30대였던 제게 좋은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요. 요즘도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표지가 나달나달해진 저 책이 먼저 떠오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표현으로 일깨움을 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하는 너희들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들의 근면이란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 P215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 - P219

여러분도 고유한 문체를 갖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자신의 글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고민해보는 거예요. ‘웃기면 좋겠다.‘ ‘담백한 문장을 쓰고 싶다.‘ ‘서늘하면 좋겠다.’ ‘독자가얻어갈 게 글에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지향점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자기만의 세계관과 정서, 읽는 호흡에 따라 고유한 문체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체는 남들이 가진, 좋아 보이는 걸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고유한 본질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자기 탐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P242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락하며 발표했던 연설문의 일부입니다.

영감,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는 사실입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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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행복한 미래

행복 디스토피아
어쩌면의 미래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아일랜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임스 건 <조이 메이커>
어슐러 르 귄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행복을 향한 욕망은 행복대상을 앞으로 보내고, 그 흔적을 따라 길이 형성된다. 마치 그 길을 따라가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 P293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 답하면서 내가 진지하게 다뤄 보고자 하는문제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희망, 모든 형태의 유토피아주의와 낙관주의, "어떤 더 완벽한 질서"에 대한 모든 꿈이 미래주의의 논리를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볼 경우 이런 미래를 계승할 수 없는사람들에게 부정성을 위치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에델만은 여전히 긍정을 거부하는 행위 안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긍정하고 있다. 내게는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서 오히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점이 보이는데, 여기서 희망은 부정적인 것에 몸담음으로써 열리는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 P295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는 정치의 형식 내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기묘하게 왜곡되고 혼합되는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디스토피아 형식들을 통해 이를 살펴보려 하는데, 여기에는 내가 행복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된다. 왜 디스토피아인가? 왜 유토피아가 아닌가? 유토피아가 더 명시적으로 행복한 미래에 대한 전망에 기댄 형식이 아닌가? 물론 유토피아들이 행복한 미래로 환원될 수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듯이, "유토피아가 기록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에서 나온 것, 오늘의 질서가 놓치고 있는 것이다"(Baudrillard 2001/2006:62). - P297

노동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노동 대상에 부여하지만 그 대상은 그들의 손을 떠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가 아닌 대상에 귀속된다"(106[86]).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과정이 "대상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속박"(106)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은 상실한 대상에 매여 있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우울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110[89]).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일종의 "살아 있는 자본"[105]이며 그래서 "욕구를 가진 자본" (120)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운"(120)이다. 노동의 전유는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 소외란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일종의 자기소외 - 인 동시에 노동자가 세상에 몸담는 방식을 형성하는 감정- 구조, 즉 고통의 형식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곧 자신의 - P303

연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유당함으로써 자신과의 연계를 상실하고 고통받는다. - P304

그렇다면 우리는 <칠드런 오브 맨>에 나오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사이의 전환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전환의 지점들은 도착倒錯의 지점들이기도 한 것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영화는 나쁜 느낌을 표출하는테오에서 시작한다. 그의 비관주의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에 대한비관주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다. 우리는 대안에 대한 믿음이 현재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판타지는 아닌지 추궁해 볼수 있다. 늘 바로 저 "지평 너머" 어느 지점에 닿기만 하면 상황이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라는 믿음은 우리 앞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세상만사를 회피하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의 가능성에 대한 불신도 고통을 막으려는 정신적 방어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될 위험, 실망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실망을 잘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생존 전략으로서의 비관주의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것을 향해 달려들"면서도 희망을 회피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이룰 희망이 없다고 지레 마음을 다잡음으로써 실망에 대비했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 P321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식스 에코의 불안은 끈적거린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런데 왜?"라는 그의 질문은 좋은 느낌을 주는 담요의 온기를 흩트리는 활기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닥터 메릭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처음으로 여기 환경을 의심한 클론이야. 여기서의 자기 삶 전체를 의심하더군."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전 시스템은 예측 가능성에 입각해 있네. … 식스 에코는 그것을 약화시키는 한 가지 특징을 보여 줬어. 바로 인간의 호기심 말이야." 보통 궁금증과 호기심은 긍정적 감정으로 간주된다. 이 영화에서 궁금증과 호기심은 좋은 것(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제시되지만, 나쁜 감정에 연결돼 있다. 호기심 있는, 궁금해 하는 주체가 바로 기분 나쁜 주체다. - P342

불행이 미치는 영향을 기꺼이 받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정치적 자유로서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할 자유로서 자유를 급진화할 수 있다. 불행할 자유가 비참해지거나 슬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P352

물론 거기에 그런 느낌들을 표현할 자유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불행할 자유란 불행한 것에 의해 변용될 자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갈 자유다. 불행할 자유란 행복의 길에서 이탈한삶을 살아갈 자유다. 그 이탈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말이다. 결국 그것은 이탈 행위에 의해 불행을 야기할 자유를 의미한다. - P353

어쩌면 배가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한다면 혁명적 행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행복은 우연에, 우연의 도착에, 어쩌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가능성에 열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뭔가가 발생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건 우연 발생이 제거된 유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연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유산을 거부한다는 것은 일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할 때, 우리는 우연히 일어나게도 하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우연한 일은 마주침, 마주침의 우연, 우연 마주침이다. 그런 마주침들은 일이 발생하는 토대를 재창조한다. 토대를 재창조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과거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생각처럼, "앞으로 발생할 것은, 어쩌면, 단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침내 어쩌면perhaps에 대한 생각, 어쩌면 그 자체일 것이다"(Derida 1997/2005: 29). "어쩌면" 안에 들어 있는 "우연"hap이 "행복"happiness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행복한 미래란 어쩌면의 미래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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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West Against East

Japan Re-Open

- When Matthew Perry came back to Japan in 1854, the Japanese agreed to sign a trade treaty with the United States. Not too long after, France, Spain, and other European countries signed their own treaties with Japan.


The Crimean War

- Christians’ holy places (Jerusalem, Bethlehem, Constantinople) in the Turk
- Nicholas I, the czar of Russia wanted to take Constantinople for sailing down into the Mediterranean Sea
- England’s fear of Russia
- France’s fear of Russia
-> France and Britain vs Russia
-> France and Britain were determined to capture the Russian city of Sevastopol in the Crimean Peninsula which was in the north of the Black Sea.
-> In 1856, Alexander, Nicholas’s son, agreed to sign a peace treaty called the Peace of Paris. Russia would get Sevastopol back, but only after returning Turkish land to the Turks. And Russia had to promise not to keep any warships in the Black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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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 Britain’s Empire

Victoria’s England

-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 the Crystal Palace


The Sepoy Mutiny

- the East India Company
- 1856
- a colony of Bri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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