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럽게 짓지 않을게요."
자식의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는 어머니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 P99

그땐 몰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두 문장 사이에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떠났다. ‘안다는 것’과 ‘감당한다는 것‘ 사이엔 강이 하나 있는데,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든 것이 그 강의 속성인지라, 그 말은 그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단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만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영복은 ‘아름다움‘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 P102

특수학교 설립은 정의가 아니다. 애초 학교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의 장이었다면, 그리하여 학교가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면 특수학교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아 열을 채우고 싶어 할 때, 선심 쓰듯 내놓는 타협이 바로 특수학교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로막힌 밤, 엄마들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 P109

시간이 흘러 언니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남아 있는 삶 역시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언니 혜영은 말한다.
"혜정이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의 시간이고 하나는 혜정이 언니의 시간이다. 혜정이를 시설로 보낸 대가로 얻어진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진짜 나의 시간을 찾고 싶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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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사랑했던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는데, 나의 글쓰기가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 P16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겐 보이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겐 보이고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세상에 해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듣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었다. - P20

‘시선‘이라는 아주 강력한 것이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 P24

나는 죄책감이란 것이 ‘먼저 달아난 사람’의 감정인 줄로만 여겼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의 것일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지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실은 죄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것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 P51

이곳 광화문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우리는 2001년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중증장애인들이 맨몸으로 막아섰던 그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고, 2007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한강대교를 네 발로 기어 쟁취해낸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 여기까지 왔으며, 2009년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시설과 세상 사이의 아득한 낭떠러지에 놓았던 그 징검다리를 딛고 여기까지 왔다. 무지개를 만나려면 비를 견뎌야 한다. 나는 그것을 저항하는 중증장애인들 속에서 천천히 몸으로 배웠다. 이번 비는 참으로 길다. - P59

수십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이 열렸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방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동네를 구경하고 햇살을 만끽하고 장미꽃을 샀다. 니체를 읽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사랑하고 욕망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다. - P61

그리하여 그들이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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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으로서의 작가는 예리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직시하여 은폐된 진실을 드러낼 것이고, 세상과 자신의 진실을 예민한 촉수로 느낌으로써 시대를 앞서서 감지할 것이다. 그것을 설령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타인의 서사를 통해 자신을 고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기 좋은 글로 면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르는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이건 그들이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 - P119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을 밤에 읽다가 □□에 맞추어 □□ 소리가 들리는 부분에서 소름 한 번쯤 돋아 보지 않은 애서가가 있을 텐가. - P143

책은 저자의 경청과 독자의 경청으로 완성된다. - P179

말해야만 하는 일을 말하고 나서 제 삶을 침범당하는 기막힌 사태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세상과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 에세이가 투쟁이 되는 사람들. 자서전이 비명이 되는사람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P185

소설의 결말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 후에 그래서 이게 나에게 무슨 이득을 주느냐고 묻는 것은 죽음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 뒤 그래서 삶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 P197

그러나 고독한 이는 모름지기 책을 벗 삼아야 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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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던 책을 결코 다 읽고 죽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읽어야 한다. 매일 읽어야 한다. 고요 속에서 읽고 또 읽는다. 이걸 다 읽고 죽어야 한다. - P27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 P29

벽돌책을 읽는 데에는 유난히 긴 경청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께는 그 자체로 주장이며 난이도는 그 자체로 방어다. 대개 하드커버로 감싸진 두꺼운 책의 내부로 들어가려면 독자와 저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방어선을 뚫어야 한다. 뚫고 들어갔다면 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노련한 탐험가는 견고하게 세워 놓은 성을 한 자 한 자 탐색하며 완성본에서 거꾸로 설계도를 그려 나간다. 그는 설계도에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들여다본다. - P59

책은 내가 간신히 얻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안정, 삶, 집 같은 단어이다. - P73

어린 시절에는 뭘 읽는지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너무나 많고, 그렇게 읽은 책이 없었다면, 그리고 뭔지도 모르고 신나서 떠든 그 이야기들을 친절히 들어 준 어른들이 없었다면 나는 무척 위축되어 아마 책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는 실컷 읽고 실컷 떠들도록 두어야 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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